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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57)화 (157/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56화

신해창의 도움은 진효섭에게 너무나도 간절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도와 달라 부탁하고 싶은 정도였는데, 자진해서 나서 준다니 기뻐할 일이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도리어 불안을 느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겁니까?”

“어째서, 말입니까.”

달각. 신해창은 어느새 동이 난 커피를 내려놨다. 반면 진효섭의 것은 한 입도 대지 않은 채였다. 한 김 식은 커피를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의 시선은 처음보다도 더 팽팽했다.

“그렇군요. 진효섭 가이드가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예? 그게 무슨…….”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는 진효섭에 신해창이 덤덤히 말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진효섭 가이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 그 당시 진효섭 가이드는 이미 다른 길드에 속해 있었고, 그 길드에 마음을 다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신해창이 처음과는 조금 다른 얼굴로 가득 찬 진효섭의 커피 잔을 건드렸다. 손이 맞닿은 것도 아니건만, 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진효섭 가이드는 안단테를 피하고자 하고, 실제로 그의 곁에 있으면 힘들어질 겁니다. 그걸 알게 된 이상, 돕는 건 당연합니다.”

“……들키게 되면 안단테 에스퍼와 사이가 어긋나더라도 말입니까?”

형이 아닌 안단테 에스퍼라고 말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세상을 주름잡는 노아피. 1위 길드의 길드장. 사이가 어긋나서 좋을 것은 없다. 그건 신해창도 아주 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그는 여전히 덤덤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앞에 두고도 언제나 시계를 흘끔거리던 신해창이 이번만큼은 휴대폰 한 번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치 눈앞의 진효섭이 더 중요하다는 듯. 진효섭은 더 혼란스러워졌으나 복잡한 그와 달리 신해창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전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했을 뿐입니다.”

즉, 안단테와의 사이보다 진효섭과의 사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였다.

“진효섭 가이드는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전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건, 길드장으로서입니까?”

묘한 미소가 신해창의 입가에 걸렸다.

“한 명의 에스퍼로서도 같은 생각입니다. 어느 쪽이든 제게는 진효섭 가이드를 도울 이유가 충분하니 다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딱히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진효섭 가이드와 친분을 쌓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 이유로 어떻게…….”

“제게는 충분한 이유입니다.”

진효섭은 다시금 시선을 떨궈 식은 아메리카노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특별히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진효섭은 쉽사리 경계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전화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까.”

“전화 말입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듯 신해창은 잠깐 침묵을 잇다가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어떤 통화를 말하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기실 진효섭은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신해창은 안단테와 한편인 양 위치를 물었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안단테가 진효섭 가이드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 한국 보안 정보를 모두 공유하라며 별의별 것을 다 들먹이며 협박하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협박이라는 말에 진효섭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러나 신해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겼다.

“물론, 이후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신해창은 지금 국가안보국의 위치가 더 이상 안단테의 협박에 굴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것을 강조했다.

“안단테는 계속해서 진효섭 가이드를 찾았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계속 말입니다. 안단테와 상성이 좋다는 건 그때 알아차렸습니다.”

“…….”

“상성이 맞는 가이드가 없는 안단테에게는 유일하다고도 할 수 있으니…… 같은 에스퍼로서 그가 미치는 것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물론, 그렇기에 진효섭 가이드가 더 위험해질 것도 확신합니다.”

신해창은 확신하듯 힘주어 말했다.

“한 번 도망친 가이드에게 쏟아질 집착은 지독할 겁니다. 그 상대가 안단테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진효섭을 앞에 두고 신해창은 진중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방금은 진효섭 가이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이 넉넉하진 않습니다.”

“…….”

“웬만하면 3일 안에 결정을 내리시고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해창은 품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내 건넸다.

“도움을 받길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저는 그 어떤 정보도 발설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멍한 진효섭을 두고 신해창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진효섭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했다. 그러나 진효섭은 신해창이 자리에서 뜨기도 전에, 휴대폰을 그에게 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신해창의 표정이 묘해졌다.

“도움이 필요 없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게 받고 싶습니다. 다만…… 시간을 더 주신다고 해도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 돌려드리는 겁니다.”

진효섭은 신해창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하려던 일이다. 이미 고민은 충분히 했고, 신해창이 도와준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도와주십시오. 신해창 에스퍼.”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까.”

“예.”

시간을 끌어 봤자 결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효섭은 안단테가 죽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건, 형을 위해서가 아니야.’

한때 함께했던 에스퍼가 더는 죽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이딩을 받지 못해 폭주하는 죽음이라니. 그것만큼은 더욱이 안 된다.

또한, 이 결심은 티나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지금의 안단테가 사람들에게 괴물이라 불리든, 두려움의 대상이든, 결국 세상은 그를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진효섭은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결정했다. 스스로를 위해서. 티나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서.

지금은 용기가 필요한 때였다.

* * *

“진!”

티나는 환하게 웃으며 진효섭에게 와락 안겼다.

“뭐야! 한국 안 온다더니!”

“응……. 그러려고 했는데, 티나랑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서 잠깐 한국에 들렀어. 당분간 있을 수도 있고.”

“정말? 신난다!”

티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진효섭에게 매달렸다. 기쁨이 흘러넘치는 얼굴이었다.

“어머, 진.”

“오랜만입니다. 셀레나.”

셀레나 역시 진효섭을 반기며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정말 잘 생각했어. 널 거기 두고 와서 어찌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이번에 폭주한 에스퍼 때문에 온 거지? 휴,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한국은 안전할 거야.”

진효섭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폭주한 에스퍼가 지금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 듯했다. 뉴스에도 아르헨티나의 병원에 있다고 적혀 있었으니 오해할 법했다.

그러나 그들이 걱정할까 싶어 진효섭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예. 당분간 실례하겠습니다.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어머, 실례는 무슨. 길든 짧든 상관없어. 평생 같이 살아도 되니까, 진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그녀의 말에 진효섭은 감사하다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심스레 와인을 건넸다.

“이건 선물입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는지 셀레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인을 훑던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

“우리 사이에 무슨 선물을 다……. 어머, 근데 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돈이 있어도 못 구한다는 와인인데!”

와인 마니아인 셀레나가 눈을 번쩍였다. 진효섭은 와인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난 거야?”

“어쩌다 보니 받게 됐습니다. 전 와인을 주로 마시지 않는 편이라, 셀레나에게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어머, 진도 참…….”

셀레나가 와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그를 이끌었다.

“잘됐어. 나도 진이 온다고 해서 월남쌈을 준비했거든. 우리 오늘은 다시 만난 기념으로 파티하자. 케이크도 바로 주문할 테니까!”

“와아!”

티나는 난데없이 먹게 될 케이크로 기뻐했고, 셀레나는 선물받은 고급 와인으로 기뻐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진효섭은 집 안쪽을 흘끔거리며 물었다.

“테디는…… 집에 없습니까?”

“응. 지금은 없어. 밖에 볼일이 있다고 나갔는데, 얘기할 거 있으면 전화라도 할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단순히 테디가 잘 지내고 있는지, 길드 생활에 문제는 없는지 궁금했기에 전화까지는 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지금 바로 해야 할 일도 있고.

“그럼 진, 얼른 식탁에 앉아. 금방 플레이팅해 줄 테니까.”

배가 고픈지 티나는 잽싸게 식탁으로 향했다. 금방이라는 말이 사실인 듯 미리 준비된 몇몇 음식이 보였다. 그 옆에 진효섭이 가져온 와인을 놓으니 정말 파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진효섭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저, 셀레나. 제가 오늘 밤에는 좀 볼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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