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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64)화 (164/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3화

“……미안해.”

“흠흠. 괜찮아. 나 그동안 새로 단어 배웠어. 그러니까…… 퉁! 이번은 쌤쌤인 걸로 하자. 나도 미안한 거 있으니까.”

“응. 고마워.”

부드러워진 진효섭의 표정에 테디가 작게 헛기침했다. 그때, 다시금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익숙한 인물이 얼굴을 비쳤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신해창 에스퍼.”

진효섭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신해창이 가벼운 손짓으로 그를 막았다.

“아직 미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앉아 계십시오.”

“아닙니다. 정신이 드니 좀 괜찮아졌습니다.”

거절하며 재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신해창이 불쑥 손을 뻗어 진효섭의 뺨을 손등으로 쓸었다. 묘한 접촉에 진효섭이 멈칫했으나 신해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했다.

“아직 안 좋지 않습니까.”

“예……? 아, 예.”

엉거주춤하던 진효섭은 흘끔 눈치를 살피다 얌전히 앉았다. 그 장면을 보던 테디의 눈이 반짝였다. 무엇을 오해하는지 뻔히 보였지만, 지금 정정하면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질 수도 있어 무어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때, 신해창이 테디에게 무언가를 가볍게 건넸다.

“테디 에스퍼. 이 서류를 1층에 있는 비서한테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테디는 길드장이 뭔가를 맡겼다는 사실에 조금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진. 몸조리하고 있어. 나갔다 올게.”

그는 손을 붕붕 흔들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러고서야 신해창은 테디가 있던 자리에 앉았다. 둘의 거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의사가 말하기를, 가이딩 부작용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오래가는 것 같은데…… 원래 그렇습니까?”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이번에 무리를 했나 봅니다.”

진효섭은 아직도 뜨끈한 것 같은 목덜미를 문질렀다.

“하긴, 안단테를 원래대로 돌리는 건 분명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가이딩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안단테는 가이딩을 받고 나서 열두 시간 만에 눈을 떴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당연한 사실을 듣는다는 듯 덤덤하기만 한 대답에 신해창은 감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대단하십니다.”

“상성이 맞아서 그런 걸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SS급이지 않습니까. 역시…….”

무언가 말하려던 신해창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튼 진효섭 가이드. 눈을 뜨시자마자 이런 얘기를 드리게 돼서 죄송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깊은 이야기가 필요할 듯합니다.”

그가 테디를 밖으로 보낸 이유가 이것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또한 그게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지 예상됐기에 진효섭은 조금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예상하셨겠지만, 안단테가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담당했다던 가이드를 하루아침에 모두 만나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암담했다.

“……들킬 것 같습니까?”

“시간문제일 겁니다.”

결국은 이렇게 됐구나. 진효섭은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이제는 어떻게 그의 눈을 피해서 도망쳐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도망치듯이 생활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치기도 하고 마냥 피곤해졌다.

고개를 푹 숙인 진효섭에게 신해창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릴 방법은 이제 한 가지뿐입니다.”

“이건…….”

국가안보국의 가이드 계약서였다. 이미 진효섭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밑에 지장만 찍으면 완성되는 계약서.

“국가안보국 소속 가이드로 들어오십시오.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

“혹여나 오해하실까 봐 말을 덧붙이자면, 제가 길드 계약을 고집하는 건 저라는 에스퍼 혼자만의 힘이 아닌, 국가안보국이라는 길드 자체의 힘을 빌려 오기 위해서입니다.”

신해창은 언젠가 사람들의 앞에 설 때처럼 능변가 기질을 발휘했다.

“국가안보국은 노아피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길드입니다. 1위 길드는 노아피지만, 최고라고 칭해지는 길드는 결국 국가안보국. 그 소속 가이드가 된다는 건,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를 건들지 못하는 대외적인 명분이 될 테죠.”

“…….”

타당했으나 그렇다고 그 방법이 만능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불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죽은 줄 알았던 진효섭이 국가안보국의 가이드가 돼서 나타난다면, 안단테는 어떻게 생각할까. 애절하게 붙잡던 목소리가 분노를 품으려나. 아니면 배신감을 드러내려나.

‘하지만 여기에 사인을 하지 않더라도 내 존재가 들킨다면…… 결국 그렇게 되겠지.’

문득, 방금 테디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모든 걸 다 말해 달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에게 듣는 건 생각보다 섭섭하다고.’

모든 것을 숨기고 말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했던가. 이제껏 제 과거를 포함한 모든 것을 숨기고 만났던 이들 역시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럼…… 형도 마찬가지 아닐까.’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이유가 서로 속내와 과거를 모두 숨기고서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도. 하지만 결국 안단테는 말해 주지 않았나.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은 많은 것을 직접 전해 주었다.

도리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여전히 모든 것을 숨기고 있는 건 진효섭, 자신이다. 겁쟁이처럼 딱딱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조금도 알려 주지 않으려고 했다. 과거도, 섭섭함도, 생존의 여부조차도.

진효섭은 모든 걸 숨기고서 안단테를 사랑했다. 그러나 다른 가이드와 있는 걸 보기 힘들다며 떠났고, 그 결과 안단테는 위험해졌다.

‘심지어 난 형이 다른 가이드에게 완벽하게 가이딩 받을 수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어.’

그저 몸 상태로 예측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 확신했을 뿐이다. 직접 얘기를 나누지 않아 이런 문제가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형의 폭주가 정말 다른 가이드와 상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던전을 맴도는 것이 상성이 맞는 날 찾기 위해서였다면?’

그럼 진효섭의 잘못이 마냥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은 제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때까지 방치했다는 뜻이니까.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는 목숨과 저울질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물론 비약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안단테가 폭주 직전까지 온 게 진효섭의 잘못이 아닐 확률이 더 높기에.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한번 이어지니 끊임없이 부풀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안단테의 애절한 어조가 부정적인 생각에 부채질했다.

바스락, 계약서를 부여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가 구겨졌다. 그때 가만히 기다리던 신해창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고민을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형이 저렇게 된 데 제 탓도 있을 텐데. 제가 피하려고만 드는 것 같습니다. 그, 얘기라도…… 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때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신해창은 정신 차리라는 듯 단호하고도 차갑게 말했다.

“설마. 안단테가 그렇게 된 게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과한 생각이십니다.”

“그렇, 습니까?”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그놈이 제 능력을 뿜어내다가 폭주했는데 그게 왜 진효섭 가이드의 탓입니까.”

“하지만…… 절 찾으려고 그런 거잖습니까.”

“찾아서 손에 넣으려는 욕심 탓이겠죠.”

진효섭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는 신해창은 진실을 말하듯 덤덤했다.

“설마 안단테가 눈 돌아서 찾고 있는 이유가 그저 진효섭 가이드가 그리워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전 그냥 이야기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을 뿐입니다. 사실, 전에 마주쳤을 때도 이야기를 먼저-”

“만나게 된다면, 이야기가 통할 거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안단테의 겉모습에 홀리면 안 됩니다. 지금, 진효섭 가이드가 그놈과 만난다면-”

신해창이 차갑게 눈빛을 빛냈다.

“죽을 때까지 갇혀서 가이딩만 뽑아내는 기계처럼 다뤄질 겁니다. 그럴 놈이라는 걸 진효섭 가이드는 모르니까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놈에게 가이드의 필요성은 오로지 가이딩에 있습니다. 그리고 역가이딩이 가능하다 보니 진심이나 배려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약한 가능성에 마음을 걸어 보시겠다면…….”

신해창은 암담하다는 듯 말을 끌다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가서는 무엇도 돌이킬 수가 없을 겁니다.”

그 어떤 것도 반박할 수 없었다. 기실 진효섭이 생각해 봐도 신해창이 더 이성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진효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과 이어진 수액이 역류하며 붉은 피를 뱉어 냈다. 그러나 진효섭은 쉽게 힘을 풀지 못했다.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분명, 예전에는 주위에서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를 믿고,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사람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했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씁쓸함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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