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조금 기다리자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서 김수경이 직접 나왔다.
그는 주변에 슬레이브 대동하지 않은 맨몸이었다.
“어서 오게. 우리 오랜만이지?”
“그때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부산과 서울에서는 워낙에 다급한 상황이라서 대화도 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평화로울 때 말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
난 먼저 그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기본적으로 나보다 경력도 나이도 윗줄이고 빚도 크게 졌다.
그래서 랭킹이 더 높다고 잘난체 할 생각은 없었다.
“하하하···· 예의 바른 친구군. 별관 하나를 통째로 내어 주지.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게.”
그는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자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해줬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별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검소한 편인걸?’
난 별관으로 가는 길에 김수경씨의 집을 살피면서 살짝 놀랬다.
집안 곳곳에서 청소를 하는 필요 최소한의 슬레이브들 말고는 별로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의 집은 우리집에 비해서는 부지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래도 어지간한 아파트 단지 하나만큼은 되지만 말이다.
‘서울에 있을 때 우리 집 정도인가?’
이만하면 십천 치고는 검소한 편이다.
십천 치고는 말이다.
“그럼 이 별관을 사용하게 혹시 모르니 필요하면 슬레이브를 몇몇 붙여 주겠지만····.”
“아~! 괜찮습니다. 여기 두명 데려 왔거든요.”
“호오~, 그럼 익숙하지 못한 슬레이브는 별관에서 모두 물리는게 좋겠군.”
“예. 그렇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좀 있다가 저녁이나 같이 한끼 하지. 그동안은 편하게 쉬게.”
“감사합니다.”
난 그렇게 별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는 것을 보면 별로 쫀쫀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방은 나와 시아와 수진이가 동시에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우리 집도 아닌데 이 두 사람을 다른 공간에 놔 두기는 불안했다.
방에 도착하자 우리는 어깨에 힘을 빼고 그대로 편하게 늘어졌다.
“후우~. 사람 상대하는 것도 피곤하단 말이야.”
“수고 하셨어요. 주이님.”
“뭘 이런걸 가지고····.”
시아는 구석의 티포트에서 차를 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진은 침대에 털썩 앉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김수경이라고 했지? 흐음···· 너희들이 보기에는 사람의 느낌이 어때?”
“뭐가?”
내 질문에 수진이는 뭔가 답답하다는 것처럼 나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냐고? 그냥 인상 이라던가·····?”
수진의 말에 시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주인님하고 친하게 지내시려고 하시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 나도 그렇게 봤어? 그런데 왜?”
내 말에 수진이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기존의 남자들하고 좀 색다른 느낌이 들어.”
“뭐?”
“보통 남자들은 시아나 나 정도의 미인을 보면 한번 슥~, 훑어보기 마련이야. 좀 노골적인 놈들은 아주 찐득하게 바라보고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은 네 뒤에 있는 나와 시아를 보고도 그냥 태연하게 무시했어. 마치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수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수진이는 이제까지 자신을 노리는 남자들하고 싸우고 대항하면서 살아온 여자였다.
그런 만큼 남자의 그런 시선을 느끼는 것에 민감했다.
그런 수진이가 전혀 캐치하지 않았을 정도로 여성에게 담담한 남자라····.
이 세계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타입이었다.
“혹시 긴장한 것 아닐까요? 좀 있으면 큰일도 있으니 다른데 정신 팔 여유가 없다든가·····.”
“············.”
시아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난 수진의 설명을 듣고 난 후부터 그가 약간 이상하게 보였다.
뭐가 그렇게 느끼게 하는 걸까?
저녁이 되고 난 시아와 수진을 대동하고 본관의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아무말도 없이 기계적으로 나를 안내했다.
‘되게 무뚝뚝하네····.’
식당에 가니 중세 유럽풍의 식탁에 그가 혼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민재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들게.”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난 그의 맞은 편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시아나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를 하는 나였지만 여기서 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역시 이 넓은 식탁에서 남자 둘이서 식사를 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검소한 것 치고 식탁은 무척 큰 걸?’
나야 집안에 식구들하고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큰 것으로 만들어 뒀지만 보통 다른 남자들은 그렇게 큰걸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냥 허영심일까?
하지만 뭔가····. 난 뭔가가 자꾸 거슬렸다.
“············ 민재군. 듣고 있나?”
“아~!! 예? 아 저기····. 죄송합니다.”
난 그제야 딴 생각을 하느라고 그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피곤한 모양이군. 너무 신경쓰지 말게. 그냥 아저씨의 헛소리였으니····.”
“죄송합니다.”
내가 랭킹이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김수경씨의 태도는 정말로 관대했다.
아무리 나보다 랭킹이 낮다고 해도 다른 십천이라는 존재들의 자존심을 잘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신선하기 까지 했다.
랭킹 1위인 신대호까지 내 앞에서 랭킹 가지고 징징거리지 않았는가?
그 쫌생이 보다는 눈앞에 있는 이 김수경씨가 훨씬 대인배로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나를 별관까지 직접 배웅해 줬다.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피곤할테니 일찍 들어가서 쉬게.”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으음···. 아~!! 그리고·· 야밤에는 가능하면 별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게. 저택의 경비시스템을 건드리면 시끄러우니까···.”
“알겠습니다.”
어차피 돌아다닐 이유도 없다.
난 그렇게 별관으로 돌아갔다.
뭔가 이 집에서 꺼림칙한 느낌은 받았지만 난 그냥 무시했다.
이것 말고도 신경쓸 일은 잔뜩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그냥 넘어가지 못할 존재가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해······.’
민재의 왼쪽에서 잠든 척 했던 수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잠든 민재의 품에서 살며시 벗어났다.
민재는 정면으로 누워서 시아와 수진의 가슴을 동시에 만지작 거리면서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양쪽에서 만지고 있던 가슴중에 하나가 사라지자 다른 하나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으음·····. 시아야····.”
“아아·······. 주인님·····.”
빠직~.
‘잠꼬대로도 염장질이냐?’
이 바보 커플을 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수진은 이 저택의 수상함을 느끼고 그것을 조사하기로 했다.
상대가 서큐리 시스템이 어쩌니 하면서 핑계를 대며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그것도 뭔가의 핑계로만 보였다.
뭔가···. 이 저택에는 중대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 한수진은 그것을 확인하기로 했다.
‘뭔가 민재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몰라’
그녀는 순간 텔레포트를 해서 공간을 벗어났다.
텔레포트로 어느정도 공간을 벗어난 그녀는 허공에서 이 저택의 대략적인 주거 형태를 살펴봤다.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별관과 비슷한 건물이 두체, 그리고 본관이 한 체.
‘아마 김수경은 본관에 있겠지?’
텔레포트는 작지만 소리가 난다.
그러니 그녀는 염동력으로 몸을 은밀하게 움직여서 본관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수경의 방으로 예상되는 방의 창문에 살며시 귀를 대 봤다.
“·················.”
그녀의 귓가에는 김수경의 목소리와 다른 여자 한명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뭐야···. 여자하고 같이 있다면···. 결국은 그냥 평범한 남자였나? 뭐···. 저 정도라면 그리 흠도 아니지만·····.’
한수진은 순간 자신이 너무 오버했나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귀를 기울인 그녀는 대화 내용을 듣고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날··········살·····요.”
“····요········데요?”
“······세상에······.”
지금 저 안에서 들리는 대화는···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뭔가 숨겨진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그때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김수경이 반응했다.
“누구냐~~!!!!”
째그랑~!!
‘아차~.’
한수진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자신의 바로 코앞에 창공의 김수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창문을 깨고 날아온 그의 속도는 과연 한국 최고속도의 주인공 이었다.
‘텔레포트도 아닌데 전혀 이동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니···.’
창문을 깨고 나타난 김수경은 허공에 둥둥 떠있는 한수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러였던가?”
“·····잠깐···. 잠깐만요.”
“말은 필요 없다. 그걸 안 이상 죽어 줘야겠다.”
김수경의 말은 진심이었다.
한수진이 민재와 함께 온 손님인 것도 지금은 무시했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이 여자가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었다.
절대로 발설 되어서는 안될 비밀이 말이다.
피융~!!
“크윽~~!!!”
한수진은 무언가가 날아온다고 느낀 순간 감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스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미 저 멀리 떨어진 장소에 김수경이 존재했다.
척 봐도 몇 백미터는 떨어져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저기까지 날아간 것이다. 그것도 가속도도 붙기 전에 말이다.
‘저 거리에서 가속을 붙여서 오면·····.’
순간 한수진은 전신이 오싹해 졌다.
그렇다면 다음 일격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었다.
‘어쩌지? 그래··. 안으로 도망···.’
피융~!!!
콰아앙~!!!
그녀가 건물의 안으로 텔레포트한 것과 동시에 건물에 김수경의 돌진이 건물의 일부를 반파해 버렸다.
“칫~, 건물 안으로 들어갔나?”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한수진을 보고 김수경은 혀를 찼다.
건물을 조심해서 일부러 속도를 떨어트렸더니 상대가 피할 틈을 주고 말았다.
하지만·····.
“안 놓친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비상 말고도 X레벨이 이른 초능력이 하나 더 있었다.
추적이라는 능력이다.
문자 그대로 대상을 추적하는 능력으로 그가 일단 눈으로 확인한 상대는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위치를 파악 할 수 있었다.
그의 비상능력을 깔보고 덤빈 수많은 텔레포트는 이 추적 능력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도망간들 반드시 쫒아오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아암~. 졸립니다. 어찌어찌 연참 분량은 확보해서 올리는게 가능해졌지만 사실 아침에 확인하고 추천이 떨어져서 연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습니다.
아무래도 댓글에 시아 안티가 늘어나서 그런것 같은데.....
원래 소설의 내용은 소설의 스토리 안에서 납득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제 뜰에 마련된 Q&A계시판을 이용해 주십시오. 댓글에 네거티브가 너무 지나치면 제가 삭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스토리에 대한 예측을 몰아가는 식으로 이것저것 예상하시는 분들은 그 내용이 사실이던 아니던 다른 독자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득히 삭제하는 수 밖에 없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래 저는 챕터마다 목적이 뚜렷한 편입니다.
전쟁씬은 액션에 주력했고....
야하게 쓰려고 하면 수위의 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표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번 챕터의 목적은.... 좀 무리수이기는 하지만 한 번 정도는 독자 분들을 울려 보려고 합니다.
조아라 작품으로 독자분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게 좀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과거에 드래곤 라자와 데로드 앤 데블랑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 낼 수 있다면 성공이겠죠.
항상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해서 양질의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