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192)화 (192/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91화

벽에 걸린 TV에서 평소와 같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최근, 변형 게이트 상황은 어떻습니까?”

“두 달 전, [SSS]에서 변형 게이트를 완벽하게 없앨 방법을 알아냈다 발표했습니다. 그건 앞서 띄워 드린 자료에서도 보여 드렸다시피 열 개의 돌을 없애는 것입니다.”

“예. 예전에도 다뤘던 정보였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돌을 없애는 데 조건이 까다로워서 안단테 에스퍼가 그 일은 맡았다죠.”]

앵커와 마주 앉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변형 게이트가 열린 건 총 아홉 번입니다. 하나같이 그 돌이 존재했었고, 안단테 에스퍼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홀로 클리어했는데,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습니다.”

“역시 대단하네요. 필요한 돌은 열 개라고 했으니 곧 변형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질까요?”

“글쎄요. 내일 열릴 예정이라는데……. 빠른 시간 내 완벽하게 해결될 건 확실합니다. 완전히 사라질지는 그 이후의 문제니 지켜봐야겠죠.”]

교수는 변형 게이트가 사라질지 확신하기엔 이르다는 듯 머뭇거렸으나 안단테가 실패할 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마주 보며 질문을 이어 가던 앵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어서 국가안보국의 진효섭 가이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는 현재 변형 게이트를 완벽히 없애기 위해서 안단테 에스퍼를 돕고 있는 가이드인데요.”]

앵커는 어떠한 종이 하나를 흘끔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최근 국가안보국의 진효섭 가이드에 대한 일로 세상이 뜨겁습니다. 처음으로 SS급으로 승급을 인정받은 가이드라고 하죠?”

“예. 진효섭 가이드는 본래 S급 중에서도 능력이 좋은 편이라고 했습니다만, 최근 열을 동반한 능력의 불안정함을 겪은 뒤 갑작스레 능력이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만,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처음입니다.”

“앞으로 다른 가이드나 에스퍼 역시 등급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SSS]에서는 여러모로 그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검사를…….”]

가만히 뉴스를 보던 체르니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리네, 난리야. 요즘 들어서 온종일 이 얘기만 나온다니까.”

그러곤 작게 한숨을 쉬며 화면에 떠오른 진효섭의 프로필 사진을 응시했다. 유난히 잘 나온 사진 탓일까, 아니면 SS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일까. 체르니는 아쉽다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어 댔다. 그에 플랫이 맞장구치며 짜증을 담아 투덜거렸다.

“내 말이. 드라마 보는 내내 밑에 속보로 떠서 집중도 안 돼.”

“너 드라마 보냐?”

“어. 요즘 단장 혼자 던전 드나드니까 심심하다, 심심해.”

“그건 그래.”

체르니는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그대로 꺼 버리고 몸을 굴렸다. 머리를 소파의 팔걸이에 걸친 그가 안단테를 흘끔 바라봤다. 그는 티브이가 꺼졌음에도 검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진효섭이 있다는 듯.

“단장. 오늘 열리는 던전이 마지막이죠?”

안단테는 대답이 없었다. TV 속 교수도 그렇게 말했고, 체르니도 이미 아는 사실을 물었던 것이기에 특별히 대답이 필요치는 않았다. 그럼에도 체르니가 다시 한번 질문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진효섭이랑은 정말 이대로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가는 거예요?”

“그래.”

“SS급인데도요?”

“어.”

망설임이 없는 대답.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외의 다른 대답은 하지 않을 것처럼 확고한 안단테에 체르니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등을 더 깊숙이 묻었다.

“에효……. 그래요. 뭐, 단장이 그렇게 결정했다는데 어쩌겠어. 솔직히 저 정보가 다 사실인지도 모르고.”

그의 말마따나 그 정도는 조작하기 쉬웠다. TV 속에서는 진효섭의 힘이 후천적으로 상승했다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이능력자들의 힘은 세월에 따라 내려가면 내려갔지, 높아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S급인 체르니가 후천적으로 안단테처럼 변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도저히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그만큼 등급에 S가 하나 더 붙는다는 건 폭발적인 힘의 차이를 나타내는, 힘든 일이다.

즉, 지금 사태는 신해창의 계략일 확률이 더 높았다. 국가안보국 길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진효섭을 더 극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으므로. 애초에 S급으로 등급 확정을 받았던 진효섭이 신해창의 건의로 인해 SS급으로 바뀌었다는 것보다는 ‘SS급으로의 재발현’이 쓸데없는 말을 방지할 게 뻔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도 안단테를 포함한 노아피 모두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이 아니라고.

물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파고든다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안단테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결과가 같기 때문이다.

“에휴.”

다시 한번 체르니가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잠깐이나마 집중했던 다른 노아피 단원들도 별다른 말 없이 각자 일에 집중했다. 안단테의 결정에 그 누구도 토를 탈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찝찝한 표정이었다.

안단테는 그 사실을 인지했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결정한 일이야.’

오늘 저녁 일곱 시. 진효섭과의 가이딩을 끝내고 던전을 다녀오면 변형 게이트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다. 노아피는 그를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로 향하면 된다.

길드 소속 국가를 아르헨티나로 옮기는 것은 이미 계약서 작성까지 끝마쳤다. 앞으로 노아피는 던전에 몰두하겠다는 의사도 밝혀 둔 상태니 꺼릴 것은 어떠한 것도 없었다.

다만, 딱 하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으니.

‘효섭이의 태도가 조금 이상해졌단 말이지.’

여섯 번째의 가이딩 이후. 정확히는 가이딩을 가장한 키스를 나눴던 날. 매번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내리깔던 그가 그날 이후, 유난스레 안단테를 빤히 쳐다봤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멈칫거리는 모습이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도통 말을 걸지 못했다.

결국 여덟 번째 가이딩 때, 안단테가 먼저 진효섭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말해. 뭐든 상관없으니까.’

‘……뭐든 말입니까?’

‘그래.’

진심이었다. 안단테는 마지막을 앞두고서 그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었고,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불가능한 것이라도 어떻게든 이뤄 줄 생각이었는데, 한참 고민하던 진효섭이 이은 말은 예상외였다.

‘저…… SS급이 됐습니다.’

‘아, 들었어. 신해창이 힘 좀 썼더라고.’

저도 모르게 시큰둥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SS급으로의 승급은 진효섭을 안단테에게서 지키기 위한 신해창의 수단이자 두 사람을 갈라놓을 벽이었으니까.

‘예. 그래서, 저기, 그…….’

진효섭은 긴장한 듯 어색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영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안단테는 씁쓸함을 삼켜야만 했다. 그가 왜 어렵사리 이 주제를 꺼냈는지 대략 눈치챘기 때문이다.

‘SS급으로 승급했으니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인가 본데.’

안단테는 이제 정말로 끝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일이고,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직접 들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안단테는 잡은 손을 단호히 떼어 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막상 상황이 눈앞에 닥치자 겁이 났다.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미루고 싶었다.

‘수고했어.’

떨어지는 손끝에서부터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고, 더 접촉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지만 내리눌러야만 했다. 이 이상 접촉을 이어 간다면, 손을 떼는 건 더 힘들어질 터.

안 그래도 그와 가이딩할 시 생기는 신체 변화 때문에 죽을 맛인데 잠깐의 충동을 참지 못한다면 3일 밤낮이 더 괴로워질 것이다.

‘신기하단 말이지. 가이딩 증폭기를 실험할 때는 전혀 욕구가 일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이상한 체질이 고쳐져서 잘됐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진효섭을 앞두자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보다 더한 충동에 안단테는 일정 이상의 가이딩은 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가이딩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다. 진효섭과 단둘이 보내는 잠깐의 시간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가 볼게. 다음번 가이딩 날짜는 게이트 파인더에 확인되는 즉시 보낼-’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다급히 일어나는 안단테의 손을 진효섭이 다시 끌었다. 그 순간, 억눌렀던 충동이 한계치를 넘겼다. 까마득하리만큼 강한 본능이 머리를 잠식했다. 진효섭은 눈앞의 사내가 무슨 상상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간 눈으로 올려다봤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습니다.’

‘……말해.’

‘지금은 좀 그렇고…….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열 번째 가이딩이 끝나고서요.’

‘……그래.’

갈라진 목소리에서 배어나는 갈증을 숨기기 위해 안단테는 헐레벌떡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후, 일주일을 힘겹게 보냈던 것을 떠올리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과거를 회상하던 안단테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중요하게 할 말이라…….’

SS급으로 승급된 이후에 할 중요한 말. 절대 좋은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때도 생각했듯,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 이야기일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기대감이 고개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얘기하던 진효섭의 태도가 전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말갛게 올려다보는 시선에선 전과 같은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보이지 않았다. 뺨은 호감을 표하는 듯 발갰다. 처음 진효섭이 안단테의 향을 맡았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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