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꿀 발린 S급 가이드 (135)화 (13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34화

‘렌…….’

그를 부르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심장께로 흘러 들어왔던 것처럼, 그 역시 진효섭의 말을 들은 듯했다.

‘왜……. 왜 날 위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 주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렌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웃었다. ‘그러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품속에서 들려오던 심장 소리는 점차 작아지다 못해 사라졌다. 여전히 품의 온기는 그대로인데 모든 것이 멈췄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새겨진 각인이 파훼되며 생긴 상처 탓인지, 렌을 잃고 아려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뒤늦게 가이딩이 그를 향해 흘러 들어갔지만, 렌은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렌……. 미안해, 렌……. 미안해.”

진효섭은 그제야 나오는 목소리로 사죄하며 오랫동안 그를 안고 있었다. 심장이 까맣게 재로 변했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는 어쩔 도리 없는 겁쟁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 * *

쾅! 사무실 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삐걱거리는 문은 이름이 무색하게 덜렁거렸다. 거침없이 소란을 일으키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인물에 노아피 길드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제일 먼저 체르니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단장님! 효섭 형은 찾았어요? 형 찾으러 간다 해 놓고 무슨 일주일씩이나 소식이…… 어?”

체르니는 안단테와 가까워지고 나서야 그의 옷에 튄 질척한 피를 발견했다. 검은 옷이라서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상당한 양이었다.

“아니, 이건 또 뭐래. 설마 던전 다녀왔어요? 효섭 형 찾으러 갔던 거 아니에요?”

“체르니. 현재 전 세계에 열린 던전 게이트를 전부 다 알아 놔.”

안단테는 체르니의 물음을 무시하곤 한쪽 벽면으로 향했다. 붙박이장을 열어젖히니 단복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는 거칠게 옷을 빼내며 말을 이었다.

“특히 돌무더기 같은 부산물이 많은 곳 위주로. 전처럼 석판이 줄을 지은 곳도 리스트 뽑아.”

질척이는 옷을 벗자 채 스며들지 못한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안단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새로운 단복을 꿰입었다.

평소의 느긋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던전이든 적당히 마실 나가듯이 행동하던 안단테가 옷을 갖춰 입다니. 심상치 않았다.

안단테는 진효섭을 찾았다며 뛰쳐나가서 일주일 동안이나 연락이 끊어졌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찾았다는 말도, 또 도망쳤다는 말도 없었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 답답함이 커졌을 즈음 나타나서는 갑자기 단복을 차려입고서 던전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뭔가 일이 터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단장님, 무슨 일인데요. 제대로 말을 해야지 우리도 심각성을 알고 움직이죠.”

플랫의 진지한 말에 단복을 입던 안단테의 손끝이 멈칫했다. 잠깐의 침묵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곡성 주변에서 게이트가 열렸어. 변형 게이트.”

“변형 게이트?”

처음 듣는 내용에 노아피 모두가 귀를 기울였을 때였다. 안단테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효섭이 거기로 들어갔어.”

“예?”

“네?”

하나같이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안단테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건 안단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일주일, 게이트가 닫히든 말든 계속해서 던전 안을 맴돌았다. 시간 감각조차 사라져 그새 일주일이 흘렀단 사실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던전을 쉼 없이 돌며 진효섭을 찾아 헤맸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끊임없이 숨은 방이든 뭐든 전부 다 헤집었다.

그럼에도 진효섭은 찾을 수 없었다.

안단테는 그를 찾기 전에는 던전을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다. 설사, 그곳에서 폭주하더라도. 죽어서 나가지 못하고 뼈를 묻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 진효섭과 함께가 아니라면 나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마침내 다른 던전으로 향하는 소형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없어. 거기서 다른 게이트를 발견했으니까. 다른 던전으로 향하는 곳이던데, 아무래도 효섭이가 변형 던전을 전전하다가 다른 던전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아. 거기가 어딘지 찾아내서 구하면 돼.”

“구하면 된다니…….”

플랫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체르니를 흘끔 바라보자, 그 역시 동시에 플랫을 흘끔거렸다. 매일 다투는 그들이지만 지금만큼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이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는 게 언젠데요?”

“2일.”

“……단장님, 지금 10일이에요.”

“시간이 꽤 흘렀네. 보통 일반인이 거기서 살 수 있는 기간은 2주일 정도야. 던전 상태에 따라서 3주도 가능할 테니까, 그 안에 찾아야 해.”

누구도 안단테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진효섭이 정말 2일에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면, 8일이 지났다는 뜻이다. 안단테의 모습으로 미루어 그간 필사적으로 던전을 찾아 헤맸을 터. 그런데도 찾지 못했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그 변형 던전. 특성은요?”

“독.”

“……단장님.”

“왜.”

안단테는 이제 다 입은 옷을 정리하고서 손바닥에 밴드를 싸매고 있었다. 그러고는 단도도 몇 개 챙겼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던전만을 전전할 생각인 사람 같았다. 그런 그에게 플랫이 대표로서 현실을 일깨웠다.

“일반인이 독 계열 던전에 들어가면, 8일은커녕 8분도 못 버텨요.”

“말했잖아. 변형 게이트 안에는 또 다른 게이트가 있었다니까. 우리가 저번에 SS급 던전에서 그런 걸 통해 다른 던전으로 나왔던 것처럼, 그것도 마찬가지라고. 다른 던전으로 이어진 거야. 진효섭은 그리로 향한 게 분명해.”

“그러니까 그게 말이……. 하아…….”

“안에서 발견된 건 가방뿐이야. 그 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어. 던전을 전전했다면 분명 뭔가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없었다고. 게이트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떨어진 게 분명해.”

필사적으로 찾았는데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있었던 흔적조차.

그러니 진효섭은 다른 던전으로 흘러가 벌벌 떨고 있을 것이다. 무섭다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안단테의 머릿속엔 그런 진효섭을 찾을 생각밖에 없었다.

“단장, 진짜……. 아오…….”

“하아…….”

플랫은 머리를 마구 헤집었고, 다른 길드원들은 제각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단테가 미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믿는 건지. 물론 지금 상황이 길드원들에게도 믿기지 않는 일이고, 당황스러운 일인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왜곡하지는 않는다. 진효섭이어서 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아노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고, 슬펐다. 그를 위해서 다시 SS급 던전에 들어갔지만, 그가 살아 있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죽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뿐.

그런데, 지금 안단테는 그 당시에도 하지 않았던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일반인은 독 계열 던전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 흔적 따위는 독에 다 문드러졌을 터.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안단테는 여전히 진효섭이 살아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진효섭이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 * *

목은 타는 듯이 말라 왔고, 눈은 웬만한 힘에도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뻑뻑했다. 콧잔등이 찌푸려질 정도로 힘을 주고서야 겨우 눈이 뜨였다.

‘너는 사랑받을 수 있을 거야.’

눈을 뜨자마자 따스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과거의 인물이 방금까지 곁에 있었던 듯 선명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고 나니 그것이 꿈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했다. 안단테에게서 벗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독 그때의 일을 자주 꾸는 건 어째서인지. 진효섭은 느릿하게 숨을 뱉어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약간 바랜 듯한 벽지,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한 벽 장식들이 인상 깊었다. 그 밑으로는 짙은 색의 가구들이 키순으로 줄지어 있었다.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한 집은 상황을 잊고 구경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때, 인기척과 함께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일어났다! 엄마! 엄마! 일어났어!」

아이는 남다르게 커다란 목청을 뽐내고는 진효섭에게로 다가왔다. 양 갈래로 곱게 머리를 땋은 여자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진효섭을 빤히 쳐다봤다.

「몸은 좀 괜찮아요? 언덕에 쓰러져 있길래 우리 집으로 옮겨 왔어요.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아, 근데 오빠는 이름이 뭐예요?」

“……?”

「뭐냐니까? 설마, 이름 기억 안 나요? 아, 아니다. 지금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구나. 오빠 동양인이니까.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아, 이것도 못 알아들으려나.」

아이는 혼자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진효섭은 당황스러웠다. 정말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이가 꽤 능숙한 영어로 말을 붙여 왔다.

“영어는 가능해?”

“아……. 응. 할 수 있어.”

“오! 발음 보니까 영미권 사람이었구나?”

아이가 정말 잘됐다며 손뼉을 쳤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밝은 성격이 아주 잘 느껴지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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