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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41)화 (14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40화

태블릿 위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울렁거리는 심장에 안단테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손끝은 빠르게 정보를 넘겼다.

[이름: 진효섭(Code name, JIN).

등급: S급.

형질: 가이드.

나이: 추측 24살(20대 중반).

국가: 한국인. 미국 거주 중 행방불명.

부모: 미국에서 자연재해로 사망(그 이후, 위탁해 줄 가정을 찾지 못해 근처 수도원에 위탁).

발현: 14살.

소속됐던 길드: A급 길드 BETEL. 소속되고 한 달 남짓 후 길드가 해체됨.

각인: A급 에스퍼 디트리(BETEL 길드장의 동생).

특이 사항: 각인한 상대 디트리는 6년 전, A급 에스퍼 렌(그 당시 같은 길드원)과 함께 사망한 채로 저택에서 발견. 흔적을 보아 진효섭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지만, 이후 그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음.]

안단테는 익히 알던 정보들을 한차례 훑고는 태블릿을 대충 던져 버렸다. 와장창! 화면이 깨진 채 바닥을 뒹구는 것이 현재 안단테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X발…….”

나직한 욕설과 함께 안단테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었다. 고작 한 달 가이딩을 받지 않았다고 몸에 독이 잔뜩 퍼져 있었다. 문제는 혈관이 두드려 맞는 듯한 느낌이 지속되는데도 도무지 가이딩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진효섭을 찾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단테는 단 한숨도 자지 않은 채 움직였다. 딱히 괴롭지는 않았다. 이 정도야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숨이 틀어막히는 듯했다. 안단테는 목을 조이는 단복을 손끝으로 늘였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더 힘을 주어 당겼다.

부북- 소리와 함께 재질 좋은 단복이 찢어졌다. 이제 목을 틀어쥐는 것도 없건만 욕설이 비집고 나올 정도로 여전히 답답했다.

‘단장. 이제 그만해요.’

‘그만하긴 뭘 그만해.’

‘벌써 한 달이 넘었어요. 진효섭 죽었다고. 살아 있을 확률을 버리고 시체라도 찾는 방향으로-’

‘개소리하지 마. 고작 한 달 남짓일 뿐이야.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커.’

‘가능성이 크긴 뭐가 크냐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플랫이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다 같이 던전을 전전한 노아피도 한 달이 지나자 이제는 진효섭이 살았다고 보기 어렵지 않냐며 안단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단테는 고집을 피웠다.

‘개소리하지 말랬지. 닥치고 던전 속 생명 반응이나 확인해.’

그때, 잠자코 있던 신디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게이트가 닫힌 던전 안에서 나오는 데만 자그마치 1년이 걸렸어. 그런데 이미 닫혀 버린 게이트에 들어간 일반인을 대체 어떻게 구하겠다는 거야. 구할 수 있었다면, 아노가 그렇게 죽었겠어?’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분위기가 내려앉았지만, 그 누구도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다. 모두 입 밖으로 내뱉지만 못했을 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안단테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아노가 죽었을 때 그들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한 번 겪어 봤기에 그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던전에 진효섭이 들어간 게 진짜라면, 구하는 건 불가능해.’

어쩔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는 헛된 희망에 잠겨 있는 안단테를 끌어내려는 듯 현실을 일깨웠다.

‘이미 진효섭은 죽었-’

‘죽기는 누가 죽었다고 지랄이야.’

안단테가 실핏줄이 터져 벌게진 눈을 희번덕거렸다. 능력을 쓰는 기색도 없었는데 그의 주위에서부터 공기가 무겁게 퍼져 나갔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모든 유리에 금이 갔다. 꽉 다문 치아 사이로 흥분한 듯 격한 숨이 새어 나왔다. 어깨를 들썩이는 안단테는 길드원조차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SS급 던전의 보스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넘실거리는 능력을 자제하지 않고 씩씩대는 게 평소 같지 않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능력과 벌겋게 실핏줄이 터진 눈, 거기다 찬란한 황금빛까지. 하나같이 폭주 직전의 에스퍼 같아 보였다.

안단테는 과거를 떠올리다 말고 움찔거렸다.

“아, 씹…….”

고작 진효섭에 대한 생각 좀 했다고, 또다시 폭주할 듯 근육이 제멋대로 긴장하며 힘이 일렁거렸다. 전이었다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통제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힘들었다.

안단테는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힘을 죽이려는 듯 필사적이었다. 지금은 흥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그것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진효섭이 살아남을 확률은 낮아져만 갔고, 그것은 초조함을 불러일으켰다. 진효섭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만으로 미칠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다고 되뇌었지만, 폭주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쉽사리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하아……. 아냐. 그럴 리 없어. 죽었을 리가…….”

안단테는 애써 터질 것 같은 감각을 다스리며 거실 중앙으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진효섭의 과거에 대해 알아봤던 정보를 다시금 돌이키며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노아피는 오늘부로 모든 던전을 돌았다. 이제 더는 돌 던전이 없는데도 진효섭은 찾지 못했다. 그제야 안단테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렇게까지 찾았는데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만약 죽었다면 시체라든지 그 흔적이라도 발견해야 정상인데.

게다가 안단테가 알아본 바로 진효섭은 JIN이라는 외국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코드네임이 아닌, JIN이라는 전혀 다른 인물. 또한 진효섭은 전화를 끊은 즉시 기차표를 끊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왜 간 걸까.’

혹시 무언가를 얻으러 간 게 아닐까. 위치를 곧 들킬 거란 걱정에, 몸을 보호하는 물건을 손에 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물건이 던전에서 탈출하도록 도운 거고. 진효섭이 죽지 않았다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추측하자 희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안단테는 그길로 생각을 바꿨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정해 찾는 방향이었다. 진효섭에 대한 과거의 모든 것은 진작에 알아봤다. 안단테는 하나하나 흩어져 있던 정보들을 더 깊이 파헤치며 조합해 퍼즐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진효섭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비밀스러운 가이드였다. 처음, 그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 제일 먼저 알게 된 건 BETEL의 전 가이드였다는 점이다. 동시에 안단테는 진효섭의 각인 문양을 어디서 봤던 건지 기억해 냈다.

‘어쩐지, 낯이 익다고 했지. 그 문양…….’

그것은 BETEL의 문양과 비슷했다.

과거, SS급 던전에 들어가던 당시 성공을 믿고 모든 것을 바쳤던 길드가 세 군데 있었는데, BETEL은 그중 하나였다. 대규모 길드가 그 위험한 던전에 길드 전원을 데리고 들어갔었기에 특히 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한 번 눈길을 준 게 다였지만.

아무튼 그 BETEL의 길드장이 가진 문양은 진효섭의 심장께에 자리한 문양과 아주 유사했다. 완전히 똑같진 않았지만 떠올리고 보니 확실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길드장의 동생이어서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BETEL의 길드 가이드가 하필 죽은 길드장의 동생과 각인이라. 직접 본 적도 없는데 그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보나 마나 디트리라는 놈이 길드장이 죽은 걸 빌미로 진효섭을 꼬드겼겠지.’

지금도 어수룩한데 10년 전이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터. 사탕발림에 디트리와 각인을 했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협박 비슷한 게 있었거나. A급 에스퍼 주제에 S급과 각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알아보고 머리를 굴려 보아도 디트리와 렌이라는 두 에스퍼가 함께 죽어서 발견된 배경은 알 수 없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떻게 죽게 됐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아마 그 당시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효섭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생각에 빠져 있던 안단테가 치아를 빠득 갈았다.

‘집착입니다.’

단언하는 진효섭이 떠오르자 절로 열이 치솟았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굳이 생각을 이어 가지 않아도 누구와 겹쳐 보고 있는지 쉬이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더러웠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집착……. 집착이라고.”

확실하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지 못했다. 내심 이 마음이 에스퍼들이 느끼는 집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정에 정의를 내리는 게 뭐 그리 중요하나 싶은 반발심도 들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잣대를 들이대 봤자, 정답도 없는 것을.

“하……. X같게.”

안단테가 거칠어진 뺨을 손등으로 쓸어내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실에 놓인 노트북을 켰지만, 길드원에게서는 특별한 정보가 도착하지 않았다. 더 드나들 던전도 없는 이상, 지금은 코다와 플랫이 가져올 진효섭에 대한 정보를 기다려야 했다.

앞으로 더 움직여야 할 일이 있을 테니 그동안 잠깐이라도 몸을 쉬어 둬야 할 터. 하지만 텅 빈 집에서 홀로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유난히 주위가 조용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문을 열고 진효섭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붉은 자국을 목덜미에 달고 수줍게 웃는 진효섭이…….

‘형.’

귓가에 환청까지 맴돌자 안단테는 결국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듯 텅 빈 집을 나섰다. 함께 살았던 집도 아닌데, 진효섭이 없다는 사실에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럼에도 잊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대체 뭐가 잘못됐던 걸까. 생각을 더 깊이 이어 가고 싶었으나 산소가 부족하다는 양 뇌는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

치밀어 오는 감정의 파도에 안단테는 필사적으로 가빠지는 숨을 죽였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던전을 맴도는 것뿐이었다.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감정이 폭주할 것만 같았으니까.

이번 던전행은 꽤 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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