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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93)화 (20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92화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멍하니 생각을 이어 가던 안단테가 두근거리는 심장에 제동을 걸었다.

‘효섭이가 그런 반응을 보인 건 내 향에 노출돼서야. 결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닐 거라고.’

기대하면 겉으로 드러날 게 뻔했기에 최대한 희망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또한 효섭이를 위한 일이야. 진효섭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려면 꼭 해야 할 일.’

짧게 숨을 내쉰 안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간다.”

“아직 오전 열한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지금 가게요?”

소파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던 체르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안단테를 흘끔거렸다.

“어. 가서 기다리려고.”

진효섭과의 가이딩은 저녁 일곱 시. 던전이 열리는 시간은 밤 열 시였다. 아직 일어서기에는 일렀지만, 안단테는 조금이라도 더 그를 빨리 마주하고 싶어 바쁘게 움직였다.

“던전 끝날 때쯤에 맞춰서 아르헨티나로 옮겨 와. 곧바로 정부로 향해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니까.”

“이 사무실은요?”

“팔았어. 우리는 몸만 옮기면 돼.”

“아, 그래요?”

체르니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단테는 마지막이 될 사무실을 두고 밖으로 향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곳을 팔고 떠나는데도 미련은 없었다. 진효섭을 생각하며 만든 사무실, 진효섭을 위해서 갈고 닦은 거리. 모든 곳에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지만, 정작 진효섭은 이곳에 없기에.

안단테는 지정된 약속 장소에 발을 들였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가 손잡이를 잡은 채 멈칫했다. 안에는 언제 온 건지 진효섭이 앉아 있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느라 인기척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안단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지금 왜…….”

“약속한 마지막 날이잖습니까.”

슬쩍 확인한 벽걸이의 시계는 한국 시간으로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은 일곱 시였는데.”

“그럼 안단테 에스퍼는 왜 지금 도착하신 겁니까?”

“…….”

말문이 막힌 안단테가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민망하다는 듯 진효섭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자르지 않았는지 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발개진 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안단테의 심장은 제멋대로 뛰어 댔다. 몇 분 전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건만. 다짐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반면, 진효섭은 무언가 결심한 듯 똑 부러진 어조로 권했다.

“일단 앉으십시오. 저도 마지막이니까 일찍 온 것뿐입니다. 매번 안단테 에스퍼가 먼저 와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다소 주춤대던 안단테가 마침내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이 될 일곱 시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진효섭은 열두 시가 채 되기도 전에 도착한 안단테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지.’

아홉 번. 안단테는 이제껏 이뤄진 아홉 번의 가이딩에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 약속 장소에 이르게 도착했을 때도. 갑작스레 일정이 취소되어 미리 도착해 식사라도 하려던 때도. 안단테는 언제나 약속 장소에 있었다.

대체 얼마나 일찍 도착하는 걸까. 이번에는 기필코 먼저 도착해 기다리겠다는 생각으로 오전부터 서둘렀다. 다행히 오전에는 안단테가 없었지만, 그는 오후를 넘기기 직전에 얼굴을 비췄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이렇게 빨리 와서 기다렸다니…….’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 가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자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니까.

안단테의 행동과 시선. 그 모든 것이 진효섭을 향해 있었다. 굳이 그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들지 않아도 드러났다. 마음을 닫고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오자 표정을 관리하기가 새삼 어려웠다.

째깍째깍, 침묵 속 울려 퍼지는 벽시계 소리를 들으며 진효섭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아르헨티나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럼 이게 마지막이겠네요.”

“그렇겠지.”

사실 여덟 번째 가이딩 때, 진효섭은 마지막 가이딩을 끝낸 후 모든 오해를 풀고 다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가이딩.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말하자. 지금이야말로 말할 때야. 그렇게 마음먹었잖아.’

사실, 이제껏 했던 오해를 전하고 그의 곁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전부터 계속했다. 다만 일찍이 말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렸던 건, 던전에 얽힌 모든 것을 해결하고 완전히 새로 시작하고 싶어서.

오늘부로 그게 해결될 것이다. 이제 더는 뒤로 미룰 이유도, 미룰 생각도 없다. 긴 시간을 돌아온 만큼 진효섭의 다짐이 단단해졌다. 후- 짧게 숨을 들이마신 진효섭이 결심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형. 저 SS급으로 재발현했습니다.”

“알고 있어. 저번에도 말했잖아.”

안단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진효섭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르게 이해했다는 건 확실했다.

“……아니요. 아무래도 형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효섭은 설명 대신 미리 준비해 온 종이를 내밀었다. 백 마디 설명보다 나으리라.

[능력 측정 검사지(진효섭)]

“이건…….”

결과지를 바라보는 안단테의 눈이 점차 커졌다. 진효섭의 이름 밑으로 보이는 능력 측정 결과. 그리고 S급 평균과의 대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눈치챈 기색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안단테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처음 SS급임을 밝혔을 때 알아차리긴 했지만, 안단테는 정말 재발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듯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형과의 가이딩이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코피나 저조했던 몸 상태가 한계까지 능력을 끌어 올린 대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따로 연구한 결과가 없으니 뭐라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진효섭은 능력 향상이 안단테와 그날,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바뀌었다는 걸 확신했다. 처음 안단테와 깊은 가이딩을 가진 이후, 그리고 두 번째 그날 이후로도 바뀌었으니까.

한계까지 가이딩했기에 변한 게 아니라, 안단테를 가까이하면서 바뀐 것이다. 아마도 둘만이 맡을 수 있는 그 향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깊이 숨겨 뒀던 힘을 끌어낸 걸지도 모르고. 뭐, 어느 쪽이든 그의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진효섭은 흔들리는 안단테에게 덤덤히 전했다.

“전 이제 접촉만으로 완벽하게 형을 가이딩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예. 아홉 번의 가이딩을 이어 가면서 가늠해 본 거라 확신합니다. 솔직히 이제껏 형한테 하던 가이딩은 제힘의 5퍼센트도 쓰지 않았습니다.”

“5퍼센트…….”

말도 안 되는 수치를 안단테가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무리하는 줄만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네.”

“제가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랬었지.”

안단테는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표정을 감추려는 듯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훔쳤다. 이제 진효섭은 안단테와의 가이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안단테가 굳이 떨어지거나 멀어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아르헨티나에 가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꾸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터.

그러나 안단테는 침묵을 이을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다행이네.”

그게 끝이었다. 숨겨 둔 본심을 꺼내 든다거나 다시 손에 쥐려는 기색은 없었다.

‘역시…….’

몇 번이나 확인한 안단테의 마음이었지만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빨리 그에게 자신이 오해했던 것을 말하고, 다시 전처럼 돌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았다. 하지만 오해했던 것을 풀고 사과하기 전에 먼저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형은, 절 사랑하십니까?”

“나는…….”

갑작스러웠는지 안단테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드러낸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사랑으로 남기 위해서, 라는 말은 덤덤히 전했으면서 직접적인 물음에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그러나 섭섭하지는 않았다. 진효섭은 그의 마음을 듣고 싶어 물어본 게 아니었으니까.

“전, 사랑합니다.”

“뭐?”

안단테가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뇐 말을 입 밖으로 뱉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계속 사랑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여전히 사랑합니다.”

노아피였을 때도, 멀어졌을 때도, 다시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마주하는 순간에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습니다.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형을 사랑합니다.”

마음을 제대로 전하는 것. 오해를 푸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효섭이 안단테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해를 풀겠다 다짐한 것처럼, 안단테 역시 진효섭의 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온전히 풀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난…….”

좋아할 거라 생각했건만. 안단테는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이고 짧은 숨을 내뱉던 안단테가 어렵게 입을 열고 꽉 막힌 목소리를 냈다.

“나는, 여전히 네가 내 것이기를 바라고 있어. 널 향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는 의미야.”

“집착이요.”

“그래.”

그는 진효섭의 고백에 옳거니 하고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진지해졌다. 어두운 그림자가 안단테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내 곁에 있는다면 넌 언젠가 괴로워질 거야. 힘들어지겠지. 그렇다면 너는…….”

진효섭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언젠가 그의 곁에서 집착을 당할 바에야 죽는 게 나을 거라는 마음을 내비친 적 있으니까. 안단테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그에 진효섭은 부드럽게 웃었다.

“힘들어지지 않습니다. 형은 집착 같은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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