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예를 들어보자.
보통 초능력자가 10이라는 힘을 담은 화염을 던지고···.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한 파이널 칠드런이 1이라는 힘을 담아서 화염을 던진다고 하자.
그렇게 해서 양쪽의 화염이 격돌하면 놀랍게도 보통 초능력자가 가진 10이라는 힘이 힘도 못쓰고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내가 던진 소멸의 권능에 미하엘이 태연하게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즉,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하지 않고는 절대로 초능력으로 맞설 수 없는 존재.
그게 파이널 칠드런이었다.
그러니 미하엘과 제이.
이 두 명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파이널 칠드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세컨드 사이킥 홀의 개방이 필수저이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난 내 수하들에게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빼고 세컨드 사이킥 홀의 존재에 관해서만 말했다.
그러자 부하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저희들이 그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진다는 말입니까?”
“그래. 지금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겠지. 어때? 하겠나?”
“당연하죠.”
“전 하겠습니다.”
“물론 하겠습니다.”
부하들의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런 반응을 할 줄은 알았지. 하지만 잘 생각해라.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예?”
“자세한 것은 말해 줄 수 없지만···. 이것은 너희들의 신체를 개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고통 정도는···.”
“그리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하다.”
“·············.”
“·············.”
“·············.”
내 말에 당장이라도 할 것 같았던 부하들이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그러니 몸과 마음을 최고로 가다듬고 나에게 찾아와라.”
난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비켰다.
이제 나머지는 저들의 선택이다.
뭐···. 대부분 오기는 올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말이다.
아니 본전은 아닌가?
아프기는 지랄 맞게 아플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신체의 근간부터··. 특히 뇌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작업이다.
파이널 칠드런 처럼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뭐···. 그래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세컨드 사이킥 홀은 필수다.
그게 없으면 파이널 칠드런과는 전투를 해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날 밤.
똑똑···.
“들어와.”
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수진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왔네?”
“····그래.”
수진이는 그렇게 대답하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하늘하늘한 네글리제와 속에 비치는 핑크색 레이스 속옷.
이건 수진이가 종종 나에게 안기기 위해서 찾아올 때의 복장이었다.
난 자연스럽게 수진이에게 손을 뻗어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그때···.
“···시아하고는 얘기 해 봤어?”
“····하아~, 그 말하려고 온 거야?”
“얘기 안 했지?”
“·············.”
“시아가 너 찾는다고 하루 종일 움직였는데 넌 피했다면서? 이미 집안에 소문 다 났어.”
“··············.”
“시아가 풀이 푹 죽은 것 알아? 네가 피한다는 말을 듣고···.”
“그만, 그런 얘기 하러 온 거면 그냥 가.”
난 그렇게 말하고 침대에 누워 버렸다.
‘쯧~, 하필이면 시아 얘기를····.’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얘기하기 꺼려하는 얘기를 태연하게 꺼내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수진이는 한숨을 쉬더니 내 뒤에서 날 끌어안았다.
“얘기하기 싫다고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업어.”
“············.”
“오늘 밤은 내가 이렇게 함께 해 줄게. 그러니 너도 용기를 내. 내일은 시아한데 얘기하는 거야. 알겠지?”
“···넌 모르잖아.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내가 시아를 어떤 심정으로···. 읍~.”
난 더 이상 떠들지 못했다.
수진이가 내 입을 자기 입술로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내 입안으로 파고든 수진이의 혀는 내 이빨들을 피아노 건반을 연주하듯이 건드리고 내 혀를 감미롭게 터치했다.
우리가 키스하고 떨어지는 입술 사이에는 길게 타액이 늘어졌다.
수진이는 내 품안으로 파고 들면서 말했다.
“너무 강한 척 하지 마.”
“············.”
“모두가 너에게 기대고 있고, 네가 강하다고 알고 있지. 하지만····. 시아 일에 관해서는 넌 보통 남자들 보다도 훨씬 약해져. 난 그걸 알아.”
“·············.”
“내가 네 약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난 너를 사랑해.”
“수진아·····. 나는·····.”
“걱정 하지마. 하룻밤 도피거리 정도는 되어 줄게. 그러니···. 오늘 하루 만큼은 내 품안에 마음껏 기대도 돼. 대신 내일은···.”
수진이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에는 맑은 이슬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수진이는 말했다.
“내일은 시아한테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넌 좋은 여자야. 수진아····.”
난 수진이의 품에 안겨서 그날 오랜만에 푹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내 옆에는 수진이가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녀보다 내가 먼저 일어났다.
난 그녀의 뺨에 살짝 키스했다.
“고마워.”
그녀의 말이 맞다.
어차피 언제까지고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시아를 만나서 얘기를 해 봐야 겠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시아를 찾아다녔다.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평소에 시아는 이 시간이면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녀가 평소와 같은 생활 팬턴을 유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내가 부엌에 가자 아침을 차리고 있는 부엌칼 소리가 들렸다.
통통통통···.
익숙한 소리와 익숙한 리듬.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식칼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아와 다른 여자들은 구분이 간다.
이런 말해도 누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엌에 가니 어린 시절부터 항상 보아온 광경이 있었다.
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시아.
“············.”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시아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한 된장국에 나물 반찬에 김치와 구운 고등어.
시아가 차려주는 전형적인 아침이다.
난 뒤에 가서 시아를 살며시 껴안았다.
“민··· 주인님?”
“시아야······. 나 돌아왔어.”
“···············.”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나를 그대로 마주 않아 주었다.
내 심정과 그녀의 심장이 겹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그녀와 나의 체온이 같은 온도로 변할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있었다.
떨어진 나는 시아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좀···· 가혹한 얘기가 될 지도 몰라. 그래도 들어줄래?”
“제가 그 얘기를 들었으면 해요?”
“····그래. 그리고 너 스스로 네 마음을 선택하기를 바래. 진심으로····.”
“·····예.”
난 시아를 다시 한 번 껴안았다.
이 온기를 지킬 것이다.
설령 이 마음이 만들어진 거짓이라고 해도···.
내가 시아를 지키고 번식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해도····.
그 인형의 오기를 걸고 더 이상은 시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는 하지 않겠다.
난 시아와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눴다.
난 파이널 칠드런에 관한 것부터 성모에 관한 애기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시아에게 털어 놨다.
시아는 내 얘기를 묵묵하게 듣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럼 주인님····. 저번에 주인님하고 얘기하고 있던 사람은···?”
“미하엘 알렉산도르. 너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거야.”
“············.”
“그 놈이 파이널 칠드런이었어. 그리고 미국의 제이 도미니스까지.”
“그런·····.”
시아는 탄식을 질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뭔가 납득한 표정을 하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과연····. 민재씨는 역시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던 거였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시아는 새삼 스럽지만 자신이 경솔했다는 생각을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 저었다.
그리고 민재가 받았을 쇼크와 충격을 생각해 봤다.
“그럼 주인님이 쇼크 받은 이유는 뭐에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해 주시지 않았잖아요?”
“······그건·····.”
시아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더 이상 진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아가 어떤 생각을 하던 나는 시아를 지킨다.
그렇게 마음먹지 않았던가?
나는 독하게 각오를 다지고 다시 시아에게 말했다.
“파이널 칠드런과 성모는···. 서로 끌리면서 후손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이 강해. 그러니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도···.”
“사랑이에요.”
“시아야···.”
시아는 내 말을 중간에 자르고 끼어들어서 단호하게 단정했다.
“사랑이에요. 내가 주인님을 생각하는 감정이···. 주인님이 나를 생각하는 감정이 그냥 본능일 리가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조차·····.”
시아는 내 입을 막아 버렸다.
그녀는 내게 달려 들어서 있는 힘껏 키스하면서 내 입술을 빨았다.
다소 아플 정도로 격정적인 키스였다.
내 목을 휘감고 있는 시아의 팔이 평소보다 강하다.
시아의 숨결도 평소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혀 놀림도····. 이제까지 시아와 했던 모든 키스중에서 가장 격정적이었다.
내 입안을 구석구석 휘 젖고 있는 시아의 혀는 대범함을 넘어서 탐욕스럽기 까지 했다.
정신이 몽롱해 질 정도로 황홀한 시간이 가고 시아의 입술이 나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
“··············.”
내 눈에 보이는 시아의 뺨은 복숭아 빛으로 붉어져 있었다.
내 얼굴도 저럴까?
시아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나를 보고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 봐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그냥 당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여자로만 보여요?”
“·············.”
내가 지금 시아에게 느끼는 감정.
이것은······.
주르륵.
나도 모르게 뺨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 내렸다.
왜? 어째서?
난 지금 슬프지 않다. 그렇다고 무언가 기쁨···. 난 기쁜 것인가?
무엇이? 어떤 것이?
혼란스러운 나에게 시아가 말했다.
“어때요? 이래도 우리 사랑이 의심 스러워요?”
“·····아니.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꼴 사나울 지도 모르겠다.
다 큰 사내 녀석이 여자를 안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난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서···.
그리고 날 사랑해주는 여자가 있어서···.
============================ 작품 후기 ============================
독자의 염장을 지르는 민재였습니다.
추천과 댓글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