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43화
“예?”
진효섭의 눈이 커졌다. 놀란 그가 곧장 테디를 돌아봤다. 테디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진효섭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챈 진효섭은 당황스러움을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에 심취한 셀레나는 그런 테디와 진효섭의 묘한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심지어 A급! 하아, 정말 대견하지 않니? 높은 등급이 나올 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A급일 줄이야……. 내 배에서 나온 애가 맞는 건지 의아할 정도라니까.”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에스퍼로의 발현은 경사였으니까. F급이나 D급이 아니라면, 타고난 재능으로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다. B급만 돼도 동네에 현수막을 걸 지경인데, A급이라니. 이런 시골에서는 드물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효섭이 혼란스러움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우선 침착하게 대답했다.
“……축하할 일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테디를 위해서 아침부터 칠면조 요리에 케이크까지 준비했잖아. 후후, 그게 다가 아니야. 와인까지 준비해 놨다고! 이럴 때를 위해서 고이 모셔 뒀던 건데, 오늘 같은 날 오픈하지 않으면 언제 해.”
와인을 특히 좋아하는 셀레나였기에 입꼬리가 잔뜩 풀려 있었다. 그녀는 준비한 와인을 다 마시고 또 새로운 와인을 꺼낼 기세였다. 그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때, 케이크의 장식을 쿡쿡 찌르던 테디가 돌연 물었다.
“근데, 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다음 이어질 말을 예상해 버린 탓이다. 오늘 파티가 이런 이유 때문인 줄은 몰랐기에 마음 준비할 시간이 없어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테디는 진효섭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거침없이 물어 왔다.
“진, 가이드야?”
“어?”
“뭐?”
모녀가 똑같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진효섭을 바라봤다.
“가이드? 진이 가이드라고?”
특히 티나는 충격을 받았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아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케이크를 한 입도 먹지 않고서 곧장 진효섭에게 물었다.
“진. 진짜 가이드야?”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대번 바뀌었다. 진효섭은 어쩐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현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긴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있을 거라 여겨 말하기를 미뤘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알리게 될 줄이야.
역시, 처음 발현율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말했어야 했던 걸까.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였다.
“가, 가이드라니…….”
티나가 아연실색해 중얼거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윽고 티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그럼 나랑은 결혼 못 하는 거 아니야? 가이드의 짝은 에스퍼잖아.”
“그건…….”
딱히 결혼을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가이드는 에스퍼와, 에스퍼는 가이드와 짝을 맺어야 한다는 게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만큼이나 통상적인 인식이었다. 물론 다른 사랑과 연애도 존재하지만, 어린 티나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진효섭이 난감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티나는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진, 바보! 나랑 결혼한다고 했으면서!”
진효섭은 당황해서 허둥지둥 휴지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티나는 휴지를 건네는 진효섭의 손을 쳐 내곤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티, 티나!”
티나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인이 진효섭을 막아 들었다.
“아니야. 내가 가 볼게.”
“죄송합니다. 저는 거짓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에이. 이게 왜 네가 미안해할 일이야. 우리가 묻지도 않았던 건데. 그것보다 진이 가이드였을 줄은 몰랐네.”
셀레나가 방긋 웃으며 진효섭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침 잘됐다. 티나는 나한테 맡기고 테디랑 이것저것 얘기 좀 하고 있어. 앞으로 한국에서 길드 생활해야 하는 테디한테 조언해 줘도 좋고. 알았지?”
엄지를 치켜올린 그녀는 진효섭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티나!’ 하고 외치며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자리에는 테디와 진효섭만이 남았다.
진효섭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괜찮을까?”
“뭘 걱정하고 그래. 엄마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잖아. 어차피 저것도 한순간이야. 쟤는 단순해서 내일 케이크 한 조각 먹고 나면 기분 좋아질걸.”
테디다운 위로에도 진효섭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차피 쟤는 환상에서 좀 깨야 해. 울면 다 되는 줄 아는 애니까. 결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지.”
톡톡, 말을 끝낸 테디는 가볍게 식탁을 두드려 아직도 2층 쪽으로 향해 있는 진효섭의 주위를 끌었다.
“그보다, 진. 나 진이 가이드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진짜 전혀…… 아, 아니다. 조금 묘하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아.”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이 진효섭을 훑었다.
“뭐라 해야 하지. 끌림? 아우라? 아무튼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어. 그때는 그냥 20대 동양인이 여기 온 게 흔치 않아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그래?”
“응. 그저께 도시에 발현 검사받으러 갔을 때 가이드랑 마주했는데, 보고 나니까 확신하게 됐어. 진이 가이드였구나 하고.”
연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테디의 눈빛에 진효섭이 뺨을 긁적였다.
“근데 그 사람보다 진은 더 묘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 왜지?”
“모르겠어.”
진효섭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에스퍼가 아니니, 에스퍼가 가이드를 알아보고 구별하는 느낌을 알 수 없었다. 테디 역시 설명하기 어려웠는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러곤 네모난 케이크의 귀퉁이를 포크로 쿡쿡 찌르며 물었다.
“뭐, 그래. 아무튼. 그럼 진은 등급이 어떻게 돼?”
“……그냥. 낮은 등급이야. 너무 낮은 등급은 가이드로 대우도 못 받고, 그, 메리트가 없는 것 같아서 여기 있기로 했어. 농사일이나 그 외 여기서 하는 일들이 적성에 맞기도 하고.”
진효섭은 괜히 묻지도 않은 것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다행히 테디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기실 테디는 진효섭이 가이드임에도 이런 시골에 머무르는 것보다 다른 것들이 더 궁금했다. 에스퍼로 발현했다지만, 아직 바깥을 모르는 그에게 진효섭은 좋은 정보원이었다.
테디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진은 길드에 들어가 본 적 있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나이 먹고 길드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 어째서냐고 물을 테고, 그렇다고 들어간 적 있다고 하면 어느 길드냐고 물을 텐데. 짧은 고민을 한 진효섭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 어딘데?”
당연하게도 예상했던 물음이 돌아왔다. 진효섭은 침착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지금은 망해 버렸어. 유명하지 않아서 말해도 모를 거야.”
“으음, 그렇구나.”
더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테디는 진효섭이 들어갔다던 길드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주제를 꺼낸 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듯 새로운 질문이 뒤따랐다.
“그럼 한국에 있는 다른 길드들은 어때? 길드 생활 해 봤으니까, 잘 알 것 같은데.”
“잘은 몰라. 유명한 길드 몇 개 아는 게 다야. 관심이 없어서…….”
애초에 진효섭은 길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 길드에 대해 알아본 것 또한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뿐이었다. 노아피에 들기 전.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런 곳들 말이다. 그러니 아마 테디가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게 적을 것이다.
하지만 테디는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진효섭조차도 잘 알고 있는 한 군데를 콕 집어 물었다.
“아, 그럼 국가안보국은 알고 있겠네.”
묻지 않았으면 하는 길드 중 하나를 정확히 짚는 바람에 진효섭은 순간 숨을 삼켰다. 물론 금세 침착할 수 있었다. 국가안보국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드였으므로.
“……그렇지. 가장 유명한 길드니까.”
“오! 그렇다면 다행이다.”
테디가 몸을 바로 하고 진효섭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거기 어때? 나 사실 국가안보국 노리고 있거든. 이번에 지원서도 넣으려고 준비 중이야.”
하필. 진효섭은 자꾸 굳으려는 표정을 애써 펴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좋아. 사람들도 좋고, 대우도 좋은 편이고. 대신 조금 바쁜 것 같더라.”
“아, 바쁜 건 괜찮아. 길드 랭킹 2위 명성인데 그 정도야 뭐.”
“2위?”
진효섭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가 알기로, 국가안보국은 10위 밖이었다. SS급 던전으로 많은 이득을 봤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2위라니. 진효섭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테디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진은 몰라? SS급 던전이 생기고 나서부터 꾸준히 오르더니 이제 2위까지 차지했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유명한 길드가 됐잖아. 더불어 한국도 명성을 얻었고. 그래서 나처럼 많은 에스퍼가 한국 길드에 들어가길 노리고 있을걸.”
테디는 포크에 묻은 생크림을 한입에 해치우고는 중얼거렸다.
“아무렴. 그 작은 나라에서 1, 2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데 당연하겠지.”
진효섭이 멈칫했다. 1, 2위라니. 2위가 국가안보국이라면, 한국에 1위 길드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