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시아의 푸념을 들은 진아는 인상을 차갑게 굳히고 말했다.
“고작 그걸로? 고작 그걸로 지금 주인님한에 화 났다는 거야?”
“···············.”
시아는 침묵했고 진아는 화를 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난 이제까지 내 주인이라는 개자식들이 혁대로 채찍 삼아서 후려친 적도 있었고, 자기 친구들 불러서 한꺼번에 날 윤간한 적도 있었어. 어떨 때는 나보고 별의 별 쇼까지 다 시켰어. 그 변태 새끼들이·····.”
진아는 그녀 답지 않게 좀 흥분했다.
민재의 슬레이브가 되고 많이 보듬어진 상처가 시아의 철부지 공주님 짓에 다시 벌어진 것이다.
“난 단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너처럼 주인님에게 대우 받을 수 있다면 내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도 좋아. 그런데 넌 고작 한 대 맞고 좀 밟힌 것 가지고·······.”
“진아 언니···. 난····?”
“내 앞에서 그따위 짓거리 하지 말란 말이야~!!!!”
진아는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한마디 버럭 소리지르고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런 진아를 보고 시아는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나···. 나 민재씨한테 무슨 짓을····.’
그녀도 바보가 아니다.
민재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
사실은 딱히 이유 따위 설명해 주지 않아도 민재에게 뭔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재에게 상처를 줘 버렸다.
항상 민재는 자신을 위해서 배려하고 행동해 줬는데 그걸···.
그 오랜 시간에 걸친 신뢰를 시아가 믿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 버린 것이다.
그걸 진아의 쓴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 정말 철없이 굴었구나.’
자만, 오만 이런 종류의 감정들은 본인이 자각하기는 힘든 법이다.
애당초 이런 감정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은 그런 감정에 빠져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얘기를 들어봐야 그때서야 자각하는 법이다.
시아는 벌떡 일어나서 일단 얼굴을 씻고 몸가짐을 바로 했다.
이제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던 그건 상관없다.
민재를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마주하고 거기서 해답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대답이 돌아오던지···.
‘난 괜찮아. 설령 최악의 대답이 돌아온다고 해도 내가 민재씨를 사랑하니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조금이지만 시아는 강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없는 지평선만이 계속해서 뻗어있는 무한의 공간.
거기에 두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누워있고, 또 한명은 도도히 내려 보고 있었다.
민재와, 또 다른 민재였다.
“어때?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나?”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하루 종일 날 상대해 줬으니까····.”
“어설프긴. 자기 자신의 힘은 자기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가늠하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민재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심상 공간에서 수련 삼매경에 빠진지도 벌써 삼년이 되어 갔다.
물론 심상 공간 안에서의 시간이다.
외부에서는 아직 하루도 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민재는 누운 상태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너 한테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내 말에 그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한테 지금 당장 이길 것을 생각하면 곤란하지.”
“그래 봤자. 너 역시 내가 쓰는 능력 말고 다른 능력을 쓴 적은 없잖아?”
“그래. 그만큼 격이 다르다는 거지.”
이 심상 공간에서 민재와 또 다른 민재가 하는 훈련은 100% 실전 형식의 대련이었다.
여기서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죽고 죽이는 혈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삼년 동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의 혈투를 벌이던 중에 민재는 단 한 번도 상대가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상대는 마치 자기 자신을 이끌어 주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상대해 줬다.
한 발만 더 가면····.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그렇게 닿을 듯 말 듯한 느낌으로 약 올리듯이 상대하는 그는 결국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손에 와 닿지 않았다.
“이제 슬슬 수련도 끝내야 할 때군.”
“좀 더 해도 되지 않나? 시간이라면 충분하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 심상 공간을 유지하는 힘에 슬슬 한계가 오고 있거든.”
“·············.”
민재는 질려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거대한 심상 공간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상대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라는 건가?
‘이 인간이 절대로 제이 도미니스나 미하엘 알렉산도르 이하일 리가 없어. 그럼 도대체····.’
3년 동안 있으면서 절대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파이널 칠드런의 넘버는 서열이라고 했다.
제이 도미니스가 1위.
미하엘 알렉 산도르가 2위.
즉 어떤 파이널 칠드런이라고 해도 이 둘 보다는 강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재가 느끼기에 또 다른 자신이라고 불러온 이 남자는 그 둘보다 훨씬 강한게 틀림 없다.
어째서 이런 모순이 생기는 것일까?
몇 번이고 여기에 관해서 물어 봤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마디 한 것은···.
[우리가 진정한 파이널 칠드런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전부야.]
라고 할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나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일은 아니었다.
어느새 공간은 흐릿해져가고 있었고 또 다른 민재는 민재를 보면서 말했다.
“언젠가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해 주자면 네가 만난 파이널 칠드런의 숫자 말인데···.”
“왜? 그 숫자가 뭐?”
“네가 이제까지 만난 파이널 칠드런들 중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놈이 하나 있다. 그걸 알아둬라.”
이제까지 내가 만난 파이널 칠드런 중에 정체를숨기고 있는 놈이 있다고?
“어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중요한 얘기를 지금와서···. 어이~!!! 야이 새끼야~!!!!!”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이 공간은 흐릿해 지기만 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옆에서 판도라가 나를 지키고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 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그래봤자 여기서는 하루 정도였을 텐데?”
“하지만 당신은 아니셨죠?”
그건 그렇지····.
어쨌든 다행이다. 수행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아서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하루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당신께서 잠드시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주일? 정말?”
“예. 그렇습니다.”
과연··. 그래서 이렇게 배고픈 것인가?
“일단 간단하게 이것이라도···.”
판도라는 눈치 좋게도 수프를 한 그릇 내 앞에 가져왔다.
“고마워.”
난 얌전히 수프를 받아서 먹었다.
일주일 한입 입에 넣고 위로 흘려보낸 순간 내가 얼마나 공복이었는지 깨달았다.
몸에 온기가 스며든다는 것은 이런 것일 것이다.
난 먹는다기 보다는 거의 들이 마시는 것처럼 수프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그리고 판도라에게 말했다.
“판도라. 혹시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또 하나 묻지. 네가 알고 있는 파이널 칠드런들은 누구누구가 있지?”
“그걸 물으시는 의도는······?”
“일단 알아는 두려는 거야. 알려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판도라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에 한해서 파이널 칠드런들의 소재를 알려 줬다.
일단 제이 도미니스의 밑에 세 명, 그리고 마하엘 알렉산도르 밑에 네 명.
그 외에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었다.
“생각보다 적은걸?”
“예. 파이널 칠드런이라고 해도 각성 전에는 보통의 인간이니까요···. 특히 3번과 4번은 각성했다면 두각을 드러냈을 것인데 아직까지 행적이 묘연 한걸로 봐서는····.”
“각성 전이다 이거군.”
“그렇게 생각됩니다. 혹은 각성 하고도 흔적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5번은?”
파이널 칠드런들 중에서도 특출 난 것은 상위 5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5번의 행동도 신경 쓰이는데···.
“5번이라는 넘버는 성모에게 내려진 것입니다.”
“성모? 시아 말이야.”
“예. 전투 능력은 없지만 그 중요성으로 인해서 5번이라는 넘버를 부여 받았습니다.”
“···········알겠어. 그럼··. 일단 줄일 놈들은 정해 졌네.”
다른 파이널 칠드런들은 만나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미하엘과 제이.
이 두 놈은 죽어줘야 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성모를··, 시아를 노리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둘과는 같은 하늘아래에서는 살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다만·····.
‘지금 내 힘으로 그 둘과 싸웠을 때 어느 정도 가능한지는 모른다.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력의 증강이 필수야.’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의 육성과 발탁이 필요하다.
“판도라. 지금부터 용병중에 행실이 좋고 나쁘고는 상관없으니 쓸 만한 능력자라고 생각되는 놈들은 모두 끌어 들여.”
“모두 말입니까?”
“그래. 네 정신계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지?”
“알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가기 전에 문리향에게 연락해서 간부들은 모두 모이라고 해. 줄 선물이 있다.”
“예. 알겠습니다.”
판도라를 시켜서 용병들을 세뇌 시키는 것은 내 본의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때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내 심복들에게는 따로 줄 선물이 있었다.
“모두 오랜만이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문리향을 비롯해서 내 심복들이 모두 모이자 난 우선 사과로 말문을 열었다.
수진이는 아직까지 나한테 뭔가 삐져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얼굴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주군. 일주일이나 어디에 계셨는지···?”
“판도라하고 잠깐 수행을 하고 왔다.”
“수행? 주군의 실력에서 더 말입니까?”
“뭘 놀라지? 얼마전에 그 자식을 봤을 텐데?”
내 말에 문리향을 비롯해서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주군 그 자는 도대체···?”
“자세한 정체는 말해 줄 수 없다. 어쩌면 짐작하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침묵해라.”
“·············.”
“·············.”
“·············.”
내 말에 몇몇은 어리둥절해 했고, 몇몇은 과연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그들에게 다시 말했다.
“모두들 어땠나? 세계 최정상의 실력을 느껴본 소감은?”
“그거야 뭐·····.”
“한 번 더 싸우면 전 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때는 너무 방심해서···.”
이런저런 변명을 하고들 있었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에서는 상대와의 실력차를 인정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그들과 미하엘 사이에서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실력차가 있었다.
아니 실력 운운하기 이전에···.
초능력으로 절대 맞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파이널 칠드런의 초능력은 보통 인간들의 초능력보다 상위 로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도 심상 공간에서 또 다른 나에게 설명을 듣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만···.
파이널 칠드런을 만들면서 크리스 파슈타인은 초능력에 관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초능력자는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그것을 사이킥 홀이라고 명명했다.
이 사이킥 홀의 규격과 성질에 따라서 각각 다른 초능력과 다른 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크리스 파슈타인은 말도 안되는 천재였다.
그는 초능력을 타고난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통 여자들이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연구도 했다.
그렇게 해서 사이킥 홀을 강제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연구는 점점 발전해서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프로젝트에 도달하게 되었다.
파이널 칠드런들은 모두들 태어나면서부터 두 개의 사이킥 홀을 가지게 된다.
첫 번째 사이킥 홀은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크고 성질의 변환이 자유로운 정도다.
그래서 파이널 칠드런들은 보다 많은 성질의 초능력을 보다 자유롭게 구사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컨드 사이킥 홀을 개방하면 거기서 부터는 전혀 다른 인종으로 변한다.
그냥 사이킥 홀을 이용해서 초능력을 구사하는 것과는 출력이나 성질에 상관없이 보통 초능력자의 능력으로는 전혀 맞설 수가 없어진다.
============================ 작품 후기 ============================
부하들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렙업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한가락 하는 편이었지만 수진이는 첫 등장때 랭커급, 그 중에서도 약간 하위 계급이었는데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십천들 하고 맞설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