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42화
“그렇다면 던전에 들어간 게 아니겠지. 밖에서 물건을 썼을지도. 역시, 그 노인네를 잡아 족쳐야겠어.”
안단테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가에선 살기가 감돌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노인네였어.’
진효섭에게 준 보석을 쥐고 있었던 것부터,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상황까지 모두 거슬렸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찾아서 그 집에 도착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진효섭이 그 노인의 집에 있었기에 찾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름하니 평범하게 보이지만, 위성이나 물품으로 찾을 수 없게 만드는 물건이 붙어 있는 수상한 집. 그 노인네도 쫓기느라 숨어 살았던 걸까. 사람들이 찾지 못할 법한 골짜기 어중간한 곳에 터를 짓고 사는 것부터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치매가 걸린 건지 뭔지 아무것도 기억 못 해서 더 짜증 났다.
그동안은 진효섭의 일로 알아볼 게 많아서 노인네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은퇴해서 사는 에스퍼일지도 모른다.
‘하필.’
진효섭은 유독 그런 이상한 놈들과 인연이 많았다. 가이드는 에스퍼를 끌어들인다지만 진효섭은 그 정도가 특히 더했다. 벌 떼가 달콤한 꿀 내에 집을 착각하고 모여드는 것 같았다. 향도 맡지 못하는 것들 주제에. 기분 나쁜 일이었다.
“나는 먼저 가 볼 테니까. 앞으로 던전 말고 밖에서 진효섭을 찾아.”
“단장, 지금 내 말을 듣기는 한-”
“안단테.”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코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보는 안단테의 눈이 가늘어졌다. 매번 ‘단장님’ 하고 존댓말을 쓰던 코다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안단테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이제 그만하고 현실을 직시해. 진효섭은 죽었어.”
“코다. 너도 신디처럼 돌아 버리기라도 했어? 죽기는 누가 죽었다는 거야.”
“모든 정보와 증거가 죽음을 가리키고 있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너 혼자뿐이야.”
“말했을 텐데. 진효섭이 날 만나기 전에 뭔가를 손에 쥐었다고. 그게 가능성이 아니면 뭐라는 거야.”
“믿고 싶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뿐이겠지. 아무리 살아 있다고 생각해 봤자, 끝을 아는 순간이 더 힘들어질 뿐이야. 죽음을 받아들여. 그게 진효섭을 위하는 일이 될 테니까.”
“하, 하하.”
어두워진 코다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단테는 어깨를 떨어 대며 웃었다. 목덜미부터 턱선까지, 시퍼런 핏줄이 선명히 도드라진 채였다.
“쉽게도 말하네. 너 역시 겪어 봤던 일이면서.”
“그렇기에 말할 수 있지.”
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이제 어둡다 못해 우울했다.
“그날, 아노가 죽었다는 걸 확인했으면서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어. 다시 찾는다면 그가 되살아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하지만 희망은 코다를 배신했다. 아니, 배신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죽음을 확신했으면서도 살 수 있을 거라고. 괴물을 죽이면 던전에서 제 연인을 다시 구출할 수 있을 거라고.
“눈으로 확인해 봤자 돌아오는 건 없어. 더 큰 상실감뿐이지. 그러니 여기까지만 해. 더해서 좋을 것은 어디에도 없어.”
“웃기지 마.”
“안단-”
“죽었다면, 시체라도 손에 쥐어야겠어. 떠나간 영혼이라도 다시 그 몸에 붙여 놓을 방법을 구할 테니까.”
피비린내가 뚝뚝 떨어질 듯한 날것의 감정이 비쳤다. 싸늘하게 식은 얼굴에 초조함과 냉소, 근원지를 알 수 없는 파괴적인 성질이 한데 얽혔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길드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을 다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도 안단테는 진득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표출하고 나니 더 짙어진 듯했다.
“이제껏 내가 손에 넣지 못한 건 없었어. 그건 진효섭 역시 마찬가지야.”
“너…….”
“그러니까 작작 해. 사람 돌아 버리게 하지 말고.”
안단테는 사납게 말을 쏘아붙이곤 곧바로 몸을 돌렸다. 더는 이야기를 잇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으나 코다는 그런 안단테를 끝내 붙잡았다. 지금 안단테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안단테는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몸을 갉아 먹는 독이 감정에 동화돼서 정신까지 집어삼킨 듯, 상태가 점차 나빠졌다.
코다는 한시라도 빨리 그를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아피의 길드장임과 동시에 코다의 오랜 친구였으므로 가만히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오웬.”
“놔.”
“진효섭은 어쩌다가 던전으로 들어갔지? 혹시-”
“놓으라고.”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코다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이윽고 코다가 마른기침을 토해 냈지만, 안단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
바닥에 주저앉은 코다는 안단테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입가를 닦았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나.’
이미 안단테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떤 진실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진효섭을 향한 마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었던 탓이다. 그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으면 좋으련만.
상황은 이미 바닥을 향해 치달았고, 진효섭의 생사는 확인할 수 없다. 하나뿐인 동생에 이어 연인까지 던전에서 잃은 안단테. 코다 역시 연인인 아노를 눈앞에서 잃었지만, 감히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늦었음에 통탄했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안단테는 이제껏 가져 보지 못한 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머리에 열이 올라 뱉은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애써 무시할 뿐.
기실 그들은 아노가 있는 SS급 던전을 찾기 위해 많은 던전을 전전하며 알아보았었다. 생명을 되살릴 방법을.
‘하지만 그런 건 세상에 없었어.’
놀라운 힘을 가졌다는 던전의 물품들도, 세계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마법과도 같은 아이템도, 떠나 버린 영혼을 되돌리는 것만큼은 불가능했다. 죽음 앞에서는 강인한 힘도, SS급도 다 소용없었다.
생명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코다가 평생 추스르지 못할 것 같던 감정을 내려놓은 것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다.
코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계속해서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안단테는 어떻게 될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 * *
“진!”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티나가 잽싸게 진효섭을 향해 뛰어왔다.
“여기 수건.”
“항상 고마워.”
진효섭은 티나에게서 노란색 수건을 받아 땀을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티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눈까지 빛내는 터라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엄마가 오늘 파티할 거니까 진을 데리고 오래. 그래서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 우리 얼른 가자. 집에 케이크도 준비해 놨거든.”
“파티? 왜 갑자기 파티를-”
“어휴, 얼른 가자니까. 얼른얼른.”
“하지만 내가 땀을 흘려서…….”
“괜찮아. 진은 언제나 향기로워.”
티나가 진효섭의 손을 이끌었다. 강하지 않은 힘이었지만 진효섭은 티나의 손에 끌려 그대로 걸어갔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티나는 ‘빨리, 빨리’ 하며 걷는 와중에도 진효섭을 재촉했다.
발그레한 볼과 연신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미루어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듯했다. 새해맞이 파티라도 하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티나가 너무 급해 보여서 진효섭은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티나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엄마! 진 데려왔어!”
“실례합니다.”
티나는 쏜살같이 집 안으로 들어갔고, 진효섭은 아이가 벗어 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뒤따랐다.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겼다. 언제나 그랬듯 테디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셀레나는 방금 꺼낸 건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다란 칠면조 요리를 식탁 정중앙에 올리고 있었다.
“어머, 진 왔어?”
두 사람이 진효섭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예. 오늘도 저녁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셀레나가 다정히 웃었다.
“안 불러도 자주자주 놀러 오라니까, 왜 테디의 공부가 아니면 오지 않는 거야? 나 정말 섭섭해.”
“폐가 될까 봐…….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
“어머, 귀여워라.”
진효섭이 매우 마음에 드는지 여인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로 장가갈지 몰라도 그 여자는 부럽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이런 청년 가만 안 뒀을 텐데.”
“엄마. 그 부러운 여자는 내가 될 테니까, 제발 내 미래의 남편 건들지 마.”
티나가 단호히 잘라 내며 자리에 앉자 그 맞은편에 있던 테디가 혀를 끌끌 찼다.
“누가 네 미래 남편이냐? 진짜 꿈도 야무지지.”
“내가 결혼하자고 하니까, 진이 오케이했거든?”
“그건 네가 울고불고 난리 치니까 어쩔 수 없이 오케이한 거겠지.”
“아니라고! 너는 왜 네 맘대로 생각해? 웃겨 진짜.”
남매는 얼굴만 마주했다 하면 이를 드러내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굴었다. 항상 있었던 일이었기에 모두가 덤덤했다.
“진. 얼른 앉아. 오늘은 내가 솜씨 좀 발휘했거든. 케이크까지 준비했어.”
“꺄!”
셀레나가 커다란 케이크를 꺼내 들자 티나가 머리 위로 양손을 치켜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손뼉을 칠 정도로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바뇨스는 워낙 시골인지라 조각 케이크 같은 걸 팔지 않았다. 먹고 싶다면 커다란 케이크를 사야 하는데, 어지간한 날이 아니면 먹기가 참 어려웠다. 그제야 진효섭은 왜 티나가 그렇게나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슨 날인가?’
진효섭은 케이크 위에 적인 [Congratulations]이라는 문구를 보고 의아해 물었다.
“오늘, 축하할 일이 있나 봅니다.”
“그럼! 오늘은 경축할 날이지.”
셀레나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테디의 어깨를 짚으며 이어 말했다.
“드디어 테디가 에스퍼로 발현했거든! 며칠 전에 몸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해서 도시까지 나가 검사해 봤는데, 에스퍼로 발현했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