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건물의 안으로 숨어든 한수진은 벽에 기대서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급격한 텔레포트의 반복이 심폐기능을 압박할 정도였다.
“헉··· 헉····. 이건··· 잘못하면 죽겠는걸?”
한수진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목숨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상대라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겠지만 이번의 상대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상대는 십천중에서도 1대1 대인전에 특화 되어 있는 십천의 김수경.
정면으로 붙으면 자신 정도는 1초 만에 산산조각 날 것이다.
‘어떻게든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민재가 있는 별관으로 도망치는 수 밖에····.’
일단 건물 안에 몰래 숨어 있으면 절대로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퍼엉~!!
“큭~!!!”
갑자기 등을 기대고 있던 벽이 터져나가면서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한수진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숨어 있었나?”
“···잠··· 잠깐만요? 당신이 왜 날 죽이려고 하는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기다려 봐요. 나도 할 말이 있다고요.”
그녀의 말에 김수경은 담담한 눈을 하고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넌 죽어줘야 겠다. 차라리 그냥 날 원망해라.”
그리고 김수경의 움직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죽는다.’
한수진은 그대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퍼엉~.
하지만 강렬한 충격음이 들리고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의 앞에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등이 나타났다.
“민재야······.”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잠자다가 갑자기 들린 폭음에 잠이 깬 나는 옆에서 수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일이 생겼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향해서 전투의 흔적을 따라가 보니 김수경씨가 수진이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의 미래시에 수진이가 산산조각 나는 영상이 보인 순간 이판사판으로 끼어들어서 염동실드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자··· 이제는 이유를 좀 알아야 겠다.
“김수경씨.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제 일행을 죽이려고 하다니?”
내 말에 그는 진중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아무 말도 묻지 말게. 부탁이니 그 계집을 나한테 넘겨주게.”
수진이를 넘기라고?
그것도 그녀를 죽이려는 상대에게?
“그렇게는 못 하겠다면요?”
이 사람한테는 빚이 있다.
상당한 은혜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진이의 목숨을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여차하면······. 자네까지 죽이는 수 밖에.”
진심이다.
그는 지금 진심으로 수진이를 넘기지 않으면 이대로 나까지 공격하겠다는 의지였다.
난 그에게 신중하게 물었다.
“가능하다 생각하십니까? 저 역시 십천입니다.”
“글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솔직히 말해서 싸워서지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길 자신도 없다.
더구나 싸우는 와중에 수진이를 지키면서 상대할 자신은 더욱더 없었다.
상대는 십천 중에서도 1때1에 최고로 특화되었다고 평가 받는 상대다.
차라리 저 사람보다 랭킹이 낮아도 홍련의 최우진이나 은룡의 주영민이라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일대일에 관해서는 김수경 보다 좀 쉬운 상대이니까 말이다.
그만큼 김수경은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상대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하는 수 밖에 없나·····?’
난 천천히 정신을 집중하고 전투에 집중했다.
이 사람과 승부를 오래 끌면 여러 가지로 불리해 진다.
애당초 이 사람의 공격을 막기에는 나의 방어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방금전에 수진이를 향한 공격을 막은 것은 이 사람이 힘을 빼고 덤볐기 때문이다.
아마도 실내라서 저택이 부서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력으로 오겠지?’
아마 나의 염동실드로는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시로 공격이 오는 타이밍을 읽고 노려서 소멸의 구로 카운터를 먹인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어도 내가 당하겠지만 그대로 당하겠지만···. 그래도 수진이를 지키면서 싸워 이기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
“··············.”
1초가 하루 같은 무거운 침묵이 서로간에 흘렀다.
그도 나도 승부가 한순간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순간 승부가 나버긴다.
그도 나도 그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수진이도 그런 분위기에 눌려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흠칫~.
그것은 뭐랄까?
····말 그대로 찰나의 반응이었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실이 끊어지는 것 같이·····.
김수경의 전신이 무방비하게 빈틈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나는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가장 익숙한 나의 능력을 발현 시켜서 그를 공격했다.
콰지직~~~!! 파직~!!
“크아아악~~!!!!”
승부는 정말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집중력이 흐려진 그가 나의 최대급의 전격이 직격 당해 버렸다.
결정타였다.
십천의 일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쓰러진 것이다.
내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때 내 등 뒤에서 한명의 어린 소녀가 김수경을 향해서 뛰어갔다.
“으아앙~~~!! 아빠~~!!!”
“················.”
잠깐····, 지금 얘가 뭐라고 했지?
아까는 얼핏 들어서 잘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들었다.
······아빠라고?
잠시 사태가 진정되고 나와 수진이는 김수경씨를 빈방의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이 방에는 나와 시아와 수진.
그리고 김수경씨와 그의 딸로 보이는 어린 소녀만이 있었다.
‘······딸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를 않는다.
지금 내 눈앞에 나를 눈물 젖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 아빠를 지키겠답시고 침대의 앞을 기세등등하게 가로 막고 있었다.
‘딸이라고?’
난 이 어린 소녀를 보면서도 이 현실이 믿기지를 않았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은 99.9%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그야 보통 임신하는 단계부터 정부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당연했다.
아주 가끔씩 자기 자식을 키우는 별종들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타국의 왕족들이라거나 육아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 말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대부분의 경우는 아들들에 한해서다.
딸을 키운다는 선택지는 아무에게도 없었다.
왜냐 하면 지금 이 미쳐버린 세계의 법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미쳐버린 세계라고 해도 절대 금지하고 있는 것은 있었다.
근친상간은 절대 엄금이었다.
대환란 이후로 나날이 줄어가는 지구의 인구는 세계의 공통된 걱정거리였다.
대환란 전에는 70억이었지만 대환란을 겪고 40억까지 떨어진 인구는 그 후로 전혀 회복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35억까지 떨어졌다.
조금씩이지만 지구의 인구가 확실하게 줄어가고 있었다.
전쟁으로 잃는 인원도 많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남녀 성비의 극단적인 불균형이 가져오고 있는 병폐였다.
그래서 세계는 열성 유전자를 발생 시킬 수 있는 근친상간을 절대 엄금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여성이 인권이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진 이 세계에서 남자가 딸을 키운다는 것은 무리였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를 여자라기 보다는 암컷처럼 보는 세계가 아닌가?
결국 여자 아이라고 하면 태어나자 마자 정부의 관리하에 슬레이브나 프리로 지명 받아서 자라는게 이 세계의 운명이었다.
그것이 설사 아무리 잘나가는 집안의 핏줄이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일왕을 거의 신처럼 받들던 일본도 딸은 일왕의 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경은 진짜로 딸을 키우고 있었다.
어째서?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것일까?
“으··· 으으·····.”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김수경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방안을 살피고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대강 다 눈치 챈 모양이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는 내 말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보는 대로네. 이 아이의 이름은 김혜미. 내 딸일세.”
“·····근친은 중죄인걸 알고····.”
“당연히 알고 있지? 자네는 내가 그랬을 것 같나? 내가 추잡하게 내 딸하고 한 침대에서 뒹굴었다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굉장한 분노에 난 재빨리 사과했다.
그는 노기로 붉어진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난 이 아이를 딸로···. 나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로 키우고 있는 것일세.”
“············.”
아무리 봐도 정상적이 남자의 의견은 아니다.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세한 사정을 좀 들려 주시겠습니까? 다 알아야 겠습니다.”
“·····알겠네····, 젊은 시절의 얘기지········. 그러니까 내 랭킹이 갓 20위권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네···.”
그는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아직 김수경이 30대 중반이었던 시절이다.
그때 김수경은 보통의 남자들과 별 다를바가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보통의 남자들 보다 초능력이 강해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 정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느날····.
그는 한명의 여자를 만났다.
여성은 슬레이브가 아니라 프리인 여성이었다.
김수경의 집 근처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점원이었는데 프리 치고는 그럭저럭 모나지 않은 미모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김수경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아무 죄책감도 없이 그녀를 건드렸다.
사실····, 죄책감이랄까?
애당초 그런 감정을 느낄 리가 없었다.
자신은 100위권 안의 랭커이고 그녀는 아무 힘도 없는 프리인 여자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자기가 한 번 안아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게 인연의 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 앞에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집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 여자에게 김수경은 말을 걸었다.
“넌·····? 누구지?”
“··········이세영이···· 라고 합니다.”
“아~, 그래. 그러니까 누구냐고?”
그때까지 김수경은 그녀를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 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여자는 그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그래도 프리 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외모를 하고 있었던 여자였다.
하지만 기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이 초췌한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마치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체 같지 않은가?
그래서야 알아 볼 리가 만무했다.
“저는······ 과거에 한 번 당신에게 안긴 적이 ····있는 여자입니다.”
“아~, 그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김수경은 슬슬 이 여자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여자가 품안에서 작은 보자기에 둘러쌓인 뭔가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줬다.
“이것이····· 그때 생긴 딸입니다.”
“··········뭐라고?”
그것은 김수경의 인생 최대의 놀라움이었다.
============================ 작품 후기 ============================
...... 원래 이런 연참은 하면 안 되지만 내용이 여기서 끊어지만 안 될것 같아서 바로 5분 후에 올리겠습니다.
부디 즐감 하시고 빠른 연참이라도 추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