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우리는 그날 하루종일 밀린 대화를 나누고 서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방황은 정말 끝이다.
설령 무슨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나는 시아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 미래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허들이 있다면···.
기꺼이 넘어 주겠다.
그게 어떤 허들이건 말이다.
시아와의 사랑을 확인한 것은 기뻤다.
하지만 이 소중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당분간 시아에게 몸을 사리라고 했다.
우연히 파이널 칠드런에게 시아의 정보가 들어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완전히 제로가 아닌 이상은 조심 또 조심하는게 좋았다.
시아는 당분간 집에서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만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난 호주의 전력 증강에 여념이 없었다.
고위 간부급들에게 세컨드 사이킥 홀을 여는 작업은 이미 모두 마쳤다.
거의 지옥 같은 고통이 따르기는 했지만 전원 독한 근성이 있어서 잘 이겨냈다.
특히 문리향은 정말 대단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능력의 용량 자체가 워낙에 커서 문리향의 세컨드 사이킥 홀을 여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24시간을 넘겼다.
그 동안 그는 정말로 지옥 같은 고통이 시달려야 했고 말이다.
하지만 문리향은 정좌를 한 상태로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꽉다문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참아냈다.
그걸 보고 제이크 하퍼는 혀를 내둘렀다.
“우와···. 저 독한 인간···.”
제이크 하퍼는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하는 동안 거의 미칠 것처럼 비명을 질렀었다.
자칫 잘못하면 실패할 위기에 처해서 급하게 구속복을 입히고 진행해야 할 정도였다.
거기에 비하면 문리향의 근성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전원 고통을 감수한 보람이 있었다.
세컨드 사이킥 홀의 개방은 파이널 칠드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수였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기존의 초능력을 강하게 하는것에도 효과는 있었다.
모두들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하기 전 보다 다섯배 이상은 강해졌다.
덕분에 굉장한 전력의 증강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큰 효과다.
또 다른 내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파이널 칠드런 중에서 일반인의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 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비장의 한 수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주 전체의 전력을 증강 시키려면 그 사람도 시키는게 좋겠지?’
난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던 김수경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파이널 칠드런에 관해서는 빼고 말이다.
설명을 들은 김수경씨는 당장에 하겠다고 시드니로 날아왔다.
“많이 고통 스럽습니다. 괜찮습니까?”
“그래. 얼마든지 하게.”
“알겠습니다.”
난 그렇게 마음 먹고 김수경씨에게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 시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일처럼 간단하게 세컨드 사이킥 홀이 개방 되었다.
“어····? 어째서?”
난 당황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세컨드 사이킥 홀이 이렇게 간단하게 생길 리가 없다. 이걸 자연스럽게 타고난 파이널 칠드런이라면 혹·····.
“······김····· 수경씨?”
“················.”
난 조심스럽게 김수경씨를 불렀다.
그러면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서 방심하지 않고 임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최악의 가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김수경씨는 내가 부르거나 말거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하지? 해야 하나?’
이건 틀림없다.
김수경씨는 파이널 칠드런이었다.
더구나 지금 열어본 세컨드 사이킥 홀의 느낌으로 봐서는 상당한 거물·····.
이런 상황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쩔까? 기습으로 처리해야 하나?
만약 그가 작정하고 싸운다면 내 저택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하지만 김수경씨는····.
난 치열하게 망설였다.
그때 김수경씨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랬던 건가? 그랬던 거야····.”
“김수경씨?”
“안심하게. 지금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행이다.
파이널 칠드런으로서의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래도 김수경씨는 김수경씨 였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잊어 버린 기억들이 한꺼번에 돌아와서 멍하기는 해. 하지만·····. 후우. 자네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걸세. 내 딸을 걸고 맹세하지.”
“············.”
너무 갑작 스러워서 당황했지만·····.
이만하면 믿어도 될 것 같았다.
파이널 칠드런으로서 각성한 김수경씨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치열한 고뇌를 겪었을 것이다.
김수경이자 혜미의 아버지로서의 자신.
그리고 파이널 칠드런으로서의 자신.
자아가 두 개인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억이 다를 뿐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신이 한 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환경의 차이로 다른 인간처럼 변했을 뿐.
다행이도 김수경씨는 지금의 자신을 택한 모양이다.
아마도···. 혜미의 존재가 컸으리라.
‘고맙다. 혜미야···. 네 덕분에 세상에 커다란 악이 하나 사라지는 구나.’
난 이제까지 혜미한테 감사해 보거나 같이 놀아준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한번 만큼은 진심으로 그 작은 생명에게 감사한다.
진정으로 말이다.
“김수경씨. 기억이 돌아왔으면 자신이 몇 번인지 혹시 아십니까?”
“난···. 4번이었군. 전생의 이름은 앨런 포트였어.”
“4번·····.”
이건···. 이건 거의 횡재라도 한 기분이다.
길가에서 보석을 주웠다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 거물일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그래도 4번일 줄은 몰랐다.
“김수경씨 그럼 시아에 관해서도 기억하십니까?”
김수경씨는 시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시아가 성모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 이제 전생 따위는 할 생각도 없으니까. 그녀는 자네 여자야.”
김수경씨의 말은 진심으로 들렸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뒤에 말을 덧붙였다.
“내 딸보다 오래 살아서 뭐 하겠나? 이제는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고 그렇게 죽고 싶네.”
“김수경씨······. 감사합니다.”
난 진정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그에게 진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파이널 칠드런이지만 시아와의 사랑을 우선시 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찬가지다.
혜미와의 사랑.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그의 DNA레벨로 밖혀 있는파이털 칠드런의 임무를 가뿐하게 이기고 우선시 한 것이다.
난 자식이라는 것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부정이라는 것이 나와 시아의 사랑 못지 않게 위대하고 강한 감정이라는 것은 알겠다.
내가 그렇게 감동하고 있을 때 김수경씨가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도 하나 물어보지. 자네는 누구인가? 파이널 칠드런 중에 몇 번이었지?”
“그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게 무슨 말인가?”
“사실은······.”
난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파이널 칠드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난 내가 누군지 자각하고 있는게 거의 없었다.
여기서 김수경씨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난 이번에야 말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나에 관해서 설명했다.
또 다른 나라는 자아에 관해서도 모두 말이다.
김수경씨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한마디 말을 했다.
“이건 내 예상인데····. 자네 어쩌면 파이널 칠드런이 아닌 것 아닌가?”
“예? 그게 무슨····.”
“일반인의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한다? 그런 능력은 듣도 보도 못했네?”
“그거야 제가 파이널 칠드런이니까···.”
“아니 그러니까····. 난 모든 파이널 칠드런의 능력을 다 기억하네. 물론 전생을 하고 수련하는 과정에 따라서 다른 능력이 생기기는 하지. 하지만 그래도 메인 스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법이야.”
“···············.”
“일반인의 세컨드 사이킥 홀을 깨워? 그건 어떻게 보면 파이널 칠드런을 양산 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 아닌가? 하지만 난 자네와 같은 능력을 가진 자를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은····. 제가 파이널 칠드런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래···. 적어도 나와 같은 세대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
“·············.”
난 혼란 스러웠다.
나에 관해서 아직도 숨겨진 진실이 숨어져 있다는 말인가?
난 그때 순간 또 다른 내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진정한 파이널 칠드런이다.]
파이널 칠드런. 마지막 아이···.
그 말은 혹시····.
“혹시···, 나는 마지막에 따로 제작된 파이널 칠드런이 아닐까요?”
난 스스로 말하고 무척이나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확신되는 심증이 있었다.
지금의 김수경씨를 보고 느낀 것인데···. 나에게는 전생의 기억이 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성모에 대한 기억이나 다른 파이널 칠드런에 대한 단서는 모두 미하엘 알렉산도르가 심어 놓은 것이거나 또 다른 나에게 들은 것들 뿐이다.
난 처음에는 이것이 내가 아직 파이널 칠드런으로서 완전히 각성하지 않아서라고 생ㄲ했다.
하지만 지금 김수경씨는····.
각성하자마자 전생의 모든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굴고 있다.
나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보자.
만약에····. 만약에 내가 애초에 전생이 없다면 어떨까?
나중에 나만 따로 만들어진 파이널 칠드런이라면? 그렇다면 모든 얘기가 맞아 떨어진다.
내 의견을 들은 김수경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안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째서 그렇게 단언 하십니까?”
내 말에 김수경씨는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아귀가 안 맞아. 파이널 칠드런은 누가 만들었나?”
“예? 그거야 크리스 파슈타인 박사가···.”
“그래. 그 크리스 파슈타인 박사가 만들었지. 이 세상에 오직 그만이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
“그렇다면 그가·····.”
“모든 파이널 칠드런의 기억에 똑똑히 자리하고 있네. 크리스 박사가 죽는 모습이 말이야.”
“·············.”
“그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정했지. 우리를 보고 인류의 마지막 아이. 파이널 칠드런이라고 말이야.”
“그럼··, 누군가가 크리스 파슈타인 박사의 연구를 발견하고 이어 받아서···.”
“무리야. 크리스 박사는 파이널 칠드런이 국가의 병기로 활용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에 관련되 자료를 모두 파기했지.”
“············.”
“그리고 혹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난 그 괴물 같은 천재를 제외하고는 파이널 칠드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네.”
“후우···. 다시 원점이군요.”
결국 나는 뭘까?
기껏 어느 정도 나에 관해서 가닥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다시 도로아미타불이라니····.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고 김수경씨가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일단 마음을 편히 가지게. 자네도 나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우선시 해야 해.”
“····알겠습니다.”
김수경씨의 말이 맞았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언젠가는 알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그 미래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을 각오와 준비를 해 두자.
============================ 작품 후기 ============================
김수경 떡밥은 숨겨오던 비장의 한수였습니다.
너무 허무하게 공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겟지만 김수경을 위해서 준비해둔 비장의 스토리 라인이 있으니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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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응원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