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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61)화 (16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60화

폭주의 시작은 던전에서 작은 단추를 발견한 것부터였다.

보스를 죽이고 밖으로 나가려던 때, 시야에 무언가 거슬리는 물건이 보였다. 갈색의 조그마한 단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진효섭이 스쳤다. 정확히는 그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가방. 거기에 달려 있던 단추와 똑같았다.

그게 왜 여기에 있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을 잇기도 전, 머리가 새하얘졌다. 직접 찢어발긴 괴물에게서 반쯤 먹힌 가방을 발견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게 왜 여기……. 여기 있으면, 던전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 가능성이, 있을…… 아니, 있을 수 없어.’

찢은 괴물의 배 속에 있어야 할 가방의 물품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이 물건의 주인이 여기로 흘러 들어온 게 아니라면, 있을 리 없는 물건이지 않나. 거기까지 생각하자 억누르고 있던 힘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울렁거렸다.

그날 봤던 진효섭의 가방에 단추가 제대로 달려 있었던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았다. 진효섭만을 보느라, 그런 사소한 것을 눈에 담고 기억해 두지 않았다. 생각은 한없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쳤다.

솔직히 과한 생각이었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차분히 바라본다면 이상하단 걸 충분히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온전하지 못한 몸과 일렁이는 독성, 거기다 방금까지 보스를 해치우고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마주한 물건인지라 안단테는 평소처럼 상황을 냉철하게 보지 못했다.

왜. 어째서. 대체. 물음표가 붙어서 완성되는 단어들이 입안에 맴돌았다. 동시에 어디선가 뚝- 소리가 났다. 퓨즈가 끊기고, 뭔가가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그게 안단테가 기억하는 마지막 온전한 기억이었다.

그 뒤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은 살기를 억누르는 데 집중하느라 정신없었다. 다만 중간중간 끊기는 기억 사이에 노아피 길드원의 굳은 표정이나 얼어붙은 발 따위가 떠올랐다. 그리고, 몸에 끊임없이 주입되는 약 또한.

‘……약?’

흐릿한 정신 속에서 목덜미에 약물을 주사하던 덜덜 떨리는 손끝이 떠올랐다. 아까 꿨던 꿈의 연속일까. 꿈에서 봤던 것으로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뭐야, 뭐냐고.”

안단테는 엄지로 관자놀이를 꽉 눌렀다.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기분이 더러웠다.

상처까지 없어질 정도로 완벽하게 가이딩을 받았기에 독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억누를 필요도, 폭주하지 않기 위해서 잠도 자지 못한 채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냥 편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뇌를 주무른 것같이 불쾌했다.

“씹. 이건 무슨, 환각제를 주입한 것도 아니고.”

정신이나 기억을 조작하는 약물을 투입하면, 이처럼 불쾌감이 치솟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폭주 직전인 SS급에게 그런 것을 주입할 리가 없다. 그들이 주사한 건 분명 안정제 계열일 터.

“하지만 안정제만으로는 이런 묘한 감각이 들 리가 없는데. 설마……. 아니, 그럴 리가. 그래도…….”

환각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가이딩을 한 가이드를 기억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안단테가 해석을 마치고선 마른침을 삼켰다. 실낱같은 희망이 끊어졌던 순간, 기분이 얼마나 바닥을 치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방금 떠올린 가정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벌컥- 문을 열어젖힌 안단테가 주위를 훑었다.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쌍둥이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단장님!”

“단장님!”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과 반가움이 겹쳐 있었다.

“와, 이제 괜찮아요?”

“와, 다행이다. 가이딩이 도움 됐나 보네요.”

“가이딩? 무슨 가이딩.”

안단테가 쌍둥이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 그에게 익숙한 쌍둥이조차 움칠거릴 정도였다.

“네? 무슨 가이딩이냐니…….”

“그게 무슨 말이지…….”

서로를 흘끔거리는 쌍둥이의 모습에 안단테가 재차 물었다.

“누가 가이딩했는데.”

“그거야 여러 사람이죠. 그치?”

“응. 시도했던 건 세 명이었어요. 그 안에 국가안보국의 유진도 있었고. 나머지 둘은……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나도 기억은 안 나는데. 근데 유명한 길드의 가이드랬어요. 대충 10위 안이겠죠.”

그들은 타 길드 가이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한편, 안단테는 여전히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둘 다?”

쌍둥이가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안단테는 대답을 부정하고 싶은 듯 계속해서 물었다.

“정말 다 몰라? 직접 얼굴 봤어? 나랑 가이딩하는 것도?”

“그렇다니까요?”

계속해서 묻는 안단테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쌍둥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래요? 혹시, 몸이 이상하기라도 해요? 아니지, 지금 멀쩡한 거 보면 잘된 거 아닌가?”

“다시 연락해 볼까요? 아니면 의사를 불러도 되고요.”

“……아니. 의사는 필요 없어.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아니까.”

지금 안단테에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이어 가던 안단테가 쌍둥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들의 의중이나 거짓을 파악하려는 듯 깊은 시선이었다. 그러자 쌍둥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심상치 않은 눈빛에 둘은 서로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안단테는 쌍둥이를 빤히 살피다 거짓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맥이 탁 풀렸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환각제를 맞은 것 같다는 느낌도 착각에 불과하다. 기대하던 것이 희망만으로 끝맺자 금세 기분이 저조해졌다.

하지만 안단테의 표정은 실망으로 물들지 않았다. 여전히 미묘했던 탓이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

상쾌해진 몸이 자꾸만 익숙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심장이 제 속도를 찾지 못하고 두근거렸다. 어쩌면, 그 작은 가능성을 놓지 못해서 애써 긍정 회로를 돌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술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리디안, 도리안.”

“네?”

“예?”

“내 가이딩을 맡았다던 그 두 명의 가이드. 누군지 알아보고 바로 약속 잡아. 직접 만나서 확인해 봐야겠어.”

쌍둥이는 의아했지만 별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뒤로하고 안단테는 텅 빈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제 가이딩을 맡은 가이드. 만약 그들 중에 상성이 맞는 이가 없다면…… 지금, 제 몸 상태를 이렇게 최상으로 끌어 올린 이가 따로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안단테가 아는 한, 그건 한 명밖에 없었다.

‘진효섭…….’

안단테는 빈손을 꽉 쥐었다. 착각 탓인지 그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맴도는 듯했다. 희박하기 그지없는 확률임을 알면서도 희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착각이었다는 걸 알면 곧바로 나락으로 치닫는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문득 꿈속에서 봤던 진효섭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말 그대로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반년이 지났건만, 왜 그의 얼굴은 이토록 뚜렷한지. 걸음을 옮기는 안단테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 * *

휘청, 온몸에 힘을 주었는데도 진효섭은 비틀거렸다. 신해창이 그런 진효섭을 부축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재빠른 대답에도 신해창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변함없었다. 진효섭은 자신의 몰골이 그리 심한가 싶어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봤다. 언뜻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나 신해창은 안단테가 있는 병원으로 안내했을 때보다도 더 심각해 보였다.

돌연 신해창이 진효섭의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아무래도 제대로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열이 심각합니다. 계속 코피를 쏟았던 것도 그렇고, 몸이 정상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가이드에게 등급이 높은 에스퍼의 가이딩은 부담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 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음에도 진효섭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계속 여기 있으려니 조금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검사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지금은…… 그냥 좀 쉬고 싶습니다.”

진효섭은 낮게 한숨을 쉬며 목덜미를 쓸었다.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이건 가이딩의 부작용이었다. 한계 이상까지 힘을 끌어 올리면 생기는 부작용. 그것도 감기와 같은 열이 아니라 단전에서 오르는 열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라도 꼭 검사는 받아 보십시오. 심상치 않습니다.”

“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신해창은 더 권하지 않고 진효섭이 원하는 대로 곧장 그를 셀리나의 집까지 손수 데려다줬다. 이윽고 두 사람은 셀리나의 집 근처 골목에 도착했다.

진효섭이 가볍게 신해창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신해창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전에 주려다 돌려받았던 휴대폰이었다.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리로 연락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얼른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진효섭은 전과는 달리 바로 받아 들었다. 슬슬 본격적으로 단전에서 열기가 퍼지는 듯했다.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고 걸을 수 있었던 건, 안단테와 깊은 관계를 맺어 어느 정도 해소된 덕분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진효섭은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짙은 숨을 삼켰다.

“저, 그럼 이만…….”

“피곤하신 건 알지만, 가시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진효섭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신해창이 쓸데없는 말을 이으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만큼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예. 말씀하십시오.”

“만약 안단테에게 살아 있다는 걸 들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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