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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76)화 (17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75화

‘……진정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고작 아노가 친동생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그가 애인이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다만 다른 가이드와 가이딩을 하고 다니는 안단테에게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렇게 떠났다. 안단테에게서 디트리와 같은 집착을 봐서. 그래서 멀어지기를 택했다. 국가안보국을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점철돼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아까의 대화가 반복됐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가이딩은 필요 없다고 모든 가이드를 물리던 안단테 에스퍼가 가이드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상황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되뇌면서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른 가이드에게 깊은 가이딩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착각이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안단테가 다른 가이드에게 접촉 정도의 가이딩밖에 받지 않았던 거라면. 그렇다면…….

진효섭은 흔들리는 시선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떨궜다. 심장이 제 속도를 잃어버린 듯 도무지 진정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진실에 심장이 또 한 번 고장 나 버린 듯했다.

“진효섭 가이드?”

누군가가 부르는 게 들렸으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머리가 아팠다. 분명 숨을 뱉어 내고 있는데, 뭔가 모자랐다. 사람이 너무 몰려서 산소가 부족해진 것만 같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달콤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곁에 있는 사람이 안단테라는 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은은하게 풍겨 오는 향이 그렇게 진할 수 없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효섭아?”

낮은 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리자 조금 흐트러진 안단테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손끝은 차마 닿지 못하고 움찔거린 채였다.

“너, 지금…….”

그의 뺨이 조금 붉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당황한 안단테를 앞에 두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이상하게 그에게 달라붙고 싶었다. 왜 이렇게 향이 짙은지 물어보고 싶은데 숨이 가빠 불가능했다.

‘숨이…… 잘, 안 쉬어, 져. 뜨거, 운데…….’

그제야 진효섭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게 됐다. 하지만 인지했다 한들 몸의 반응을 억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 안단테가 풍기는 향이라든가, 목소리가 열기에 부채질해대는 듯했다.

원래라면 이 정도까지 참기 힘들지 않았을 텐데, 최근 들어 몸 상태가 안 좋았던 탓인지 쉽게 추스를 수가 없었다. 정신이 점차 아득해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머리가 텅 비워졌다.

한편, 안단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진효섭을 살피다 주위를 의식해 얼굴을 가까이하며 작게 속삭였다.

“너…… 향이 너무 짙은데. 그때 아니야?”

“흐, 으…….”

“정신 차려 봐. 안정제는.”

“이미, 먹었, 습니다.”

“언제?”

“……모임, 전, 에.”

간헐적으로 끊기는 진효섭의 목소리에 안단테는 더욱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모임 전이면 두 시간 전인데. 효과가 안 도는 건가.”

안단테가 복잡한 표정으로 어찌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사람들을 헤치고 신해창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주위가 술렁이는 것을 보니 누군가 연락해 급히 온 듯했다. 그는 안단테와 붉어진 얼굴로 숨을 뱉어 내는 진효섭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몸을 낮추고 진효섭에게 말을 건넸다.

“진효섭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진효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으나 신해창은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병원에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신해창이 진효섭에게 손을 뻗는 순간, 그 앞을 안단테가 막아섰다.

“언제부터 이랬어.”

“네가 무슨 상관이지.”

“말해. 너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신해창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본래라면 이런 물음에 대답할 필요는 없으나 뭔가 아는 듯이 구는 안단테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진효섭의 상태는 신해창도 의사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열이 들끓었는데 그걸 잡을 방법이 해열제밖에 없었고, 그것도 최근 들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신해창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폭주 직전의 널 가이딩하고 나서부터 계속 그랬다. 아무래도 가이딩 부작용인 것 같더군. 하지만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가이딩 부작용…….”

그게 무엇인지 아는 터라 안단테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그를 관찰하던 것도 잠시, 신해창의 시선이 진효섭을 향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가쁜 숨. 그저 열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했고, 숨이 심상찮아 보였다.

“내가 아는 진효섭 가이드의 부작용이라면 열이 오르는 거다. 그도 그렇게 말했고. 하지만 역시, 뭔가 다른 게 있었던 건가? 그리고 그걸 해소하지 못해서 계속 이어졌다든가.”

“아니. 그런 거 아니니까 알려고 하지 마.”

딱 잘라 말하는 안단테의 대답에 신해창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역시, 다른 게 있나 본데.”

묘한 시선이 진효섭을 훑었다. 이제껏 아픈 거라 생각했으나 관점을 달리해 보니 얼핏 달뜬 것 같기도 했다. 거기다 안단테가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추측할 수 있는 건 하나였고, 신해창은 이내 확신했다.

“그랬군.”

자연스레 안단테가 더 사나워졌다.

“알려고 하지 말라고.”

“아니. 그럴 순 없지. 내 가이드가 그런 일로 힘들어한다면, 그의 에스퍼인 내가 해결해 줘야 할 테니까.”

신해창이 특별히 ‘내 가이드’라는 말을 강조했다. 진효섭은 국가안보국의 가이드로서, 신해창을 본디지 파트너로 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해창이 진효섭을 데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진효섭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제 어깨에 기대십시오.”

“흐…….”

진효섭이 연신 숨을 뱉으며 신해창에게로 고개를 기울였다. 뜨거운 뺨이 신해창의 어깨에 비벼졌고, 그는 진효섭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안단테는 진효섭과 그 어떤 사이도 아니다. 그러니 더없이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제껏 그랬듯이.

그를 보내야 한다. 신해창이 진효섭을 데리고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진효섭이 다른 에스퍼와 가이딩을 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에게 웃어 주는 데 관여하지 못하고.

열에 들뜬 진효섭이 신해창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지도 모르는데……. 멍하게 생각을 이어 가던 와중, 순간 진심이 튀어나왔다.

“……그건 안 되지.”

“뭐라고?”

신해창이 뒤를 돌아봤을 때였다. 안단테가 신해창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신해창은 반사적으로 두 팔을 겹쳐 얼굴을 보호했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품 안을 내려다보자, 안단테가 어느새 진효섭을 채 가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효섭이는 내가 데려가겠어. 뒷일은 플랫이랑 알아서 해.”

멀리서 플랫이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단장? 뭐라고요? 내가 알아서 하라고요? 예?!”

안단테는 플랫의 말을 싹 무시한 채 신해창에게 자기 할 말만을 전했다.

“너 따위가 효섭이를 데리고 가도록 놔둘 수는 없어. 다른 날이면 몰라도 오늘만큼은 안 돼. 절대.”

“안단테. 이건 규율을 어기는 짓이다. 네가 억지로 데려간다면 이건 엄연한 범-”

“이후 일의 경고는 달게 받도록 하지. 억울하면 [SSS]를 통해서 전쟁이라도 선포해. 받아 줄 테니.”

길드 간의 싸움. 두 길드가 함께 나락에 처박힐 수도 있다. 딱딱하게 굳은 신해창의 표정이 그 말의 무게를 보여 주었다.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든가. 난 딱히 진효섭을 해칠 마음이 없고, 어떻게 할 생각도 없어. 부작용이 지나가기만 하면 얌전히 보내 줄게.”

“…….”

신해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안단테는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뭘 택하든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

기실 길드 간의 싸움이든, 규율을 어겨 질책을 받든, 안단테는 상관없었다. 싸움에 이길 자신이 있어서? 질책이 상관없어서? 아니, 딱히 그런 문제의 얘기가 아니다.

안단테는 그저 지금의 진효섭을 다른 이에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길드 간 전쟁에서 질 확률이 더 높다고 해도, 규율을 어긴 죄를 크게 돌려받는다고 해도, 절대로 그를 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불그스름한 얼굴과 단 향, 색스러운 신음. 그날의 진효섭은 절대 타인과 공유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뜻이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생각한 안단테가 더 늦기 전, 진효섭을 데리고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그를 죽일 생각인가?”

“…….”

무슨 뜻인지는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가이딩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신해창은 지금 진효섭의 상태가 어떤지 확실하게 예상한 듯했다. 안단테는 잠깐 멈칫했던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아니. 그럴 일 없어. 절대로.”

역가이딩과 그 끝에 있을 죽음. 하지만 그조차도 이젠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떠나는 안단테의 얼굴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결국, 누구도 진효섭을 데리고 자리를 뜨는 안단테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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