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76화
“일어나 봐. 약 가져왔어.”
안단테가 새로운 약을 진효섭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약을 삼키기는커녕 고개를 저어 댔다.
“먹어야 해. 다른 약과 섞어 먹어도 되는 거라서 부작용은 없어.”
“하, 하아…….”
“효섭아.”
재차 진효섭을 부르며 안단테가 턱을 잡아 들어 올린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 버렸다. 게게 풀린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물컵을 부숴 버릴 뻔했다.
“형…….”
낮으면서도 몽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달콤한 향이 다시 한번 그의 주위에서 풍겼다. 방 전체가 이미 진효섭의 향으로 가득한데, 그는 부족하다는 듯 향을 더 진하게 뿜어냈다. 꿀 향이라 그런지 모든 것을 녹진하게 만들 것만 같은 점성이 느껴진다 착각될 정도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안단테가 진효섭을 조금 멀리했다. 표정은 이미 눈앞의 사람을 발라 먹고도 남았으나 꾹꾹 참으며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지나친 인내로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은 듯했다.
“흣, 저 너무, 몸, 몸이…….”
한편, 진효섭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안단테의 집까지 도착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 탓이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 요. 아니, 괜찮지, 않습니다.”
진효섭은 약을 먹어도 소용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안단테의 손목을 잡아 제 가슴에 손바닥이 닿게끔 가져와 꾹 눌렀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손바닥을 타고 안단테의 심장까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심장이 같은 박자를 타고 세차게 뛰었다.
“저, 너무 힘듭니다. 형, 그냥, 그냥-”
“안 돼.”
안단테는 단호하게 잘랐다. 진효섭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보면 알 수 있다. 달콤한 향과 배배 꼬는 몸, 열렬한 눈동자. 모든 것이 안단테를 원한다 말하고 있다. 정확히는, 안단테의 향과 몸을 원했다. 안단테가 그날 진효섭에게 흥분했듯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약 먹어.”
“싫, 습니다.”
진효섭은 자신이 무어라 말하는지 인지하고 있는 걸까 의아할 정도로 몽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안단테의 손을 움직여 가슴을 쓸어 복근으로 내렸다. 그리고…… 더 아래로 향하려는 순간, 안단테가 힘을 주어 막았다.
“왜, 왜…….”
손을 더 내릴 수 없자 진효섭은 울상을 지었다. 다 큰 어른이 울상을 짓고서 칭얼거리고 있으니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진효섭이어서인지 아니면 안단테가 이미 그에게 단단히 빠져 있어서인지, 더없이 유혹적이었다. 정신을 단단하게 틀어쥐지 않으면 홀려 버릴 것만 같았다.
“……안 되겠네.”
안단테는 한숨과 함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잠깐 고민하다가 진효섭의 입술을 한입에 삼켰다. 입술이 닿자 폐부 깊숙이 서로의 향이 스며드는 착각이 일었다.
그제야 진효섭은 만족스러운 듯 비음을 흘리며 안단테의 목에 팔을 감았다. 반면, 안단테는 숨이 거칠어졌다.
키스도 아니고 그저 입만 맞췄을 뿐이니 특별하게 흥분할 이유는 없다. 생각했던 대로 입술을 비집고 약을 집어넣은 뒤, 물과 함께 약을 넘긴 것만 확인하고 입술을 뗀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참을 수 있을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날뛰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고 진효섭의 옷을 찢어발겼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 역가이딩이 일어나려는 걸 참느라 미칠 지경이다.
사실 안단테는 다른 가이드에게 역가이딩 욕구가 별로 들지 않았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오해였다. 진효섭은 전혀 달랐다. 예전처럼, 아니, 더한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점막이라도 닿으면 정말 손쓸 틈 없이 정신을 잃고 힘을 빨아들일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러나 진효섭은 안단테가 딱딱하게 굳은 채 역가이딩 충동을 참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헐떡였다. 고개를 돌려 가며 안단테의 입술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혀가 입술 선을 그리며 핥아 왔을 때는 정신이 아득했다. 안단테는 피가 날 만큼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참을 수 있을까가 아니지. 참아야 해. 어떻게든.’
지금 이렇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역가이딩 없이 해결해야 했다. 못할 거였다면 이렇게 데려오지도 말아야 했다.
재차 다짐한 안단테가 천천히 입술을 열자 진효섭이 환호하듯 혀를 겹쳤다. 서로의 혀가 얽히자 쓰디쓴 약이 그 사이로 비벼졌다. 쓴맛이 들 법했는데,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더 쓰기를 바랄 정도로 달았다. 혀가 아려서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 시기의 진효섭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차원이 다른 달콤함에 필사적으로 참던 안단테가 반강제적으로 향을 흘려 버렸다.
“으응…….”
그러자 진효섭에게서 만족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겨 오는 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순간, 안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진효섭의 혀를 한 번 더 감았다.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진효섭의 힘이 아주 조금 안단테에게 흘러들어 왔다.
벌떡! 놀란 안단테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진효섭은 흐트러진 차림으로 누워 있었고, 안단테는 그를 덮치듯이 올라타 있었다. 진효섭의 붉은 입안에는 이미 약이 없었다.
역가이딩을 했었던가. 안단테는 그 조금의 가이딩을 누가 일으킨 건지도 모를 만큼 푹 빠져 있었다. 그와 오랜만에 하는 접촉은 정신을 놓을 정도로 황홀했다.
“망할.”
안단테가 짜증스럽게 입술을 닦아 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절대 이 향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다시 그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면. 제 손으로 가이드를 죽이지 않고 싶다면.
“형…….”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효섭은 애교스러운 말투로 안단테에게 손을 뻗어 왔다. 약을 먹었는데도 잠잠해질 기세는 없었다. 향은 난폭하리만큼 짙었고, 뻗은 손과 불그스름한 얼굴은 아차 하면 넘어갈 만큼 야했다.
안단테는 엉겨 붙으려는 진효섭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 침대에 고정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제껏 겪었던 어느 밤보다도 길 것 같았다.
* * *
사락- 차가운 손끝이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에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칭얼거리듯 뺨을 비비적거렸다. 손은 당황한 듯 움찔거렸지만, 금방 다시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이윽고 손길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가 진효섭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고생했어.”
뭐라 대답해 주고 싶었는데, 잠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무중력상태에 든 듯했다. 한동안 울렁거렸던 속은 말끔했고, 지끈거리던 머리는 상쾌했다. 통제가 안 되고 널뛰던 능력 또한 비로소 잠잠해졌다. 진효섭은 편안함을 느끼며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가이드.”
조금만. 조금만 더 잘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진효섭 가이드.”
조금만 더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진효섭을 끈질기게 불렀다.
“진효섭 가이드. 눈을 뜨십시오.”
누군가가 몸을 흔들어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깜빡, 눈꺼풀을 들어 올린 진효섭이 멍하니 자신을 깨운 사람을 올려다봤다.
“코, 다…… 에스퍼……?”
코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진효섭을 살짝 일으켜서 손에 쥔 물컵을 건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칠듯한 갈증이 몰려와 진효섭은 다급하다 싶을 만큼 물을 단번에 마시고는 참은 숨을 내쉬었다. 코다는 그런 진효섭에게서 묵묵히 컵을 받아 들고 다시 물을 채워 주었다.
“아, 감사…… 합니다.”
코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진효섭은 말이 없는 코다를 두고 주위를 흘끔 바라봤다.
‘여긴…….’
그렇게 멀리했으면서, 안단테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뜨고 코다를 앞에 두고 있으려니 어색하고 민망스러웠다.
“…….”
“…….”
침묵이 돌았다. 다른 에스퍼가 있었다면 이런저런 얘기를 먼저 전해 주었을 텐데, 코다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진효섭이 먼저 묻기도 그랬다. 뭔가, 머쓱하다고 해야 할까. 부끄러운 것도 같았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때 몸 상태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눈치챘다. 대체 왜 약도 들지 않고 그런 상황에까지 처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진효섭은 앞에 있는 이가 안단테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뻗었고, 유혹했다. 이성적이지 못한 상태였다는 변명은 부질없다. 진효섭은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 버렸다.
‘마음을…… 아직 떨쳐 내지 못했던 거구나.’
아직 안단테를 원하고 있었다. 몸이 아닌, 마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세뇌에 불과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했으니 억지로 되뇌었을 뿐이다.
아노가 친동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 흔들리는 마음이라니. 처음부터 안단테를 잊지 못했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그를 만나는 걸 피하고, 긴장하고, 두려워한 데는 이런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혹여나 다시 흔들릴까 봐. 마음을 열게 될까 봐. 아니, 자신의 마음이 아직 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까 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진효섭은 물컵을 만지작거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코다 에스퍼. 형은…… 어디에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