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72화
“아…….”
혼자라니. 언젠가 혼자서도 다녀야 할 거라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진효섭은 텅 빈 입구에서 주춤댔다. 안쪽으로 향하는 길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차마 나아가지 못했다. 급기야 혼자 들어갈 바에야, 신해창이 도착할 때까지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정장을 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예? 아, 아뇨. 그게-”
가까이서 진효섭을 본 직원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머, 진효섭 가이드님?”
그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오늘 오신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네요. 처음 뵈어요. 반갑습니다. 혹시 입구를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이 다소 과도한 친절을 베풀며 진효섭을 안내했다. 원하는 건 입구가 아니라 숨을 곳이었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진효섭은 결국 직원의 안내로 입구에 도착했다. 손수 문까지 열어 주는 바람에 혼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바닥을 쓰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진효섭이 홀 안으로 들어갔다. 소담하던 프런트와 달리, 안은 저번과 다를 바 없이 화려하고 컸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때와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진효섭 혼자라는 것뿐.
“어머…….”
“저기 봐.”
주위에서 술렁거림이 퍼졌다. 하나같이 진효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착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이 모였다. 그것을 온전히 홀로 받아들이려니 어려웠다. 최근 들어 시선에 익숙해진 게 아니었다면 귀를 벌겋게 물들인 채 손가락질받았으리라.
‘인터뷰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자. 편하게, 편하게…….’
진효섭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음마다 눈길이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입구에 덩그러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자리로 가서 차라도 한잔하며 앉아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국가안보국의 자리는 가운데라고 했었지.’
전에 신해창이 했던 말을 떠올린 진효섭이 홀의 가운데로 향했다. 다만 최대한 주위를 둘러보지 않기 위해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자리에 앉으면 시선이 줄어들 수도 있을 테니, 지금 바라는 거라고는 컵을 들어 올리는 손끝이 부끄럽게 벌벌 떨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중앙에 도착한 순간, 진효섭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
중앙 자리는 보란 듯이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색의 정장과 대조되는 옅은 머리 색. 안단테였다. 고개를 숙이고서 걷느라 뒤늦게 알아차렸다.
진효섭은 갑자기 마주친 인물에 당황해서 굳었다. 분명 테디는 안단테가 참여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굳어 있는 사이, 안단테는 진효섭을 빤히 올려다봤다. 주시하는 눈동자 안이 묘하게 울렁이는 것 같았다. 시선이 오가는 동안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착각이 일었다.
침묵을 깬 건, 안단테였다.
“……무슨 일이야?”
“예?”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아닌가 싶어서.”
들어오자마자 곧장 안단테에게 다가와 앞에 섰다.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아, 그건 아니, 었습니다. 전 그냥, 자리를…….”
“자리?”
주위를 둘러보던 안단테가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예?”
“자리 잡으려고 온 거잖아. 아니야?”
“아……. 예. 맞습니다.”
“그럼 앉아.”
진효섭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안단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비켰다.
사실 그렇게 쓰러진 이후 처음 마주하는지라 진효섭은 당황한 게 밖으로 드러날 정도였는데, 안단테는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하기만 했다. 어째서 긴장한 게 자신뿐인지. 가슴이 새삼 욱신거렸다.
거기다 중앙은 그 모임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길드의 차지다. 즉, 노아피가 있는 이상 중앙 자리는 국가안보국이 아닌 그의 자리란 뜻이다. 그런데 그 노아피의 길드장인 안단테가 진효섭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상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 차마 진효섭이 빈자리에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을 때였다. 안단테가 옆을 지나가자 코끝에 향이 스쳤다. 그 순간, 목덜미에 열이 오르고 속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진효섭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걸 눈치챈 건지 안단테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제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진효섭에게만 들릴 만큼의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안단테가 멀어진 뒤였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졌지만, 머릿속이 더 어수선해서인지 크게 와닿지 못했다.
얼마나 그렇게 멍하니 있었을까. 언제 홀에 도착한 건지 신해창이 다가왔다.
“진효섭 가이드.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 아닙, 니다.”
“왜 앉지 않고 계십니까?”
“이제…… 앉을 생각이었습니다.”
어색한 대답에 신해창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훑었다. 그러다 정확히 안단테가 있는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안단테는 우측의 단상 쪽에 있었다. 홀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기에 적절한 곳. 그를 본 신해창이 작게 소리 내 웃었다.
“하.”
한쪽 입꼬리만이 위로 올라간 미소는 평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효섭이 놀랄 새도 없이 그 표정은 금방 사라졌다.
“아아, 오늘 안단테가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참석했나 봅니다. 많이 놀라진 않으셨습니까?”
“아, 예. 괜찮습니다.”
“이런. 당황한 기색이 빤한데 왜 괜찮다고만 말씀하십니까.”
신해창의 손이 부드럽게 진효섭의 뺨을 쥐었다. 다정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진효섭은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걱정하는 기색이었기에 그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게…… 정말, 괜찮아서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분명 불편하실 겁니다. 오늘은 한 시간만 있다가 돌아가도록 하죠. 제가 직접 데려다드리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대화는 끝을 맺었는데, 신해창의 손은 여전히 진효섭의 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이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 진효섭은 조심스레 그에게 의사를 전했다.
“저기, 신해창 에스퍼. 그, 뺨을 좀 놔…… 주시겠습니까.”
“불편하십니까? 이 정도는 보여 주는 게 좋을 듯해서 하는 행동입니다만.”
무슨 말인가 싶어 신해창을 바라보자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마치 키스라도 하듯이 다가온 그가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희 사이가 본디지 파트너로서 끈끈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앞으로도 친분 있어 보이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될 텐데, 너무 과하다 싶으면 진효섭 가이드가 적당히 쳐 내 주십시오.”
모든 것이 진효섭을 위해서 하는 행동인 듯한 말투였다. 마땅한 것 같아 차마 싫다고 말할 수 없어 진효섭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인터뷰 탓에 바짝 올려 세팅한 머리카락에 신해창의 어깨가 닿았다. 어쩐지 우측의 뺨이 뜨거웠다.
* * *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살벌했다. 에스퍼, 가이드 할 것 없이 주위에 있던 이들이 주춤주춤 안단테의 근처에서 멀어질 정도였다. 듣다 못한 플랫이 한숨을 푹 쉬었다.
“단장. 표정은 그렇게 덤덤하면서 살기를 뿜어 대니까 더 이상하거든요?”
“…….”
“아니, 그렇게 열받으면 가서 좀 떼어 놓든가요.”
플랫은 안단테의 시선 끝에 있는 진효섭을 흘끔 바라봤다. 그는 진효섭이 도착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정작 진효섭은 바라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렇게 살벌하게 쳐다볼 거면서 왜 그런 말을 했대요?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제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진짜 멋있는 척만 오지게 했네.”
입술을 삐죽거리며 플랫이 그가 했던 말을 따라 했다.
“심지어 중앙 자리까지 양보하고. 던전을 미친 듯이 돌아서 얻은 자리를 쉽게 내줘도 돼요? 예? 되는 거냐고요.”
“…….”
“내 참, 아무리 진효섭이라고 해도 그렇지. 진짜-”
플랫의 투덜거림이 길어지려고 할 때였다. 옆에 있던 신디가 말을 잘랐다.
“좀 닥쳐. 시끄럽게.”
“이 새끼가 입이 좀 더럽다?”
“내가 더러운 게 한두 번이야?”
“음, 그건 그렇지만.”
“너 죽을지도 모르는 거, 살려 줬으니까 고맙다고나 생각해.”
“뭐? 죽을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신디가 안단테의 손끝을 턱짓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유리컵이 어느새 산산조각이 나서 안에 있던 붉은 와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흡사 핏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분명 플랫이 투정을 뱉기 전만 해도 온전했으니, 그의 투덜거림이 한몫했다는 뜻이다.
“……흠, 흠.”
플랫은 딴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 이상 말을 잇지도 않았다.
할 일이 없어진 플랫은 주위를 둘러보다 자연스레 진효섭을 바라봤다. 어쩔 수가 없었다. 홀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훤했는데, 대부분의 시선 끝에는 진효섭이 있었다.
그중 에스퍼들이 유독 짙은 시선으로 진효섭을 훑었다. 귀를 기울여 보면 몇몇은 더러운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실물로 처음 봤어.”
“어, 나도. 공개적으로 모임에 내보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래.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자기 걸로 하려고 드는 건지.”
“진짜 엄청난가 보지. 특히 그거.”
“딱 보니까 몸도 탄탄하고 체력도 좋아 보이고……. 와, 씨. 구미 당기네. 국가안보국에 들어가면 한번 받아 볼 수 있나?”
“아서라. 신해창 에스퍼가 꽉 쥐고 있는데 가능하겠냐?”
나름대로 소리를 죽인다고 죽인 듯했지만, 플랫의 귀에는 전부 들렸다. 아마 안단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