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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58)화 (15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57화

“볼일? 어어……. 저녁 먹고 가면 안 되는 거야? 맛있게 만들어 놨는데.”

“죄송합니다.”

모녀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으음. 어쩔 수 없지.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너도 오랜만에 온 한국이니까 여러 볼일이 있겠다. 얼른 가 봐. 다음에 또 준비해 줄게. 와인도 잠깐 보관해 둬야겠어. 같이 마시는 게 제일 맛있잖니.”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진효섭이 손끝을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이내 진효섭은 셀레나에게 가벼운 인사를 전했다. 나가기 전,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티나의 머리도 쓰다듬어 줬다.

안단테의 가이딩을 끝내고, 몸을 회복할 때까지는 그들의 집에서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그에 앞서 들른 건, 몸 상태가 괜찮을 때 미리 인사하기 위해서였다.

들키지 않고 무사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 머리에 계속 되새겼지만, 긴장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내심 다음이 없지 않을까. 들켜서 이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아냐. 자꾸 최악을 생각하지 말자. 계획대로만 되면 돌아올 수 있어. 결코 마지막 인사가 아니야.’

진효섭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밖에 나서자마자 준비해 온 검은 모자를 가방에서 꺼내 눌러썼다. 더불어 검은 마스크까지 쓰자 얼굴이 완벽하게 가려졌다. 넉넉한 집업을 입고 있었기에 몸 선도 잘 보이지 않을 터. 아무리 진효섭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스쳐 지나가면 모를 만큼 완벽한 모습이었다.

진효섭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유독 어두워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텅 빈 컨테이너 앞에 도착하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던 안쪽에서 신해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는 하셨습니까.”

“예.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따라오십시오.”

진효섭은 신해창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애써 덤덤한 척 걸었지만, 심장은 세차게 두근거렸다. 이 끝에 도착할 곳이 어딘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진효섭은 최대한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며 신해창을 따라 걸었다. 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길 끝에 있는 이동 포털이 보였다. 신해창은 그 게이트를 앞두고서야 뒤를 돌아봤다.

드디어.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여기를 통과하면, 곧장 안단테가 있을 병원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준비는 제가 다 해 놨으니 들어가서 가이딩으로 급한 불만 끄고 나오시면 됩니다. 다만, 명심하셔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뉴스에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안단테의 폭주를 막은 건 시간이 꽤 지나서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폭주했을 법한 긴박한 상황에서 멈춰진 터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진효섭이 긴장으로 뻣뻣한 목을 움직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의외였다.

“그간 한국의 S급 가이드 여럿이 안단테의 가이딩을 시도했습니다.”

“예, 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컸는데, 왜 가이딩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했던 걸까. 진효섭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가이드에게 이미 가이딩을 받은 상태라면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때, 진효섭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신해창이 말했다.

“하지만 조금도 소용없었습니다. 도리어, S급 모두가 손을 대고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기절하듯 쓰러졌습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심장에 무리가 갔다고 합니다. 아마 역가이딩의 부작용일 겁니다.”

“그, 렇습니까…….”

“역시. 안단테의 역가이딩에 대해선 알고 계셨나 봅니다. 하지만 폭주 직전의 에스퍼에게 부어야 할 가이딩의 양은 최소 두 배. 혹은 그 이상일 확률이 높습니다. S급 세 명이 거쳤다고 해서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

“진효섭 가이드도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는 건 저 역시 가이딩을 받았기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SS급 에스퍼입니다. 그것도 폭주 직전이니, 예전에 했던 가이딩을 생각하고 다가가셔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접촉보다는 곧바로 점막 가이딩을 시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신해창은 얼굴의 반이 모자에 가려 보이질 않는 진효섭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진효섭 가이드가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기에 넘어가겠습니다.”

“예.”

“그리고, 안단테는 속박된 상태지만…… 가이딩에 흥분하면 속박을 풀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 다소 걱정스럽습니다. 위험할 시 제게 연락할 수 있는 통신수단을 준비했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제가 그 자리에 함께 있어 드리겠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는 이 일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두 갈래의 제안을 했다. 당연히 후자가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진효섭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보고 있다면 가이딩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 테니까.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진효섭 가이드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려 주듯 신해창이 준비한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고마움과 동시에 두려움과 긴장감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진효섭은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그가 하는 조언을 모두 귀담아들었다.

“여기. 이걸 받으십시오.”

“이건…….”

그가 건넨 건 일반 주사기보다 훨씬 더 크고 예리한 주사기였다.

“안정제를 열 배로 농축한 약입니다. 안단테를 제압할 때도 썼던 약이므로, 효과는 확실할 겁니다. 다만, 제가 임의로 그곳에 환각제를 섞었습니다.”

“화, 환각제 말입니까?”

“예. 물론 SS급 에스퍼는 S급 에스퍼보다도 약물이나 상처에 더 강하고, 약이 잘 들지 않기에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야 안정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가이딩 전, 목덜미에 주사하십시오.”

진효섭은 주사기를 가만히 받아 들었다. 투명한 액체를 손에 쥐자 가슴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남은 건 진효섭 가이드를 안단테가 있는 병실까지 안내하는 것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진효섭 가이드의 몫이 될 겁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긴장한 기색이 선연했으나 하지 않겠다고 몸을 빼진 않았다. 오히려,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끝낸 듯 신해창이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효섭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뒤따랐다. 조심스레 게이트로 발을 들이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한순간뿐이었다. 순식간에 주위가 일그러지더니 몸이 중력을 잃고 부유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를 만큼 신비한 어둠이 온몸을 감쌌다.

찰나의 어지러움을 끝으로 발끝에 딱딱한 바닥이 느껴졌다. 동시에 전혀 다른 주위가 나타났다. 아까와 같은 골목임은 확실했는데, 풍경이 달랐다.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가득했고 비릿한 물 내가 풍겼다.

신해창은 말없이 고갯짓했다. 진효섭은 다시 그를 따라 걸었다. 바로 앞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하 복도가 나왔다. 둘은 그 끝으로 향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엄청난 크기의 병원인 듯 병실로 향하는 데만 오래 걸렸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걷는 내내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환자도, 간호사도, 의사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폐쇄 병동 같았다. 그 차가운 공기에 절로 닭살이 돋았다.

이윽고 신해창은 제일 위층 복도의 맨 끝. 가장 안쪽 방 앞에 섰다. 그 방 안에 누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시간은 총 네 시간. 하지만 최대 네 시간인 겁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지금, 웬만하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안쪽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들키지 않고 원만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효섭은 떨리는 목소리가 들킬까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걸 받아 드십시오.”

신해창은 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팔목에 감는 스포츠 밴드를 건넸다. 중앙에 솟아난 작은 버튼이 눈에 띄었다.

“내부는 시야 차단과 함께 방음도 뛰어나서 소란이 일어도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위험할 때 누르십시오. 제가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진효섭은 신해창이 준 밴드를 팔목에 두르고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말 들어갈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후…….”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병실 쪽을 바라봤다.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꼼꼼히 막아 둔 모양새였지만, 진효섭은 넘실거리는 향을 맡을 수 있었다.

‘폭주하면 이토록 향이 진해지는 걸까.’

밖에서 맡는 것뿐인데도 허리에 힘이 빠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더 심할지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걱정할 시간조차 없었다. 정해진 시간 내 해결하고 나오려면 1분이라도 더 빨리 들어가야만 했다.

다시 한번 다짐한 진효섭이 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 신해창이 뒤에서 나직하게 말했다.

“절대로 무리하지 마십시오. 목숨이 최우선입니다.”

“……예.”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진효섭이 문을 열었다. 안으로 발을 들임과 동시에 문이 탁,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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