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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202)화 (20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201화

“아, 역시. 저 아저씨는 얼굴부터 거짓말쟁이다 싶었어.”

티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단테를 흘겼다. 안단테가 무어라 더 말하려고 ‘효-’까지 뱉었지만, 진효섭이 냉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이상 더 말하면 참지 않을 거라는 표정이었다. 결국 안단테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조그마한 어린애한테 패배한 기분에 잠겼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난감하게 눈을 굴리던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레 주제를 돌렸다.

“하하……. 저기, 시간 관계상 약혼식 실습은 지나가고, 이만 이론으로 진행할게요. 뒤로 가 계세요.”

그렇게 수업은 다시 시작됐고, 티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로 찾아갔다. 안단테는 뻔뻔하게 뒤로 향해서 진효섭 옆을 차지했다.

수업이 시작됐음에도 밖으로 나서지 않자 학부모들이 안단테를 흘끔거렸다. 상황상 자신에게 향했을 시선을 대신 받아 주는데도 진효섭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교실 뒤편에 선 그가 안단테만 들리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안 가십니까?”

“어딜?”

“학부모 참관일입니다, 형.”

“그렇다면 네가 있는 것도 이상한 거 아냐? 쟤가 네 애도 아니고.”

뭐라 말하면 좋을까. 말을 고르느라 진효섭은 입술만 달싹였다. 그것을 곁눈질로 보던 안단테는 이상하게 입술이 메마르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섹시하다니까.’

저 탄탄한 복근이 불룩하게 올라오는 걸 상상하니 절로 허리가 뻐근해졌다. 아랫배가 이상하다며 손바닥으로 더듬거리던 밤이 떠오른 탓이다.

“저는 셀레나를, 그러니까 어머니를 대신해서 온 겁니다. 솔직히 제 동생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나랑 더 관계있지. 네 동생이면 내 처제잖아?”

안단테가 진효섭의 손을 슬쩍 끌어 꽉 잡았다. 손바닥을 마주해 은근하게 문지르자, 진효섭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손바닥에 촉촉하게 배어난 땀 때문인지 향이 더 짙어진 기분이다.

달콤한 꿀 향에 안단테는 나른한 숨을 뱉을까 봐 꾹 참았다. 사랑스러운 연인은 가만히 있어도 유혹적이어서 간혹 곤란했다.

“안 그래?”

태연한 척하며 은근히 묻자 진효섭이 귀 끝을 벌겋게 물들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손을 슬며시 뺐다. 그리고 수줍은 표정으로 사람을 홀려 두고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뭔 소리야?”

안단테가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머릿속에 아까 전, 꼬맹이가 결혼할 거냐는 물음에 부정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그게 진심이었던 걸까.

“결혼을 못 하긴 왜 못 해.”

“그, 그거야…… 안 되니까…….”

진효섭이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결혼이 없다. 정확히는 만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각인이 있으니까. 각인이 결혼보다도 더 끈끈한 평생의 동반자를 뜻하므로 관련한 법이 없었다.

간혹, 이성끼리 보여 주기식의 결혼을 한다고도 하지만 동성끼리는 하겠다고 굳이 나선 경우가 없다. 특히 한국에는 동성 간의 결혼 제도가 없기에 더욱 그랬고.

해외는 또 다르려나, 진효섭이 우물쭈물 생각하고 있으려니 안단테가 코웃음을 치며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바꾸고자 하면 안 되는 건 없어. 일주일만 기다려 봐. 내가 당장-”

“자, 잠깐만요. 그러지 좀 마십시오.”

진효섭은 당장에라도 법을 바꾸러 갈 것처럼 말하는 안단테의 손을 꽉 잡았다. 다급하게 붙드는 그 행동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안단테는 더 아이처럼 굴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뛰는 게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왜. 싫어? 나랑은 연애만 하다가, 저 꼬맹이가 크면 결혼할 생각이었어?”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갑자기 왜 아이처럼 그러십니까? 게다가 사람들도 있는데 자꾸…….”

계속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며 진효섭이 한숨을 쉬었다. 안단테가 모두 해결하겠다고 말했는데도 주위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관계를 숨겨야 해서 난감한 게 아니라 그저 부끄러운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숨을 내쉬는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뒷일이나 지금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이곳에 뛰어 들어왔던 것처럼.

“그래도 제도를 바꿔 두면 좋잖아. 언제든지 너와 내가 결혼할 수도 있고.”

안단테는 다른 이가 듣지 못하도록 좀 더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진효섭에게만은 확실하게 들리도록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했다.

“그럼 미리 정해 둘까. 누가 부인 할래?”

“형…….”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 주십시오,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안단테는 모른 체하며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가 부인 하지 뭐.”

“예? 그게 아닌-”

“솔직히 서방이든 부인이든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네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다시금 파르르 떨리는 진효섭의 손끝을 소중하게 쓸었다. 그리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깊게 깍지를 끼었다. 최대한 손을 닿아 강하게 얽었는데도 더 닿고 싶었다. 사흘 내내 한방에서 밤을 보내도 부족한 마음이기에 고작 이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럼에도 안단테는 꾹 참고 손만 붙잡았다. 더. 더 깊게 스며들고 싶고, 부족하다는 마음이 갈수록 커져 애가 탔다. 온몸이 진효섭을 원했다.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손끝이 근질거렸다.

당장에라도 저 매끈한 정장을 벗겨 심장께에 제 이름이라도 새기고픈 심정. 타인에게 상처를 입은 흔적을 제 것으로 빈틈없이 뒤덮고 싶었다.

‘……아니. 그건 곤란하지.’

안단테는 머릿속을 가득 채운 충동을 익숙하게 내리눌렀다. 사실 각인을 떠올렸던 건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를 사랑한다 확신하기 전부터 각인을 새기고픈 욕구를 느꼈으니까.

하지만 각인을 바라는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커진 반면,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더 적어졌다. 이 이상 진효섭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싶지 않으므로. 그를 아끼는 마음이 컸기에 말을 삼갔다.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기를 바라며 안단테가 장난스레 말을 뱉었다.

“효 서방.”

진효섭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앞만 바라봤다. 귀 끝을 물들인 색이 점차 광대로 번져 나갔다.

‘정말, 귀엽다니까.’

안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사각사각 펜 소리가 길드 안에 가득했다. 마지막 사인이 끝나고, 진효섭이 옆에 있는 테디에게 서류를 넘겼다.

“이걸로 마지막이야.”

“드, 드디어…….”

테디는 거뭇거뭇한 눈 밑을 쓸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따듯한 물에 들어갔다가 잠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 것 같아.”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고생은 네가 더 했지. 나야 에스퍼니까 정신적인 피로만 느끼지만 넌 몸도 피곤할 거 아냐.”

하루에 네 시간씩 일하며 이런저런 서류를 처리하고 모임을 다니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진효섭은 약한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그나저나, 결국 제때 해냈네. 난 솔직히 맞춰서 끝내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거든.”

“그러게.”

계약이 끝나기 두 달 정도 전이었나. 신해창은 연장에 관해서 물었다. 당연하게도 진효섭은 고개를 저었고, 신해창은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길면서도 짧았던 1년의 계약. 아무리 길드에 소속된 기간이 길지 않다지만 진효섭은 대표 가이드로서 여러 활동을 했던 탓에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이제껏 모임에 치여서 쌓였는지도 몰랐는 서류들. 대외적으로 정리하는 절차. 게다가 이번 계약을 끝내며 셀레나의 집에서도 나가기로 결정해 이사 준비를 해야 했고, 그에 따른 송별회도 정해졌다. 두 달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일정이었다.

신해창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계약은 끝났을지언정 서류는 차차 정리하면 된다고. 기실 정리할 서류들은 급하지 않은 것으로, 계약이 끝난 뒤 활동을 중지하고 차차 해결해도 되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두 달 안에 서류도 함께 다 해결하겠습니다.’

그는 선언한 만큼 열심히 했다. 그리고 1년째 되는 날, 서류부터 활동까지 모든 것을 끝냈다. 가능할까 긴가민가했지만, 해내고 보니 뿌듯했다.

‘형이 좋아하겠지?’

괜스레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신해창의 말대로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끝맺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안단테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신해창이 집에 데려다주는 일이 많았는데, 여기서 문제는 안단테가 매일같이 집 앞에서 기다린다는 점이었다. 몰래 숨어 있다가 신해창이 돌아가면 나타나는 터라 다행히 마주친 적은 없다. 하지만 신해창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 안단테의 시선은 당장에라도 등에 칼을 꽂을 듯 살벌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약을 때려치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골목에서 진효섭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중얼거릴 뿐.

‘빨리 계약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노력은 진효섭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솔직히 제 고집을 기다려 줘 고맙기도 했고.

그때, 테디가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기분 진짜 이상하네. 우리 또 볼 수 있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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