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71화
“향도 더 달아진 것 같은데……. 모르겠네.”
매일 맡는 향이었기에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단테에게 가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재차 한숨을 푹 쉰 진효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정제나 먹어야겠다.”
부디 내일은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서랍을 뒤적거렸으나 좀처럼 약이 찾아지지 않았다. 그제야 진효섭은 약을 거의 다 먹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마지막 하나도 남지 않았던가.’
그때, 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신해창이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진효섭 가이드.”
“예. 좋은 아침입니다.”
“뭘 찾고 계십니까?”
진효섭이 서랍을 뒤지다 말고 허리를 폈다.
“안정제를 좀 찾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안정제는 아홉 개 정도를 처방받았을 텐데요. 벌써 다 드신 겁니까?”
“예에. 하루에 두 개씩 먹다 보니…….”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려니 신해창 뒤에서 테디가 얼굴을 비췄다.
“진! 나한테 안정제 있어. 급할 때 너한테 주려고 미리 처방받아 가지고 있던 건데, 지금 줄게.”
테디가 품에서 약봉지를 꺼내 진효섭에게 건넸다.
“테디 네가 여긴 어떻게…….”
“아, 그게 오늘부터 내가 네 운전사 겸 매니저 역할을 하기로 했거든.”
진효섭이 떨떠름히 받아 들며 묻자 테디가 대꾸하며 신해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길드장의 앞이라 그런지 말을 삼간 것 같았다. 둘의 시선이 모이자 신해창이 자연스레 말을 받았다.
“예. 앞으로 일정이 많을 텐데, 처음 보는 에스퍼가 곁에 있는 것보다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예. 마침 다른 에스퍼도 많이 들이게 돼서 상관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진효섭 가이드가 편안한 게 우선이라 여겼을 뿐이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 예. 감사합니다.”
이런 극진한 대우도 그렇고, 매니저랍시고 친분 있는 에스퍼를 붙여 주는 상황도 그렇고, 익숙하지 않은 것투성이라 진효섭은 어색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저는 저번에 생긴 던전을 살피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게 있다면 테디 에스퍼에게 여러 설명을 해 둔 상태니 그를 통해 해결하시면 됩니다.”
“던전이라면, 제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됩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미 파훼한 던전일 뿐입니다. 앞으로 제 가이딩 일정은 차차 스케줄을 정리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신해창은 손목시계를 흘끔거리곤 이어 말했다.
“3일 후, 일곱 시에는 꽤 중요한 모임이 있을 겁니다. 저는 거기서 함께 뵙겠습니다. 이 이후로는 테디 에스퍼에게 일정을 물어보시고 움직이십시오. 그럼.”
그러곤 한 치의 군더더기 없이 설명을 마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와……. 진짜 대단하다.”
달칵, 문이 닫힘과 동시에 테디에게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신해창을 향한 감탄이었다.
“뭐가?”
“우리 길드장님 말이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철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최근에 진, 네 매니저 일 때문에 여러 가지를 직접 배워 보니까 거의 기계 수준이야. 1분 1초도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행동한다니까.”
테디는 조금 질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경하는 사람이긴 한데…… 따라잡을 엄두도 안 난다. 그런데도 아직 안단테 에스퍼를 못 잡은 걸 보면, 대체 안단테 에스퍼는 얼마나…… 아.”
혼자 말을 잇던 테디가 진효섭을 흘끔거렸다. 마치 실수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에 진효섭이 더 민망해졌다.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이야기를 테디가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신해창에게 이런저런 일을 배웠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흠흠. 진, 많이 힘들었겠네. 하필 상성이 맞아서 그런 집착을 받아야 했잖아.”
“…….”
“그래도 너무 걱정 마! 내가 확실하게 지켜 줄 테니까. 정부에 연락해서 미성년자 임시 면허증도 받았고, 다른 것들도 단장님에게 많이 배웠어. 게다가 내 능력도 보호에 특화돼서 안심해도 될 거야.”
“응. 걱정 안 해.”
정확히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안단테는 이제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진효섭은 씁쓸해지려는 기분을 숨기기 위해 애써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이제 난 뭘 해야 해? 일정 같은 걸 들은 게 없어서.”
“아,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다 들어 놨어.”
테디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까만 글자가 가득한 스케줄 표를 띄워 건넸다. 다소 빽빽한 일정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바쁘면 바쁠수록 시간이 빨리 흐를 테니까.
진효섭은 시간이 조금 더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상한 몸 상태도, 정의할 수 없는 이 공허한 마음도 무뎌질 테니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 * *
“진효섭 가이드님, 먼저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많은 사람이 진효섭 가이드님의 소식을 궁금해하셔서요.”
유명한 잡지사의 기자가 눈을 반짝였다. 뜨거운 시선이 최근 받아 본 것 중 으뜸이었다.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진효섭은 티를 내지 않았다. 이미 인터뷰 전에 테디에게 덤덤하고 단호한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다행히 최근 들어 시선을 많이 받아 본 터라 표정 관리하는 데에는 익숙해졌다.
기자는 작은 녹음기 하나를 탁자에 놓으며 물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예. 괜찮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먼저, 진효섭 가이드가 국가안보국에 들어가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인데요…….”
질문들은 사전에 테디를 통해 고지받았던 내용에서 벗어남이 없었다. 어쩌다가 국가안보국에 들어가게 됐는지. 신해창과의 인연은 어떻게 생겼는지. 능력 발현은 몇 살이었고, 어디 사람이었고, 어디에서 생활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웠을 질문들이 진효섭에게는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진효섭은 노아피에서 국가안보국으로 넘어간데다 베일에 완벽하게 싸여 있으니까. 그래서 신해창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진효섭이라는 사람을 대외적으로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서.
물론 아는 사람은 알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므로. 진효섭은 그저 대본대로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섞어서 말하면 되었다.
“……그래서 외국 생활을 하다가 20대가 돼서 늦은 발현을 하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길드에 들었습니다.”
“노아피 길드를 말씀하시는 거죠?”
“예.”
이거다 싶었는지, 기자가 눈을 반짝이며 텀을 가지지 않고 곧장 물었다. 흥분한 기색을 미루어 처음부터 이 물음을 위해 길고 긴 이야기를 이은 것 같았다.
“그런데 노아피에서 왜 나오신 건가요? 모두가 알다시피, 노아피는 명실상부 1위 길드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나올-”
“슬슬 갈 시간입니다.”
그때, 상황 좋게 테디가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진효섭 가이드. 이후 스케줄이 있어서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기자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네? 아, 그, 그렇죠. 벌써 시간이……. 수고하셨습니다.”
기자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으나 왜 테디가 이야기를 끊었는지 알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진효섭은 테디의 도움으로 질문 세계에서 벗어나 차에 탔다.
“진, 괜찮아?”
운전석에 탄 테디가 걱정스레 진효섭을 돌아봤다. 진효섭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응. 괜찮아. 그보다 고마워, 중간에 그렇게 끊어 줘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어. 원래 노아피 얘기는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인터뷰 잡았는데, 넌지시 떠보려고 했던 것 같아. 아무튼 어떻게든 특종을 따내려고, 쯧쯧.”
“…….”
“그래도 다음 스케줄이 있는 건 사실이야. 모임이 있거든. 바로 출발할게.”
“응. 알았어.”
다음 스케줄은 저번에 신해창이 다소 중요하다 말했던 큰 규모의 모임이었다.
“아, 맞다. 안단테 에스퍼는 오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순간 진효섭의 손끝이 굳었으나 테디는 운전하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액셀을 밟았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꼭 안단테가 언급된다. 이유와는 상관없이 진효섭은 그것이 불편했다. 그만큼 자신이 안단테와 많이 얽혀 있다는 뜻 같아서. 게다가 지금, 신해창의 옆에 있다 보니 그들은 뜨거운 삼각관계로도 보일 것이다. 진실은 다르다고 해도 타인의 시선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 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얽혔던 관계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기에. 그저 앞으로 안단테와 얽힐 일이 없다는 것만이 다행이었다.
‘그래. 잘된 일이야. 아주 잘…….’
이제 안단테는 진효섭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S급이 아닌 그는 필요 없는 존재니까. 진효섭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진효섭은 거대한 호텔 앞에 도착했다.
“진, 들어가 봐. 안에 단장님이 계실 거야. 나는 주차하고 밖에서 대기할 테니까 모임 끝나면 연락하고.”
“응. 항상 고마워.”
차에서 내린 진효섭은 누가 볼세라 잽싸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프런트는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고급스럽기는 저번과 비슷했다. 안쪽으로 향한 진효섭이 주위를 살폈으나 신해창은 보이지 않았다.
‘안에 있다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진효섭은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 보낸 건지 신해창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일이 생겨서 조금 늦을 듯하니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