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74화
다행히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그녀는 다른 가이드와 말을 이어 갔다. 아까 진효섭을 불렀던 남자 가이드였다.
“저도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눈으로 확인하니 믿기지 않네요.”
“제 말이요. 분명 제가 듣기로 LEOM 길드 때의 그는 엄청 제멋대로였다고 했어요. 자기 길드 가이드 말고는 그 어떤 가이드도 가까이 안 했다더라고요. 지금처럼.”
“아, 그거 저도 들었죠. 거기다 가이딩까지 부담되고 힘드니까……. 다들 쉽사리 가이딩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 겁니다.”
“맞아. 맞아. 처음에는 노아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리트가 크니까 간과했는데, 이제 다들 알잖아요. 안단테 에스퍼는 가이드를 들일 생각이 없을걸요. 진효섭 가이드를 제외하면.”
얘기를 나누던 세 명의 시선이 진효섭에게 박혔다.
“진효섭 가이드는 정말 대단하시네요. 안단테 에스퍼가 저렇게 열렬히 원할 정도라니. 게다가 신해창 에스퍼도 상당히 지극정성이잖아요.”
“하지만 신해창 에스퍼는 원래 가이드들에게 대우를 잘해 주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안단테 에스퍼의 태도가 놀라운 거죠.”
“그건 그래.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가이딩은 필요 없다고 모든 가이드를 물리던 안단테 에스퍼가 가이드의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상황이라니.”
잠시 침묵이 돌며 셋의 시선에는 어느새 호기심이 담겼다.
“그래서, 진효섭 가이드는 어떠신가요?”
“……무엇이 말입니까?”
“저렇게 쳐다보고 있잖아요. 뭔가 대화라든가……. 없었나요?”
“……아뇨.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안단테 에스퍼가 모임에 참여한 게 저 때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이 있었다거나.”
이상한 소문을 잠재우고 싶어서 든 예시였는데, 역시 어림도 없었다. 누구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나요. 이제껏 한 번도 모임에 참여한 적 없던 안단테 에스퍼가 진효섭 가이드만 있는 모임에 찾아와서, 진효섭 가이드만 바라보고 신경 쓰는데. 듣자 하니, 진효섭 가이드가 떠나면 곧바로 자리를 뜬다면서요?”
“…….”
반박할 수 없는 얘기였다. 저렇게까지 티 나게 행동하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도 웃겼다.
그러나 안단테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구는 데 반해, 진효섭에게 단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진의를 알 수 없는 건 진효섭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들 또한 그걸 느꼈는지, 진지한 낯으로 안단테의 행동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신해창 에스퍼에게 빼앗긴 게 열받았던 걸까요?”
“에이, 그건 아니죠. 그럼 뺏으려고 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계약도 있고, 사람들의 눈도 있고, 뺏는다는 것도 힘들잖아요. 어쩌면 불가능해서 지켜보는 걸 수도?”
“안단테 에스퍼에게 불가능한 게 어디 있습니까? 미국 대표 길드가 안단테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은근히 추종자도 많고……. 원한다면 한국을 삼키는 것도 가능할걸요.”
“흠, 하긴 그것도 그렇죠.”
포니테일의 여성은 가볍게 턱을 문지르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역시 진효섭 가이드가 안단테 에스퍼의 첫 가이드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왜, 안단테 에스퍼는 특별한 상황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안 그래요?”
“아, 그럴싸합니다. 첫 가이드에게 가지는 감정이 첫사랑보다 깊다고들 하니 가능성이 크군요.”
“어머, 역시. 그러면 조금 로맨틱한 것도 같네요.”
“그렇습니까? 전 로맨틱보다는 순리라고 생각하는데요.”
포니테일의 여성과 남자가 각자 상상의 나라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말없이 있던 나머지 한 명의 여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안단테 에스퍼의 첫 가이드가 왜 진효섭 가이드인가요? 아노 가이드가 있었을 텐데…….”
“저희가 말하는 첫 가이드는 길드에서 들인 첫 가이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마음적으로 깊게 얽힌 관계를 의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노 가이드는 첫 가이드라고 부를 수 없죠.”
조용하던 여인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첫 가이드의 의미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해는 잘 안 되네요. 아노 가이드는 안단테 에스퍼의 전 연인이었으니까 첫 가이드가 맞지 않나요……?”
“네? 전 연인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보듯 포니테일 가이드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분명 무언가를 아는 눈치였다.
“설마하니…… 두 사람 사이를 모르는 건가요?”
“사이요?”
의아해하는 여인만큼 진효섭도 어리둥절하긴 매한가지였다. 진효섭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새삼 집중했다. 어쩐지 더 또렷해진 진효섭의 시선까지 받자 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으음,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아, 어쩐다.”
“어……. 대체 무슨 관계인데 그러나요? 연인 아니었어요?”
“음, 그게 일단 연인은 아니에요. 완전히 다른 관계죠.”
연인이 아니라는 말에 진효섭은 놀라 버렸다. 게다가 완전히 다른 관계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이해할 수 없는 말투성이였다. 속 시원하게 그 관계가 무엇인지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쉽사리 정답을 말해 주지 않았다. 과하게 몸을 사리는 게, 뭔가 큰 이유라도 숨어 있는 것 같아서 괜스레 긴장되었다. 그건 말없이 조용하던 여인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완전히 다른 관계가 대체 뭔가요……? 전, 전에 SS급 던전 영상을 보고 완전히 연인일 거라 생각했었어요. 그게…… 엄청 다정했었으니까.”
“확실히 애정이 깊은 사이일 수밖에 없긴 해요. 하지만 그 깊은 애정이 말이죠…….”
말을 길게 끌던 포니테일의 여성이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하며 주위를 흘끔거렸다. 혹여나 자신의 말을 다른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하는 몸짓이었다. 유독 안단테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같았다.
“하아, 어렵네요. 사실 오래되기도 했고, 별거 아닌 얘기긴 한데 조심스럽거든요. 안단테 에스퍼가 오웬으로 활동했을 때, 아노 가이드를 지키기 위해 정말 무시무시하게 행동했었던 터라.”
진효섭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뭐 그리 조심스러운 이야기인 건지.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그때, 함께 눈치를 살피며 고민하던 남자 가이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제 지난 일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안단테 에스퍼도 특별히 그의 이름이 도는 뉴스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가…….”
포니테일 여인은 진효섭을 흘끔 바라봤다. 안단테의 분노가 진효섭과 함께 있을 때는 쏟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조금 안심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주 편하게 생각하지는 못하겠는지 목소리를 작게 낮춰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아노는 오웬의 친동생이에요.”
“아……! 정말요?”
“네. 유명한 얘기인데 몰랐나요? 보통 에스퍼나 가이드라면 다 알고 있을 텐데.”
“네. 저는 아시다시피…….”
이후 이야기가 오순도순 흘렀으나 진효섭의 귀에 흘러들어 오지는 못했다.
‘아노는 오웬의 친동생이에요.’
충격적인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벌어지려는 입술에 힘을 주려니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게 계속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었나. 사실 별 관계 아니라는 그녀의 말처럼이나 그렇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진효섭에게는 더없이 충격적이었다.
‘동생? 친동생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가족이었다니. 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두 사람의 얼굴이라든가 머리카락 색이 비슷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렇다면…….’
그때의 따스한 얼굴도, 조심스레 받아 든 손도, 모두 가족을 향한 애정이었다는 의미다. 진효섭이 생각하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흔들리는 눈을 한 진효섭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안단테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모임에서 마주한 건 여러 번이었지만, 먼저 그에게 시선을 맞춘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열렬히 진효섭을 바라보던 안단테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살짝 당황한 듯한 그가 시선을 슬쩍 밑으로 내렸다.
그렇게나 사람을 발라 먹을 듯이 쳐다보더니, 도리어 시선을 받으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신선하다 못해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했던 거구나.’
친동생이었기 때문에, 안단테는 아노의 유품을 진효섭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것이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리라. 연인에게 동생의 유품을 넘긴 것이니까.
사실을 알고 나니 받았던 물건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와 닿았다. 전 애인의 물품을 넘기는 것과 죽은 동생의 유품을 넘기는 것은 뜻이 전혀 달랐다.
진효섭은 주먹을 꽉 쥐면서 시선을 다시 돌렸다.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쳐다보던 그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쿵, 쿵, 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었다. 진효섭은 애써 그것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