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61화
“예?”
진효섭의 표정이 당혹스러워졌다.
“왜, 왜 그런 걸…….”
“당장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안단테가 또 폭주 직전 상태가 돼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쭙습니다.”
신해창은 안단테가 폭주 직전이 된다면, 진효섭이 또 가이딩을 하려고 들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묻는 바를 파악했으나 진효섭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무시하지 못할 게 분명할 테니까.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들키지 않고 나오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진효섭의 표정이 절로 어두워졌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안단테가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고 커다란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말이다.
기실 진효섭도 알고 있었다. 신해창이 도와주었다지만 모든 진실을 묻을 수 없다는 것을. 지금 역시 완벽하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신해창의 물음은 당연했고, 앞으로 벌어질 문제를 한시라도 빨리 생각해 둬야만 했다.
하지만 무엇이 정답일까. 그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정말…….’
진효섭은 열띤 이마를 짚었다. 생각해야 하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은 피하고만 싶었다.
한편, 신해창은 진효섭의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걱정을 담고 흔들리는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진효섭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덤덤히 물었다.
“이렇게 평생 도망치듯이 사실 겁니까?”
“……방법이 없잖습니까.”
추궁 같은 말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저도 마땅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안단테를 무시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안단테의 독을 완벽히 해소해 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이상, 에스퍼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효섭이 고개를 더 푹 숙였을 때였다. 신해창이 조금 다른 물음을 던졌다.
“진효섭 가이드는 에스퍼나 가이드가 등급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예……?”
“세상의 많은 이능력자가 높은 등급을 선호하고, 원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등급이 위치를 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뜬금없는 말에 진효섭이 눈을 끔뻑였다.
“높은 등급은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속하기 위한 조건이자,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타고난 성질입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높은 길드에 들어갈 수 있고, 그 위치에 속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잘한 문제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현재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건 높은 등급의 이능력자다. 아무리 낮은 등급의 에스퍼나 가이드가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은 위에 설 수 없다.
“약육강식. 이능력자가 있는 이상,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다. 약육강식.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이가 된다. 진효섭은 더 우울해졌다. 그 논리에 따르자면, 진효섭은 안단테의 먹이였으니까.
신해창이 단순히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고 포기하라는 의미로 꺼낸 말은 아니겠지만, 날카로운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진효섭 가이드가 상위 포식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가이드입니다.”
“예. 그리고 S급입니다.”
진효섭은 뜨거운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SS급 에스퍼인 형 앞에서는 그저 S급일 뿐인 가이드입니다.”
그것도 과거로 인해 깊은 가이딩은 거부하는 S급이다. 아무리 힘이 있다고는 하나 쓰지 못한다면 부질없다. 그러니 하자 있는 S급이라는 말이 자신에게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러나 신해창은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보통 S급 가이드라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진효섭 가이드는 SS급 에스퍼와 상성이 맞는 유일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주 큰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결국 안단테가 진효섭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진효섭은 그 유일한 점이 누구보다 버거웠고, 신해창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말씀하시는 바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해창 에스퍼.”
“안단테와 동등할 수 있는 유일한 가이드라는 뜻입니다. 또한 동등하다는 것은 고능력자라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상위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모든 길드에서 환영하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진효섭이 눈을 크게 떴다. 비로소 신해창이 꺼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섭 가이드는 뭐든 혼자 해결하려는 듯하지만, 안단테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효섭 가이드가 필요한 것은 안단테의 집착을 막아 줄 든든한 아군이 아닙니까?”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신해창은 그대로 가볍게 인사를 끝내고, 뒤돌아 걸어갔다. 진효섭은 그를 붙잡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다 몸이 더는 견딜 수 없을 때쯤이 돼서야 셀리나의 집으로 들어갔다.
늦은 밤이었기에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진효섭은 미리 얘기를 들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툭, 문이 닫히자마자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국가안보국에 들어오라는 권유. 길드장인 신해창이 자진해서 지켜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안단테의 집착을 막아 줄, 든든한 아군이 되어 주겠다고.
막막한 상황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일이었으나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국가안보국에 들어간다는 건 공식적으로 안단테에게 자신의 생존을 알리는 일이었으므로.
분명 안단테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터. 아무리 신해창이 지켜 주겠다고 말했지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안단테의 분노를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지 마. 효섭아, 제발…….’
귀 끝에 열이 올랐다. 아직도 안단테의 애처롭던 외침이 귀에 맴돌았다. 진효섭은 들끓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다리를 끌어안았다. 동그랗게 몸을 말아 봤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약효 때문에 제대로 기억도 하지 못할 거면서. 혼란스러우면서. 현실인지 가상인지도 모르고서 안단테는 몽롱한 눈을 하고는 진효섭의 이름을 불렀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손을 뻗었다.
하나 남은 왼팔의 쇠사슬이 끊어질 듯 덜컹거린 탓에 진효섭은 굳어 있던 다리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자꾸만 잊었던 마음이 치켜드는 듯했다.
진효섭은 두 귀를 꾹 막았다. 새삼스레 안단테가 제안한 대화를 무시하고 떠났던 마지막이 가슴에 걸렸다. 그때는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방법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도 됐다.
‘그 말만큼은 들었어야 했던 걸까.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왔으려나.’
생각을 이어 가던 진효섭은 곧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안단테는 보이는 대로 해석해선 안 된다. 그는 남을 속이는 데 능숙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사방팔방 티 내고 다니는 자신과는 달랐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고, 괴로웠지 않나. 바보처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진효섭은 애타게 제 이름을 부르던 안단테의 모습을 잊기 위해 두 다리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재차 다짐했다. 어쩐지, 물어뜯긴 목덜미에서 열기가 퍼지는 듯했다.
* * *
데구루루, 눈 굴리는 데 소리가 났다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눈앞의 가이드는 할 일이 그것밖에 없다는 양 눈을 열심히 굴려 댔다. 거기다가 손끝을 꼼지락거리는 모양새까지. 반사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는 바람에 안단테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이드가 또다시 데구루루 눈을 굴렸다. 당황스러운 티가 났다. 잡은 손을 통해 가이딩이 이어지고 있는데,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짜증이 날 정도라 안단테의 얼굴이 더 불편해졌다.
“그쪽이 내 가이딩을 했었다고.”
“네? 아, 네. 그랬죠.”
가이드는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몸이 괜찮으신 걸 보니 가이딩은 잘된 것 같아, 저, 다행입니다.”
더듬더듬 이어진 말에는 자기 힘이 분명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안단테는 어이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쪽 덕에 내 몸이 괜찮아졌다고, 누가 그래?”
“네? 아, 아닌가요? 다, 다른 쪽인가. 사실 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손을 대자마자 뭘 하기도 전에 쓰러져서…….”
가이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안단테를 흘끗 바라봤다. SS급 에스퍼는 상위급 가이드에게조차 유명인이라 그런지 조금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맞아. 그쪽이 내 가이딩을 마지막으로 했다는 건 들었어. 그런데…….”
안단테는 아까 전까지 가이딩하느라 맞잡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렸다.
“상성이 꽝이잖아.”
가이드 역시 반박하지 못했다. 상성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은 서로 느낀 바였으므로.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그때는 가이딩 증폭기를 사용해서 맞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가이딩 증폭기?”
안단테의 눈이 커졌다. 그 물건을 완벽하게 잊고 있었던 탓이다.
“아, 그랬지. 맞아. 그게 있었어.”
가이딩 증폭기. 아무리 비밀리에 지니고 있다 한들 폭주 직전인 에스퍼에게 그걸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정말 가이딩 증폭기 덕분에 이 정도로 회복한 걸까. 안단테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