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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78)화 (17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77화

“이곳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걱정할 일 또한 없었습니다.”

“예? 아, 예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안단테는 진효섭의 갖은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은 마냥 그가 너무하다 생각됐고, A급이 되니 집착과 함께 자신에게도 관심이 식었나 싶어 눈물까지 나왔다.

그러나 뺨을 훔치며 눈물을 닦아 주는 안단테는 분명히 괴로운 표정이었다. 아래위로 불안하게 움직이는 목울대라든가 넘실거리는 황금빛의 눈은 욕구로 가득했다. 당장에라도 그대로 집어삼켜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안단테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던 말이 다시금 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안 돼. 네가 위험하잖아.’

이성이 돌아오고서야 확신했다. 안단테는 등급 하락으로 인해 관심이 식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역가이딩 탓에 A급으로 내려간 진효섭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물러난 것이다. 신해창의 말은 거짓이었거나 오판이었다.

‘집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디트리와 같은 집착이었다면 진효섭의 몸 상태가 어떻게 되든 상관치 않았을 테니까.

진효섭은 다시금 손끝을 문질렀다.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본인의 욕구보다는 진효섭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안단테. 진효섭이 위험에 처하자 손에 넣기를 포기한 안단테. 대화를 시도한 안단테. 네가 죽은 줄 알았다고, 걱정이 가득한 눈을 하던 안단테. 그 모든 것이 심장을 두드려 대었다.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코다가 입을 열었다.

“진효섭 가이드. 집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그러곤 진효섭에게 외투를 건넸다. 국가안보국의 문양이 박힌 단복이었다. 그것을 엉거주춤 받아 든 진효섭은 코다의 재촉하는 듯한 시선에 옷을 입었다.

“이리로.”

코다는 곧장 진효섭을 집 밖으로 인도했다. 오랜만에 들른 안단테의 집을 둘러보거나, 기다렸다가 그를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그렇게, 진효섭은 신속히 밖으로 나섰다.

바로 앞에 주차된 차에 오르자 코다는 말없이 출발했다. 행선지는 정확히, 티나 가족과 함께 사는 곳이었다.

“도착했습니다.”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코다가 진효섭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진효섭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코다는 침묵을 유지한 채 진효섭을 빤히 바라봤다. 다행히 시선은 말해 보라는 듯해, 진효섭은 잠깐의 망설임 후 겨우 질문했다.

“아노, 가이드가 정말 형의 친동생입니까?”

“모르고 계셨나요.”

오히려 코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

“…….”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코다의 말수가 없다는 사실에 답답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진효섭은 다시금 손을 만지작거리다 궁금했던 또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가이딩은, 그러니까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은 왜…… 안 받으신 겁니까?”

자신이 몰랐던 진실을 알기 위해 진효섭은 드디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분명 제가 있었을 때는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지 않았습니까. 서연 가이드에게도 받았었고, 또…… 제가 가이딩하기 전에도 몸이 괜찮으시던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코다에게서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코다는 쉽사리 대답을 잇지 않았다. 그저 운전석에서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을 뿐이다. 진효섭은 입안이 바싹 마르는 듯한 초조함을 오롯이 느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침내, 코다가 입을 열었다.

“단장님은 본래 가이딩 받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SS급 던전에 다녀오고 나서 몸이 괜찮아 보이셨습니다. 분명 여러 가이드에게 받은 것 같으셔서…….”

“그건 가이딩 증폭기의 실험 때문이었습니다.”

“가이딩, 증폭기요……?”

코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SS급 던전에서 발견한 가이딩 증폭기. 그것과 얽힌 소유권 문제 탓에 바로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 실험을 위해 여러 가이드를 만나 가이딩을 했었던 것 등등. 모든 사실을 알게 되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들었다.

‘그럼…… 실험 탓에, 가이딩 증폭기로 인해 몸에 가이딩이 충만했던 거라고……?’

손이 잘게 떨렸다. 차 안에 함께 있으니 그런 진효섭의 반응을 코다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으나 그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진효섭은 혼란스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재차 질문했다.

“그, 그렇다면 왜 제게 말해 주지 않았던 겁니까?”

“당시에는 소문이 도는 걸 자중하던 때였습니다. 아직 그 능력의 정도가 확실하지도 않았으니, 아마 나중에 얘기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중요한 걸, 나중에 얘기한다니, 오, 오해하잖습니까……!”

코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 제게 확실하게 얘기만 해 주셨다면. 그랬다면, 저는…….”

진효섭이 흔들리는 눈으로 떨리는 손을 꾹 마주 잡았다. 가이딩 실험이라니. 오해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이딩이 가득 찼었던 게 실험 탓이었다면, 결국 진효섭이 안단테에게 실망했던 부분은 모두 착각이라는 뜻이다. 안단테는 그런 착각을 키우도록 상황을 만들었지만, 그것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진효섭 또한 숨기는 사실이 있었으니까.

사실 터놓고 물을 수도 있었다. 아니, 하다못해 대화만이라도 했더라면. 그가 하려던 해명을 들었다면. 가정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진효섭이 나직하게 숨을 뱉으며 뺨을 쓸어내렸다.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

“흔들리시나요.”

그 순간 들려온 나직한 코다의 질문에 진효섭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코다는 어느새 다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하고 있지도 않은데 앞만 주시하는 그의 옆모습이 얼핏 쓸쓸해 보였다.

“그렇다면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

진효섭의 눈이 커졌다. 언제나 안단테의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무슨 명령이든 고개를 끄덕이던 코다였다. 노아피 중에서 가장 신뢰가 높고 충성도도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코다가 뱉은 말은 전혀 안단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코다는 덤덤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안단테와의 관계는 진효섭 가이드에게 좋지 않습니다.”

“어, 째서 그런 말을…….”

역가이딩으로 인해 진효섭에게는 안단테가 위험하나, 안단테에게는 진효섭이 필요했다. 같은 길드인 코다라면 진효섭을 어떻게든 꼬드겨서 길드에 들여야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런데 코다는 그러지 않았다.

“그를 가이딩한다는 건, 진효섭 가이드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하지만 단장님에게는 가이딩 증폭기가 있으니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습니다.”

타당한 얘기였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까지 진효섭을 생각해 주는 걸까. 본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데.

“하지만…… 목숨에 문제가 없다고 하기에는, 안단테 에스퍼가 이번에 폭주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진효섭 가이드가 죽었다고 착각해서입니다.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테죠. 그러니 이 정도의 거리가 딱 적당합니다.”

“…….”

“저는 진효섭 가이드가 살아 계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단장님이 가이드를 또 죽인다면 더는 일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또? 진효섭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꿋꿋하다 싶을 정도로 앞만을 주시하던 코다가 진효섭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밝은 아침이었는데 차 안에만 그늘이 진 듯했다. 코다의 우울함이 와닿았다. 짙은 슬픔과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 후회. 모든 것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그는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기억하시나요. 안단테가 깊은 가이딩을 극도로 꺼렸던 걸.”

“예. 기억합니다.”

진효섭은 주춤대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역가이딩으로 다른 가이드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진효섭은 안단테에게 죽은 가이드가 있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안단테는 흥분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했다. 역가이딩으로 가이드와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나 흥분했을 리는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죽었던 건지, 아니면 해를 끼친 데서 그친 건지는 몰라서 확신하지 못했었다.

“사실, 이건 단장님에게 직접 들으셔야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아 말하겠습니다. 어쩌면 평생 듣지 못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코다는 결심한 듯 더 이상 말을 끌지 않고 진효섭과 눈을 마주했다.

“진효섭 가이드는 안단테가 해쳤다는 그 가이드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그것까지는…….”

“아노입니다.”

“예?”

“안단테가 역가이딩으로 죽음까지 몰아넣은 가이드는 아노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친동생 아노. 안단테가 처음으로 죽음에 밀어 넣은 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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