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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54)화 (154/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53화

S급 가이드 진효섭. 능력이 뛰어나고 우직한 인물. 처음에는 그를 통해서 안단테의 정체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진효섭은 제 안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안단테를 저버리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에스퍼라고 말했던가.’

그 당시, 진효섭은 안단테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때 했던 말에는 분명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국가안보국에서 안단테를 믿고 한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그 사랑이 진짜였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왜 살아 있으면서도 안단테에게 알리지 않는 걸까. 저렇게 망가진 모습을 봤을 텐데 왜 계속해서 숨어 있는 거지.’

신해창은 적당히 던전 주위를 정리해 나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끝내, 지금 상황을 대략 이해했다.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걸 안 안단테가 뒤늦게 진효섭을 붙잡으려고 들었고, 그것 때문에 도망친 거야.’

즉, 진효섭은 안단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죽은 척 숨어 사는 것이다.

추측이었지만 99% 확신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이유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진효섭이 안단테의 곁에 있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단테는 그를 여전히 원하고 있다.

입꼬리를 끌어 올린 신해창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염력이 넘실거리며 앞선 에스퍼들이 미처 처리하지 않아 남은 괴물들의 머리통을 부쉈다. 던전에 들어왔음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이 정보를 어떻게 이용해 볼까.’

가장 좋은 열쇠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이것을 안단테에게 넘긴다면, 여러 가지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진효섭의 위치를 가르쳐 주겠다는 것만으로는 거래 성사가 원만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해창이 어떤 루트로 알아차렸는지를 파악할 테니까.

‘살아 있다는 소식이나 그의 위치로 거래를 요구하기는 어려워.’

그렇다면 안단테와의 거래보단, 진효섭을 국가안보국 길드로 끌어들이는 쪽이 더 이득이다. 선택지를 두고 저울질하던 신해창은 피식 웃었다.

‘진효섭이라는 존재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안단테가 보일 반응은 궁금했다.

‘과연, 안단테는 국가안보국에 있는 진효섭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건수를 건졌다. 어떻게 하면 안단테를 피해서 시골에 박혀 있는 진효섭을 끌어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도 즐거웠고, 그것이 가져올 이점에 기대감도 서렸다.

‘만년 2위 길드’. 국가안보국의 두 번째 이름이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안단테가 상위에 자리 잡은 이상 다들 신해창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 그만큼 안단테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신해창은 그런 생각을 뒤엎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다가왔다. 꾸준히 위를 바라보고 걸어왔기에 이게 기회라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간단했다.

그는 길드장이 되자마자 40위에 근접하던 국가안보국을 16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SS급 던전의 재화로 순식간에 2위까지 올렸다.

제 손안에서 이뤄진 모든 업적. 단순히 성취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다들 못 할 거라 말하던 걸 기어코 해낼 때의 승리감. 그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이었다.

그에게 최고라는 자리는, 벌레같이 빌빌거리던 시절을 보상받는 일이었다. 매일 술을 퍼마시는 인간 말종 같은 아비에, 약에 취해 좀비처럼 구부정하게 서서 잠을 자던 어미. 화류계를 전전하며 사치와 쾌락에 인생을 팔다 못해 명까지 판 동생. 어디 가서 말해도 믿지 않을 밑바닥의 집안이었다.

그런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도 가족이라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의 저주는 장남의 몫이 됐다. 태어난 이후 꾸준히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더럽도록 개 같은 인생이었다.

그러나, 신해창은 결국 피라미드의 상위에 앉았다.

쓰레기 같던 과거가 오히려 지금의 자리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었다. 역설적인 상황 탓에 신해창은 정의로워졌고, 더욱 선량해질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신해창의 출신을 짐작하지 못했다.

물론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그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자랐다며 성선설의 표본이라 떠받들었다. 그를 향해 박수 치는 손이 많아질수록 신해창은 더 정의로워졌다.

그는 태생이 높은 집안의 자제인 양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그런 이들을 가까이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후천적 고급스러움은 견고하게 굳어 갔다. 그 누구도 도금임을 알 수 없도록 빈틈없이 덧입혔다. S급이라는 이름과 염력이라는 능력이 그의 알맹이를 가늠도 하지 못하게 했다.

더불어 가족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도 효도라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알코올 중독인 아비에게는 술을 넉넉히 선물했고, 약에 전두엽을 팔아 버리다시피 한 어미에게는 원하는 만큼 약을 쥐여 주었다. 그들은 효자가 따로 없다며 기뻐했고, 신해창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걸 쥐고 나니 그런 과거조차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게다가 마냥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누구나가 어려워한다는 결정이 그에게는 쉬웠다.

예를 들면 대의를 위해 희생되는 소수라든가. 생명 경시에 대한 문제가 얽힌 선택이라든가.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을 고민하지 않았다. 세 명을 위해 백 명을 죽일 수는 없고, 폭주 직전의 에스퍼를 봐주다가 일반인의 피해를 늘릴 수는 없지 않은가.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슬퍼한들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어쨌든, 신해창은 이제 버러지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내로라하는 에스퍼들을 발밑에 두고 있다. 과연 그들은 신해창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밑에서 전전했다는 걸 알고 발밑에 있는 걸까. 생각하면 모든 게 우스워졌다.

‘만약 노아피의 1위 자리까지 탈환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년 2위라고 뒤에서 지껄이는 이들의 입을 꾹 다물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바닥을 기던 버러지가 끝내 꼭대기에 올라앉는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심지어 마지막으로 밟고 올라간 인물이 안단테라는 점이 더 기꺼웠다.

‘너 내 팬이라며?’

문득 언젠가 안단테가 웃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팬. 그렇지. 팬이긴 했다. 안티팬도 팬이라면 팬이니까.

신해창은 오웬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언제 진흙 바닥에 구르게 될까 하는 기대를 하곤 했다. 타 에스퍼에게는 별반 관심도 없는데, 그놈은 유독 눈에 거슬렸다.

오웬은 에스퍼로 발현하기 전부터, 발현했을 때까지 계속 세상의 입에 오르내렸다. 대대로 S급을 배출한 명망 있는 집안. 음악이라는 고상한 직업을 두 번째로 가지며, 예술가에게 후원을 아낌없이 해 귀족이라 불리기 걸맞은 배경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밑바닥이었을 때부터 에스퍼로 발현한 이후까지도 그는 꾸준히 거슬렸다. 어쩔 수 없다. 상성이 너무나도 나빴으니까.

처음부터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뚜렷한 레드카펫이 그렇게나 역할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인 성격과 잔인한 성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칭송받는다는 게, 그 배경 덕분인 것은 알까. 보고 있으면 배알이 뒤틀렸다. 정말이지, 정반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오웬이…… 안단테 너였단 말이지.’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은 탄탄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닥에서 치고 올라와 1위를 탈환하는 자에 열광한다. 즉, 안단테처럼 제 잘난 맛이 살아가던 놈이 끌어내려지고 벌레처럼 기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다.

상대를 끌어내린다고 자신이 잘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배 아픈 걸 참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행복해 보이는 절대자를 끌어내려서 보란 듯이 괜찮냐고 손을 건네고 싶어 하는 게 세상이다.

지금이야 안단테가 절대적인 우위기에 조용할 뿐.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신해창 같은 이에게 승기를 들어 주고, 안단테와 같은 탄탄대로의 삶은 바닥에 치닫기를 바랄 터. 뻔했다. 인간의 바닥을 모두 봐 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재밌어지는군.”

이제껏 숨겨 왔던 음습한 미소가 소리 없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신해창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대충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걸었다.

‘안단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이 그리 길지 않을지도.’

* * *

게이트가 울렁거렸다. 그 안에서 뻗어 나와 주위에 있던 것들을 삼킬 듯 위험하게 일렁거리던 검은 그림자가 크게 요동쳤다. 동시에 안에서 무언가가 울컥, 쏟아졌다. 시뻘건 핏덩어리였다.

“꺄, 꺄악!”

놀란 가이드가 소리를 질렀다. 처음 보는 상황인 듯 당황한 기색이 선연했다.

긴장이 감돈 것도 잠시, 게이트가 다시 일렁이며 피가 또 울컥 쏟아졌다. 이윽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이트 안에서 에스퍼들이 나왔다.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 가관이었다.

“어서! 서둘러!”

“빨리, 안정제를……!”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고작 S급 던전인데 어째서, 라는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무시무시한 살기와 함께 무언가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순간, 그 자리의 모두가 숨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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