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81화
이어 테디도 올라타자 프로펠러가 돌며 헬기가 움직였다. 시야가 더 넓어지니 게이트가 더 잘 보이게 됐다. 블랙홀 같기만 하던 게이트 안에서 초록색 눈 수백 개가 번뜩였다. 스산한 광경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으려니 몸이 으스스하게 떨렸다.
순간, 초록빛의 눈이 기이한 광채를 띠고 빛났다. 그것은 가이드를 제일 먼저 노렸던 검은 손처럼 진효섭을 주시했다. 그리고…… 어쩐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찰나, 초록 눈의 괴물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게이트를 나올 수 있는 게 사체뿐이 아님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진, 조심해!”
테디 역시 당황했는지 진효섭을 지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한 손은 진효섭의 앞으로, 한 손은 닫힌 문 쪽을 향했다.
푸른 방어막이 헬기 자체를 보호하며 일렁였으나 괴물은 상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쉬이익-! 쉭! 대여섯 마리의 괴물들이 끈적한 실을 뿜어내며 입구 보호막에 달라붙자 헬기가 자연스레 기우뚱거렸다.
입술을 깨문 테디가 상황을 해결하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였다.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괴물들이 일제히 반으로 갈리며 기울어졌던 헬기가 바로 됐다. 투두둑- 툭- 초록색의 징그러운 눈이 두 갈래로 갈라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사이로 부드러운 금갈색 머리칼이 허공에 흩날렸다.
“아, 안단테 에스퍼?”
테디가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노크하듯이 안단테가 방어벽을 두드리자 테디는 화들짝 놀라며 능력을 거둬들였다. 푸른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 안단테가 망설임 없이 문을 뜯어내듯 열었다.
탁, 그가 헬기 안에 발을 들이자 대여섯 마리의 괴물이 보호막에 매달렸을 때보다 더 심하게 기울었다. 자연스레 진효섭의 몸도 기우뚱, 문을 향해 쏠렸다.
“아……!”
“괜찮아?”
가볍게 진효섭을 받아 든 안단테가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물었다. 순식간에 해결된 상황에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테디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테디의 국가안보국 단복을 쓱 훑은 그가 물었다.
“신해창은 어딨어.”
“그게, 오늘 바쁘신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못-”
“그런데 효섭이를 여기에 보냈다고? 그 새끼, 지킬 생각이나 있는 거야?”
“예? 아뇨, 이,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테디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할 말은 많지만, 안단테를 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안단테가 짜증스럽게 표정을 구겼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마주했을 때와 똑같은 표정에 진효섭은 급한 상황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해 버렸다.
‘……날 마주하는 게 불편한 게 아니었구나.’
그는 그저 위험한 자리에 신해창을 대동하지 않고 나타난 게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 불만이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걸 알기에 괜스레 손끝이 안으로 굽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손을 꼼지락거리자, 진효섭을 끌어안은 안단테의 팔이 살짝 굳었다. 이내 그는 진효섭에게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미안.”
단단히 부여잡아 주던 팔이 떨어져 나갔으나 그곳에 남은 열기만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보다 상황이 별로 안 좋아. 던전 내부에서 시간이…… 아니, 일단 설명보다 안전한 자리로 옮기는 게 먼저겠다.”
안단테는 뒤를 흘끔 돌아봤다. 쩍 벌어진 게이트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초록 눈의 괴물들이 계속 하나둘 기어 나왔다. 물론 나오는 족족 체르니와 플랫의 손에 죽어 나갔지만.
만약 사람이 살지 않는 아르헨티나가 아닌, 다른 나라의 도심에 생겼다면 어땠을지를 떠올리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국까지 갈 거지? 내가 데려다줄게.”
당혹스러운 되물음은 테디에게서 나왔다.
“예? 안단테 에스퍼께서 이 자리에서 빠지시겠다고요?”
“그런데.”
“그, 그렇지만…….”
테디가 당혹스러워하며 게이트를 흘끔거렸다. 노아피 길드원은 아직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던전에 참여했던 에스퍼들도 함께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안단테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다소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테디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진효섭도 같은 의견이었기에 테디가 우물쭈물하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결국 진효섭이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다.
“안단테 에스퍼, 저쪽을 도와야 합니다.”
“플랫과 체르니가 있잖아. 알아서 할 거야.”
“그래도 안단테 에스퍼가 있다면 다치는 사람도 줄어들 것 아닙니까. 상황이 심각해 보입니다.”
동의한다는 듯 테디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단테가 꼭 필요한 상황. 하지만 안단테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위험하다 해도 남아 있는 이 모두 자기 한 몸 건사할 정도는 돼. 하지만 너는 위험하고.”
“저는 테디가 있습니다. 이대로 한국으로 가면 아무런 문제도-”
“저놈을 어떻게 믿어. 고작해야 A급 에스퍼잖아. 여차할 때 너를 도와줄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해.”
“그렇지 않습니다.”
“안 돼. 이것만큼은 내가 제대로 확인해야겠어.”
헬기 안에 억지로 자리 잡은 안단테는 단호했다.
“난 너를 다시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없어. 절대로.”
진효섭은 하마터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일 뻔했다. 그 나직한 말에 담긴 진심이 그대로 전해진 탓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테디가 큼큼 목을 가다듬는 걸 보니 괜스레 민망해졌다.
절대 번복하지 않을 것 같은 안단테와 분주한 게이트. 진효섭은 그 둘을 번갈아 봤다. 밖은 어떻게 봐도 긴박했다. 안단테가 여기 있으면 플랫과 체르니를 비롯한 에스퍼들이 한층 더 위험한 싸움을 할 게 뻔했다.
반면, 진효섭은 안단테가 유난하게 굴 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헬기를 운전하는 에스퍼는 S급, 테디는 보호 계열의 능력을 지닌 A급이다. 이대로 헬기를 타고 이동 게이트를 통해 한국으로 가면, 다른 가이드들처럼 안전하게 자리를 피할 수 있을 터.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안단테가 해야 할 일은 저곳에서 에스퍼들을 돕는 것이다. 설왕설래하기엔 그 시간조차 아까우니 진효섭은 한발 물러났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가는 게이트 입구까지만 데려다주십시오.”
“안 돼. 네가 길드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해야겠어.”
하지만 조금의 양보도 없다는 듯 안단테는 기각하며 시선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결국 진효섭은 고민하다 말고 안단테의 손등 위에 제 손을 얹으며 그를 불렀다.
“……형.”
순간 안단테가 숨을 들이 삼켰다. 살짝 눈이 흔들린 것도 같았다. 진효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더 빨리 상황을 수습하는 게 먼저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상황이 변해서 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형의 힘이 필요합니다.”
“……뭔 상관이야. 그딴 거 나랑은 관계없어.”
“관계가 없다고요.”
진효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관계가 없다니. 미성년인 테디보다도 못한 생각이었다. 급박한 상황에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것도 그렇고, 무책임한 말도 그렇고. 이유는 이해하지만, 그저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안단테에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는 하나, 이건 그를 향한 제 감정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형. 원래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었습니까?”
“뭐라고?”
“막 에스퍼가 된 테디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스퍼는 영웅이라고,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약한 자를, 세상을 지켜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이드인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형은…….”
“효섭아.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내 생각을 바꾸진 않아. 세상의 안위 따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진효섭이 표정을 찡그리며 차갑게 말을 받으려는 순간이었다.
“내게는 네가 더 중요해.”
“……예?”
중얼거리는 안단테의 말을 듣지 못해 진효섭이 되묻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입을 벌렸다.
“네가 죽었다고 생각한 때. 나는 네가 죽었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세상에 환멸을 느꼈어. 진짜 그렇게 된다면, 나는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테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투덜거리는 듯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그 말이 귀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세상이 걱정된다면 네가 바라는 그 세상을 위해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어.”
이것은 고백이었다.
“국가안보국이 널 지킬 수 있다면 거기도 상관없어. 어디든, 안전하게 살아만 있어. 그럼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듣는 것만으로 얼굴이 붉어질 것 같은 고백.
“난 너만 살아 있으면 돼.”
같은 장소에 있어도 멀게만 느껴졌던 그가, 지금은 왠지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리 늦더라도 멀게 돌아왔던 길을 돌이키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여기는 플랫과 체르니만으로 충분해. 이럴 시간에 빨리 한국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나아가는 헬기 안에는 세 명의 에스퍼가 있었지만, 진효섭에게는 맞은편에 앉은 안단테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제 마음을 가감 없이 보이는 그의 행동에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