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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65)화 (16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4화

신해창은 진효섭의 손등을 부드럽게 감쌌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진효섭 가이드가 마음에 듭니다.”

“…….”

“그러니 불행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정한 내용과는 달리 신해창의 어조는 어딘가 모르게 건조했다. 물론 진효섭에게는 특별히 상관없었다.

신해창은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고, 진효섭의 능력을 대단하다고 칭했다.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안단테에게는 그렇게나 섭섭했던 게, 신해창을 대입하니 다행스러웠다. 능력이 마음에 든다면 이 능력이 이어지는 이상, 마음에 들어 할 거라는 뜻이니까.

‘그래. 국가안보국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도망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는 거야.’

문득 안단테에게서 디트리를 겹쳐 봤던 때를 떠올리자 잠깐 치켜들었던 걱정이 무색해졌다.

‘형이 디트리처럼 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

그러니 믿을 수도 없다. 에스퍼의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진효섭은 안단테를 선택할 수 없었다. 신해창 말대로 그에게 잡혀 감금당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나을 테니까.

그때, 힘이 빠진 손등에서 바늘이 따끔거리며 빠져 나갔다.

“수액을 다 맞으신 듯해서.”

“……감사합니다.”

진효섭은 자유가 된 손으로 계약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았다. 한번 결정하고 나니 마음은 빠르게 기울었다. 이내 진효섭은 달싹이는 입술로 어렵게 말을 뱉었다.

“신해창 에스퍼.”

“예. 진효섭 가이드.”

입안에 모래알이 굴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진효섭은 결국 선택했다.

“……계약, 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신해창이 미약하게 웃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 * *

또다시 S급 변형 게이트가 열렸다.

본래라면 폭주 직전이었던 안단테를 들여보내지 않았을 테지만, 그 게이트 속 던전 특징이 독 계열이라는 점과 게이트가 세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닫힐지도 모른다는 결과 때문에 [SSS]는 이번에도 역시 안단테에게 의지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 욕을 먹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역시 변형 게이트로부터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SSS]는 많은 변형 게이트의 특성을 조사해야만 했으니까.

안단테로서는 다른 정보를 얻고 싶었던 상황이지만 순순히 던전으로 들어갔다. 독 계열의 변형 던전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모두의 걱정 속에서 안단테는 염려가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게이트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어려운 던전 내부를 거닐면서도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가득했다.

‘다른 가이드가 단장님의 가이딩을 담당한 적은 없습니다.’

코다의 말은 덤덤했고, 다른 미사여구가 붙지 않았다. 분명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없었단 말이지…….”

안단테는 길드원 중에서도 코다의 말만큼은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가 정직해서, 혹은 다른 길드원보다 신뢰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다른 길드원보다 오래 봐 왔기에. 그래서 그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였다. 그가 본 코다는 거짓말을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므로.

그러나 이번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왜 병원의 CCTV는 코다가 담당한 그 순간부터 꺼져 있었던 걸까. 코다는 우연히 암전된 것 같다고 했다. 본인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 담담함이 그렇게나 거슬릴 수가 없었다. 분명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는데도 말이다.

‘뭘까. 대체 뭐지.’

손으론 기계적으로 괴물을 죽여 나가면서, 머리론 계속 전혀 다른 생각을 이어 갔다.

‘이상해. 이상하긴 한데…… 확신할 수가 없단 말이지.’

정말 이상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이상하지도 않은데 진효섭이 살아 있다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의심하는 건지.

예전의 안단테는 거슬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확히는, 진효섭과 관련된 일만큼은 달랐다. 그가 관련되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판단으로 치우쳤다.

폭주 직전에 완벽한 가이딩을 받고 눈을 떴다. 오랜만에 몸이 상쾌했고, 소금에 절인 것처럼 숨이 죽었던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에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효섭, 그 이름 세 글자만 떠올리면 안단테는 여전히 숨이 가빠졌다. 진효섭이 죽었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던전을 전전하고, 가이딩을 담당했던 가이드를 찾아다니고. 모두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하는 행동들이다.

분명 진효섭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진효섭을 찾아 던전을 전전하게 되는 건지. 왜 가이딩을 해 준 이가 진효섭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건지. 아무래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법을 잊은 듯했다.

“아노 때처럼 시체라도 품에 안아야 받아들일 생각인지…….”

가슴속에 받아 든 아노의 무게가 여전히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진효섭까지 받아 들면, 과연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

안단테가 헛웃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괴물의 심장을 쥐어뜯자 살아 움직이는 것 같던 던전이 잠잠해졌다.

그제야 강인하게만 보이는 손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감정이 치미는 순간은 독이 바짝 올라서 폭주하기 직전의 울렁거림과 꽤 닮아 있었다.

‘이것이 만약 폭주 전조라면 어떠려나. 만약, 여기서 한 번 더 폭주한다면…… 그때는 확신할 수 있을지도.’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쏠렸다. 물론 위험한 생각임은 알고 있다. 저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뿐일 터. 다시 한번 폭주 직전으로 끝나는 요행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이상했지. 왜 거기에 단추가 있었을까.”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놓아둔 것처럼 돌아가는 길에 딱 보기 좋게 있지 않았나. 안단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당시에는 저조한 몸 상태와 진효섭을 잃었다는 허무함에 이성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흠…….”

가이딩을 담당했던 가이드를 찾고 다른 가능성에 집중하느라 조금 늦긴 했지만,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가면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안단테는 기계적으로 던전을 마저 타파한 뒤, 밖으로 나가기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괴물의 사체를 지르밟고 게이트를 넘어가자 바람이 뺨에 닿았다. 안과는 다르게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 그러나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괴물의 피와 함께 나서는 안단테는 전혀 상쾌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단장님!”

“단장님!”

기다렸다는 듯이 쌍둥이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그들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장님, 지금-”

“아, 마침 잘됐네. 너희한테 좀 시킬 게 있어.”

안단테는 다급한 그들의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손에 묻은 핏물을 대충 닦아 냈다. 그러곤 휴대폰을 켜 아까 생각했던 것들을 줄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왜 잘되던 CCTV가 코다가 병실을 맡자마자 꺼졌는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무래도 병원 주변까지 CCTV를 확인해 봐야겠어. 안 되면 그 주위에 뭔가 이상한 흔적이 없는지라도. 아, 대신 코다에게는 비밀로 해. 뭔가 이상하거든.”

“단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쌍둥이는 자꾸 말을 끊는 안단테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쳐 댔다. 하지만 안단테는 심드렁했다. 그에게 중요한 뉴스는 진효섭 말고 없었으므로.

“이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한데. 그때, 주변 CCTV라도 있는지 찾아.”

“그거 필요 없어요!”

“맞아! 이미 진효섭 때문에 난리란 말이에요!”

안단테가 멈칫했다. 표정이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던 안단테가 쌍둥이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눈에는 열감이 가득했다. 쌍둥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찰나가 이상하리만큼 길게 느껴졌다.

“그게…….”

긴장이 온몸을 조였다. 설마, 그의 시체를 찾았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불안이 명치를 두드리는 듯했다. 심장이 뛰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서 아플 지경이었다. 궁금했지만, 동시에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짧은 새 수십 번을 더 고민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안단테가 그들의 입을 막는 일은 없었고, 마침내 쌍둥이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진효섭, 살아 있대요!”

“진효섭, 살아 있대요!”

순간, 안단테는 호흡을 멈췄다. 숨이 탁 트이는 듯했다. 아니, 턱 막히는 것 같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순간을 오롯이 느꼈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눈앞이 게이트를 지날 때처럼 일렁거렸는데, 이게 무슨 감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기쁨인지, 안도인지, 분노인지. 몸을 울리듯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섰다.

이어 놀라울 만큼 정화되었던 깨끗한 몸이 진효섭에게 가이딩 받은 후의 순간과 이어졌다. 진짜 진효섭이었음을 확신하자 머리에 불이 환해졌다. 밝혀진 불에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안단테는 더없이 벅찬 가슴에 말을 잇지 못했는데, 쌍둥이는 반대로 머리를 중구난방으로 헤집었다. 표정을 구긴,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아, 진짜…….”

“미치겠네…….”

쌍둥이는 진효섭이 죽었다는 사실에 침울해했다. 길드의 가이드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그렇게 됐다는 건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효섭이 살아 있다는 걸 말하면서도 그들은 불만스러워 보였다. ……어째서?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들이 말을 이었다.

“아오, 단장님. 그게요. 진효섭이, 그게…….”

리디안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도리안을 흘끔 바라보며 넘겼다.

“……진효섭, 지금 국가안보국에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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