〈 2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1)
독고진이 시선을 내리자, 그 곳에는 도담한 가슴이 자리잡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던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남성의 대흉근이 아닌 여성 특유의 유려한 곡선을 가진 형태의 가슴.
“이게… 왜 있어?”
독고진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을 확인한 독고진은 그럼에도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더 숙여 자신의 다리 사이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다리 사이에 있던 것은 그가 몇 십년을 함께 한 양물이 아니라 분홍빛의 앙다문 여성기였다.
“… 여자가 되었다고? 본좌가…?”
바닥을 향해 숙인 그의 시선에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 환골탈태로 머리카락의 색마저 바뀐 것인가.’
독고진이 자신의 머리칼을 쓱 훑었다.
뻑뻑하고, 드세고, 정돈되지 않은 남성의 머리칼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고운 여성의 머리칼.
“…”
자리에서 일어난 독고진은 동경(銅鏡)을 찾았다.
객실 한 구석에 위치한 동경 앞에 선 독고진은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나란 말이냐….”
독고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기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원래 키보다 머리 두 개는 작아진 연약한 몸.
근육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고 말랑말랑해보이는 연약한 몸.
가을의 단풍처럼 붉게 물든 채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
독고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공은?! 내공만 살아있다면…!’
급하게 가부좌를 틀어 자신의 단전을 관조한 독고진은 주화입마에 빠질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이렇게 많은 내공이?!’
그의 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막대한 양의 음기는 남자의 몸일 때 쌓은 내공보다도 훨씬 더 순수하고, 강력했다.
‘이 정도의 내공이라면 여자가 되어도 괜찮은…가?’
일단 내공을 일주천하며 자신의 새로운 몸에 대해 다시 확인하려던 차에 그는 다시 한 번 주화입마에 빠질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 기경팔맥이 모두 막혔다니?’
말 그대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내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경팔맥 중 임맥과 독맥, 임독양맥을 제외한 나머지 기맥을 내공으로 자극하는 소주천과 임독양맥까지 포함해서 내공을 돌리는 대주천으로 나뉜다.
하지만 애초에 기맥들이 막혀있으면 내공의 운공 자체가 불가능했다.
“…”
독고진이 눈을 뜨자, 그 곳엔 깊은 절망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 허허…. 허허허….”
허탈감에 헛웃음을 흘리며 독고진이 실성한 듯 웃었다.
“시발… 허허…. 환골탈태를 하고도… 기맥이 다 막혀서… 무공을 못 쓴다고…?”
독고진이 두 손을 쥐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시바아아아아아아아알!!!!!!”
*
잠깐 충격에 빠져서 절망감에 빠져있었지만, 독고진은 금세 일어났다.
‘일단은…, 생각해보자. 나는 독고진이다. 이딴 일로 주저앉지 않아.’
독고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쓰레기처럼 변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씨…발!!”
그의 애병.
원래는 말의 목을 자르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대검, 참마도는 당연히 들 수 없었다.
그 무게가 70근(42kg)에 달하기에 지금의 연약한 몸으로 들 수 없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한 줌의 애착이 남아 여러번 들어올리려 시도했다.
“끄으으…!!!”
하지만 참마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몸인게야….”
비오듯이 땀을 흘려도 꿈쩍도 않는 참마도를 보고 결국 독고진은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무기가 없더라도 그는 광마이며, 독고진이다.
하지만 10년을 함께한 애병을 이런 이름도 없는 객잔에 남기고 가는 것이 계속해서 신경쓰였다.
‘… 미안하다.’
아쉬움에 손 때 묻은 검의 손잡이를 한 번 쓰다듬은 뒤, 독고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셔 소리질렀다.
“… 점소이! 점소이!!”
“예! 갑니다!!”
드르륵.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점소이가 놀라서 눈을 가렸다.
벌거벗은 여성이 바닥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 소저. 옷을 벗고 계시면 벗고 계신다고 말씀을….”
“닥치고. 여기 시원한 냉수 좀 가져오너라.”
“… 예.”
“그리고. 야. 야, 이 새끼야! 눈 떠, 이 새끼야! 눈을 떠야 뭘 볼 거 아니야!”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점소이가 두 손을 다리 사이로 공손히 내리더니 힐끗힐끗 독고진을 쳐다보았다.
정작 당사자인 독고진은 점소이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손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그 곳엔 독고진이 환골탈태를 이루며 쏟아낸 몸 안의 불순물들이 즐비했다.
“여기 보이나? 이 거무튀튀한 것들.”
“… 예.”
점소이가 계속 얼굴을 붉힌 채, 바닥의 탁기들과 자신을 번갈아보자 독고진은 점점 짜증이 솟아올랐다.
“이것들 좀 다 치우게. 그리고 자네.”
“예… 예!”
“눈까리 그런 식으로 또 왔다갔다하면 눈을 찢어버리겠다. 개방의 거지 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 예.”
“아, 그리고 땀 흘려서 찝찝하니깐 목욕물도 좀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 그런데 혹시 돈은….”
“돈은 무슨. 뒤질라고. 어제 다 셈을 치뤘잖나.”
“아…, 동행 분이십니까?”
“동행은 무슨 이 새끼야. 내가 임마!”
“…”
일단 큰 소리를 쳤지만, 그제서야 독고진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
‘… 뭐라고 해야하지?’
“내가….”
“소저가…?”
점소이가 머리를 기울였다.
“하아…. 그 분의 여식이다. 아버…지께선 잠시 아침 산보를 나가셨으니 어서 목욕할 물을 준비해놓거라.”
“… 예.”
드르륵.
문을 닫은 점소이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객잔의 주인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점소이를 바라봤다.
“… 어제 그 손님 방이지?”
“… 예. 헌데 좀 이상한 일이…”
“이놈아! 또 무슨 잘못을 한 게야?!”
“그… 그게 아니라요.”
“뭐가 이놈아?!”
“어… 어제 그 무서운 손님 있잖아요.”
“그 분이 뭔가를 말하시더냐? 아니면 또 난동을 피우시든?”
점소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엄청 아름다운 따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얼굴에?”
“예.”
“… 예쁘더냐?”
“엄청요. 선녀가 강림한 줄 알았습니다. 머리도 새빨간 것이… 혹시 요괴가 아닐까요? 말투도 할배 같던데….”
그러자 객잔 주인이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예끼, 이놈아. 요괴는 무슨.”
“… 진짠데….”
“그래서… 그 소저가 무얼 원하시더냐?”
“무슨 똥통에 빠지기라도 한 거 같습니다. 바닥에 흘린 악취 나는 것들을 치워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것들을 가져와서….”
“그 손님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럼 아마 목욕도 하시겠구나.”
“예. 목욕물과 여성용 옷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다. 내가 목욕물을 데우고 있을터이니 너는 가서 수아를 깨우거라.”
“…예.”
객잔 주인이 뒤돌아서 욕실로 향하자 점소이가 그에게 물었다.
“저… 혹시 방도 제가 치워야합니까?”
“그럼 이놈아, 내가 치우리?”
“아닙니다. 헤헤.”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소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점소이의 입이 헤벌쭉 늘어났다.
“그렇게 곱더냐? 입이 아주 그냥 찢어지겠구나.”
“헤헤. 눈 요기라도 하는 거지요.”
“얼씨구. 어서 수아나 깨우거라, 이놈아. 어제 그 괴팍맞은 손님의 성격으로 보아 뭐 하나 잘못이라도 하면 경을 칠게야.”
“예.”
점소이가 멀어지자 객잔 주인은 고개를 슬쩍 돌려 윗층의 독고진이 머무르는 방을 쳐다보았다.
“… 손님이 언제 더 들어오셨지? 동행은 없다고 했거늘….”
아마도 자신이 졸고 있는 사이 들어왔으리라 생각하며 주인은 욕실로 향했다.
*
바닥의 더러운 탁기들을 치우며 점소이가 계속 곁눈질로 자신을 쳐다보자 독고진이 으르렁댔다.
“어이. 점소이.”
“… 예, 소저.”
“본좌가 아까 네놈의 눈깔을 가지고 무어라 했는지 기억하는가?”
“찢어버리신다고….”
“거 시발, 사람을 그딴 식으로 쳐다보면 본좌가 기분이 좆같지 않겠나?”
“… 죄송합니다.”
점소이가 다시 고개를 땅에 쳐박고 다시 방바닥에 흐트러진 탁기를 치우는 와중, 객실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들어온 것은 점소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졸린 눈의 소녀였다.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가자꾸나.”
“어머…!”
여자 점소이, 수아가 독고진을 보더니 당황하여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졸려보이던 눈에서 잠기운이 사라지고,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다… 다 큰 처자가 외간 남자에게 속살을 보이시면 어떡해요!”
“앙? 다 큰 처자는 무슨 개소….”
“어서 옷부터 걸치셔요! 장일이, 너 이 변태 새끼!”
“아니, 나는… 저 소저께서 그냥 빨리 치워달라고 하셔서….”
“빨리 나가!”
수아가 빽뺵거리며 소리를 치자 점소이, 장일이 도망치듯 객실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쾅!
“… 좀만 천천히 오지….”
거칠게 닫힌 문을 보며 장일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아…. 참 아름다운 소저인데 입이 걸레네. 걸레야….”
힘 없는 걸음으로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던 장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일이 완전히 계단 밑으로 내려간 것을 수아가 문 틈으로는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무슨 변고를 당할 지도 모르는데 이런 차림으로 계세요. 장일이가 어떤 놈인지 아시고요!”
“… 뭐라는 게야?”
“뭐가라니요! 아이참…. 일단 옷부터 걸치시죠.”
“… 곧 씻는데 굳이 또 옷을 걸쳤다 벗으라고?”
“그럼 알몸으로 내려가시게요?!”
“문제될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소리를 높이는가. 그만 좀 빽빽대게. 귀가 아프구만.”
“아가씨!! 그러시면 안 돼요! 일단 이거라도 걸치세요.”
“…”
계속 자신을 닥달하여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던 독고진은 이상함을 깨달았다.
‘… 어?’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도 아직까지 광증이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이, 점소이.”
“예, 아가씨.”
“내 눈 좀 보게나. 어떤가?”
독고진이 자신의 눈을 잡아내려 점소이에게 보여줬다.
“… 아름다우셔요. 보석 같아요.”
“아니, 그런 거 말고. 안 붉은가?”
“… 네.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색인데요?”
“흐음….”
“뒤로 좀 돌아주세요. 팔도 좀 들어주시고요.”
“그래, 알겠네.”
독고진의 기분이 좋아졌다.
‘혹시 환골탈태를 하고 광증도 사라졌나?’
독고진은 원래부터 타고나기를 울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극양의 내공을 다루는 구양신공을 10성까지 익히고 난 뒤부터는 가끔씩 울화가 심해져서 광증으로 번졌다.
광증이 도진 상태의 독고진은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본능에 따라 지극히 원초적인 파괴행동만을 일삼았다.
그의 별호가 ‘광마’라고 불린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광증’ 때문이었다.
이제 그 광증이 사라졌다 생각하니 독고진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하핫.”
“왜 그러세요, 아가씨?”
“이제 아무도 나를 모르겠구나.”
“… 예?”
“아니다. 이제 다 입었으니 씻으러가면 되겠는가?”
“예. 욕실에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놨습니다.”
“그래, 가자꾸나.”
“아… 아가씨! 그렇게 보폭을 크게 하시면 속살이 다 비쳐요.”
“그렇다고 사내대장부가 쫌팽이처럼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나?”
“아… 아잇 참…!”
수아가 급하게 달려와 밖으로 나가는 독고진의 팔을 붙잡았다.
“잡아드릴게요. 같이 내려가시죠.”
“하아…. 알았다.”
“히힛, 아가씨는 손도 고우시네요.”
“징그러운 소리를.”
독고진이 계단에 첫 발을 내딛고, 이내 멈춰서자 수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 아니.”
독고진이 문득 천장을 올려보았다.
환골탈태로 몸이 바뀌자 세상을 보는 모든 시선이 달라졌다.
하다못해 걷는 것 마저 어색하자 독고진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 다시 처음부터인가.’
그가 평생을 거쳐 쌓은 무공은 극양의 기운을 다루던 무공이었으나 이제 단전에 들어찬 것은 극음의 내공 뿐이었다.
‘다시 극양의 기운을 되찾아 구양신공을 회복하거나 아니면 극음의 무공을 얻어야겠군.’
문제는 지금 그의 몸이 광마였던 시절만큼 강대하지 못 한 점이었다.
당장 이 허약한 몸뚱이로 누군가에게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그 빈약한 빙궁의 무사 놈들이더라더 지금 들이닥친다면 그는 꼼짝도 하지 못 하고 붙잡혀 갈 것이 뻔했다.
그런 고민에 빠진 와중, 악취가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 이거 내 냄새냐?”
“… 예, 아가씨.”
“에잇, 씨발. 어서 씻으러 가자.”
“네네. 어서 가시지요. 그리고 아가씨, 말씀을 조금만 곱게….”
“어허! 어딜….”
“…”
독고진이 기함하자 수아가 움츠러들었다.
‘… 일단 씻으며 차분히 생각해보자.’
독고진이 다시 계단에 발을 내딛는 순간.
“으헉!”
“아… 아가씨!”
세상이 뒤집혔다.
쿵! 쿠당! 쾅!
몇 번을 구르고 나서야 독고진이 멈춰섰다.
“… 다리가 짧아졌군.”
아직은 걷는 것도 힘든 광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