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90화
안단테는 꽤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눈을 마주하지 않을 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까이 있는데도 짙은 그리움이 몰려오고, 괜스레 가슴속이 간질간질해졌다. 진효섭은 우물쭈물하다가 안단테의 소매 끝을 잡고 끌었다.
“형.”
속절없이 이끌린 안단테가 진효섭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 들었다.
키스는 어려워도 가이딩만큼은 쉬운 진효섭이었지만 지금은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마치 곧 할 접촉을 가이딩이 아닌 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듯. 벌겋게 달아오른 귀를 한 채 진효섭이 조심스레 안단테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멍하니 그를 보던 안단테가 돌연 진효섭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강한 힘에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 미안.”
반사적인 반응에 살짝 놀란 게 다였으나 안단테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몸을 뒤로 물렸는데, 답지 않게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어. 난, 정말 괜찮아서.”
“……무리 아닙니다. 효율 좋은 가이딩이지 않습니까. 그냥,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저도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솔직히 진효섭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말은 그렇게 했다. 안단테가 편히 가이딩을 받아야 딱딱하던 분위기가 한층 풀릴 테니까. 접촉을 하고 예전과 같은 애틋함이 떠오르면, 마음을 전하기가 보다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안단테의 표정이 더 가라앉았다. 당혹스러움은 사라졌지만 씁쓸함이 감돌았다.
“편하게, 라고.”
무언가 실수라도 한 걸까. 이젠 진효섭이 더 당황스러워졌다.
“저는 그냥…….”
“아냐. 네 말이 맞지. 그래. 가이딩…….”
느릿하게 말을 끌며 안단테가 진효섭의 입술을 주시했다. 이 순간조차 심장은 눈치 없이 쿵쾅쿵쾅 뛰었다. 안단테가 알아차릴까 부끄러울 정도로 소리가 컸다.
“효섭아.”
안단테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뺨을 향해 다가오던 손은 잠깐 멈칫하더니, 진효섭이 앉은 소파의 등받이를 꽉 잡았다.
“눈 감아.”
그의 말에 진효섭은 홀린 듯 눈을 감았다. 확 맡아지는 향으로 인해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입술은 닿지 않았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긴장을 증폭시켰다. 아직 아무것도 닿지 않은 입술이 간질간질했다.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참다못한 진효섭이 항의하기 위해 눈을 번쩍 떴으나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코앞의 안단테를 보자마자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효섭은 그저 숨을 들이마신 채 멍하니 황금빛 눈을 바라봤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숨은 미약했는데, 어쩐지 안단테는 숨이 가빠 보였다.
이윽고, 콧잔등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스쳤다. 고개가 숙어짐과 동시에 안단테의 입술이 진효섭에게로 내려앉았다. 촉, 가벼운 접촉이었다. 점막 접촉 없이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아 비벼지는, 부리로 쪼는 듯한 가벼운 키스가 이어졌다.
선정적인 키스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닿은 입술에서 몽글몽글하면서도 따스한 감정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모든 정신이 입술에 집중돼서 아래가 딱딱하게 굳는지도 몰랐다.
조금 더 고개가 기울어지고, 두 사람의 입술이 더 깊게 맞물렸다. 놀라울 만큼 뜨거운 혀가 갈라진 입술 틈을 길게 쓸자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안단테는 본격적으로 입안을 파고들었다. 말캉한 혀가 입천장을 쓸고 혀를 휘어 감자 절로 야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안단테는 부드럽고 또 진중하게 안을 조금씩 짚어 갔다.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가 부드럽고 어디가 약한지, 조그만 것 하나 놓치지 않을 기세로 신중하게도 살폈다. 볼을 쓸고 치아 사이사이를 꾹꾹 누르며 한참 입안을 헤집었다. 두 눈을 감고 집중한 모습이 언뜻 경건해 보일 정도였다.
“흣…….”
진효섭은 그 느린 접촉에 천천히 녹아내렸다. 어느새 소파 등받이에 몸이 묻히고, 두 팔은 안단테의 목을 꽉 감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향이 흘러 몸이 배배 꼬였다. 분명 매캐한 스모크 향이건만, 그 어떠한 것보다 달게 느껴졌다.
한참 헐떡이던 진효섭이 팔에 힘을 주며 안단테에게 매달렸다. 가슴이 맞닿자, 상대의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졌다. 쿵, 쿵, 누가 더 빠른지 시합하듯 심장 소리에 가속도가 붙었다.
상황과 맞지 않게 진중해 보이는 안단테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서 진효섭은 안도해 버렸다. 귓가를 울리는 듯한 심장 소리가 아직 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증명 같았다.
고작 키스 한 번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그만을 바라보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가 하는 행동에 감정을 숨길 필요 없이 얼굴을 붉히고, 몸을 겹치던 그때로 말이다.
‘형…….’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진효섭은 그와 키스를 오랫동안 나눴다.
정신을 차린 건, 안단테가 조심스럽게 몸을 물렸을 때였다.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뜨자 흐트러진 안단테가 보였다. 선명한 황금빛 눈에선 채 숨기지 못한 욕정이 들끓고 있었다.
우습게도 진효섭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안단테에게만큼은 섭섭했던 것처럼, 다른 이에게는 불편했던 것이 안단테에게는 기꺼웠다. 모든 것이 그가 특별했기에 그랬단 걸 이제야 알았다.
“형…….”
스스로도 처음 듣는 애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효섭은 다시 입술을 겹치기 위해 안단테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러나 안단테는 그런 진효섭의 손을 제지했다.
“이후에, 일이, 있어서.”
“……그래서 가실 겁니까?”
시선은 진효섭의 젖은 입술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목울대는 아래위로 요동쳤다. 가까이 닿은 몸 탓에 진효섭은 그가 흥분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지 오래였다.
안단테는 마른침을 몇 번 삼키더니, 몸을 떼어 냈다. 진효섭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 물리는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단호했다.
“……너무 날 자극하지 마. 못 참을지도 모르니까.”
“왜 참는 겁니까?”
“네 몸이 안 좋아지니까.”
“어차피 일시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안 돼. 어쨌든 네 몸에 무리가 간다는 건 사실이야.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 나는…… 네가 위험하길 바라지 않아.”
“형이 위태롭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래.”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대답이었다. 상대의 호감을 위해 거짓으로 뱉은 게 아니란 말이다. 확실히 와닿는 진심에 진효섭은 아려 오는 목을 틀어쥐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때가 다가왔다, 싶었다.
“……그건, 동생이 가이딩을 끝으로 숨졌기 때문입니까?”
놀란 듯 안단테가 눈을 크게 떴다. 진효섭에게서 이 얘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코다 에스퍼가 말해 줬습니다. 제가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코다가 할 말이 있다고 하긴 했었지. 그게 이 이야기였나 보네.”
안단테는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머리를 헤집었다. 코다가 상의도 없이 과거를 알렸다는데도 특별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니야.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지난 일에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죽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이니 그다지 반갑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진효섭은 물어야만 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형이 제 몸을 걱정하는 건 동생이 가이딩을 끝으로 숨졌기 때문에, 또다시 그런 가이드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인 겁니까?”
“그것도 맞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아마 똑같았을 거야.”
안단테가 흐트러진 진효섭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하며 말했다. 시선이 잠시 번들거리는 진효섭의 입술을 훑었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네가 다치는 게 싫으니까.”
그 원인이 타인이든, 안단테 본인이든, 마찬가지라는 듯 덤덤한 어투였다. 그 대답에 진효섭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럼…… 제가 만약……. 만약에 SS급 가이드라도 돼서, 형을 가이딩해도 몸에 문제없다면. 그렇다면 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효섭은 자꾸 딱딱하게 굳는 입술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어떠한 대답이 나올지 긴장하는 기색이 빤해 안단테는 씁쓸하게 웃었다.
“걱정 마. 어떻게도 하지 않을 테니까.”
“…….”
“네가 S급으로 유지되든, SS급으로 승급하든, 내가 두 번 다시 너를 소유하려고 드는 일은 없을 거야. 열 번의 가이딩이 끝나면 노아피 소속 국가를 한국에서 아르헨티나로 옮길 테고, 그럼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영원히 없겠지.”
아르헨티나로 옮긴다니. 처음 듣는 계획에 진효섭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저번에 했던 말은 잊어. 더 이상 내게서 피하고자 네 앞날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 그냥…… 네가 살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돼.”
“어째서…… 그렇습니까?”
어떤 대답이 나올지 이미 눈치챘지만 직접 듣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으므로.
“저번에는, 분명 놓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게 마음을 바꾼 겁니까.”
귀에서 북이 둥둥 울리는 듯했다. 진효섭은 그 달콤함에 취해서 물었고, 안단테는 그 기대에 벗어나지 않는 답을 내뱉었다.
“네게 사랑으로 남고 싶어서.”
기왕이면 네게 집착이 아닌, 사랑으로. 그 이름으로 남고 싶어서.
황홀한 감각이 정도를 넘어서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구나. 처음 겪는 감각에 진효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안단테의 마지막 말만이 진효섭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