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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38)화 (138/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37화

뺨을 붉힌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남자를 몰래 훔쳐봤다. 부끄러움에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떠나지도 않았다.

「어, 저기 봐. 티나다.」

동시에 아이들의 눈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번뜩였다.

티나는 바뇨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고로, 스페인어에 능통하지 않은 남자와 원만한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아이라는 뜻이다. 소문에 의하면 저 동양인이 처음 만난 것도 티나라고 했다.

이글거리는 질투의 시선을 받으며 티나는 당당하게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

“진. 뭐 먹어?”

“티나.”

머리카락에 가렸던 얼굴이 드러났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바뇨스에 온 지 한 달. 처음과는 달리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지금 피쉬 파테 먹고 있는데. 너도 먹어 볼래?”

진효섭이 잔뜩 쌓여 있는 피쉬 파테 하나를 집어 티나에게 건넸다. 티나는 도도하게 파테를 받아 들고는 진효섭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고마워. 그런데 진, 오늘 나랑 같이 피크닉 가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응.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일하려고.”

티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예! 아저씨들. 나, 진 데리고 가요!」

「진이 어쩐 일로 오후에 볼일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티나 너였어?」

「크핫. 진은 애들한테 정말 인기가 많네.」

같이 새참을 먹던 아저씨들이 껄껄 웃어 댔다.

「당연하지. 진은 고작 일주일 만에 바뇨스에서 제일가는 인기인이 됐잖아. 티나 말고도 종종 애들이 보러 오더라. 아, 저기. 아직도 보고 있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자아이들에게로 향했다. 하나같이 벽담을 짚고서 진효섭을 보고 있었다. 티나가 보란 듯이 진효섭의 팔에 팔짱을 꼈다.

「진은 나랑 결혼할 거예요.」

「으하하, 그러려면 잘 챙겨야겠네. 그런데 네가 성인이 되면 진은 아저씨 아냐?」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게다가 진은 동양인이라서 어려 보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요.」

스페인어로 대화하고 있는 탓에 잘 알아듣지 못하는 진효섭만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언어를 배우는 중이지만, 대화는 아직 어려웠다.

“진. 우리 이제 그만 가자.”

“아, 응.”

아저씨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티나가 진효섭을 이끌었다.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티나가 가장 좋아하는 고무나무 밑이었다. 티나는 미리 챙겨 온 돗자리를 펴고 냉큼 앉아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탕탕 쳤다.

“자, 얼른 앉아.”

“응.”

진효섭은 군말 없이 티나 옆에 앉았다. 그러자 눈앞에 정갈한 도시락이 펼쳐졌다. 동시에 티나의 얼굴 위로 뿌듯함이 서렸다.

“어때, 대단하지?”

“응. 진짜 맛있겠다.”

깨끗하게 썰린 과일과 한국식의 김밥을 보며 진효섭이 감탄했다.

“티나 어머님은 역시 요리 솜씨가 좋으시네.”

“그, 그건…….”

티나의 표정에 균열이 갔지만 진효섭은 눈치채지 못하고 연신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진짜 한국 음식이랑 똑같아.”

“나, 나도 도왔거든?”

“응. 티나도 대단해.”

그제야 티나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흠흠. 것보다, 진. 엄마가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자고 들르래.”

“정말? 하지만……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네.”

김밥이 가지런히 담긴 통을 매만지는 진효섭의 얼굴에 미안함이 감돌았다.

바뇨스에 도착한 지 한 달.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적응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티나 가족이 아니었다면 진효섭은 적응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티나 가족은 영어에 능통했고, 또 진효섭이 바뇨스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 농사를 돕는 일자리를 구한 것도. 빈집을 얻어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티나의 어머니인 셀레나 덕분이었다.

“내가 너무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지금도 넘치도록 받았는데…….”

“어휴, 진은 이게 문제야. 엄마가 좋아서 해 주겠다는데 왜 그래?”

“그래도. 지금도 충분히 받았잖아. 챙겨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죄송해서.”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우리는 결혼할 사이니까 가족으로 생각해도 돼.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약 2주 전부터 티나가 매일같이 하는 말이었다. 결혼과 가족. 진효섭은 그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열네 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의 청혼이 귀여웠다. 그런 진효섭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나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귀여워.’

귀엽기 짝이 없었으나 진효섭은 티나가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애써 속마음을 삼켰다.

처음 만났을 때, 진효섭의 귀엽다는 칭찬에 티나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딱 잘라 말했다. 예쁘다는 말은 좋아해도 귀엽다는 말은 아이 취급하는 것 같아 싫다고 말이다. 그 이후로 귀엽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티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기에, 진효섭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귀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오늘 진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많이 만들어 놨대.”

“정말?”

“응. 왜, 우리 집 돼지가 한국 음식 좋아하잖아. 아,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 한국 음식은 채소 위주던데 걔는 왜 그런 걸 먹고 왜 그렇게 살이 찌는지 모르겠어.”

티나가 말하는 ‘우리 집 돼지’는 오빠인 테디를 말하는 거였다.

“하긴. 판다도 대나무만 먹고 살이 찌니까.”

정말 어쩔 수가 없다며 티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에 진효섭은 뺨을 긁적였다.

“그냥, 딱 보기 좋던데…….”

“진이 걔 뱃살을 못 봐서 그래. 혼자 거울 앞에서 웃긴 자세로 힘주고 있을 때면, 내 눈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티나가 진절머리를 치며 혀를 내둘렀다.

“나의 진 정도는 되어야 그런 짓을 해도 용서가 되지.”

티나의 눈이 반짝였다. 열네 살의 시선치고는 꽤 강렬했다.

“진. 우리는 정말 운명이 분명해. 바뇨스 언덕에 쓰러져 있는 걸 내가 먼저 발견한 것도 그렇고, 우리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우리 집안이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응, 그러게. 신기한 우연이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니까.”

티나는 벌떡 일어나 다짐하듯 가슴 중앙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말했다.

“나만 믿어, 진. 내가 성인이 되면 널 호강시켜 줄 거야. 진도 알다시피 나는 여기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잖아. 이런 시골에서 벗어나면 바로 오디션을 보겠지. 그러고 나면 금방 최고의 가수가 될걸.”

그러곤 호기롭게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그럼 진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남편이 되는 거라고. 멋지지 않아?”

“……그런가?”

“당연하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옆이잖아. 덩달아 유명해질 테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건데. 좋은 게 당연하지 않겠어?”

진효섭은 조금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김밥을 집어 먹었다. 내리깐 속눈썹에서 묘한 감정이 헛돌았다.

“난 잘 모르겠어. 유명한 애인은 좀 그래. 음…… 별로, 인 것 같아.”

“어? 왜? 유명한 거 싫어?”

진효섭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앞에서 하기에는 조금 우스운 말이었지만, 대답하지 않는다면 티나는 종일 그것에 관해서 물어볼 것이다.

큰 예로 처음 티나의 집에서 눈을 떴을 때, 아이는 한국에서 뭐 하느라 여기 오게 됐냐고 물어봤었다. 진효섭이 얼버무리자 일주일 내도록 같은 것을 물어봤었다.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 그랬다는 것을 떠올리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안하잖아.”

“응? 불안해? 왜?”

“유명하면 그만큼 인기도 많아질 테고, 그럼 바쁘고…….”

진효섭이 아이에게 맞는 단어를 선정하기 위해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티나가 손뼉을 치며 유레카를 외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하! 진은 질투쟁이구나?”

“어?”

“질투가 많아서 그런 거잖아. 애인을 나만 가지고 싶다는 거지? 후후, 귀엽긴.”

티나의 말에 진효섭이 조금 당황했다.

“나, 나만 가지고 싶다니. 티나 너 그런 말을 어디서…….”

“걱정하지 마, 진. 나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벗어나도 진보다 더 멋진 남자는 없을 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음, 그래도 진이 불안하다면 가수는 포기해야겠다.”

다리를 쭉 뻗고 앉은 티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그럼, 수학 선생님이나 할까? 나는 여기서 수학도 제일 잘하거든.”

“티나는 잘하는 게 많네.”

“당연하지. 원래 잘난 사람이 미인을 쟁취하는 법이니까.”

티나는 작은 손을 꽉 쥐며 진효섭을 응시했다. 활기찬 눈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쟁취했어.”

“……티나, 너 미드를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냐?”

언젠가 셀레나가 걱정하며 했던 말이 순간 이해되었다. 진효섭은 나름 걱정돼서 했던 말이었지만 티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야. 엄마가 하는 말이랑 똑같아. 난 고작해야 하루에 세 편밖에 안 본다고.”

“어……?”

“아무튼! 진은 걱정하지 마. 내가 성인만 되면 이 지긋지긋한 시골에서 나갈 거야. 미국으로 가면 분명 멋진 생활이 펼쳐질걸.”

티나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에 진효섭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나도 티나가 원하는 대로 잘됐으면 좋겠어.”

“후후. 맞아. 그래야 내가 진을 먹여 살리지.”

“응. 고마워.”

정말 귀엽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진효섭은 저도 모르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티나는 얼굴을 붉히며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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