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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53)화 (153/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52화

“좋아! 성인이 돼서 만나면 더 좋을 것 같아.”

“응. 그때까지 공부도 하고, 학교도 잘 다니고, 미드는 적당히 보고, 음…… 아무튼 잘 지내고 있어. 꼭 다시 볼 테니까.”

“응. 좋아. 진 말대로 할게.”

티나는 자신을 위해 몸을 숙여 준 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마음을 녹이는 듯했다.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진.”

“티나도 몸 건강해.”

“걱정하지 마. 난 감기도 안 걸리는 튼튼 체질이니까.”

한 손으로 셀레나의 손을 잡은 티나가 버스를 향하면서도 다른 손을 붕붕 흔들어 진효섭에게 인사했다.

셀레나는 마지막으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당부했다. 이번에 새로 계약한 집에는 방이 다섯 개나 된다는 말도 덧붙었다. 자랑이라기보다 그가 함께 살아도 충분할 만큼 집이 크니 부담 가지지 말라는 설명이었다.

진효섭은 연신 걱정하는 셀레나와 마냥 즐거워 보이는 티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느새 광장에 있던 사람은 전부 버스에 탔고, 곧이어 떠났다. 그들은 저 멀리 설치된 이동 포털로 이동해 각자 원하는 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지고 광장에 혼자 남으니 적막했다. 아직 바뇨스에는 절반 이상의 주민이 남아 있을 텐데 가슴이 뻥 뚫린 듯 허전했다. 언제나 그렇듯 조용한 광장일 뿐인데, 이상하게 세상에 홀로 남은 듯했다. 원래 자리 잡고 있던 감정이 머리를 치켜든 건지, 아니면 티나 가족이 떠나 허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아……. 이제 어떡하지.”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일단 다른 나라로 옮기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좌표 스크롤은 저번에 썼던 게 마지막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어디로 갈지보다, 어떻게 갈지가 더 문제였기에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테디는 내 얘기를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잘 지키고 있을까.’

걱정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아…….”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진효섭이 집으로 향하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멈춰 서 휴대폰을 들었다.

“맞다, 참.”

광장까지 나온 김에 확인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였다.

생방송을 본 이후, 진효섭은 매일같이 광장에 들러 의미 없이 검색창을 들여다보곤 했다. 절대 찾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는 익숙하게 휴대폰을 통해 검색창을 살폈다. 하나같이 아르헨티나 봉쇄와 남아메리카 전역의 이민이 주제로 떠올라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안단테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최근 들어 안단테의 이름 옆에 달라붙은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폭주]

몇 번이나 봤었는데도,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효섭은 떨리는 손끝으로 ‘안단테 폭주’를 눌렀다.

다행히도 뉴스나 나오는 내용은 늘 그랬듯, 불안하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폭주했다는 말이 어디에도 없자 진효섭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안단테의 모습은 정말 불안해 보였는데 문제는 없는 듯했다.

‘가이딩을 받은 걸까? 당연히 받았겠지?’

진효섭은 복잡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뒤져 봐도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제각각이었고, 죄다 사람들의 추측이었다.

그도 그럴 게 노아피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없었다. SS급 에스퍼라는 명성은 기자들도 쉽사리 뉴스를 쓸 수 없게 만드는지 기사도 극히 드물었다. 있어도 생방송에 잡혔던 모습을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진효섭은 안도하면서 한편으론 씁쓸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안단테가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았다든가, 이제 괜찮다는 소식이라도 알 수 있다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진효섭은 테디의 번호를 화면에 띄워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통화한다고 해도 어떻게 물어야 할지 어려워 주춤거렸다. 머뭇거리던 진효섭은 결국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잖아.’

가이딩을 받았다는 걸 듣는다고 해도, 계속 신경 쓰일 게 분명했다. 이미 안단테가 서연이나 다른 가이드와의 가이딩이 원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 버렸으니까.

진효섭은 터덜터덜 뒤꿈치를 끌며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집으로 향하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못다 버린 미련이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안단테가 세간에 받는 기대의 무게가 제게 옮겨 온 것인지. 여하간 발걸음이 무거웠다.

* * *

수많은 에스퍼가 S급 던전 근처에 자리 잡았다. 하나같이 게이트가 열리기를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S급 변형 게이트. 고작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째가 열렸다. 저번에는 대대로 생방송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방송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아직 열리지 않은 게이트 근처에서는 적막이 흘렀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대기하는 에스퍼부터, 가이드,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끝낸 에스퍼까지. 모두 랭킹 10위 안에 드는 길드의 일원, 즉 유명한 사람들뿐이었다. 심지어 대다수가 길드장이었기에 누군가가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장면이 탄생했으리라.

수많은 S급 던전을 타파하고 유명세를 치른 이들은 유례없이 긴장한 채였다. 그들은 게이트의 가장 앞에 선 안단테를 흘끔거렸다. 안단테가 손끝을 움찔할 때마다 에스퍼들이 덩달아 제 무기를 틀어쥐는 모습이, 그들이 긴장한 이유를 알려 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단테는 무심하게 게이트를 바라봤다. 눈 색은 선명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갈무리하지 못한 무형의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일렁였다.

아직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안단테 탓에 주위 공기가 무거웠다. 자칫하면 터질 듯한 시한폭탄 같은 모습에 평소 안단테와 알던 사이인 에스퍼조차 말을 건네지 못했다.

기기긱-

게이트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선이 그어졌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구는 불분명한 형태로 일렁였고, 이내 검은 그림자를 닮은 것이 꾸물꾸물 기어 나와 여섯 갈래로 갈라졌다.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대기 가이드 역시 여섯 명이었다.

게이트가 가이드의 생명체를 먼저 노린다는 추측이 완벽하게 확신으로 바뀌자 에스퍼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유일하게 안단테만이 무표정했다.

안단테는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들어갔다. 다른 에스퍼들도 그를 뒤따라 하나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선발대로 뽑힌 신해창은 마치 방관하듯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안단테와 던전에 신경을 쏟고 여러 문제로 불안해하고 있을 때, 그의 관심은 그곳에 없었다. 정확히는 없어졌다. 아니, 옮겨 갔다는 게 맞을 수도.

총 아홉 명의 에스퍼가 차례대로 게이트에 들어갔음에도 신해창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빤히 바라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더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도 같았다.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신해창의 모습에 결국 대기 중인 에스퍼 하나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저, 신해창 에스퍼. 던전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뒤늦게 신해창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묘한 미소가 입꼬리에 걸려 있었다.

“아, 실례합니다. 급한 정보가 들어온 터라.”

어깨를 으쓱한 신해창이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그에게 건넸다.

“들고 있어 주겠습니까. 중요한 파일이 있어서 손상될까 봐 들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아, 예. 물론입니다. 제가 잘 맡아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열 명째인 신해창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익숙하게 게이트를 지나며 자꾸만 헛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아까 봤던 길드원의 정보가 도무지 머릿속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실한 건지 두어 번 확인했지만 정확했다. 정보에 포함된 사진. 멀리서 확대해 찍은 사진이었지만 진효섭이 맞았다. 비록 기억보다 더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JIN. 한국인. 에콰도르에서 농사를 돕고 있으며 수개월 전, 바뇨스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스페인어는 새로이 배우는 중이며, 영어에 능숙하다고 합니다.]’

노아피의 가이드였던 진효섭이 확실하다는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사진은 현재였다. 다시 말해, 진효섭은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고. 그가.’

묘한 표정을 한 신해창이 저 멀리 보이는 안단테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힘도 갈무리하지 못한 위태위태한 상태로도 그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신해창이 턱 끝을 문질렀다. 안단테는 진효섭이 던전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를 찾아 댄다고 던전을 뒤집고 다닌 지 벌써 반년. 이제 슬슬 진효섭이 죽었을 거라고도 생각할 터. 저렇게 망가진 것도 그 생각 탓이리라.

‘흠,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걸.’

인원 부족으로 들인 보호계 에스퍼를 통해서 월척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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