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48화
본디 안단테는 사람을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눴을 때 후자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마냥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지만 안단테는 선과는 참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게 선의의 행동이란 변덕일 뿐. 특별히 사람을 망치고 부수는 데 흥미가 있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나 피해를 보았을 때 그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안단테에게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도 선을 기대했다. 그를 영웅에 빗대며. 하지만 안단테는 세상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상관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러나 진효섭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새 소중해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답지 않게 시간을 줬다. 이야기만 한다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모두 안단테의 안일한 생각이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후회된다. 그의 마음 따위, 철저하게 짓밟고 그 어떤 자유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을. 곁에 두기만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 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더라도 상관없다. 마음이나 생각 따위는 무시한 채 강제로 숨을 이어 놓고, 생명을 박제시킨 채 옆에 둬야 했었다.
“그 어떤 결말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야. 분명히.”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유진에게는 모두 다 들렸다. 새파랗게 질린 유진이 잘게 입술을 떨었다.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란 게 느껴져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실 안단테는 그 어떤 결말이 와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진효섭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지금보다는.
* * *
“진! 국가안보국에서 3일 뒤에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어!”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연신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테디를 보며 진효섭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정말?”
“어! 여기 봐!”
테디는 보란 듯이 면접 날짜가 정해져서 온 메일을 들이밀었다. 하단에 국가안보국의 문양이 박혀 있는 메일에는 정말 서류 합격 통지서가 적혀 있었다.
진효섭은 메일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테디가 국가안보국에 지원했던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합격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그의 능력이나 등급, 경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단순히 나이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미성년자가 길드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법이 있다. 그것은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므로 진효섭은 지금 상황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어째서?”
“뭐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진효섭이 말했다.
“한국은 법적으로 미성년자를 길드에 들일 수 없어.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무조건 양성소로 들어가야 하니까. 그건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 법이야.”
“어, 진짜? 그럼 나는 왜 면접 보자고 하는 거지?”
“……잘 모르겠네. 그사이 정책이 바뀌었나.”
진효섭은 뺨을 긁적였다. 정책이 바뀌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때, 테디가 번뜩 눈을 빛내며 의아해했다.
“아니, 근데 진. 왜 내가 국가안보국에 지원할 때는 이 얘기를 안 해 줬어?”
“어? 아, 그게…… 이제 생각이 났어.”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혹시 섭섭했을까 싶어 테디의 눈치를 봤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국가안보국 길드에 서류가 통과됐다는 사실이 벅차서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줄만 알았더니. 잔뜩 들떠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걸 보니 아직 미성년자라는 게 와닿았다.
테디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진. 내가 서류에 통과한 거 말이야. 혹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어떤 이유?”
“내 능력이 너무 탐났던 거지. 그래서 미성년은 받지 않는데도 나는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법을 바꿔서까지 길드에 들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진효섭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 그럴 수도 있겠다.”
“와. 내 능력도 모르면서 맞장구치는 것 봐. 대답에 영혼 없잖아. 진.”
홱 고개를 돌리면서도 테디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에게는 지금이 꿈과도 같을 것이다. 에스퍼로 발현한 것도 대단하지만, 곧바로 랭킹 2위 길드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므로. 내로라하는 에스퍼도 랭킹 10위 안의 S급 길드는 어렵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진효섭은 마냥 잘됐다고 축하해 줄 수 없었다.
“테디, 넌…… 무섭지 않아?”
“무서워? 뭐가?”
진효섭은 손톱을 매만지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좋은 길드에 들어가면 그만큼 더 어려운 던전을 맴돌게 되잖아. 그럼,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테고.”
처음, 진효섭은 높은 등급의 에스퍼가 낮은 등급보다 안전할 거라 여겼다. 힘이 강할수록 던전에서 살아 나올 확률이 높아지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커다란 힘은 그만큼 더 위험한 던전으로 이끈다. 테디도 S급 길드인 국가안보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S급 던전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질 터. 그럼 위험한 일을 가까이하게 될 테고, 목숨이 위험한 일도 많아지리라.
“에이, 그건 어중간하게 강한 에스퍼들만 말하는 거 아냐? A급이나 S급은 위험하지 않아. 자기 몸을 지킬 정도의 힘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SS급 에스퍼도 던전에서 다치잖아.”
“아, 그건……. 음. 그렇긴 하지.”
테디 역시 그 부분은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던전을 단번에 해치운다는 SS급 에스퍼. 위험이란 걸 모르는 듯 위용을 뽐내는 그 역시 상처를 입었다.
진효섭은 어둑한 표정을 하고 중얼거렸다.
“난…… 무서워. 강할수록 상위 던전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폭주할 위험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두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이딩을 해 주었던 에스퍼가 어느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아닐까. 던전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눈앞에서 또 폭주하는 건 아닐까. 그 모든 것을 눈앞에서 봐 왔기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봐 왔기에 겁쟁이가 됐다.
그래서 생각했다. 등급이 높은 길드보단 낮은 길드가 낫다고. 돈은 아끼면 되고, 명예는 없어도 된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차분히 에스퍼를 기다릴 수 있는 곳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진효섭으로선 높은 길드를 선망하는 에스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높은 곳에 선다는 건, 그만큼 목숨이 위험한 일을 도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에스퍼들은 어째서 위험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난 모르겠어. 왜 위험이 큰 곳을 선호하는지. 왜 위험을 자초하는지…….”
분명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 방법이 있을 텐데. 진효섭이 시무룩해진 표정을 감추고자 마른세수를 할 때였다.
“하지만, 에스퍼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잖아.”
“응?”
간단하고 담백한 이유에 진효섭은 손을 내리고 입술을 벌린 채 테디를 쳐다봤다. 그는 장난 반, 진심 반인 얼굴로 씩 웃었다.
“등급이 높은 길드에 들어가면 더 많은 위험에 처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 어쨌든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힘이 있는 내가 해내고 사람들의 영웅이 되는 거지. 멋지지 않아?”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던 동화 같은 대답이었다. 에스퍼는 어린아이라면 으레 동경하는 영웅이다. 진효섭 역시 어릴 때는 에스퍼를 영웅에 빗대고, 자신이 그 영웅이 된다면 세상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디의 대답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많은 걸 느꼈다. 멍하니 생각을 잇던 진효섭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렇네.”
불안이 조금 내려앉음과 동시에 자신이 했던 물음이 바보 같다 생각됐다.
“네 말이 맞아. 응……. 멋있네. 응원할게, 테디.”
“하핫, 아직 제대로 된 한 명의 에스퍼도 아닌데 쑥스럽네.”
테디가 제 나이다운 미소를 지으며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그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것에 겁을 먹는 진효섭과 달리 테디는 티나처럼 강인했다.
“참, 엄마한테 들었지?”
“티나를 잠깐 맡아 달라는 거라면, 응. 들었어.”
“길지는 않을 거야. 잠깐 면접 보러 갔다 오는 것뿐인데, 워낙 멀기도 하고 이동 게이트는 너무 비싸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올 예정이거든. 거리가 있다 보니 사나흘 정도 걸릴 것 같아.”
“티나는 걱정 마. 내가 잘 돌보고 있을게.”
“걱정해야 하는 건 티나가 아니라 진, 너야. 우리 없는 동안 고생 좀 해야 할걸? 티나가 지금 단단히 삐져 있거든.”
테디가 입술을 한 손으로 가리며 악동처럼 낄낄 웃어 댔다.
“진이 결혼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면서, 열불을 토해 내는 걸 어제 들었거든.”
“아……. 티나, 화 많이 났어?”
“말도 마. 어제 하도 발을 굴려 대서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니까.”
난감했다. 사실 진효섭은 저번, 가이드인 게 밝혀진 이후 티나와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진효섭이 일할 때면 매번 티나가 찾아와서 이야기하다 가곤 했는데, 그 시간이 없어지니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테디의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려고 집에 들러도, 티나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일단 얘기를 나눠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변형 게이트나 안단테의 일로 머리가 복잡했던 터라 그날 일은 여태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어, 어쩌지?”
“어쩌긴. 둘 중 하나지. 열네 살의 어린애를 뻥- 차 버리고 현실을 알려 주거나, 아니면 진심으로 결혼 약속하거나.”
“그, 그런…….”
진효섭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는 괜찮을 거라고 말한 테디가 이제 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지만을 두는 걸 보니 티나가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