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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80)화 (18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79화

“그때의 안단테가 지금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강인해서도 맞지만…… 뭣보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노의 시체라도 구하겠다는 목표.”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두 번이나 위험했습니다. 이번에 또, 진효섭 가이드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세 번째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

“그러니 흔들리지 마십시오. 지금처럼 부와 명예를 누린 채, 위험 없이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진효섭 본인을 위해서도. 안단테를 위해서도. 이 거리가 두 사람에게 딱 알맞았다. 그 사실에 진효섭은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 안의 어두운 그늘이 진효섭에게로 옮겨 간 듯했다.

* * *

[지원 요청]

씻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휴대폰에 경보가 울렸다.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테디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어, 진. 일어났어?

“응. 준비하고 이제 길드로 가려고 했는데, 지원 요청은 무슨 말이야?”

-지금 국가안보국 길드 가이드를 급하게 모으게 돼서 보낸 거야. 하지만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거 말해 주려고 연락했어.

“무슨 일인데 급하게 가이드를 모아?”

-어제 아르헨티나에 꽤 큰 S급 변형 게이트가 열린 건 알지? 그게 생각보다 더 까다로워서 어젯밤에 에스퍼가 대거 투입됐거든. 그래서 가이드가 많이 필요하게 됐어.

“그럼 내가 도우러 갈게.”

-뭐? 아니야. 진은 당분간 푹 쉬라는 단장님의 지시가 있었잖아. 저번에는 모임에서 쓰러지기까지 했고……. 앞으로 가이딩 문제에서는 제외니까 신경 쓰지 마.

테디는 걱정된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계속 몸이 안 좋았으니 걱정이 될 만했다. 하지만 진효섭은 이미 단복을 꺼내 들었다.

“벌써 2주 전이잖아. 이제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경보를 울릴 정도면 어지간히 급한 것 같은데.”

-하지만 단장님한테 허락부터 받아야 할 텐데…….

“내가 말해 둘게. 장소 어디야?”

-응? 으음……. 알았어. 그럼 따로 국가안보국 에스퍼 한 명을 보낼 테니까 차 타고 와.

“응. 알았어.”

-것보다, 꼭 단장님한테 얘기해야 한다? 알았지?

“알았어.”

진효섭은 재차 다짐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그날 쓰러지고, 다시 집에 도착한 날. 신해창에게서는 딱 한 통의 문자만이 도착했다.

‘[몸이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당분간 푹 쉬십시오.]’

진효섭이 정신을 잃은 사이, 안단테와 여러 이야기가 오간 것 같았다. 어떻게 상황이 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큰일로 번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그 일은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노아피도, 국가안보국도, 처음의 그 미묘한 기류만을 남기고 잠잠했다.

이후, 진효섭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셀레나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을 푹 자곤 했다. 다행히 몸은 빠르게 괜찮아졌다. 사실은 쉬기 전부터도 충분히 괜찮았다.

진효섭은 단복 상의를 꿰입으려다 말고 옷장 안에 달린 작은 거울을 바라봤다. 목덜미 부근에 있던 치아 모양의 멍이 어느새 사라졌다. 멍이 빠지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자국이었는데, 안단테의 집을 다녀오니 말끔히 없어졌다. 동시에 신기할 정도로 몸이 안정됐다.

“그것 때문에 몸이 이상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런 것 같았다. 한창 불안정하던 능력도 전처럼 차분해졌고, 몸 상태도 좋아졌다. 마치 안단테에게 가이딩을 하기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역가이딩으로 무리를 해서 몸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덜미의 자국과 연관된 걸까. 진효섭은 멀끔해진 제 목을 괜스레 쓸어 봤다. 전에 느꼈던 열감은 조금도 없었다.

띠링. 휴대폰이 작게 울렸다. 들여다보니 에스퍼가 벌써 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 진효섭은 곧 나가겠다는 답장을 보낸 뒤, 잽싸게 단복을 마저 입었다.

밖으로 나가자 국가안보국 길드 건물에서 몇 번인가 마주친 적 있는 에스퍼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 게이트를 통해 아르헨티나를 건너, 거기서도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긴 시간 끝에 도착한 곳은 아르헨티나의 황폐한 시내 중 한 곳이었다. 헬기에서 내려다봐서 그런지 주위가 훤했다.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인 곳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건물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낮은 건물 바로 위, 허공에 무시무시한 변형 게이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변형 게이트가 열린 건물 옥상에 몰려 있었다. 가이드로 추정되는 이들은 에스퍼를 대동하고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자신을 채 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았다.

잠시 후, 헬기가 천천히 건물 옥상에 안착했다. 진효섭이 내리자 테디가 그를 반겼다.

“진! 정말 와 줬네. 단장님한테는 말했어? 뭐래?”

“문자는 보내 놨어. 답장은 없던데, 아마 괜찮다고 말할 거야.”

“어……? 그, 그래?”

테디의 표정이 영 불안해졌다. 아까도 신해창에게 꼭 연락해야 한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신해창에게 신신당부를 받은 것 같았다.

“걱정 마. 내 몸 상태는 정말 괜찮으니까.”

진효섭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주위를 훑어봤다.

“게다가 상황이 위험하잖아. 내가 도움이 될 거야.”

“으응. 그건 그래. 진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좀 심각하거든.”

옥상에는 다친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능력 있어 보이는 에스퍼들이 하나같이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 중이었는데, 그 숫자가 꽤 많았다.

“원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치는 거야?”

“아니. 원래는 이 정도로 많지 않아. 다만 판단한 것보다 더 위험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방금 노아피에게 지원 요청을 했는데…… 아.”

테디가 순간 당황하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러고 보니 진, 너 괜찮아? 안단테 에스퍼가 올 수도 있는데.”

“……상관없어.”

진효섭이 덤덤하게 시선을 밑으로 깔았다. 괜찮지 않을 게 없다는 듯이. 테디는 그런 진효섭을 잠깐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날 쓰러진 널 데려간 이후로 규율을 어긴 것 때문에 문제가 컸다고 하더라. 모임에도 완전 발을 끊었다 소문 돌고. 네가 저번에 갔던 모임에도 얼굴을 안 비쳤다고 했지?”

“……응.”

그랬다. 안단테는 그날 이후, 완전히 발걸음을 끊었다. 진효섭은 쉬는 기간에도 중요한 모임은 참석했었는데, 전과 달리 안단테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규모 모임이든 뭐든 참석해서 빤히 바라보며 괴롭혔던 그가 말이다.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그날 규율을 깨고 받은 경고가 꽤 심했나? 아니면 이제 안 된다는 걸 알고 포기?”

“글쎄.”

진효섭은 혹시라도 다른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원래…… 그게 맞는 거니까.”

앞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안단테와 진효섭의 어긋남이 오해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너무 먼 길을 왔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코다의 말대로 이대로가 가장 나을 것이다. 그러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냥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각자 살아가야 했다.

“그보다, 누구를 가이딩해야 하는 거야? 급하게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아, 그거. 지금 당장은 괜찮아. 지금 나와 있는 에스퍼들은 다 가이딩 받는 중이고 심각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옮겼거든. 다만, 아직 안쪽에 에스퍼가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맡아 줄 가이드가 부족해서.”

“그럼 내가 그 사람들의 가이딩을 도와주면 된다는 거지?”

“응. 맞아. 그렇게 해 주면 돼.”

테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효섭은 마주 고개를 끄덕인 채 다시 게이트로 시선을 돌렸다.

변형 게이트. 언젠가 봤던 것처럼 안에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 모양이 또렷하지 않고 유동적인 것이, 변형 게이트임은 확실했다.

“테디, 안쪽 상황은 어때?”

“나온 에스퍼들 얘기로는 괴물들 하나하나가 강하지는 않은데, 던전 내부에 이상한 특징이…….”

테디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가려던 차였다. 주위가 다소 시끄러워졌다.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옥상 문이 열리고 안단테가 얼굴을 비췄다. 테디에게 그가 온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는데도 쿵,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성큼성큼 걷는 안단테의 뒤를 플랫과 체르니가 따랐다. 세 사람이 도착하니 노아피 특유의 나른함이 감돌았다. 함께 자리한 에스퍼나 가이드들이 하나둘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들의 능력만큼은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곧장 게이트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가던 안단테의 뒤에서, 체르니가 진효섭을 발견했다.

“어, 형이네.”

순간 안단테의 걸음이 멈칫했다. 이윽고 세 사람의 시선이 한꺼번에 진효섭에게로 향했다.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 버렸다. 그날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였으니, 불가항력이었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미간이 깊게 팬 것이 무언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마치 진효섭을 마주한 게 탐탁지 않다는 반응 같기도 했다. 얼마나 싸늘한지 진효섭이 괜스레 민망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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