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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66)화 (166/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5화

“국가안보국?”

생각지도 못한 이름의 등장에 안단테가 굳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몽글몽글 풀리려던 감각이 날카로이 날을 세웠다. 쌍둥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안단테는 더 묻지 않고 눈만 깜빡였다.

‘왜 효섭이가…… 국가안보국에?’

아직 진효섭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건만, 조금도 예상치 못한 정보에 생각이 멈췄다.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제자리에서 삐걱거리는 듯했다.

멍하니 선 안단테가 이윽고 휴대폰을 조작해 인터넷을 켰다.

[국가안보국 진효섭]

부릅떠진 눈이 깜빡임 한번 없이 검색창을 빤히 바라봤다. 나란히 있을 리 없는 명사가 붙은 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몸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쿵쿵 뛰던 심장 소리가 결을 달리했다.

넋이 빠진 사람처럼 휴대폰만 바라보던 안단테가 입술을 달싹였다.

“……디 있어.”

“예?”

중얼거림이라고도 볼 수 없는 작은 목소리에 쌍둥이가 안단테에게 되물었다. 동시에 안단테의 눈동자 위로 황금빛이 휘몰아치듯 일렁였다.

“진효섭. 지금 어디 있냐고.”

확인해야만 했다. 정말 진효섭이 살아 있는지. 정말 국가안보국에 있는 건지. 이딴 정보로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판단은 그 이후의 문제였다.

* * *

진효섭은 자신의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빤히 바라봤다. 계약서상 갑은 완벽히 진효섭이었다. 어디 하나 배려를 느끼지 못할 구석이 없었다.

본래 국가안보국의 계약은 5년 이상을 준하지만, 1년으로 줄여 줬고 연장은 진효섭 마음대로였다. 게다가 그 외의 모든 조항에 진효섭의 선택을 우선으로 한다는 말이 덧붙었다. 신해창의 배려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계약서였다.

하지만 또렷하게 찍힌 자신의 지장은 보면 볼수록 걸림돌 같았다.

‘내일 바로 세상에 공표될 겁니다.’

그게 어제였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세상에 이 일이 퍼졌을 터. 신해창은 진효섭의 위치를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모두에게 국가안보국에 들어온 새 가이드의 존재를 확립시킨다고 했다. 한마디로 모두에게 퍼뜨린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안단테의 귀에도 들어갔을 게 뻔했다.

다시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불안했다. 분명 자신의 선택으로 맺은 계약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분이 대체 왜 이런 건지. 자꾸 한숨이 새어 나왔다.

똑똑-

“실례합니다. 진효섭 가이드, 다 준비되셨습니까?”

“아, 예. 나가겠습니다.”

진효섭은 계약서를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제 모습을 확인했다. 모임이라고 잔뜩 치장한 외양이 어색했다. 왁스로 바짝 올린 머리부터 정갈하게 차려입은 국가안보국 단복까지. 마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재차 들려 진효섭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급히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이 열렸다.

“준비는 다하셨습니까.”

“아, 신해창 에스퍼…….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관치 않으셔도 됩니다. 한두 시간 늦는다고 해서 모임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는 한걸음에 진효섭 앞으로 다가와 손끝으로 가볍게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끝까지 거울을 확인했는데, 구겨졌던 걸까. 언제나 반듯한 몸가짐을 하는 신해창을 앞두니 괜스레 민망해졌다.

“그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진효섭 가이드.”

“그렇, 습니까.”

진효섭은 다시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확인했다.

국가안보국의 단복은 편안함과 기동성을 추구하던 노아피의 단복과는 달리, 고급스러운 맛을 극대화하고 최대한 단정한 모습을 강조했다. 목 끝까지 차근차근 잠그는 형태의 셔츠와 그 위에 걸쳐 입은 베스트는 정장을 연상시켰고, 은색의 국가안보국 문양이 박힌 단추는 고급스러움을 자아냈다.

“가시겠습니까.”

“예.”

신해창이 진효섭을 에스코트하듯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담백한 접촉은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려 주는 행동이었는데, 진효섭은 영 불편했다. 걸음걸이가 뻣뻣해지자 신해창이 진효섭을 흘끔 바라봤다.

“불편하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이것도, 필요하니까 하시는 행동이잖습니까.”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처음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 신해창은 강조하듯이 말했었다. 길드장인 자신과 가까워 보이는 게 관건이라고. 국가안보국의 그저 그런 가이드 중 한 명으로 보이면 그 누구도 시선을 모으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진효섭 가이드는 그저 그런,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는 가이드여서는 안 됩니다. 국가안보국의 타이틀만으로는 노아피가 SS급 길드로 오르기 전에 이용하던, S급치고는 덜떨어진 그런 가이드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데 필요한 건, 신해창과의 두터운 친분과 신임이었다. 필요한 일이라 되새기며 불편함을 죽인 채 잠자코 걷던 진효섭은 문득 국가안보국의 또 다른 가이드, 유진을 떠올렸다.

“저, 그런데 신해창 에스퍼. 유진 가이드에게는 설명해 드렸습니까?”

“아, 유진 말입니까. 그는 길드를 그만뒀습니다.”

“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신해창은 덤덤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 당황한 진효섭이 자리에서 멈춰 섰다.

“말 그대로입니다. 유진은 국가안보국을 그만두고 나갔습니다. 이제는 저희 길드의 가이드가 아닙니다.”

“그, 그런…….”

진효섭은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만두고 나간 건지 그 이유가 궁금했으나, 차마 바로 묻지 못하고 신해창의 안색을 살폈다. 그래도 본디지 파트너였던 가이드가 그만뒀다는 이야기였기에, 가라앉았을 그의 기분을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신해창은 평소보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진효섭은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어째서, 그만두셨습니까?”

“아마도 제가 앞으로 유진의 본디지 파트너를 이어 갈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해창은 진효섭의 등을 살짝 앞으로 밀며 멈추지 말라는 뜻을 전하곤 천천히 걸었다. 자연스레 진효섭도 걸음을 다시 옮겼다.

“유진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아무리 국가안보국이 최상위 길드라고는 하나, 길드장의 본디지 파트너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상 머물기 싫었을 겁니다. 이해하는 바입니다.”

“그, 그런…… 신해창 에스퍼는 어째서 본디지 파트너를…….”

“이제는 지켜 줘야 할 사람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진효섭은 또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잠깐 멈칫한 정도가 아니었다. 자리에 우뚝 서서 신해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진효섭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그 뜻은, 설마 저를 지켜 주기 위해 유진 가이드를 내치셨다는 말입니까?”

“제 발로 나갔으니 내쳤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디지 파트너를 끊으면, 유진 가이드가 길드를 나가리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예.”

“그, 그렇다면 내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간 건 유진입니다. 그리고 제가 선택한 게 진효섭 가이드일 뿐인, 딱 그 정도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건 제가 바라지 않았던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당황스러움에 진효섭이 고개를 저었으나 신해창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필요했던 일입니다.”

“그래도-”

“진효섭 가이드가 국가안보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유진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제가 진효섭 가이드의 본디지 파트너가 되어야지,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에게 다가가는 것을 쳐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해창은 특유의 강인하고 견고한 시선으로 진효섭을 바라봤다.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라는 게,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어떠한 선택이든 누군가는 만족스럽지 않고, 누군가는 피해를 봅니다. 그렇기에 최선을 선택하는 겁니다.”

“…….”

“유진은 국가안보국이 아니라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효섭 가이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진효섭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신해창의 말은 전부 옳았으므로.

‘내가 너무 무른 걸까.’

하지만 결단코 이런 걸 바란 적은 없었다. 제 안위를 위해 남의 자리까지 탐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이건, 유진 가이드의 자리를 제가 차지한 격이지 않습니까.”

복잡한 마음에 진효섭이 고개를 떨궜다. 금방이라도 이건 아니라며 발걸음을 돌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진효섭은 조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게 어그러진 느낌이었다.

그때, 진효섭을 빤히 바라보던 신해창이 한숨과 함께 작게 말했다.

“진효섭 가이드. 피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유진은 어차피 내년이면 나갈 예정이었습니다. 그게 조금 빨리 앞당겨진 것뿐이니, 그 누구에게도 피해는 없었습니다.”

“예……?”

“아시다시피, 국가안보국은 최소 5년으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내년이 유진의 마지막 해였습니다. 본래, 재계약을 이어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니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단 말입니다.”

신해창은 손수 진효섭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빳빳한 몸가짐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듯 단호한 손짓이었다.

“그러니까 무른 얼굴을 하지 마십시오. 좀 더 덤덤하고, 단호해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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