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때때로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김수경씨가 빌려준 대환란 이전의 자료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들 처럼···.
연애를 하고,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시아와 단 둘만의 사랑을 만들었을 것이다.
세계가 이렇다 보니 여러 여자들과 마음 편하게 관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수진이와 진아 만큼은 그렇게 편하게 안을 수 없었다.
그녀들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돌려 줄 수 없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사랑을 무시할 수도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죄책감 속에서 그녀들에게 속죄하듯이 안아갈 뿐이었다.
“주····· 주인님····.”
“오랜만이지? 그럼 좀 아플 거야.”
난 어느새 내 몸 아래에 순종하듯이 누워 있는 진아의 몸에 내 몸을 겹쳤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간 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윽·····.”
“많이 아파?”
“아··· 아니요····. 괜찮아요·····.”
여성의 경우 섹스의 공백기가 길면 다시 시도 했을 때 고통을 수반하는 법이라고 한다.
지금 진아는 척 보기에도 몸이 경직 된 것이 충분히 아파 보였다.
난 천천히···. 마치 처음으로 순결을 잃는 여린 여자를 안아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아프지 않게 배려하면서 그녀와의 행위에 몰두하는 나는 문득 그녀의 흐느낌을 들었다.
“흑··· 흑흑·······.”
“진아야····?”
“죄송해요···. 죄송해요. 갑자기····.”
내가 뭘 또 잘못한 걸까?
서럽게 흐느끼는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 졌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내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건···· 이건 슬퍼서 그런게 아니니까···.”
“············.”
“저도 처음 알았어요. 이렇게···· 이렇게 기쁠 때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진아야·····.”
난 그녀의 말에 다시 진하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미안해····. 만약 세계가 이렇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너도 네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난 그날 밤 진아를 많이많이 사랑해 주고 아껴줬다.
이 가여운 여자를 위해서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가 다였으니 말이다.
다음날 김수경씨와 수진이가 집으로 전용기를 타고 왔다.
“오랜만이군. 그동안 오지에서 수련을 했다고?”
“예. 수진이한테 들었나요?”
“그렇지. 그래···. 성과는 있었나?”
“나중에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수진아. 넌 어때?”
내 말에 수진이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 성과도 직접 보여줄게.”
“직접이라니·····? 너 설마···.”
“이번에 자네의 직속 병력을 꾸려야 한 다는 것은 알고 있지?”
“예···. 뭐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만····.”
“그 직속 병력에 수진양을 포함 시키게.”
“예~? 뭐라고요?”
난 깜짝 놀랬다.
수진이 실력이 괜찮은 편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위험한 전쟁터에 데려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게. 그녀도 많이 강해졌어.”
“하지만·······. 역시 전쟁터에 여자는···.”
“민재야.”
망설이는 나에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수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진아. 너 무슨 정신····.”
파앙~!!!
내 귓가를 스치고 무언가가 고속으로 날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나무와 풀들이 새 하얗게 얼어 있었다.
“········이건?”
“내가 집이나 지키자고 이런 힘을 얻은게 아니야. 믿어. 널 지켜줄게.”
솔직히 말해서 놀라운 능력이다.
방금 그녀가 한 공격··. 아마도 그녀의 최대 특성인 결빙을 또 한층 진화 시킨 모양이다.
‘빠르군···. 무엇보다 약점이 없어졌어.’
이 능력의 최대 약점이 바로 근거리가 아니면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원거리로 어레인지 하면서 그 약점이 사라졌다.
이만큼 단련하기 위해서는 그녀도 뼈를 깎는 것 같은 고향을 했을 것이다.
“후~, ······날 지키는 사람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민재야····.”
“전쟁터에서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지키도록 해.”
“·········고마워.”
아군 중에서 여자라고 무시하는 놈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실력과 내 이름값이면 그녀에게 해꼬지를 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 작별은 다 끝냈나? 우리는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예. 뭐·····.”
난 전용기에 오르기 전에 날 배웅하기 위해서 나온 시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다녀 올게.”
“····다녀 오세요. 주인님.”
“조심히 다녀 오세요.”
“꼭 돌아 오셔야 해요.”
날 배웅하는 그녀들의 떨리는 목소리는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는 목소리였다.
아마도 내가 사라지면 그때는 울겠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가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녀들을 지킬 수 없으니 말이다.
난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한중 전쟁. 나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전쟁이 될 전쟁이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
난 그렇게 각오를 굳혔다.
한국에 도착한 나는 국가에서 병력을 지급 받았다.
나에게 지급된 병력은 정규병 5,000과 랭커급 실력자 20명이었다.
이것은 상당한 전력으로 국가에서도 나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작전 브리핑에서도 국가에서는 나에게 뜻밖의 지시를 내렸다.
“중국의 본토를 휘저어 주십시오. 단 자세한 작전은 모두 박민재 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라는 말도 없이 나한테 모든 작전을 일임한다고?
난 그렇게 전쟁의 군략에 밝은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사실 이번 전쟁은 과거에 한일 전쟁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물량에서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그렇죠.”
중국하면 머릿수다.
그 어마어마한 머릿수를 생각하면 놈들은 3교대로 공격해도 우리가 총공격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인력을 동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어택커, 즉 공격은 다 둘 뿐입니다. 박민재 님과 김수경님 두 분을 제외한 모든 전력은 수비에 집중 시킬 것입니다.”
“잠시만요···. 저하고 김수경씨만 중국을 공격하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어째서 저희 둘이죠?”
내 질문에 정부의 관리관은 안경을 스윽 올리더니 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우선 김수경님의 경우는 안티 텔레포트가 펼쳐진 상황에서 그분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유격전에 투입될 것입니다.”
“·········그거야 그렇군요.”
안티 텔레포트 진이 펼쳐져서 장거리 텔레포트가 불가능 해지만 김수경씨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일 리가 있군요. 그럼 제가 뽑힌 이유는 뭡니까?”
“큼~, 그것은 박민재님이 기적의 박민재이기 때문입니다.”
“·······예?”
왜 김수경씨는 조리 있는 설명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난 별 설명도 없이 ‘내가 나라서?’라는 이유로 중국에 쳐들어가야 하는 걸까?
“사실···. 공격에 투입할 사람은 신대호님 아니면 박민재님 둘 중에 한 분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신대호님이 공격을 맡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역시 공격은 젊고 유망한 다음 세대의 호프인 기적의 박민재님이···.”
“신대호씨가 가기 싫다고 하던 가요?”
“·········예.”
쓸데없이 말 길게 할 때부터 알아 봤다.
‘그 인간 저번에 봤을 때도 쫀쫀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능력만 강한 주재진 같은 인간이다.
에휴~, 어쩔까?
여기서 나까지 안 간다고 하면 눈앞의 관리관이 울 것 같다.
어차피 누가 해야 할 일이라면····.
“알겠습니다. 제가 하죠.”
“감사합니다. 그래도 랭커 20명에 정규병 5,000이면 상당한 전력입니다.”
“당신이 그 병력 이끌고 중국에 한 번 쳐들어 가볼래요?”
“하·· 하하하·····.”
쯧~, 중국에는 24선인이라는 놈들이 평소에 거느리고 있는 사병만 각각 1만이 넘는다.
거기에 전시가 발생하면 국가에서 정규군을 붙여 줄 테니 개인당 10만 까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럼 제 병력은····· 제가 좋을 대로 굴려도 되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지금 인수하러 가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죠.”
내가 밀실에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수진이가 냉큼 따라 붙었다.
“아··· 그녀는?”
“아~. 그녀는 에러입니다. 제가 이번 전쟁에서 전력으로서 끌어 들였습니다.”
“····여자를 말입니····. 아닙니다.”
그는 말을 하다가 내가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 보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눈치는 빠르군.’
하지만 앞으로 부대를 지휘하는데 계속해서 이런 꼴을 겪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골치가 아팠다.
‘수진이 녀석 예쁘기 까지 하니까····.’
어지간한 슬레이브들 보다 훨씬 아름다운 미모를 하고 있는 수진이다.
그녀를 노리고 상위 랭커급들이 지분거릴 지도 몰랐다.
‘쯧~, 이제와서 돌려 보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다.
이미 일은 저질러 졌으니까···.
연병장에 나가니 정규병 5,000명이 나를 향해서 도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20명의 랭커들이 보였다.
“주로 50위권 안의 랭커들을 모아서 대기 시켰습니다.”
“그렇습니까?”
50위권 이하면 나름 전력으로 써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해운대에서 봤던 얼굴들도 몇몇 있는 것 같고····.
“한 마디 하시겠습니까?”
“안 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 뭐라고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람 다루기 어려워 질 것이다.
난 단상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내 이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십천 랭킹 2위인 박민재다.”
“············.”
“············.”
“············.”
침묵하는 그들에게 내가 말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엿 같은 전쟁이 벌어졌다.”
“큼~.”
뒤에서 관리관이 헛기침을 하면서 눈치를 주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전쟁이 엿 같지 그럼 뭐라고 할까?
“이 엿 같은 전쟁에서 우리의 역할은 중국의 본토로 진격해서 중국을 박살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우매우 위험한 임무이다.”
“···············.”
“···············.”
“···············.”
대답은 없었지만 역시 약간 불안한 기색들이 보이는 놈들이 보였다.
전쟁을 대비해서 키워진 정규군들은 좀 나았지만 오리혀 능력은 훨씬 더 출중한 랭커들은 표정에서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난 그런 놈들에게 다시 말했다.
“하지만 모두들 알아라. 위험한 전쟁이라는 것을 그만큼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다는 것을 말이다.”
“···············.”
“···············.”
“···············.”
난 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면서 말했다.
“날 봐라. 난 저번 전쟁에서 일본을 박살내고 단숨에 랭킹 2위까지 올랐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말이다.”
“···············.”
“···············.”
“···············.”
“나처럼 되고 싶지 않는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출세하고 싶지 않은가? 지금 너희들 중에는 나 보다 두 배는 더 산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너희들에게 새파랗게 어린 내가 이렇게 반말로 지껄이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
“···············.”
이제는 작지만 약간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난 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라. 이번에 한중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우리 한국은 명백하게 아시아 최강국이다. 그 한국의 십천의 자리 두 개가 공석이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나?”
“·············십천?”
“잠깐···. 그거 아직도 공석인가?”
“난 그냥 대외 비밀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공표는····.”
노골적으로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뒤편의 관리관은···.
“큼·· 큼~~~ 큼~ 기밀··· 큼~~ 큼~~ 특급 기밀 큼~ 큼~~~. 국가 기밀···· 큼~ 큼~.”
시끄럽기는····.
십천의 자리 두 개가 여전히 공석이라는 것은 우리들 십천 까지만 알고 있는 기밀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쩌라고?
난 신경도 안 쓸 테다.
“위기는 기회다. 영웅은 이런 난세에 나오는 법이다. 야망을 가져라. 한 번쯤은 도박에 인생을 맡겨보란 말이다. 내가 장담하건데 비어있는 십천의 자리 두 개는 너희들의 것이다. 내가 본국에 쳐 밖혀 있는 겁쟁이들 보다 10배는 더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날 믿어라.”
“오오오오~~!!!!”
“박민재 만세~~~!!!”
“기적의 박민재 만세~~~!!!!”
정규군도 랭커도 할 것 없이 나를 연호하면서 환호했다.
군이라는 것은 사기가 충만해야 한다.
군기는 엄중한 룰로 지켜야 하지만 사기는 후한 포상으로 진작 시킨다.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통해서 다행이다.’
============================ 작품 후기 ============================
띠링 띵~.
연설 스킬로 인해서 사기가 올랐습니다.
으음... 이제 한 동안 연참은 좀 무리가 있겠네요.
그래도 한 동안 연참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의 뜨거운 응원 덕분입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