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미래를 준비하다.>
지선이는 몸을 돌려서 나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주인님···. 우리 참 많은 일이 있었죠? 한때는 제가 주인님의 슬레이브가 아닌 시절에도 주인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유혹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 그랬지····.”
이름이 뭐더라···.
주··· 주 뭐라던 놈이었는데 그 놈이 시아를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 지선이가 내 주의를 끌고 있었다.
어쩐지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주인니도 알다 시피 저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 방법을 안 가려요. 그건 알죠?”
“잘 알지.”
툭하면 내가 술마시고 뻗었을 때 섹스 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제가 어떻게 보일지는 대강 알아요. 하지만 한 번도 전 저의 그런 태도를 부끄러워 한 적이 없어요?”
“진짜? 조금도?”
“그럼요. 부끄러워 할 거면 지금 제 가슴을 주물럭 거리고 있는 손길에도 부끄러워 했겠죠? 그리고 못 만지게 하고.”
“··········그건 재난이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한다는 거에요. 그게 저에요.”
그녀는 정말로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말했다.
난 순간 그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경의 감정을 느꼈다.
지선이는 나 보다 훨씬 더 가진 것이 없다.
그냥 이 세상에 있는 평범한 슬레이브중에 하나였다.
굳이 하나 가진 것을 뽑자면 보통의 슬레이브들 보다도 좀 더 아름다운 외모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그녀였지만 원하는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타협도 포기도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저돌적으로 몰아 붙인 것이다.
난 어떻지?
그렇게 했나?
나 역시 엿 같은 이유는 있다.
파이널 칠드런에 관한 진실은 내 안에 있던 가장중요한 아이덴티티를 부셔 버렸다.
내가 시아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냥 DNA를 남기기 위한 본능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은 나에게 그만큼 쇼크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뭘 하는 짓이지?
술과 마약과 여자에 취해서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하고···.
나 보다 훨씬 더 가진게 없는 지선이조차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나는···.
“후··· 후후··· 하하하하···.”
아무래도 내가 잠깐 미쳤나 보다.
너무 큰 진실을 알아서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대가리가 돌아 버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밖에는 생각 할 길이 없다.
난 약간 비틀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주인님 뭐해요?”
“고마워.”
“뭐가요?”
“알잖아? ····· 이 구미호.”
내 말에 지선이는 손을 귀엽게 말아서 얼굴에 붙이고 말했다.
“냥~.”
그건 고양이지.
어쨌든 상관없다.
내 안에 들어있는 시아의 감정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지금은 제쳐 두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게 무엇이던 간에 난 시아을 지킬 것이라는 것이다.
시아가 파이널 칠드런들에게 잡혀가서 그냥 놈들의 전생을 위한 도구로 취급 되는 것을 난 참을 수 없다.
절대로 참지 못할 것이다.
‘파이널 칠드런이라···. 너희들이 내 인생의 라스트 보스구나.’
그날 난 세계 최대의 숨겨진 세력과의 일전을 다짐했다.
방을 뛰쳐나가는 민재를 보고 방안에 홀로 남은 지선이는 피식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내숭 까는 것은 초보 여우죠. 진짜 고수는 여우짓을 알고 해도 남자를 조종할 수 있어야지····.”
확실히 보통이 아닌 그녀였다.
정신을 차린 나는 문리향을 불러서 당분간 자잘한 일은 알아서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고 시아를 직접 만나서 당분간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부탁해. 진아야.”
“알겠어요. 이제 괜찮으신 거에요?”
“그래. 걱정 끼쳐서 미안해.”
차마 지금 시아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진아에게 대신 부탁해서 전할 뿐이었다.
사실 시아가 진짜로 성모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시아가 내 머리속에 있는 성모라는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놈들에게 발각 당하면 절대로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시아를 최대한 숨기고 있는게 좋았다.
아직까지 놈들의 눈에 시아가 보이지 않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일 뿐이었다.
난 그렇게 대강의 조치를 하고 나 스스로 예전에 수련을 했던 오지로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 놈들과 만나서 얻은 것은 온통 절망과 상처투성이의 진실이었다.
하지만 플러스 요인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하엘은 나의 몸 안에 잠들어 있는 힘을 일깨웠다.
아마도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자신에게 위협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 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없다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다.
어쨌든 나는 강해졌다.
힘의 차이에 관해서는 놈이 크게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난 이것을 발판으로 더욱더 강해질 것이니까 말이다.
놈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세력을 더 모아야 겠군.”
기본적으로 놈이 일깨운 내 기억은 드문드문 불완전 하다.
하지만 그 중에 가끔씩 파이널 칠드런들의 전투 장면이 들어있기는 했다.
혼자서 몇 만의 능력자를 거뜬히 압살하는 그 강력함.
그것은 분명 강력했지만 그것은 예전의 일이다.
인간은 발전을 하는 존재다.
당시에는 파이널 칠드런만이 고위 능력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조 인류들은 한 가지 능력을 레벨 5까지만 올라도 고위 능력자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파이널 칠드런이 아니라고 해도 X급 능력을 지닌 자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이널 칠드런 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문리향이나 애덤스같은 파이널 칠드런이 아니면서도 강력한 존재들이 나오기도 한다.
예전처럼 절대 대항 불가능한 그런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보다 더 많은 힘을 끌어 모으면 놈들을 상대 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세력을 모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널 칠드런 중에서도 상위 다섯명은 그 격이 다르다.
전원 제이 도미니스나 미아엘 알렉산도르 급이라고 생각하는게 좋다.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같은 파이널 칠드런들 뿐일 것이다.
그리고 좀 막연하지만···.
나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난 이 느낌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 한명의 조언자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수녀복을 입은 아리따운 여성.
바로 얼마 전에 나의 휘하로 들어온 에러 능력자. 판도라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맞다면 그녀는 그냥 에러 능력자가 아니다.
파이널 칠드런중에 한명인 넘버는 17호.
정신계 능력자로는 파이널 칠드런 안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난 그녀를 바라보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전에 나한테 미하엘이 찾아왔다.”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네가 파이널 칠드런이고 내가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것에 성모에 관해서까지.”
“·············.”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물어봐야 한다.
“넌 시아를 봤지?”
“········예.”
“그럼 너도 알겠지? 시아는·····.”
내가 차마 뒤의 말을 잊지 못하자 그녀가 내 말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성모의 진위를 알아 내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어째서지?”
“그것은 제가 단독형이기 때문입니다.”
“단독형?”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리고 판도라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파이널 칠드런은 수명이 다하기 전에 성모를 통해서 자신의 다음 분신을 만들고 거기에 영혼을 전이 시킨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존재들도 있었다.
우선 후반 20~100번대 까지는 전이가 불가능 했다.
난 판도라의 설명을 끊고 중간에 물었다.
“어째서?”
판도라는 내 말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전생의 시스템을 생각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 전생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모가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은···.”
“아~!!!”
난 그제야 잊어 버리고 있던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임신 기간만 280일 정도 걸린다.
산후 조리와 이런저런 시간을 빼면 1년에 한명 정도 출산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역대 성모들이 최대한 빨리 임신했다고 해도 10대 중후반부터 이다.
임신을 계속하면 폐경기의 한계도 빨리 오는 법이고 보통 무리해 봤자.
20명 전후를 낫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100명이나 되는 모든 파이널 칠드런의 전이체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불가능 하다.
무엇보다 성모 자신의 전이체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아마도···. 강한 녀석들 우선으로 남겼겠군.’
좋다. 이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매우 좋은 정보였다.
나하고 동급의 괴물들이 100명이나 이 세상에 넘쳐 난다는 것이 꺼림칙했는데 그 숫자가 20명 남짓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단독형이라고 해서 전생이 불가능한 대신에 불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사? 그것은 죽음이 없다는 건가?”
난 순간 중국의 NO.1능력자를 떠올렸다.
잠깐 싸웠을 뿐이었지만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도 멀쩡하게 재생하는 놈의 능력은 진정 불사라고 할 만 했다.
“예. 하지만 제 불사는 재생능력이 아니라 수명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즉, 저는 몇 백년, 몇 천년이 흘러도 이 모습에서 더 이상 변하지를 않습니다.”
“····과연, 그런 불가라 이건가? 그렇다면 지금 네 나이가···?”
“200세가 넘은 이후로는 세지 않았습니다.”
“················.”
생각해 보니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초대 파이널 칠드런의 육체와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계속해서 세계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정말 괴물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넌 단독형이고 전생을 필요치 않으니까 성모를 알아 볼 수 없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어째서 나는 판별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것은 아마도 주이님이 완벽하게 파이널 칠드런으로서의 각성을 하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
판도라의 설명을 다 들은 나는 일단 납득했다.
그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모든 아귀는 맞아 떨어진다.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초능력이 강한 것도 내가 파이널 칠드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확신하겠는데 더 이상 이 세계에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썩어빠진 개 자식들은 필요 없다.
처음에 크리스 박사가 무슨 생각으로 파이널 칠드런을 만들었는지는 잘 알겠다.
아마도 당장이라도 인류가 멸망할 것 같았던 그 수라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당시에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파이널 칠드런들이 힘으로 만들어낸 세계는 보다시피 이렇게 미쳐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신나간 미친놈들은 세계를 바로 잡을 생각은 안 하고 계속해서 전생하기 위해서 성모를 찾는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내가 확신하건데 지금 파이널 칠드런이라는 인간들은 더 이상 그 존재가 세계에 필요 없다.
무엇보다 이제 인류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자신의 미래는 자기 스스로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만약 그로 인해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파멸이라고 해도 말이다.
============================ 작품 후기 ============================
설정을 모두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슬슬 완결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빠르면 이달 안에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엔딩은 처음부터 준비해 둔 것이 있으니 그걸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모두들 잘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