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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85)화 (18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84화

잠깐 침묵하던 신해창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진효섭 가이드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에게 해가 될 게 분명하니, 걱정이-”

“그것도 제가 판단하는 겁니다.”

그를 미워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전부 진효섭의 몫이다. 사실 용서한다 뭐다 할 건 없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중간에 개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일이다. 심지어 그게 유진처럼 착각에서 기인한 조언이 아닌, 신해창과 같은 제 욕심을 위함이라면 더욱이.

“지금 신해창 에스퍼의 행동은 형이 보였던 행동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대놓고 놓지 않겠다 선언하며 집착을 보이는 거나 뒷공작으로 묶으려고 드는 거나. 모두 진효섭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진효섭 가이드. 전…….”

신해창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진효섭은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새삼스레 신해창을 향한 원망이 치솟았다. 그만 아니었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모든 오해가 그로 인한 것만이 아닌 걸 알기에 원망에 사로잡혀 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하고만 싶지 않다는 말이다. 진효섭은 지금, 이런 오해들을 풀면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게 맞는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안단테는 이미 한 번 역가이딩으로 동생을 잃은 적이 있다. 만약 엉킨 실타래를 풀고 다시 그의 곁에 있게 되더라도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결국 지금처럼 멀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코다의 말대로 세 번째는 없을지도 모를 일. 그렇다면 이대로 진실은 묻어 둔 채, 시간이 치료해 주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다.

행복한 연애를 지속하는 도중에 알게 됐다면 해결하고픈 문제로 여겼겠지만, 이미 멀어진 상황에서 뻔히 보이는 어려운 길로 발을 들이려니 어려웠다. 이제껏 진효섭이 터놓지 않고 망설인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와 같은 상황에, 문제도 여전하고, 관계도 그대로지만, 더 이상 전처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안단테가 있어서 그런 건지, 서로를 향한 마음의 깊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고백으로 인해 확인해서인 건지. 진효섭은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해 보고 싶어졌다.

‘만약, 형의 역가이딩에도 내 몸에 문제가 없다면. 그걸 확신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그때는 얘기를 나눈 후 다시 그의 곁에 있어도 되지 않을까?

안단테는 진효섭이 가이딩하겠다고 말하자, 결국 싫다고 하지 않았다. 아마 내일이 되면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될 터.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이번에는 천천히, 확실하게 이야기를 잇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이상한 오해로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 * *

안단테가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복잡한 표정 속에는 약간의 초조함이 감돌았다. 몇 번인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하는 그의 발뒤꿈치가 들썩였다. 여기서 벗어날까 말까, 이대로 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효섭은 그런 그를 앞두고 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손을 주십시오.”

“…….”

벌써 똑같은 말을 세 번째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두 손을 얽은 채 단단하게 꾹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건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단테 에스퍼.”

어쩔 수 없이 진효섭이 안단테를 재촉했다.

“손을 주셔야 가이딩을 할 수 있습니다.”

“……안 해도 된다고 말했잖아.”

“필요한 일입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안단테 에스퍼의 몸을 회복시키는 데 제가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전 지금 몸 상태도 나쁘지 않습니다.”

“능력 측정 결과는 나오고 하는 말이야?”

“조만간 나올 겁니다.”

2일 전 오후에 했었으니, 아마 오늘 밤이 되기 전에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럼 아직 모른다는 거잖아. 위험해.”

“능력은 이미 안정됐습니다. 타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해 본 결과, 전과 그리 큰 차이는 없습니다.”

“널린 S급이랑 나랑 비교하지 마.”

“적당히 할 겁니다.”

“그래도 안 돼.”

계속되는 대치에 진효섭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왜 나오신 겁니까?”

“그건…….”

빠르게 말을 주고받던 안단테가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이 시작됐다.

가이딩을 거절하며 고집부릴 거라면, 도대체 왜 나온 건지. 아예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저버릴 수도 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찌하면 좋을지 잠시 생각하던 진효섭은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주제를 조금 바꿨다.

“지금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변형 게이트……. 제일 처음으로 발견됐던 곳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변형 게이트의 시발점. 진효섭이 노인과 함께 지냈던 집이었다.

“계속 생각했었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변형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잖습니까.”

물론 그날과 똑같지는 않고, 점차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다지만 게이트와 던전의 특성 등. 모든 게 진효섭과 노인이 살던 그곳이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추측일 뿐이지만, 제 생각에는 누름돌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돌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다란 크기와는 달리 무게가 가벼웠던 것도 그렇고. 그것이 깨지면서 무언가가 시작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안단테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 것 같았다.

“맞아. 이번 던전에서 확신했는데, 그때 봤던 그 돌. 던전에서 나오는 봉인된 고대 물건이야. 그게 깨지면서 변형 게이트의 생성이 시작된 거지.”

역시 그랬구나. 진효섭은 한층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연…… 은 아니겠죠.”

“당연하지.”

그 노인을 생각하는 듯 안단테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노인네. 치매 때문인지 뭔지 뭘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어.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확실히 아니야. 던전 내부 물건인 그 돌을 어떻게 빼낸 건지 모르고, 그 집에는 위성이나 위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특수 물건이 장착되어 있었으니까.”

“특수 물건…….”

“내 예상에는 나이가 들고서 힘을 잃은 에스퍼나 가이드가 아닐까 싶은데.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숨어 사는 걸 보면, 범죄를 저질렀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었겠지.”

진효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어르신도 에스퍼였다는 말입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내가 다시 찾으려니까 사라졌거든.”

지금 생각해도 열이 나는지 안단테가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 노망난 늙은이. 네가 게이트로 들어갔다는 거짓말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는데.”

“아…….”

진효섭은 진실을 말할까 말까 조금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거,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게이트로 들어갔던 건 사실이었으니까요.”

“……뭐?”

안단테의 눈이 커졌다. 진효섭은 자신을 향해 오는 안단테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정말, 네가 정말 던전으로 들어간 거라고? 대체 거기 들어가서 어떻게 될 줄 알고……!”

언성이 높아지려는 낌새에 진효섭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던전이 아니라…… 저는 일시적으로 이동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좌표 아이템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던전 게이트와 비슷하다 보니, 어르신께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이템?”

경직됐던 안단테의 몸에서 힘이 풀렸다.

“아……. 그래. 그래서 고물상에…….”

그간 의문이었던 것이 모두 해결됐는지, 안단테는 더 묻지 않았다. 부연하지 않아도 진효섭이 어떻게 그 장소를 벗어났는지, 왜 그런 물건을 들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아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저는 그날의 일도, 지금의 상황도, 모두 제 탓으로 느껴집니다.”

“네 탓이라니?”

“제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어르신은 그렇게 그냥 사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 주셨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제가 없었다면 그 돌이 깨질 일도 없고, 상황이 이렇게 될 일도, 사람들이 두려워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뭐?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황당하다는 듯 안단테가 인상을 찌푸렸다. 진효섭의 말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진효섭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부터 뒤틀린 것 같았다.

“제가 그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아니. 네가 그곳에 가지 않았어도 벌어졌을 일이야. 그 고대 물건이 존재하는 이상, 언젠가는 생겼을 일이라고.”

“하지만-”

“차라리 날 탓해. 다 내가 만든 상황이라고. 결국 돌을 깬 것도, 널 도망치게 만든 것도. 전부 내 탓이니까.”

미묘한 자조에는 후회가 감돌았다. 진효섭은 그가 내심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역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울렁거려 그동안 오해하고 있던 사실들을, 그래서 이렇게까지 상황이 와 버렸다는 것을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아직은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등급이 제대로 측정되고 나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속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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