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159)화 (159/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58화

신해창은 병실 문을 진득하게 바라보며 그 안에 있을 진효섭을 생각했다. 긴장했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두려움은 없던 뒷모습. 중요한 일을 앞두니 그의 장점이 확실하게 와닿았다.

폭주 직전에 속박된 안단테. 그를 앞에 둔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두려워했다. 유명한 S급 가이드들이었음에도 손을 떨었고, 도망치고 싶어 했다.

안단테의 가이딩을 담당해 본 적 없기에 그런 거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가이딩을 시도했던 세 명의 가이드에는 유진도 포함돼 있었고, 그는 안단테의 가이딩이 처음도 아니면서 손대기 어려워했으니까.

사실 신해창을 제외한 그 자리의 모든 에스퍼는 그런 가이드들을 이해했다. 안단테에게 손을 대는 건, 같은 에스퍼조차 지뢰에 손을 대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기에.

그러나 진효섭은 그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먼저 나섰다. 겁이 많고 똑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했다.

닫힌 문을 빤히 바라보던 신해창의 눈빛이 묘해졌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멀리서 다가오는 이는 모습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신해창의 앞에 섰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야만 하는 곳에서 타인을 만났는데도 신해창은 덤덤했다.

‘이것도 의외란 말이지.’

신해창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는 안단테의 병실 앞으로 다가가 한 번 열렸던 문을 다시 설정했다.

“마지막, 딱 한 번만 더 열릴 겁니다.”

“알았다.”

남자는 딱딱한 태도를 고수하며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설득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신해창은 진효섭을 만나러 가기 앞서, 코다에게 연락을 취했었다. 그나마 노아피 중에서 가장 말이 통하는 에스퍼였기 때문이다. 물론 설득에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진 못했다. 그는 안단테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보였으니까. 성실하기도 했고.

하지만 의외로 코다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효섭이 안단테의 가이딩을 해 준다면, 살아 있다는 말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물론 신해창은 그 약속을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어차피 끝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의 시간을 끌 수만 있으면 된다. 아주 조금의 시간만.

조력자 덕분에 손을 쓰지 않고 쉽게 그 시간을 얻었으니 신해창은 지금 상황에 만족했다. 안단테는 목숨을 건지고, 진효섭은 그에게 들키지 않는다. 노아피는 길드장을 잃지 않아도 되며, 신해창은 좋은 가이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발판을 얻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이제 살아 나오는 것만 남았군.’

신해창은 복도에 등을 대고 눈을 병실 문에 고정했다. 완벽한 방음으로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다. 진효섭이 팔찌의 버튼을 누르면 바로 뛰어 들어갈 수 있도록.

부디 두 사람이 모두 건강하기를 신해창은 진심으로 바랐다.

* * *

철컥, 문이 닫혔다. 보통 문이 닫힐 때 나는 소리와는 달라서인지 소름이 돋았다. 스스로 걸어 들어왔는데도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진효섭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병실 침대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주춤, 진효섭은 멈춰 서서 침대 위에 있는 안단테를 멍하니 바라봤다.

기계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선이 안단테의 벗은 상체에 연결돼 있었다. 중환자 같은 모양새였지만, 자세히 보면 환자보다는 범죄자 취급에 더 가까웠다. 팔다리는 복잡한 글씨가 새겨진 쇠사슬에 엮여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스크래치가 심했다. 깔끔히 정리된 병실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진효섭은 할 말을 잃었다. 짐승을 속박하고 가둔 것 같은 모습에 가슴이 지끈거렸다. 어떠한 순간에도 당당하던 남자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얼굴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 뺨까지 올라온 푸른 핏줄을 제외하고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변함없었다. 아니, 약간 마른 것도 같았다. 눈 밑이 새까맣게 된 것도 같고.

저도 모르게 손이 뻗어졌으나 손끝은 얼굴에 닿지 못하고 근처를 서성였다. 이대로 접촉하면 끊임없이 힘을 뺏길 터. 상성이 좋다고는 하나, 접촉만으로 굶주린 안단테를 감당할 수 없다.

주춤거리던 진효섭은 결국 그에게 닿지 못한 손으로 제 가슴을 꾹 눌렀다.

‘……심장이 이상해.’

안단테는 SS급 에스퍼라 그런지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먹지 않아도 마르지 않고. 자지 않는다고 피곤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수척해 보이는 것도, 눈 밑이 새까맣게 보이는 것도 모두 착각이리라.

그러나 신경이 쓰였다. 손톱 옆에 일어난 작은 거스러미가 심장에 돋아난 것처럼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보이지도 않아 깎아 낼 수가 없어서 난감하고, 불편했다. 진효섭은 애꿎은 손톱을 긁어내렸다.

오랜만에 맡는 스모크 향이 폐를 가득 채우자 과거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나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끝내 이렇게 제 발로 그의 앞에 섰다.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멀어지려고 해도 주위는 언제나 안단테의 소식으로 들썩였다. 마치 안단테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

‘역시…… 나는 유명한 사람은 싫은 것 같아, 티나.’

폭주 직전의 에스퍼를 눈앞에 두고 하기엔 맞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티나를 떠올리니 긴장이 한층 풀렸다.

“후우…….”

진효섭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실 병실에 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정신을 잃은 이에게 어떻게 가이딩할지. 가장 효과가 좋은 가이딩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혼자 행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물론 전에 한 번 해 본 적은 있지만…… 정신 잃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가이딩하는 것은 또 달랐다.

‘아냐, 망설일 시간 없어.’

진효섭은 고개를 저어 민망함을 털어 냈다. 바보 같은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도 후회할 일이 쌓이는데, 눈앞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자.’

결심과 동시에 진효섭이 주사기를 그대로 안단테의 목에 가져갔다. 떨리는 손이 조심스레 주사기를 꽂았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통해 투명한 액체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윽고 진효섭이 주사기를 뽑아 든 순간, 안단테가 번쩍 눈을 떴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진효섭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이렇게 눈을 마주치면, 제아무리 신해창이라고 해도 숨겨 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몰려들어 몸을 주춤거렸을 때였다.

“흐, 크, 흣…….”

안단테가 눈을 깜빡이며 힘겨운 숨을 토해 냈다. 진효섭을 옆에 두고도 시선은 다른 곳을 전전했다. 표정도 평소 같지 않은 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효섭에게는 다행인 일이지만, 그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여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불안하게 눈을 끔뻑이는 안단테를 두고 진효섭이 손바닥으로 베갯잇을 짚었다. 입안 점막 가이딩으로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먼저 가늠해야 했다.

안단테의 입술을 훔치기 위해 진효섭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안단테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 모양이 마치 ‘효섭아’라고 부르는 듯해 몸을 경직한 진효섭이 안단테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안단테는 눈을 깜빡거리기만 할 뿐, 진효섭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안개가 낀 듯 몽롱한 눈빛. 그러나 입술은 분명 그를 부르고 있었다.

“진, 효섭…….”

베개를 짚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진효섭이 베갯잇을 꾹 누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안단테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효섭, 아……. 진효, 섭…….”

제정신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단테는 진효섭의 이름만을 불렀다. 그 어조가 애절해서, 너무 슬퍼서, 진효섭은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효섭-”

그대로 안단테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입술을 붙이고, 움직이려 드는 혀를 꾹 내리눌렀다. 질척거리는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을 만큼 입술이 깊게 겹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꼴사납게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점막이 닿자 복잡한 생각이 모두 달아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힘이 빠져나가고, 속이 뒤틀렸다. 엄청난 양의 힘이 순식간에 뽑혀 나가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바닥이 푹 꺼지고 팔다리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듯했다.

그제야 진효섭은 다른 가이드가 가이딩을 시도하자마자 쓰러진 이유를 알아차렸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싶었지만, 안단테의 혀가 입술 틈을 비집고 들어와 제집인 양 움직이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하아…….”

안단테에게서 만족스러운 숨이 터져 나왔다. 진효섭은 눈앞이 번쩍거리는 와중 몸을 가누기 위해 팔다리에 힘을 줬다.

다행히도, 처음을 견디고 나니 조금 나아졌다. 진효섭은 입술을 마주한 채로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확인해 봤다. 몇 분 지나지 않았건만,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몸에 힘이 충만한 상태였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니, 어쩌면 컨디션이 좋았기에 기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걸지도.’

진효섭은 정신을 다잡았다. 가이딩에 목마른 몸이 힘을 빨아들이는 속도는 정상적이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효섭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계치까지 전해 줄 생각이었으므로 오히려 힘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집중해 건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