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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89)화 (18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88화

‘역가이딩 때문에 내 몸이 안 좋아진 게 아니었던 거야.’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힘이 늘어난 건지는 모른다. 다만, 그 전조 증상 모두 안단테와의 가이딩이 계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진실이야 어떻든 내심 바랐던 결과가 확정되니 안도가 터져 나왔다.

“다행…… 이다.”

안단테에게 다가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심장이 뛰다 못해 마구 떨렸다. 설렘을 숨기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때 사락,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종이를 가져갔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 들어온 건지 신해창이 있었다. 검사 결과지를 보는 그에게선 놀란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확인하셨습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예. 결과 자체는 능력 측정을 한 다음 날에 바로 나왔던지라, 이미 받아 봤었습니다.”

진효섭의 표정이 조금 당황스러운 빛을 띠었다.

“그렇다면 왜 미리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더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지표가 정말 확실한 건지, 아닌지.”

“아…….”

진효섭은 그제야 왜 의사가 오늘 오전부터 피검사와 정밀 검사를 다시 했는지 알아차렸다. 신해창은 진효섭의 안색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물었다.

“생각보다 기뻐 보이십니다. A급으로 내려간다는 소리에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몸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아서일 뿐입니다.”

답을 얼버무리며 진효섭이 시선을 피하자 신해창은 검사 결과지를 도로 내려놨다. 날카로운 대치 이후 처음 마주해서인지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피어났다. 분위기를 눈치챈 의사는 밖으로 나섰고, 진료실에는 신해창과 진효섭 둘만이 남았다.

“…….”

“…….”

침묵이 한차례 흘렀다. 신해창은 검사 결과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정작 승급을 부담스러워하던 진효섭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이, 신해창이 입을 열었다.

“이 일을 알리지 않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의외의 발언에 진효섭이 떨떠름하게 눈을 깜빡였다.

“진효섭 가이드가 SS급으로 발현됐다는 걸 숨기면 어떨까 제안하는 겁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SS급 가이드가 소속된다면 길드 순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해창은 안단테를 꺾고자 하니 이 사실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어 할 줄 알았다. 당장에라도 공표해 안단테를 저지하는 등의 방향으로.

하지만 신해창은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 덤덤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SS급의 출현에 모여들 세간의 관심, 그리고 변형 게이트의 출몰과 더불어 현 상황이 쓸데없는 소문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진효섭 가이드에게는 불편한 시선이 될 테니 제안하는 겁니다.”

노아피에서 국가안보국으로 넘어간 가이드가 SS급 발현 공표를 앞두고 신해창이 아닌 안단테를 가이딩한다. 분명 사람들은 이런저런 소문을 부풀려 갈 것이다. 진효섭으로서는 상상만 해도 불편한 일이었기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제가 SS급이라는 걸 밝히면 순위에 큰 변동이 있을 텐데도 말입니까?”

아마 SS급임을 밝히면 노아피를 꺾을 수도 있을 터. 쉽사리 포기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그렇다고 말하면, 저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진효섭 가이드에게 전 안단테와 같은 집착이 아니게 되는 겁니까?”

“그, 건…….”

순간 진효섭은 말문이 막혔다. 저번에 끊겼던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고 있자, 이번에도 신해창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서 물어본 건 아니니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리고 딱히 완벽하게 감추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숨긴다는 건 불가능하고, 이 또한 그중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신해창은 시간을 가늠하듯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다만, 현재 변형 게이트 탓에 세상이 불안합니다. 지금은 이 일에 더 집중해야 할 상황이니, 알리는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한 바입니다.”

“그렇…… 습니까.”

진효섭은 긍정을 뜻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알릴 사실. 뒤로 미루는 것 정도는 괜찮았다.

“그렇다면 변형 게이트가 해결될 때쯤에 공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나 테디는 제가 입단속시킬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또한 웬만하면 다른 곳에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생각보다 소문이라는 게 빨라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진효섭은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해창은 그런 진효섭을 잠시 쳐다보다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리기 전, 말했다.

“오늘은 다음 일정이 밀려 있는지라 데려다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테디도 있고…….”

“예. 그럼 먼저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히 인사한 후 신해창은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일전에 서늘한 기류를 주고받았던 일이 없었다는 양 어느새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물론 진효섭도 굳이 그때의 일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신경 쓸 만큼의 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관계를 풀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진실을 전하는 데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만으로 진효섭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편, 밖으로 나선 신해창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복도를 나아갔다. 길드 건물 소속의 진료실에서 1층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곧장 밖으로 나선 신해창이 향한 곳은 뒤뜰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좁고 쾌적하지 못한 장소였으나 건물 꼭대기와 진료실의 창문이 유일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후- 나른한 숨과 함께 뒤뜰 안쪽에서 뿌연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신해창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걸어갔고, 마침내 짙은 연기를 뿜어내는 안단테와 마주쳤다. 안단테는 갑작스러운 신해창의 등장에도 표정 변화 없이 앞만 바라봤다. 시선은 진료실의 창문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지나가다가 담배나 피우러.”

“여긴 노아피의 길드장이 있을 장소가 아니다. 타 길드에 이유 없이 드나드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

“아무도 쓰지 않는 뒤뜰 정도로 까칠하게 굴긴.”

안단테의 긴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담배에서 재가 떨어졌다. 신해창은 바닥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에 잠깐 시선을 두다가 고개를 들었다.

“뭘 착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안단테. 진효섭 가이드는 엄연히 우리 국가안보국 소속이다. 아무리 네가 가이딩을 전담 받고 있다고는 하나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타 소속의 가이드를 이런 식으로 따라다니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 얼마나 심한가에 따라 경고를 받을 수도 있다. 안단테도 모르는 규율은 아니었기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나가다가 담배나 피우러 잠깐 왔다니까. 요즘 세상에 마음대로 피울 수가 있어야지. 네가 말하는 그 규율이란 게 워낙 빡세서.”

웃기는 소리. 신해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스퍼가 일반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 따위에 영향을 받을 리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란 말이다. 물론 중독성조차 없고. 그럼에도 피우는 에스퍼가 간혹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안단테는 아니었다.

신해창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단테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두 번 다시 오지 마라. 또 널 발견하게 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가만있지 않아? 하, 하하. 이것 참.”

안단테가 손끝에 걸린 담배를 가볍게 튕겼다. 반쯤 줄어든 담배꽁초가 바닥에 안착하는 순간, 수북이 쌓여 있던 것들이 화르르 타올랐다. 불이 옮겨붙은 듯 안단테의 눈이 주황색으로 보일 정도로 진하게 일렁거렸다. 흩날리는 담뱃재가 허공을 떠돌았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널 가만두는 건 효섭이가 곁에 있기 때문이야. 너 따위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고. 효섭이가 네 곁에서 떠나면 그날부터 너는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할 텐데, 대체 무슨 착각을 해 대는 건지…….”

한걸음에 신해창 앞으로 다가간 안단테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 아니면 뭐야. 설마 너 효섭이를 온전히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래서 당당한 거야?”

서늘한 미소는 이내 비웃는 듯한 조롱을 머금었다.

“착각이 크네.”

진효섭이 신해창을 선택한 이유는 믿음직해서가 아니라, 선택지가 그 하나밖에 없어서다. 안단테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국가안보국과의 계약을 끝맺을 게 분명하다. 그건 신해창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터. 그가 아는 일을 안단테가 모를 리도 없다.

“하나 가르쳐 줄까. 1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너희 국가안보국의 끝은 몰락일 거야. 내가 직접 그렇게 만들 거거든.”

“…….”

“가만둬도 시궁창으로 걸어가는 중일 텐데, 굳이 내 신경을 더 긁을 필요가 어디 있어. 여차해서 눈 돌면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조심 좀 해.”

이죽거리던 안단테가 신해창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네 몸은 네가 사려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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