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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45)화 (14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44화

순간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쳤다. 진효섭은 이미 정답을 추측했으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위가 어딘데?”

“당연히 노아피지. 왜, SS급 에스퍼가 있는 전 LEOM 길드 말이야. 걔네 정식 길드 되자마자 2주도 되지 않아서 1위 탈환했잖아. 완전 승승장구.”

설명을 잇던 테디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진효섭을 바라봤다.

“아니, 근데 진.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몰라?”

“……여기 있다 보니 신경을 안 쓰게 돼서 그런가 봐. 통신 매체도 잘 안 터지니까.”

“아, 그건 그렇지.”

티나의 집은 인터넷을 설치해 놔서 괜찮았지만, 거리는 전화도 문자도 잘 터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통신과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바뇨스에 하나밖에 없는 광장뿐이었다.

“으으. 이제야 이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한국은 IT 강국이라며? 거리에서도 휴대폰이 잘 터지겠다. 그치?”

“응. 여기보단 훨씬 빨라.”

“하아. 다행이다. 밖에서 전화 한 번 받으려고 신호 잡히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생각만 해도 기쁜지 테디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진효섭에게 바뇨스는 좋은 시골이었지만, 테디나 티나에게는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10대 때는 여러 가지 문물도 접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울 때인데, 항상 너른 들이나 똑같은 풍경만 보면 지루하기 마련이니까.

테디는 포크를 까딱거리며 벅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국가안보국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

그 모습에 진효섭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째서 국가안보국이야?”

“응? 왜라니? 당연히 최고로 좋은 길드니까 그렇지.”

진효섭은 묘한 표정을 거둘 수 없었다. 확실히 국가안보국은 좋은 길드다. 하지만 1위인 노아피를 두고 국가안보국을 최고라고 칭하는 게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문득 동네 주민들이 안단테를 두고 ‘무서운 괴물’이라 칭했던 것이 떠오르자 억지로 내리눌렀던 궁금증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결국 진효섭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1위인 노아피도 있잖아. 그쪽은 왜 안 넣으려고?”

오랜만에 뱉어 보는 이름이 혓바늘처럼 입안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노아피?”

“응. 거기가 일단 더 높잖아.”

“……와. 진.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테디가 눈을 끔뻑이는 진효섭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는 누구도 안 들어가. 정확히는 못 들어가는 거지만……. 어쨌든 지원 자체를 하는 에스퍼가 없어. 랭킹 1위라고 하지만 사실상 들어갈 수 있는 길드는 국가안보국이 최고야.”

“왜 지원을 안 하는데?”

“단장이 미쳤으니까.”

순간 진효섭이 멈칫했다.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지. SS급이라는 안단테 에스퍼. 완전 미친놈처럼 던전 깨고 다녀. 처음에는 다들 정식 길드로 인정받고 랭킹을 되찾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많은 에스퍼가 우러러보기도 했고.”

무려 2주도 되지 않아서 1위를 탈환한 노아피. 그 배경에는 안단테의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능력에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감탄은 2주가 3주가 되고, 한 달을 채우는 순간 달라졌다.

“안단테 에스퍼는 랭킹 1위를 탈환하고도 계속 던전을 전전하고 있어. 근데 그 모습이 진짜 미친놈 같아서……. 다들 그 사람을 보고 전투광이라고 하더라.”

“저, 전투광?”

“어. 나도 최근에 안단테 에스퍼의 영상을 봤는데…… 아오, 말도 마. 온몸에 피 칠갑한 채 S급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옆 S급 던전으로 바로 들어가더라.”

소름 돋는다는 듯 테디가 제 팔뚝을 쓸어내렸다. 같은 에스퍼에게서도 저런 반응을 끌어낸 몰골이라면, 일반인들이 무서운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며칠 뒤에 열릴 S급 변형 게이트에 안단테 에스퍼도 들어간다더라. 생방송까지 겸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몰라서 미리 말해 둘게. 웬만하면 보지 마. 분명히 보기 좋은 광경 아닐 테니까.”

“……그럴 일 없어.”

“그럼 다행이고.”

부르르 떠는 테디를 보고 있으려니 역시 이상했다. 진효섭이 세상에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안단테는 모두가 바라는 인기인이었는데.

‘대체 어쩌다가…….’

입안이 까끌까끌해졌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안단테의 얼굴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을 떠올리자 식욕이 뚝 떨어졌다. 앞으로 그에 대한 어떠한 것도 알아보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것만큼은 쉽게 무시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 *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정장을 차려입은 에스퍼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길드장님. 실례합니다.”

그는 커다란 책상 앞에서 서류를 살펴보는 신해창에게로 다가가 태블릿 하나를 건넸다. 화면에는 ‘긴급’을 의미하는 노란 지장이 띄워져 있었다.

“현재, 길드 에스퍼 세 명이 S급 변형 게이트가 출현한 아르헨티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길드장님 말씀대로 유진 가이드를 대기 인력에 투입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또한, 방금 드린 서류는 전에 열렸던 변형 게이트와 안단테 에스퍼가 가져온 정보들을 조합해 본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현재 열린 게이트의 특성과 똑같으며, 아마 내부 조사 시 99% 유사하리라 추측됩니다만, 이 부분은 차후 다시 수정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신해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블릿 화면에 뜬 서류를 살펴봤다. 변형 게이트는 지금, 무엇보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문제였다. 옆에 선 에스퍼는 찬찬히 설명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변형 게이트 안의 던전은 타 등급 던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 입구인 게이트가 주위의 생명체를 끌어들인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계속하라는 듯 신해창은 말없이 서류를 넘겼다.

“이번 S급 변형 게이트로 확인해 본 결과, 빨아들이는 것은 주로 생명체이며, 주위에 생명체가 없으면 여러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던전 속에 집어넣는 것 같습니다.”

“가리지 않고 전부 다입니까?”

“예. 전부 다입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뻗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모아 뒀을 때, 가까운 인물 중 약자에 먼저 손을 뻗었습니다.”

“약자…….”

“예. 하지만 그 어떤 약자를 앞에 두더라도, 가이드를 먼저 끌어들이려는 특징이 도드라졌습니다.”

서류를 넘기던 신해창의 손끝이 멈췄다.

“가이드?”

“예. B급이나 A급 던전은 그 특성이 뚜렷하지 않지만, S급에서는 무척이나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에스퍼와 가이드가 있을 때, 가이드만을 끌어당기려고 했습니다. 일반인을 옆에 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해창의 미간이 좁혀졌다. 단순히 가이드가 위험해서 곤란하다고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게이트가 생명에 반응한다는 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나, 그 생명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쉽사리 수긍할 수 없었다.

서 있던 에스퍼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변형 게이트라기보다는, 진화한 게이트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던전 내부는 비슷하다고 하나, 그 특성이 꽤 복잡한 문제를 일으켰다. 변형 게이트가 만약 서울 한복판에 생긴다면? 가정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치켜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서류의 10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그런 게이트가 열리는 곳이 돌무더기 근처라는 점입니다.”

“돌무더기?”

“예. 변형 게이트는 주로 산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나타납니다. 특히 몇몇 특정 성분이 들어간 돌이 많은 곳에 생성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이제까지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돌무더기. 돌무더기……. 곰곰이 생각하던 신해창의 표정이 묘해졌다. 안단테가 찾아다니던 곳이 돌무더기 주위였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나.”

“예?”

“아닙니다. 계속 보고하십시오.”

에스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재 이 정보는 모든 나라에 알려진 상태로, 다들 게이트를 통해 알아낸 특정 돌들을 아르헨티나로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단장님이 허락하시면 곧바로 돌을 아르헨티나에 보낼 생각입니다.”

“허락합니다.”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어딘가에 연락을 넣었다. 그사이 서류를 다 훑어본 신해창은 태블릿을 돌려주며 말했다.

“현재 한국에 있는 보호 계열 에스퍼는 대략 몇 명입니까?”

“저희 길드 내부에는 두 명. 한국 전체로 보면 대략 네 명 정도입니다.”

네 명. 한숨이 나올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다른 나라에서 보호 계열 에스퍼를 초대할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하지만…… 솔직히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모든 나라가 보호 계열 에스퍼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으로 묶여 있지 않은 이상 모두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추세입니다.”

“그렇습니까.”

신해창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해는 갔다. 변형 게이트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금, 모든 국가가 보호 계열 에스퍼를 필요로 한다. 길드 랭킹 2위인 국가안보국이 러브콜을 보내면 솔깃하겠지만, 그래도 위험에서 제 나라를 저버릴 에스퍼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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