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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83)화 (18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82화

삐- 삐- 네모난 모니터에 규칙적인 선이 아래위로 움직이며 그려졌다. 잠시 후 화면에 [측정 완료]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진효섭 가이드, 측정 완료됐습니다. 정말 능력이 안정되셨네요. 다행입니다.”

능력 측정과 정밀 검사를 도운 의사가 진효섭의 팔에 붙어 있는 패치들을 떼어 냈다.

“기계가 능력 지수를 측정하는 기간은 이틀가량이니 그때쯤에 결과가 나올 겁니다. 확정되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 마음을 편하게 먹으십시오.”

의사는 등급이 내려갈 진효섭을 걱정하며 말을 덧붙였다.

“몸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효섭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사실 의사가 걱정하는 스트레스는 특별히 없었다. 그는 등급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분명 그랬는데…….’

우습게도 지금은 S급이 유지되길 바라게 됐다. 웬만하면 S급이길. 등급이 내려가지 않기를, 하고 말이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확히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 다하고 나왔어? 어떻대?”

헐레벌떡 다가오며 묻는 테디를 진효섭이 웃는 낯으로 반겼다.

“응. 능력은 안정됐고 몸도 괜찮대. 능력은 이틀 뒤에 결과 나온다고 하더라고.”

“정말? 하아……. 무엇보다 몸이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이대로 능력도 유지됐으면 좋겠는데…….”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던 테디가 화들짝 놀라 변명하듯 덧붙였다.

“아! 물론 A급이라도 진은 대단해. 저번에 진에게 가이딩 받은 국가안보국 에스퍼가 감탄하더라고. 능력이 엄청나다고. 그러니까 방금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으음. 그냥 기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그런…….”

“걱정 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 휴, 오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쨌든, 등급이 내려가도 넌 여전할 거야. 진.”

“고마워.”

테디는 다음 일정을 위해 휴대폰을 확인하고서는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가 볼까?”

“그래.”

진효섭은 미리 전해 들은 바가 있었기에 더 묻지 않고 테디를 따라나섰다.

오늘은 중요한 자리가 있는 날이다. [SSS]의 모임. 즉, 전 세계의 길드가 모이는 날이다. 본래는 길드장만이 모이는데, 이번에는 진효섭에게도 참석 요청이 온 것을 미루어 대표 가이드도 함께 참석하라는 권고 사항이 있었던 듯했다.

아직 이유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저번에 마주했던 변형 게이트 탓이 아닐까 추측 중이다. 듣기로는 저번 그 던전 안에서 변형 게이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것과 가이드를 모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뭐, 가면 알 수 있겠지.’

진효섭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테디를 따라 모임으로 향했다.

얼마나 차를 타고 이동했을까, 진효섭은 커다란 홀에 도착했다. 동그랗게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는 한눈에 서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신해창 에스퍼.”

“아닙니다. 정확하게 도착하셨습니다.”

손목시계를 가볍게 흘끔거린 신해창이 테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있을 자격이 되지 못한 테디는 곧장 밖으로 나섰다.

신해창은 진효섭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층층이 놓인 자리 중에서도 가장 아래, 중심 쪽이었다. 모임 시각까진 아직 좀 남은 터라 자리는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미리 도착한 몇몇 이들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으나 진효섭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이러한 시선이 익숙했다. 국가안보국에 들어온 이후 일상인 일이었으므로. 신해창의 에스코트 끝에, 진효섭은 마침내 그의 자리로 보이는 곳에 앉았다.

모임은 세 시 정각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약 10분가량이 남은 상황. 그렇게 이른 시각에 도착한 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진효섭이 의아함을 느끼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서 자리를 채웠다.

그다지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진효섭은 의아함을 느꼈다. 가이드에게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구별할 능력이 없지만, 자리한 이들이 하나같이 에스퍼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만 나타나기도 했고, 모두 에스퍼라는 느낌도 강했기 때문이다.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홀을 둘러보다 말고 진효섭이 입을 열었다.

“저기…… 신해창 에스퍼. 어째서인지 에스퍼들만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보신 대로입니다.”

“예? 어째서 그렇습니까? 오늘은 가이드도 모이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뇨. 오늘은 [SSS] 중에서도 절반 정도의 길드장만 모이는 날입니다.”

“그럼 어째서 제게 참석 요청이 온 겁니까?”

신해창은 말이 없었다. 대답을 고르는 건지 아니면 그 역시 알지 못하는 건지. 그의 침묵에 진효섭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리를 잘못 찾아온 걸까. 혹시 착각한 게 아닐까. 복잡한 머리만큼이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정각이 되기까지 1분을 남기고, 마지막 인물이 나타났다. 누구보다 큰 존재감을 뽐내며 들어온 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곳은 진효섭 쪽이었다. 곳곳이 비었는데도 그는 정확히 진효섭의 옆자리로 다가왔다.

“…….”

안단테는 진효섭을 빤히 바라보다 별말 없이 그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곳이 그의 자리인 것 같았다. 그렇게 진효섭은 양옆에 안단테와 신해창을 두게 됐다. 많은 에스퍼 중 홀로 가이드라는 점부터 지금의 상황까지. 대체 무슨 일인지 머리가 복잡했다.

한편, 정각이 됨과 동시에 [SSS]의 모임이 진행됐다. 홀에는 에스퍼가 3분의 1 정도 채워진 채였다. 이윽고 탁자 중앙에 던전 모양의 홀로그램이 띄워지자 공중파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에스퍼가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은…… 미국 대표 길드의 길드장?’

에스퍼와 연관이 크지 않은 진효섭이지만, 저 에스퍼만큼은 알고 있었다. LEOM 길드가 사라지고, 다음 미국 대표 길드를 차지한 곳의 길드장. 전에 SS급 던전을 클리어한 후, 안단테가 그들과 깊은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다 알 거 아는 사이니, 본론만 말할게.”

미국 길드장은 서론 같은 건 불필요하다는 듯 바로 홀로그램을 가리켰다. 모임을 이끈다기보다 친구에게 설명하듯 가벼운 말투였다.

“다들 상황 전달받았지? 그대로야.”

그가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칼이 꽂힌 돌이 보였다. 주위가 던전 내부인 것을 봐서 던전 속에 있는 물건인 듯했다.

“이것만 부수면 돼. 새겨진 아라비아 숫자로 확인했을 때 돌 석상은 총 열 개. 던전에 하나씩 있고, 이걸 전부 없애면 변형 게이트는 완벽하게 사라져.”

미국 대표 길드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이거 고대 게이트인 것 같은데. 대체 어쩌다가 생긴 건진 모르겠지만……. 뭐, 이유야 어쨌든 돌 석상만 없애면 그냥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건 확실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에스퍼들을 긴장시키던 게이트를 완벽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치고는 간단했다.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안도할 일이었다.

미국 대표는 안단테를 흘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걸 하려면 안단테, 네 힘이 무엇보다 필요해. 저번에도 봤겠지만 그 돌이 있는 던전에서 에스퍼들은 이상한 디버프에 걸리거든.”

당시 던전에 함께 들어갔던 길드장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할 것 없는 S급 던전이나 변형 게이트라는 이유로 그들은 충분한 준비를 하고 들어갔었다. 그럼에도 많은 에스퍼가 고전했다. 온전히 디버프 때문이었다. 던전 자체에 걸린 특수 디버프는 에스퍼들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능력치의 절반 정도를 깎았다.

“거기서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디버프 능력도 갖추고 있는 안단테 너뿐이야. 다만 S급 던전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뭐, 너한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니까.”

안단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자리의 모두는 이미 그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간단하지는 않을 거야. 그 던전에는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넌 단시간에 힘을 폭발적으로 끌어내야 하고, 그걸 위해 가이딩이 충만해야 하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안단테는 한숨을 쉬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됐어.”

“됐긴 뭐가 됐다는 거야. 본래 던전에 들어가기 전 가이딩은 필수야. 이제껏 네 능력이 좋아서 없어도 됐던 것뿐이지.”

“됐다고. 없어도 충분히 잘해 왔어.”

더 할 말 없다는 듯 안단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진효섭이나 신해창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변형 게이트는 우리 노아피가 알아서 해. 자신 없는 놈들은 끼어들 생각하지 말고 지켜보기나 하라고.”

상대를 깔보는 뉘앙스였으나 다른 길드장들의 표정은 도리어 좋아졌다.

안단테가 주도할 변형 게이트. 이미 노아피 손에 떨어진 던전이다.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게 안단테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 던전은 디버프 때문에 클리어에 도전해 봤자 떨어질 이득보다 손해가 클 터. 다른 길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떼는 게 모양새도 갖추고 더 다행인 일이었다.

“안단테. 기다려.”

떠나려는 안단테를 미국 대표가 끈질기게 붙잡았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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