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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71)화 (17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70화

이능력자에게 능력이나 등급은 목숨과도 같다. 능력을 잃거나 등급이 저하될 바에는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월등히 많았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능력을 발현한 이는 등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에스퍼와 가이드는 등급이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으면 절망한다. 신해창도 그럴 것이다. 만약 진효섭과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죽는 길을 택하리라. 그대로 죽는다면 적어도 S급인 채로 죽을 수 있을 테니까.

등급이라는 것은, 그것도 S급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진효섭은 그런 낌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해창은 다소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진효섭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진효섭이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제 대답이 이상합니까?”

“아뇨. 실례했습니다. 보통은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셔서 신기했을 뿐입니다. 보통 등급에 연연하기 마련이니까요.”

신해창이 확인하듯 다시 한번 물었다.

“진효섭 가이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예. 솔직히…… 능력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능력이 높아서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아.”

새삼 그의 과거를 다시 떠올린 신해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해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효섭 가이드는 등급이 내려가는 걸 두려워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제가 진효섭 가이드의 등급 상향을 제안했다는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래서, 나는 [SSS]에 진효섭 가이드의 등급 상향을 제안할 예정이다.’

신해창은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를 건넸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밀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 말씀드리려고 한다는 게 그만, 안단테의 말에 마음이 앞섰습니다. 당황하셨을 텐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준비를 해 두셨을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다만…….”

진효섭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SS급으로 상향되는 걸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나, 그 방법이 사라졌으니 걱정할 법했다. 그때 보였던 안단테의 반응은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신해창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억누르며 진효섭의 손 위에 본인의 손을 겹쳤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상향 등급을 받지 못할 시에도 문제없을 만큼 여러 방법을 준비해 뒀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신해창 에스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제 제가 지켜 드려야 하는 가이드는 진효섭 가이드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신해창이 믿음직한 표정을 지으며 진효섭의 손을 가볍게 도닥였다.

하지만 진효섭의 표정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그가 믿음직하지 않아서라기보단 저 다정함이 결국 욕심 때문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용해 안단테를 찍어 누를 생각뿐인 신해창. 자신을 손에 넣어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가둘 생각뿐인 안단테. 어느 쪽을 골라도 개운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진효섭은 이용할 생각이 가득하다고 해도, 옭아맬 생각은 없어 보이는 신해창을 선택했다. 결국 그 또한 안위를 위해 신해창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을 감싸다가 안단테에게 엉망으로 당한 신해창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죄송스럽습니다. 오늘 같은 일은 다 제가 원인이지 않았습니까. 꼭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정말…….”

진효섭이 한숨을 삼키며 주먹에 힘을 꽉 쥐었을 때였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예상으로는…… 아마 다시는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예?”

“오늘부로 안단테는 진효섭 가이드를 향한 집착은 떨쳐 버릴 테니 말입니다.”

신해창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때, 안단테는 분명 절 죽여서라도 진효섭 가이드를 곁에 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효섭 가이드의 곁에서 간병하는 건 저입니다.”

“그건-”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에게서 손을 뗐다는 의미입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해창이 생각했던 말을 냉큼 뱉어 냈다. 진효섭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하,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진효섭 가이드의 등급 하락은 안단테가 흥미를 끊어 낼 만한 일입니다.”

등급은 곧 가치다. 진효섭의 등급 하락은 그의 가치를 하락시킴과 동시에 안단테가 손에 쥐어야 할 이유를 사라지게 했다.

“그 증거로 안단테는 의사에게 진효섭 가이드의 등급 하락을 전해 듣자마자 밖으로 나섰습니다. 제가 진효섭 가이드의 곁에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더군요.”

“…….”

“그놈은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제아무리 상성이 맞더라도 A급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상성이 맞다고 해도 SS급과 A급은 너무 차이가 크다. S급이 B급이나 C급에게 받는 것보다도 더 큰 차이가 있을 터. 애초에 에스퍼가 집착을 느끼는 이유는 가이딩 때문이다. 하지만 가이딩이 맞지 않는다면 그런 집착조차 느낄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안단테는 떠났다. 진효섭의 가이딩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기에.

신해창의 말뜻을 진효섭은 아주 정확하게 해석했다. 등급 하락을 전해 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표정이 잔뜩 침울해졌다. 신해창은 그런 진효섭의 표정을 모른 체하며 위로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는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를 괴롭힐 일은 없겠군요.”

모든 게 진효섭이 바라는 대로 되었다. 더 이상 쫓길 이유가 없어졌다. 집착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니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며 살면 된다. 안단테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예.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말하는 진효섭의 뺨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울 것만 같아졌다.

* * *

딱 한 번이었다. 모임에 얼굴을 비췄던 것이 딱 한 번. 그것만으로 진효섭은 현재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국가안보국의 대표 가이드이자 노아피의 전 가이드. 그리고 현재는 신해창의 본디지 파트너가 됐지만, 전에는 안단테의 연인이었던 자. 그것도 웬만한 S급도 쉽지 않았던 안단테의 가이딩을 담당할 수 있는 유일한 가이드.

진효섭의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할 정도였다. 하나같이 원했던 게 아니었던지라 당혹스러웠지만 이미 유명해진 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유명세에 따라 진효섭의 일상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밖을 거닐 때면 느껴지는, 그를 알아보는 시선들. 길드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이드, 에스퍼 할 것 없이 그가 지나가면 시선이 모였다. 그게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진효섭은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앞만 주시한 채 걷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하아…….’

진효섭은 한숨을 삼키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선이 쏟아져 그는 앞만 바라본 채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다행히도 잡는 사람은 없었다.

길드 내 로비를 통과해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신해창의 사무실이었는데, 그가 주로 길드 안에 없다 보니 진효섭이 대신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특별 대우가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도착했다…….”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혼자가 되자 뻣뻣한 허리에서 힘을 풀 수 있게 됐다.

국가안보국의 대표 가이드라는 점이 흐트러진 몸가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기에 걷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곤 했다. 유명하다는 게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자신이 유독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지.

“머리 아파…….”

여전한 두통은 안 그래도 저조한 몸 상태를 더 안 좋게 만들었다.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병행한 게 일주일. 퇴원한 지 사흘째였다. 그런데 좀처럼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능력 측정은 여전히 불가능했고, 몸의 열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두통도 마찬가지. 그 탓에 진효섭은 해열 진통제와 안정제를 매일같이 달고 사는 중이었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점이 또 하나 있었으니. 안단테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말 그대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그가 이끄는 노아피가 새로운 변형 게이트를 드나든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즉, 안단테가 모습을 감춘 건 진효섭의 앞에서뿐이다.

절대 놓지 않겠다고 서슬 퍼렇게 눈을 뜨고 손목을 잡아챘었는데. 너는 절대 어디도 가지 못한다고 곁에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게 고작 10일 남짓이다. 그런데 그는 단번에 발길을 끊었다. 진효섭의 등급이 저하되자마자.

‘……정말이었네.’

신해창이 그럴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믿지 못했었다. 그렇게 서슬 퍼렇던 집착이 쉽게 끊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아니었다. 에스퍼의 집착은 이런 거였다. 능력이 있으면 생기고, 없으면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쉬웠던 거구나.”

씁쓸했다. 아니, 허탈했다. 왜 이렇게 속이 텅 빈 것 같은지 알 수 없었다.

진효섭은 후끈거리는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열이 오를 듯 말 듯 해서 신경 쓰였다. 대체 몸 상태가 왜 이러는 걸까. 분명 안단테에게 가이딩한 이후 생긴 증세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긴 한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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