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49화
안절부절못하는 진효섭을 본 테디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결혼도 찬성이야. 티나 같은 애한테 진은 좀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 되면 내가 진을 지켜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봐.”
테디는 자신이 A급이지만, 지켜 주는 것만큼은 S급 부럽지 않을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장난기가 섞인 웃음소리가 뒤이어져 진효섭은 남몰래 한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동네 주민 모두 광장에 도착한 버스 앞으로 모였다. 그들은 에스퍼가 되어 동네를 떠나는 테디를 위해서 일도 미뤄 두고 마중을 나왔다. 테디는 그런 동네 사람들의 배웅이 부담스럽다는 듯 진절머리를 쳤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아 보였다.
「이제 갈 거니까 그만 좀 돌아가요.」
「테디! 몸조심해라!」
「행복해라, 테디!」
「크흑.」
「아, 면접 가는 것뿐이래도요. 떨어질 수도 있다고요. 못살아, 진짜.」
눈물까지 흘리는 주민들에 테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어머니, 셀레나는 챙이 커다랗고 화려한 새 모자를 쓴 채 벌써 차에 타 있었다. 잔뜩 힘을 준 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반면, 가족을 따라가지 못하는 티나는 시무룩하게 손을 흔들었다. 함께 가는 건 다음 여행 혹은 면접에서 합격했을 때라고 얘기가 끝난 듯했다.
“……잘 가, 테디.”
“자리 잡고 나면 부를게. 그동안 한국어 공부나 해 두고 있어.”
“진짜지?”
“그래.”
언제나 싸움을 이어 가던 남매가 이별을 앞두니 꽤 다정했다. 진효섭 또한 테디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가. 티나는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셀레나에게 전해 줘.”
“우리 엄마는 아무런 걱정 안 해. 진이 다 알아서 할 거라더라. 그것보다, 진. 내가 국가안보국에 붙으면 길드에서 한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동 게이트를 열어 준대. 그때 진도 티나랑 같이 와. 한국이면 자국이기도 하고, 좋은 기회잖아.”
테디의 말대로 좋은 기회였지만 진효섭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
“음? 왜? 공짜인데?”
“……그냥, 여기가 좋아서.”
테디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동 게이트로 나라를 넘는 거면 돈도 들지 않고, 시간적인 문제도 없다. 좋은 기회가 분명한데 거절하는 게 이해되질 않는 듯했다. 하지만 진효섭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사이, 시간이 다 됐는지 버스 안에서 셀레나가 테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 가야겠다.”
“저기, 테디. 잠시만.”
“응?”
돌아가려던 테디가 몸을 돌렸다. 진효섭은 테디에게 말을 건넬 듯 말 듯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조심해서 가고. 국가안보국 합격하면 꼭 연락해. 꼭이야.”
“당연하지. 연락할게.”
테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버스를 탔다.
떠나는 테디를 보고 있으려니 진효섭은 어쩐지 불안해졌다. 사실 국가안보국에 면접을 보러 간다기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고민 중이지만…… 아직 테디가 국가안보국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괜히 제 발 저려서 다 말하는 건가 싶어 머뭇거리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테디가 합격할 확률이 극히 낮기도 했고.
‘그래. 합격하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에 알맞지 않았다.
그렇게 손을 열심히 흔들어 보이는 걸 마지막으로 버스가 출발했다. 삼삼오오 모인 동네 주민들은 그제야 하나둘 흩어졌다. 남은 건 티나와 진효섭뿐이었다.
티나는 잔뜩 시무룩해져 움직이지 않고 버스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가 된 티나였다. 진효섭은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티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이끌었다.
“가자, 티나.”
“응.”
두 사람은 천천히 걸었다. 오늘부터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티나는 진효섭의 집에 있기로 했다. 몇 번이나 와서 자고 갔던 티나였기에 그리 어색하진 않을 텐데 오늘따라 표정이 어두웠다.
‘역시 그때의 일 때문이려나…….’
고민하던 진효섭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티나.”
“응?”
“내가 가이드인 걸 숨겨서 미안해.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하고 싶지 않았어.”
“아, 그거 괜찮아. 나 이제 신경 안 쓰는걸.”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대답에 오히려 진효섭이 당황했다.
“진짜?”
“응. 엄마한테 들어 보니까, 가이드라도 일반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대. 게다가 진한테도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진은 좋은 사람이잖아.”
따스한 말에 괜스레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고마워, 티나.”
티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효섭은 덕분에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럼,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안 좋아 보였어? 그런 건 아니었는데……. 으음. 아마 최근 들어서 고민이 생겨서 그런가 봐.”
“고민?”
“응. 요즘 어떻게 하면 에스퍼가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거든.”
티나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테디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노래도 못 부르는데 저렇게 에스퍼가 됐잖아. 그런데 내가 되지 못하는 건 이상해.”
진효섭과 맞잡은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테디의 발현이 티나의 경쟁 심리에 불을 붙인 듯했다.
하지만 티나가 발현할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에스퍼 발현율에 대해 확인할 정도라면, 테디와 함께 티나도 검사받았을 터. 그런데 티나는 그 이후로 아무런 검사를 받지 않았다. 즉, 검사받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다만 티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 걸어가는 내내 에스퍼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끙끙 앓았다. 진효섭은 티나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맞아. 티나는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난 티나가 발현하지 않으면 좋겠어.”
“왜? 에스퍼는 대단한 사람이잖아.”
“……그렇지. 그들은 대단한 사람이야. 테디도 그렇게 될 거고.”
에스퍼는 대단한 사람이다. 세상을 지키고, 위험에 앞장서고. 진효섭도 그것에는 공감했다. 테디의 말에서 많은 걸 느꼈기도 했고. 그럼에도 진효섭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티나가 에스퍼로 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이기적인 바람이지만.”
“어째서?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면 좋은 거 아냐?”
자리에서 멈춰 선 진효섭이 천천히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티나와 시선을 맞추는 게 쉬워졌다.
“티나가 위험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들을 영웅이라고 칭하면서도, 누군가가 해야 함을 알면서도, 진효섭은 그 대상이 제 주위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기적이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에스퍼는 강하잖아.”
“그만큼 괴물들도 강한걸. 언제나 쉬운 괴물만 상대할 수 없기도 하고.”
“괴, 괴물?”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티나의 표정이 굳었다.
“응. 괴물. 에스퍼들은 던전이라는 곳에 가서 괴물을 처치해야 해. 그리고 그 괴물 중에는 티나가 제일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닮은 것들도 있어.”
“말도 안 돼!”
티나가 화들짝 놀라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 에스퍼 안 할래. 그냥 수학 선생님이나 해야겠다.”
단순히 테디 때문에 잠깐 해 본 생각이었는지 티나의 장래 희망은 수학 선생님으로 금세 돌아왔다.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진효섭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생겼다.
“응. 나도 티나에게는 수학 선생님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
“진짜? 그럼 내가 수학 선생님 하고, 진은 남편 할래?”
“……그건, 스무 살 돼서 다시 얘기하자.”
“응!”
진효섭은 티나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앞으로 결혼도, 연애도 생각이 없었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만큼은 조금 그리웠다.
너무 어릴 때 잃어서일까. 가족에도 역시 동경이 있었다. 길드에 가졌던 동경이 와장창 깨지면서 가족에 대한 기대 역시 다소 무뎌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티나나 테디, 셀레나를 볼 때면 무언가 몽글몽글 솟아나곤 했다.
진효섭은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너른 대지와 쏟아지는 햇빛. 푸릇한 언덕과 근처에 있는 산턱은 공기까지 맑았다. 아이들은 착하고 순했으며, 동네는 정이 많고 밝았다.
‘이곳이 좋아.’
이 평화를 이루는 모든 것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효섭은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며 손안의 온기를 더 꽉 잡았다.
* * *
“진! 진! 어서 와 봐! 어서!”
티나가 갑자기 소란스레 발을 동동 굴렀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하던 진효섭이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봤다. 제집에서 뒹굴고 있던 티나가 한걸음에 다가왔다.
“테디한테 연락이 왔어! 글쎄, 한국 길드에 붙었대! 국가안보국 말이야!”
“국가안보국에 붙었다고?”
“응! 진짜 대박이지, 거기 랭킹 2위 길드잖아! S급 길드!”
티나는 테디의 소식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진효섭은 멍하니 티나를 바라봤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믿기지 않았다.
‘대체 뭐지……?’
국가안보국은 능력이 있거나 유명한 에스퍼들만 영입한다. 거기다 신해창이 누구보다 능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건, 잠시 그곳에 머물 때 들은 적이 있었다.
능력은 타고난 것 반, 경험을 쌓으면서 함께 늘려가는 것이 반이다. 막 발현한 데다 미성년자인 테디가 국가안보국에 붙을 리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당혹스러운 와중, 티나가 싱글싱글 웃으며 진효섭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들어 보니까, 타이밍이 되게 좋았대. 지금 변형 게이트 때문에 테디의 능력이 필요한 상황인가 봐. 아직은 1년 계약직이라는데 내년이 되면 바로 정식 계약으로 바꿔 준다고 말했다지 뭐야.”
“아…….”
진효섭은 계약직의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미성년자인 테디를 들여야 할 정도로 변형 게이트의 문제가 크다는 뜻이다. 랭킹 2위인 국가안보국마저 이렇게 나올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니. 진효섭의 표정이 절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티나는 그저 기분이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