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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40)화 (140/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39화

셀레나는 한국 음식으로 가득한 식탁 앞에서 진효섭의 손을 꼭 붙들었다. 반짝이는 눈빛을 미루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진. 부탁이 있어.”

진효섭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말씀하십시오.”

“네가 우리 티나랑 테디의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예?”

의외의 부탁에 진효섭은 눈을 끔뻑였다.

“너도 알다시피, 테디가 예전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거든. 그런데 마침 진 네가 있으니까, 도와주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대신 과외비는 따로 지불할게.”

“아, 아닙니다. 과외비는 괜찮습니다. 저 또한 스페인어를 도움받고 있는 걸요.”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마워. 그럼 진의 저녁 식사는 내가 책임질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셀레나는 부드럽게 풀린 표정으로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고, 진효섭은 미미하게 웃었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어까지 공부하려고 드는 집안이 조금 신기했다. 스페인어부터 영어까지 충분히 능통한데, 한국어까지 더 배우려고 하다니. 외국을 많이 다니는 집도 이 정도로 언어에 능통하고 많이 배우려고 하지는 않는데.

그때, 2층에서 테디와 티나가 함께 내려왔다.

“어? 진! 왔구나? 왔으면 말을 하지!”

티나가 제일 먼저 다가와 진의 목에 매달렸다. 그러곤 마치 지정석인 것처럼 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안. 셀레나랑 잠깐 얘기를 하느라.”

“진. 오랜만이네.”

“테디.”

진효섭이 테디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그는 티나와 남매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다만 항상 웃는 모습인 티나와는 달리 조금 시큰둥한 표정에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진효섭의 눈에는 역시 아직 어리기만 했다. 물론, 서양인인 그들의 눈에도 진효섭이 그다지 나이 차 있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 한국어 과외.”

“응. 들었어. 걱정하지 마, 도와줄게.”

테디의 표정이 밝아졌다. 웃으니 티나와 더 똑같아 보였다.

“오, 정말? 다행이다. 한국어가 어려운 언어더라고.”

“아, 그런데 나도 미국에서 오래 있어서 한국어에 능통하다고는 말 못 해.”

“괜찮아. 회화는 잘할 거 아냐. 문법은 대략 공부했는데, 회화에서 막혔거든. 한계가 있더라고.”

“그런 거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오, 좋아. 좋아.”

테디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진효섭의 맞은편에 앉았다. 평소에도 한국 음식을 자주 먹는지, 미역국을 제 몫의 그릇에 옮겨 담는 손이 거침없었다. 외국인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하기 마련인데, 정말 한국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회화까지 배우려는 이유가 따로 있어?”

그냥 좋아서라기에는 과외까지 원하는 게 다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티나가 달콤한 양념 치킨을 입에 넣은 채 말했다.

“한국인 남편이 생길 테니까, 미리 공부해야지!”

티나의 대답에 테디가 혀를 끌끌 찼다.

“너한테는 안 물었거든?”

“나도 배우니까 대답한 것뿐이거든? 미래에 한국인 남편이 있을 건데 미리 공부해 놔야지.”

“그딴 쓸모없는 이유로 공부 방해하지 마.”

“방해라니? 너나 나랑 진 사이를 방해하지 마. 네 공부 때문에 만날 시간 줄어들잖아.”

“웃기네. 진이 왜 너랑 결혼해? 그럴 일 없으니까 꿈 깨. 쪼끄만 게.”

“고작 네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어른인 척하지 마! 테디, 너도 미성년자거든? 진이랑 비교하면 쪼끄만 게!”

“웃기지 마. 내년이면 진 정도는 넘어설 거거든?”

“이익…….”

그건 반박하지 못하겠는지 티나가 눈을 부라렸다.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 사이에서 셀레나가 뿌듯하게 웃었다.

“우리 애들은 참 사이가 좋아.”

“그렇네요.”

진효섭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됐어. 어린애랑 뭘 말해. 됐으니까 내 공부 시간에 같이하겠다고 방해하지 마. 난 중요하다고.”

“이……! 안 해! 난 따로 배울 거다, 뭐!”

입술이 한 주먹은 튀어나온 티나가 전투적으로 치킨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입술 여기저기에 양념을 묻힌 탓에 진효섭이 조심스레 휴지로 닦아 주었다. 그 모습을 혀를 차며 흘기던 테디는 먹던 미역국을 단번에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

“어머, 테디. 치킨은 안 먹고?”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좀 그렇네. 됐어. 야식으로 먹지, 뭐. 치킨은 한국에서도 야식으로 먹는대.”

“그래도…….”

셀레나는 테디가 치킨을 먹지 않아 섭섭한지 말끝을 늘였다. 그러나 테디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는 2층으로 올라가려다 말고 진효섭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보다 진. 기왕 온 거, 밥 다 먹으면 나 공부 몇 가지만 봐주라.”

“아, 응. 그럴게.”

테디는 확답을 듣자마자 곧장 2층으로 향했다. 그 뒤에 대고 티나가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했지만, 진효섭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게 나쁜 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한국과는 정반대라 해도 좋을 만큼 멀리 있는 나라. 그런데도 굳이 한국어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게 신기했다. 여기에서 한국 사람을 만날 일도 없을 텐데.

처음에는 그저 한국이 좋아서,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과외까지 원할 정도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진, 괜찮으니까 천천히 밥 먹어.”

“네.”

셀레나의 말에 진효섭은 다시금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중간중간 티나를 챙기면서도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한 대로,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자 공부하던 테디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벌써 왔어? 천천히 먹고 와도 되는데.”

“아냐. 충분히 먹었어. 그것보다 한국어 공부 중이야?”

“응. 몇 가지만 좀 봐줘. 시간 많이 안 뺏을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진효섭은 테디에게 다가가 그가 하던 공부를 훑어봤다. 언젠가 진효섭이 한국에 가기 전에 공부했던 것만큼 글씨가 빼곡했다.

테디가 짚어 둔 문제 몇 가지를 본 진효섭은 차근차근히 의문점을 해결해 줬다. 진효섭에게는 어렵지 않은 문제였지만,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지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역시…….’

의아함이 다시금 고갤 들었다. 공부량이 진효섭이 한국에서 오래 살기 위해서 했던 정도와 비슷했다. 단순히 좋아해서 이렇게까지 공부한다기엔 무리가 있었다.

“테디. 아까 물어본 거……. 다시 물어봐도 돼?”

“아까? 아, 한국어를 왜 공부하냐고?”

진효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딱히 비밀로 해야 할 이유는 아닌 듯 이어지는 대답은 가벼웠다. 하지만 진효섭은 그 대답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발현하면 한국 길드로 가고 싶어서.”

“……발현? 발현이라니?”

반면, 테디는 놀란 진효섭의 반응이 익숙한 듯했다.

“나 여덟 살 때부터 에스퍼 발현율 90% 이상이라고 떴었거든.”

진효섭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에, 에스퍼 발현율……?”

“응. 우리 할아버지가 에스퍼셔서 유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릴 때부터 검사했었는데, 마침 내가 딱 걸렸지 뭐야. 예정보다는 발현이 좀 늦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적어도 열아홉 살이 되기 전에는 할 테니까. 이제 1년도 안 남았어.”

테디는 탁자 위에 올려진 달력을 흘끔 보고는 말했다.

“원래는 미국 쪽으로 가려고 우리 식구가 다 같이 영어 공부했었는데, 2년 전부터 한국 쪽으로 길을 바꿨어. 나, 미국보다는 한국이랑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더 잘 맞는 것 같거든. 한국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 그래서…….”

“응. 그것 때문에 한국어 연습을 미리 해 두는 거야. 발현하면 바로 한국 길드에 지원서를 넣을 거라서.”

“그, 렇구나.”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지원서를 넣을 한국 길드가 어디일지는 몰라도 일단 에스퍼라는 말에 긴장해 버렸다.

‘아직은…… 내가 가이드인 걸 모르나 본데.’

발현하기 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테디가 발현하면 분명 진효섭이 가이드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말해야 하는 걸까.

상황이 조금 난감해졌다. 원래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가이드인 걸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는 앞으로 가이드인 것을 숨기고, 그쪽 세계와는 전혀 관계되지 않은 일을 할 예정이었다. 에스퍼가 절대 들르지 않을 곳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면 가능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또다시 에스퍼와 마주한 상황에 그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진효섭은 한참을 우물대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테디.”

“아, 너무 걱정 마. 진.”

진효섭이 설마,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에스퍼라고 무서워할 필요 없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가끔 여기 사람들은 내가 에스퍼가 될 거라고 하니까 무서워하더라고. 진도 그런 거 같아 미리 말해 주는 거야.”

테디는 단단히 오해한 얼굴로 씩 웃었다. 언제 발현할지도 모르는 일, 당장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진효섭은 결국 어색한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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