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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69)화 (16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8화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 안단테가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닫고 섰다. 반대로 신해창은 더없이 느긋해 보였다.

“알아듣는 얼굴이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지.”

“…….”

“앞으로는 타 가이드에 대한 규율은 잘 지키길 바란다. 자, 그럼. 우리는 이만-”

“알겠다. 너였구나.”

돌연 말을 끊은 안단테의 표정이 더없이 싸늘해졌다. 마치 시한폭탄을 눈앞에 둔 듯했다.

“너였어. 그 단추부터 지금 상황.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전부 네가 한 짓이었던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렇게나 집착하던 가이드를 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 건 안타깝지만, 홀로 삭이길 바란다.”

“…….”

“진효섭 가이드, 가시죠.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낮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신해창이 뻔뻔히 웃곤 진효섭의 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감싸 안는 듯한 손짓에 진효섭이 그와 가까워졌을 때였다.

쾅-!

신해창이 소파로 내팽개쳐졌다.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뒤따라 울렸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진효섭은 상황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구한테 손을 대는 거야, 이 개새끼가.”

“큭…….”

갑작스러운 급습에 신해창이 신음을 흘렸다. 진효섭은 그의 입술이 찢어진 것을 보고서야 안단테가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안단테가 신해창에게 다가가 손을 치켜올렸다. 주먹이 한 번, 두 번 뻗어질 때마다 강인한 에스퍼의 육체가 뭉개졌다.

“고작, 내 도움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주제에 기고만장해서는. 허튼짓을 하고도 내가 넘어갈 줄 알았어? 널 죽이지 않을 것 같았냐고.”

“컥, 커흑…….”

“진효섭을 옆에 둬? 네가 내게서 진효섭을 뺏어 가겠다고? 감히 너 따위가?”

사정없이 휘둘러진 주먹에 새빨간 피가 묻어났지만,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안단테의 분노가 오롯이 신해창에게 쏟아졌다.

“어디 한번 해 봐. 네가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라고.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도록 죽어도 죽는 게 아니게 해 줄 테니까.”

쉼 없이 폭력을 쏟아붓는 안단테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신해창은 미동이 없어졌다. 기절한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안단테는 여전히 상대를 죽일 기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진효섭은 내 거야.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어떤 새끼도, 어떤 길드도 내 가이드를 가로챌 수 없어. 내가 오늘 그 사실을 똑똑히 머릿속에 박아 줄게.”

노도같이 몰아닥치는 힘에 주위의 샹들리에가 깨졌다. 불이 깜빡이며 하나둘 암전되어 가는데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울컥, 신해창이 피를 뱉어 내 바닥이 피로 물들었을 때였다. 멍하니 굳어 있던 진효섭이 억지로 몸을 움직여 안단테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 그만!”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주먹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제발, 제발 좀 그만하십시오!”

혹시라도 그가 또 움직일까 싶어 진효섭은 팔을 더 꽉 잡았다. 다행히도 그는 더 움직이지 않았으나 흉흉한 기세는 여전했기에 진효섭은 잡은 손에서 힘을 풀지 못했다.

진효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럽니까. 제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그러는 겁니까.”

안단테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진효섭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걱정이 범벅이 된 표정으로 진효섭을 부르던 안단테. 그리고 진효섭을 제 것이라 날카롭게 소리치는 안단테. 둘 중에 무엇이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진실도 이제 필요치 않았다. 신해창을 선택했던 게 정답이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의 말이 맞았다. 안단테의 집착은 어마어마했다. 이대로 그에게 잡히면 정말 빛은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그쪽은 힘이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의 생각은 하지 않는 겁니까?”

“……진효섭.”

“싫다고 말하잖습니까. 그만하고 싶다고요. 벗어나고 싶단 말입니다. 제 의사 따위는 필요 없습니까? 그럼 그저 절 가이딩 기계로만 보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안단테의 눈이 순간 커졌다. 손에 잡힌 팔에 서 힘이 빠졌으나 진효섭은 그 사소한 차이를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무섭고, 과거가 반복될까 두렵고, 신해창에게 미안하고.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점철됐다.

“저는 집착이 싫습니다. 상대의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행동하고, 상대를 구속하는…… 그런, 게 죽는 것보다도 싫습니다. 혐오스럽단 말입니다.”

진효섭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이 더 무거워지는 듯했다. 사실, 안단테에게 가이딩을 한 이후부터 계속 그랬다.

조금 나아진 몸이 안단테에게 신경을 쏟고 정신적으로 지치자 걷잡을 수 없이 피로해졌다. 목덜미가 뜨겁고 숨이 가빠 왔다. 열도 오르는 듯했는데 익히 알던 열과는 뭔가 달랐다.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열도, 몸살감기의 열도 아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진효섭이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인지라, 안단테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잠깐만, 효섭아. 너 왜 그래. 상태가-”

“차라리 저를, 흐…… 때리십시오.”

안단테가 또다시 주춤했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던 그가 눈을 잘게 떨었다.

“저따위가 마음대로 떠나려는 게 화난 거라면, 절 때리란 말입니다. 제게 화풀이하십시오. 그게 더 나을 겁니다. 그게…….”

말을 잇는데 시야가 흔들리더니 단단한 품에 머리가 닿았다. 그제야 진효섭은 자신이 비틀거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 대체……. 아니다. 가만히 있어. 의사를, 의사를 부를 테니까.”

어렴풋한 시야로 안단테가 그를 따라온 쌍둥이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열이 오른 탓인지 입술이 필터 없이 속마음을 멋대로 뱉어 냈다.

“지긋, 지긋합니다. 정말…….”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말하는 자신도 들리는 건지 아닐지 모를 만큼. 하지만 안단테는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굳었다.

그를 두고 진효섭의 머리는 제멋대로 생각을 이어 나갔다. 과거의 일부분. 죽어 가는 에스퍼 두 명. 불행히도 지금 상황과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또, 집착을, 당할 바에는…….”

달싹이는 입술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만약 또다시 그런 결말을 맞이할 거라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습니다.’

미처 뱉지 못한 말을 알아들은 듯 팔을 잡은 안단테의 손이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눈치챈 건진 몰라도 그게 이제 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피곤하고 머리가 몽롱하니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가기 힘들었다.

“……효섭아.”

안단테의 목소리가 어쩐지 떨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속이 뜨거워지며 비릿한 향이 코끝에 스쳤다. 이내 울컥, 무언가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핑핑 돌아가는 시야에 붉은 액체가 점점이 번졌다. 입안에 피 맛이 가득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효섭은 뒤늦게 자신이 피를 토해 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무언가 고함이 오갔다. 의사를 부르는 것도 같았다.

분주함 속에서 오직 안단테만이 진효섭을 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이 점차 암전됐다. 진효섭은 안단테의 무너진 표정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의사와 간호사가 여러 차례 병실을 드나들었다. 안단테의 시야 아래에서 모든 검사가 이뤄졌다. 그는 마치 감시라도 하듯, 움직이지 않고 서서 진효섭만을 바라봤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것도 같았고, 고민하는 것도 같았다.

달칵. 검사와 급한 조치를 끝낸 이들이 밖으로 나가자 남은 것은 정신을 잃은 진효섭과 안단테뿐이었다.

뚝, 뚝…….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병실에 울렸다. 안단테는 장장 여섯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서 벽에 기대 그를 바라봤다.

이윽고, 오랫동안 닫혔던 병실의 문이 열렸다. 늦은 밤이었는데도 병실 주위는 불빛이 환했다.

“결과, 나왔어요.”

언제 도착한 건지 단복을 차려입은 체르니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노아피의 길드원이 모두 따라 들어왔다. 안단테는 병실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입을 열었다.

“말해.”

“역가이딩의 부작용이래요.”

체르니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귀찮다는 듯 쓸어 넘겼다. 평소에 자주 보이던 장난기는 조금도 없었다.

“능력이 매우 불안정해요. 아마 힘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횟수가 너무 많았던 탓이겠죠.”

“…….”

“듣자 하니, 이 정도로 불안정할 정도라면 전에도 코피를 쏟는 등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 아는 거 있어요?”

“……아니.”

“그럼 숨겼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이유는…… 뭐, 진효섭이니까. 단장님이 가이딩을 기피할 것 같아서일 테고.”

체르니는 병실에 있는 의자 중 하나를 차지했다.

“그래도 당장 문제는 없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 한계까지 가이딩을 이어 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다만, 앞으로와 달라지는 점이라고 하면 등급 정도려나.”

안타깝다는 한숨이 이어졌다.

“S급에서 A급으로 내려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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