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179)화 (17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78화

“안단테의 손에서, 그렇게 죽었습니다. 아노는.”

“그, 그럴 리가……. 하지만 아노 가이드는 SS급 던전의 괴물에게 죽은 것 아니었습니까? 분명 모두가,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현 노아피 길드원도 모두가 그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는 사람은 안단테와 저, 그리고 신디가 전부입니다.”

유독 안단테를 날카롭게 바라보던 신디가 떠올랐다. 설마하니 그 이유가 이것이었던 걸까. 진효섭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10년 전……. 그러니까 LEOM 길드였던 우리가 SS급 던전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진효섭은 이유 모를 긴장으로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큼은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코다는 말을 끊지 않았다. 이야기는 천천히, 그리고 길게 이어졌다.

“마지막 방에서는 80년 전에 가장 강했다는 에스퍼가 괴물에 잡아먹힌 채로 저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했고, 우리는 긴 던전을 돌파하느라 힘이 떨어졌던 터라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SS급 던전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모든 괴물이 에스퍼들 수의 몇 배로 복제되어 나타난다는 특성이었다. 보스를 만나기도 전에 진이 빠질 법했다.

“가장 선두에서 날뛰었던 체르니, 플랫은 이미 정신을 잃었었고…… 쌍둥이는 밖에서 다른 길드원들을 케어하는 중이라 함께 있지 않았으며, 신디는 힘이 고갈된 터라 아노를 지키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힘을 지속하는 데 특화된 제가 단장님과 함께 싸웠었는데…….”

코다가 멍하니 텅 빈 손바닥을 바라봤다.

“전투를 이어 가던 도중, 괴물이 돌연 아노에게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반응하지 못했었고, 신디도 막지 못했었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건지 표정이 굳어 갔다. 손바닥에 아직도 그때의 피가 묻어 있다는 듯 코다는 손끝을 잘게 떨었다. 텅 빈 눈동자가 생명의 빛을 잃은 사람과도 같았다.

“물론 단장님이 막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급했던 상황이니만큼 몸으로 막았었고, 아노가 살아남는 대신 단장님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

분명 덤덤한 말투인데 감정이 잔뜩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피를 흘리며 절규하는 안단테가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날, SS급 던전을 뉴스에서 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그 괴물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그 괴물은 사람의 몸을 뒤집어쓰고, 제 몸처럼 활용하는 놈입니다. 그렇기에 아노에게 뛰어들었던 겁니다.”

“……아노 가이드의 몸을 바란 겁니까?”

코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놈이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아노가 아니라…… 단장님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에스퍼. 그것은 단연 안단테였고, 괴물이 가장 탐낼 먹잇감이었다. 코다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놈은 인간의 몸을 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상처에 놈의 피를 주입하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그때, 괴물은 처음으로 단장님의 몸에 상처를 입히면서 피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고, 일은 더 복잡하게 돌아갔습니다.”

코다는 말했다. 그 이후로 안단테에게 힘든 전투가 시작됐다고.

사실상 혼자였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괴물이 상대의 몸에 피를 주입해서 몸을 빼앗는다고 해도 안단테가 쉽사리 당할 만큼 어수룩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안단테가 지켜야 할 인물이 많다는 거였다. 특히, 던전에 함께 들어온 아노가 가장 문제였다.

괴물은 사람의 몸을 빼앗은 만큼 지능이 높았고, 안단테 공략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틈틈이 아노를 공격했다. 안단테는 아노를 지키면서도 제 몸을 뺏을 준비를 끝낸 괴물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내부론 지키기 위해 신경 쓰고, 밖으로는 괴물과 대치하는 상황. 그러나, 안단테는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는 사람이다. 아슬아슬하던 싸움은 안단테를 향해 승기를 들어 올리는 듯했다. 만약 괴물이 아노의 몸을 빼앗지 않았다면, 분명 안단테는 SS급 던전에서 살아남아 모든 부와 명예를 양손에 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괴물은 단장님의 몸을 뺏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는지, 아노가 안단테를 돕기 위해 움직이려던 틈을 타 아노의 몸을 빼앗았습니다.”

“…….”

“저는 아노의 모습을 한 괴물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아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손을 뻗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연인이 혹시 다치기라도 할까 봐…….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코다의 표정에서는 짙은 괴로움이 넘실거렸다.

“이후에는 괴물의 일방적인 전투만이 이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으니까요.”

아마 아노가 다칠 것을 걱정했던 건, 코다 혼자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진효섭은 입을 꾹 다문 채 그의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하지만 아노는 달랐습니다.”

코다의 얼굴에 짙은 그리움과 함께 아노에 대한 신뢰감이 떠올랐다.

괴물과 상대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호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에스퍼의 위험을 덜어 주기 위해 함께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 던전 안의 긴장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 아픔을 덜어 주는 가이드. 코다는 말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용감했다고.

“모든 에스퍼에게 전장의 동료로서 인정받고 칭송받았죠. 그런 가이드는…… 앞으로 둘 없을 것입니다.”

코다는 감히 단정 지었다.

“아노는 괴물에게 먹힌 채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약점을 간파해 말해 주었습니다. 먹힌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거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사라진다면 분명 다른 몸을 바랄 것이라고. 그러니 그때 괴물을 퇴치해야 한다고. 단장님은 망설임 없이 그 말대로 행했습니다.”

“……뭘, 했다는 겁니까?”

“아노에게서 가이딩을 빼앗았습니다.”

역가이딩. 그것도 제정신으로 힘을 한계까지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 크더라도,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그렇기에 안단테는 가감 없이 행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역가이딩으로 인해 상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껴 본 적 없었으니까.

“안단테는 망설임 없이 아노를 실로 속박하고 그대로 역가이딩을 했습니다. 그리고…….”

입안이 버석하게 말랐다. 진효섭은 아직 듣지 않았는데도 그 뒷이야기를 예상해 버렸다.

“아노는 가슴이 뚫려 그대로 죽었습니다.”

이거였구나. 이게 바로 처음 안단테가 진효섭을 거칠게 밀어내던 이유였다.

“아노가 말했던 대로 괴물을 해치울 순간은 생겨났지만, 단장님은 움직이지 못했고. 우리는…… 결국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던전을 헤매다가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죠.”

아노를 죽인 게 괴물이 아니라 안단테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코다는 분노나 배신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아마 그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알고, 안단테가 아노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진효섭은 땀이 나도록 양손을 말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아노 가이드는 정말 역가이딩 때문에 죽은 겁니까?”

“알아본 바로는 역가이딩 자체가 그를 죽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아노의 얼굴은 푸르게 변했었고, 뚫렸던 가슴에서도 독 기운을 풍겼으니까요.”

“그렇다면-”

“하지만 그 역가이딩이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탓에 괴물의 독이 목숨을 앗아 갔다는 건 확실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안단테가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단테의 행동이 아노를 죽였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는 안단테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이딩을 받는 걸 기피하고 자신을 한계까지 눌러 참는 거였어…….’

생각한 것보다 더 어두운 과거였다.

“그랬…… 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노를, 그의 마지막을 위해 10년간 던전을 찾아 헤맨 안단테. 새삼 그가 대단하게 보였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분명 자신이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에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역시 그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엉망인 몸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면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문득 진효섭은 가이딩 실험을 빌미로라도 안단테가 가이드와 깊은 관계를 맺었을 일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제 오해가 새삼 바보같이 느껴졌다.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형이 동생분을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디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가끔 치미는 감정을 참지 못하는 듯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안단테가 동생을 아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진효섭조차도 그 단편의 장면을 보고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진효섭 가이드의 몸 상태로 안단테는 확신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역가이딩은 몸에 부담이 됩니다. 한두 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계속하다간 언제 싸늘한 시체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등급이 내려간다. 그것은 결국 몸에 무리를 준다는 뜻이다. 노화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리하는 게 누적되고 커지다 보면 몸이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 안타깝게도 예전과 너무 비슷했다.

길드에 하나뿐이던 S급 가이드, 아노. 그는 유일하게 안단테와 상성이 잘 맞는 가이드였지만 그의 역가이딩으로 죽었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S급 가이드, 진효섭. 그 역시 안단테와 상성이 놀랄 만큼 잘 맞지만 역가이딩을 이겨 내지 못했다. S급은 A급으로 강등될 위기고, 언제 아노처럼 죽을지 모른다.

코다의 시선은 진효섭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으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듯 씁쓸해 보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