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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70)화 (17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9화

보통 에스퍼나 가이드는 발현 전 능력 측정이 불가능하다. 능력이 불안정하기 때문인데, 그 특성은 발현한 후에는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능력의 불안정이 다시 오는 시기가 있으니. 40대부터 50대. 즉, 시간이 지나며 노화함에 따라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기다.

그런데, 진효섭은 아직 20대인데도 능력이 불안정해졌다. 안단테와의 가이딩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는 의미다.

“진효섭이 날 가이딩했던 건, 확실한 거고.”

“네. 확실해요. 코다가…… 음, 직접 말했어요.”

체르니가 난감한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뺨을 긁적였다.

“저기…… 그,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데 숨겼다더라고요.”

분노가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체르니의 예상과는 달리 안단테는 침착했다. 그는 코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중얼거렸다.

“가이딩이 잘 맞았던 게 내 착각이었단 말이지…….”

그것도 모르고 안단테는 멍청하게 진효섭의 힘을 뽑아냈다. 몇 번이나.

“하, 하하.”

자조적인 웃음소리에 체르니는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반박했다.

“아니, 뭐. 착각은 아니겠죠. 상성은 잘 맞았던 거 맞아요. 단장님의 몸 상태를 그렇게까지 끌어 올리는 사람은 없었잖아요. 다만…… 가능하다는 거랑 무리해서 몸이 약해지는 건 다른 게 아닐까요.”

“목숨에 문제는.”

“없어요. ……아직은.”

아직은. 그 말에 포함된 뜻에 병실의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싸늘해졌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신해창이 진효섭을 SS급으로 상향해 달라고 [SSS]에 건의할 예정이라 말했다던데. 이제 그 방법은 완전히 못 쓸 테고.”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밝게 주제를 돌린 체르니의 말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이제 단장님이 진효섭을 지금 당장 데려간다고 해도 아무도 입을 댈 수 없을 거라는 뜻이잖아요.”

SS급 에스퍼와 A급 가이드. 세계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체르니가 다음 명령을 기다리듯 안단테를 바라봤다.

그러나 안단테는 대답 대신 눈을 꾹 감았다. 완벽한 무표정에서는 어떠한 것도 읽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시간이 흐르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던 안단테가 마침내 벽에서 몸을 떼어 냈다.

“가자.”

행보에 대한 뚜렷한 답이 없었지만 체르니는 더 묻지 않고 안단테를 뒤따랐다. 단번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그도 묻지 않았을 터. 재촉할 마음은 없었다.

“단장님.”

그때, 코다가 안단테를 불러 세웠다. 분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단테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밖으로 천천히 나가는 발걸음.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코다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발을 재게 놀린 그가 안단테 앞을 가로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비켜.”

“전 그 대답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신해창에게 붙어서 진효섭에 대한 걸 거짓으로 보고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길드장에 대한 예의도 집어치웠나 보네.”

“진효섭 가이드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래. 너라면 그런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어.”

안단테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시선은 코다를 지나 병원의 어두운 복도 너머를 향했다.

“원하는 대답을 줄 테니까, 네 뒤에 있는 놈에게 전해.”

그 시선의 끝에는 신해창이 있었다. 여태 피 묻은 옷을 입고 있는 안단테와 달리 신해창은 핏자국 하나 없는 멀끔한 모습이었다.

“내가 약해지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진효섭에 한해서란 걸 항상 명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신해창의 발걸음을 막지 않는다는 건, 결국 진효섭의 곁에 있는 걸 허락한다는 의미다. 안단테가 진효섭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뱉은 말이 미묘했다. 지금 물러나는 게 도약 전의 뒷걸음질인지, 신해창에게 져서 물러나는 게 아니라는 선언인지. 진효섭에게만 약한 안단테라는 말은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신해창은 그 숨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인물이 아니었다.

“명심하지. 너처럼 되지 않으려면.”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러나 안단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머뭇거린 노아피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이로써 복도에는 신해창만이 남았다. 등 뒤는 어둡기 그지없는 반면, 진효섭의 병실로 가는 길은 한없이 밝았다. 마치 승자를 환호하듯. 신해창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안단테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갔다.

기실 그는 모임에서 안단테가 난동을 부릴 것을 알고 있었다. 나아가 길드 간의 전쟁까지도 예상했었다.

그러나 진효섭의 능력이 불안정해진다는 결말은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세상의 운이 안단테의 손을 들어 줬다고 생각했다. 위험한 줄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던 신해창에게 이러한 변수는 좋지 않았으므로.

보통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집착하는 건 오롯이 가이딩 때문이다. SS급인 안단테 역시 다를 바 없을 터. 정도가 남들보다 더 심해 보이는 건 아마 가이딩의 부재를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진효섭이 A급으로 떨어진다면, 집착을 불러일으키던 감정은 자연스레 시들기 마련이다. 에스퍼의 집착이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

S급의 조커 카드가 A급의 폭탄으로 변하는 순간. 단연코 신해창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진효섭을 향한 안단테의 시선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상외긴 하지만…… 기분 좋은 판단 오류군.’

카드를 버려야 하나 생각까지 하던 신해창에게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 더불어 역시 진효섭은 끝까지 손에 쥐고 있어야겠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가안보국에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려면 좀 더 확실한 상황이 필요하겠어.’

저번 대화로 미루어 진효섭은 어느 정도 안단테를 향한 마음을 접었으나 완벽하지는 않아 보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형이 저렇게 된 데 제 탓도 있을 텐데. 제가 피하려고만 드는 것 같습니다.’

그 자신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을 자세하게 살피는 데 익숙한 신해창은 알 수 있었다. 만약 안단테가 가이딩 외, 진효섭 그 자체에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신해창에게는 좋지 않을 것이다.

‘상황을 더 확실하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갈 필요가 있겠어.’

생각을 정리한 신해창이 곧바로 진효섭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누워 있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폭주 직전인 안단테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만큼이나 창백한 얼굴. 사실 신해창은 그날의 가이딩이 진효섭에게 부담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피곤하거나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계속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걸까.’

아픈 진효섭을 두고 신해창은 새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진과는 다르게 참을성이 좋은 것도, 쓸데없는 칭얼거림이 없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이 그놈의 시선을 끈 걸까.”

신기하다는 눈빛이 진효섭을 훑었다. 안단테가 그렇게나 이성을 잃을 정도의 상대라는 게 조금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진효섭은 그저 평범한 가이드일 뿐이다. S급치고도 높은 능력을 제하면 굳이 찾지 않았을, 그저 그런 가이드 말이다. 특히 LEOM 길드의 전 가이드였던 아노와 비교한다면 차이가 꽤 많이 났다.

‘아, 아닌가. 조금 비슷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노에 대한 건 익히 소문으로 들었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듯 손을 뻗는다고. 폭주하는 에스퍼를 가이딩해 주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슴지 않는 강인한 가이드. 내적인 면이 그와 다소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문득 신해창은 왜 코다가 진효섭에 대해 침묵해 주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으…….”

생각에 잠겨 있던 때, 침대에 누워 있던 진효섭이 작게 숨을 흘리더니 곧 눈을 떠 깜빡였다.

“진효섭 가이드, 괜찮으십니까?”

“신, 해창…… 에스퍼……?”

“예. 접니다.”

신해창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는 옆에 놓인 물컵에 물을 따라 진효섭에게 건넸다.

“물이라도 좀 드셔 보시겠습니까.”

“예……. 감사, 합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진효섭이 물컵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방금 일어나서 아직도 몽롱한 머리로 멍하니 주위를 훑어봤다.

“아, 각혈…….”

진효섭은 뒤늦게 떠오른 마지막 기억에 가슴께를 쓸어내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제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고 해야 할지……. 사실 안단테에게 가이딩한 이후부터 안색이 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때의 여파가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듯합니다.”

신해창은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을 맺었다.

“능력이 불안정해졌다고 합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긴장하며 답을 기다리던 진효섭의 표정이 안정됐다. 어렵게 입을 뗀 신해창이 무색할 정도로 덤덤한 변화였다.

“외람되지만, 안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에. 저는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걱정했었습니다.”

“진효섭 가이드. 능력이 불안정하다는 건, 등급이 저하된다는 의미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능력보다도 건강이 중요하다는 뜻입니까?”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하다고요.”

신해창의 표정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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