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148)화 (14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47화

안단테는 유진에게 대꾸도 없이 시선을 돌렸다. 이 잿더미를 정화해 줄 상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받는 가이딩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 그렇기에 가이딩 받을 마음이 들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네.’

안단테는 무시한 채 그대로 지나치려고 했으나 유진은 겁도 없이 그의 앞을 막아 들었다.

“얘가 왜 이래. 너 지금 네 모습을 보고는 다녀?”

“신경 꺼.”

“이 미친놈이……. 너 지금 폭주 직전이야. 그런데도 가이딩을 안 받겠다고?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유진이 비키지 않자, 안단테는 그를 대충 옆으로 밀치고 지나쳤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유진의 목소리에 가던 길을 멈췄다.

“알겠다. 너 지금 진효섭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 입 다무는 게 좋을걸.”

“그러게 왜 다른 가이드를 들였는데. 가이드를 그렇게 무시하더니, 이게 다 자업자득-”

“겁도 없이 왜 이렇게 쫑알거릴까. 효섭이한테 이간질했을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얌전히 네 갈 길 가라. 가이딩 필요 없으니까.”

홱 몸을 돌린 안단테가 유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낮은 으르렁거림이 유진의 뺨 가까이에서 퍼졌다. 언제나 감정 조절이 뛰어났던 안단테가 진효섭의 이름에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유진은 그런 안단테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역시 진효섭을 못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너 지금 후회하고 있지?”

“…….”

“효섭이를 그렇게 취급한 걸 후회하는 거잖아.”

유진이 아닌, 누가 봐도 후회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안단테가 후회할 일 따위는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안단테는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게 취급한 게 뭔데. 내가 뭘 그렇게 취급했는데.”

“대체 가능한 물품. 너한테 가이드는 딱 그 정도잖아. 보면 알아. 느껴지고. 효섭이도 그걸 느꼈겠지. 서연 가이드까지 들였으니까.”

“새 가이드를 들인 게, 뭐. 차별을 한 것도 아닌데. 아니, 하긴 했지. 효섭이를 더 아껴 줬으니까.”

이게 무슨 말이람? 유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뭐 이런 멍청한 말이래. 너는 진효섭이 너 말고 신해창의 가이딩도 담당한다면 기분 좋아?”

“그거랑은 비교할 수 없어.”

“왜 비교할 수 없는-”

“길드의 가이드는 원래 여러 에스퍼를 감당해. 하지만 그 길드에 가이드가 두 명이 되면 감당해야 할 에스퍼가 줄어들고, 그럼 본디지 파트너에 집중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야. 할 일이 없어질수록 더욱 그렇겠지.”

유진의 눈이 커졌다.

“너…… 그럼 같은 길드원들이 가이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새 가이드를 들였던 거야?”

안단테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었다. 유진은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어 물었다.

“아니, 그럼 다른 가이드를 만나고 다녔던 건? 그건 뭔데?”

“신해창에게 얘기 못 들었나 봐. SS급 던전에서 가이딩 증폭기를 얻었다는 거.”

“가, 가이딩 증폭기?”

새로 얻은 가이딩 증폭기. 여러 가이드를 만나고 다닌 안단테. 갑자기 노아피의 가이드로 들어간 서연. 유진의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갔다. 서연은 노아피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다른 길드로 소속을 옮겼다. 매번 길드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 서연이 말이다.

“설마…….”

유진이 모든 상황을 파악했을 때였다. 안단테가 답답하다는 듯 목을 문지르며 멱살을 놓곤 유진을 밀어냈다.

“비켜. 너랑 더 얘기할 기분 아니니까.”

하지만 유진은 끈덕지게 안단테를 붙들었다.

“잠깐만. 안단테, 너 왜 그걸 진효섭에게 말하지 않았던 건데? 오해하잖아, 멍청아! 진효섭은 네가 새로운 가이드랑 잠자리를 가지고 다녔다고 생각해서 도망친-”

“아니.”

안단테는 딱 잘라서 유진의 말을 부정했다. 머리 위를 넘어간 태양이 안단테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런 오해만으로는 이렇게 될 리 없어.”

그것만이 문제였다면 이야기로 얼마든지 풀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단테가 마주했던 진효섭은 더 복잡했다. 제 애인이 다른 상대와 잠자리했다는 게 주된 문제였다면, 화를 냈어야 옳다. 언젠가 유진과 잠자리했다는 착각을 했을 때처럼.

하지만 안단테를 보는 두려운 시선은 그것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유였다. 분명 보다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집착이라고 했었나. 아마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

어쩌면 다른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가 얽혀 버린 상황은 그 줄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혼란스러운 건 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국가안보국에 왔을 때 진효섭은 그 어떤 이간질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용당하는 것을 안다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꿋꿋이 믿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니 안단테가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도망친 거지?”

“유독 관심이 많네.”

“네가 이 모양 이 꼴로 있으면,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 그렇지. 변형 게이트가 생겼다는 게 세상에 다 퍼졌어. 지금 사람들이 네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알 거 아니야.”

피식, 안단테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알 게 뭐냐는 등의 냉소적인 생각이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꿋꿋하게 안단테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이렇게 된 데 제 잘못도 없지 않다는 게 걸려서 이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후회하면…… 대대적으로 사과라도 해. 아까 말했던 그런 오해라도 풀든가. 그럼 진효섭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

안단테는 말없이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은 진효섭이 던전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 하는 것 같았다.

하긴. 가이드를 필요로 하는 것과 복잡하고 중요한 사안을 공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가이드와 에스퍼의 입장은 다르고, 위치와 하는 일 역시 다르므로. 거기다 세상에는 몰라서 나은 정보가 있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쉽사리 공유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았다.

‘진효섭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유진의 말마따나 대대적으로 사과를 전하면 진효섭이 돌아올까.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일까. 어떻게든 긍정적인 회로를 돌리던 머리도 이것만큼은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았다. 선명한 붉은 엑스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다시 곁에 둘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할 자신이 있었다. 자존심 같은 건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사과해서 곁에 둘 수 있다면…… 아니, 빌어서라도 곁에 둘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보이질 않았다. 진효섭이 살아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뇌었으면서, 막상 희망을 말하는 유진을 보니 반대로 현실을 직시하게 돼 버렸다.

벌써 진효섭을 보지 못한 지 여섯 달이다. 던전에 들어갔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이미 제로가 됐다는 말이다.

독이 가득하던 던전. 떨어진 가방. 일반인은 숨은 방의 게이트로 갈 여력이 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아이템을 썼을 거라는 추측은 그 어떤 증거도 없는 혼자만의 희망이었다.

‘만약, 진효섭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들…… 되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떠나기 전에 내보였던 그 두려움 섞인 시선. 안단테를 밀어내기만 하던 보석의 벽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했다. 그래, 안단테는 영원히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길드원들의 말이 맞았다. 지금 안단테는 혼자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뻔히 보이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떼를 쓰고 있었다. 진효섭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있다고 해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진효섭을 잃고 나서부터 계속 들러붙던 두통이 극심해졌다. 무형의 힘이 머리를 사방에서 조이는 듯했다.

미칠 듯이 일렁거리는 감각에 안단테는 왜 자신이 지금까지 진실을 외면했는지를 알아차렸다. 세상을 뒤지고 진효섭을 찾는 것은 발악이었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세뇌.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현실을 부정해야만 했기에 필요한 일이었다.

“네가 아까 물었지. 후회하느냐고.”

안단테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리뻗은 옅은 속눈썹 사이로 황금빛이 넘실거렸다. 그 신비로운 색에 유진이 잠깐 시선을 빼앗긴 때였다. 안단테가 작지만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후회해.”

후회한다. 아주 많이. 지금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후회하는 중이다. 그를 손안에 넣지 못했던 것을.

“억지로라도 손에 틀어쥐어야 했는데.”

“뭐……?”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고, 품 안에 가뒀어야 했어. 아무리 두려워하더라도. 무섭다고 떨어 대더라도. 설사, 죽여 달라고 빌더라도 놓아서는 안 됐는데.”

유진의 눈이 커졌다. 확장된 동공 속에 안단테가 비쳤다. 덤덤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그는 텅 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곁에 있을 바에 죽음을 선택할 줄 알았다면, 그냥 손에 쥐었어야 했지. 그래서 후회돼. 이성이 내리는 명령 따위는 무시하고 원래 내 모습대로 행동하고, 결정했어야 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으니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