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발린 S급 가이드 127화
안단테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손안의 돌을 부숴 버렸다. 콰직, 소리와 함께 환청이 씻은 듯 사라졌다. 스산했던 분위기도 내려앉고 모든 게 해결됐지만, 다소 찜찜함이 남았다.
새로운 변형 던전의 출현인 탓일까. 잠깐 부서진 돌과 던전을 번갈아 바라보던 안단테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려 들어왔던 방향으로 향했다. 던전의 일은 이미 뒷전이 됐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진효섭과의 관계보다 중요하지 않으므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칠 정도로 빠르게 뛰자 얼마 안 있어 저 멀리, 게이트가 보였다. 안단테는 주위에 시선 한번 주지 않고 대번 그곳으로 뛰었다. 그 끝에 진효섭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도 함께 뛰는 듯했다.
순식간에 게이트를 넘어가자 주위가 환해졌다. 동시에 안단테는 오랫동안 참고 있던 숨도 뱉었다. 말을 했던 탓에 약간의 중독 증세는 보였지만, 이 정도는 3분도 걸리지 않아서 사라질 것이다.
“효섭아.”
안단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진효섭부터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효섭은 보이지 않았다. 안단테의 속눈썹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눈동자가 모든 것을 꼼꼼히 훑고, 표정은 점차 서늘하게 굳었다.
“…….”
심장을 뽑아냈던 손끝에서 괴물의 피가 뚝 떨어졌다.
안단테는 게이트를 등지고 4분의 1 정도가 부서진 허름한 집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노인이 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노인 말고 다른 기척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으, 으이……?”
“진효섭 어디 갔어.”
“뭐라, 꼬……?”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묻는 노인에 안단테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손이 노인의 멱살을 잡아챘다.
“진효섭 어딨느냐고 묻잖아!”
“에, 에구머니나……!”
안단테가 크게 소리 지르자 노인이 놀란 듯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툭, 데구루루. 그의 손에 있던 무언가가 떨어지더니 바닥을 굴렀다. 안단테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왜……? 어째서?’
동공이 확장되고 숨이 멎었다. 심장이 멈춘 것처럼 뛰지 않았다. 아니, 너무 시끄럽게 뛰어서 심장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안단테가 노인의 멱살을 놓고 주춤거리며 바닥을 굴러다니는 걸 집어 올렸다. 황색의 보석. 아노의 유품. 진효섭에게 선물했던 것이자 그를 지켜 줄 물건이었다.
‘왜 저 노인네가 이걸 들고 있지? 효섭이는 어딜 가고?’
설마, 괴물을 해치우는 사이에 도망가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주위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안단테가 던전을 해결하고 돌아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으니, 도망쳤다면 기척이 느껴져야 정상일 텐데.
“……뭐야. 왜 없어. 진효섭은 어딜 갔냐고.”
목숨을 지켜 줄 물건까지 두고 대체 어딜 간 건지. 진효섭은 보이지 않고, 주위는 조용했다. 코끝에 달라붙는 달콤한 잔향이 미적지근했다.
그때, 노인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들어가, 버렸으야……. 버리고, 가겠다고…….”
“들어, 갔, 다고? 어딜…… 어딜, 들어갔다는 거야.”
안단테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렇게나 대답을 기다리며 긴장해 본 적이 있었던가. 100만 명 앞에 설 때도 심드렁하던 그가, SS급 던전의 보스를 앞에 두고도 웃었던 안단테가, 지금 무력감에 젖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려……. 저짝으로…….”
노인이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안단테가 방금 나온 게이트를 가리켰다. 보석이 다시금 흙바닥을 굴렀다. 아니, 어쩌면 바닥을 구르는 건 안단테의 심장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심장이 꺼지는 듯한 아득함을 느낄 리가 없다.
“더는, 그렇게 살기 싫다고……. 가겠다고……. 안타깝구먼…….”
양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안단테는 또다시 노인의 멱살을 틀어쥘 뻔했다. 생명의 은인인 진효섭이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왜 말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안타깝다는 개소리나 지껄이는 저 노인네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은 없었다. 안단테는 곧장 게이트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진짜, 여기 들어갔다고? 하지만 돌아올 때 누가 있었던가?’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왔던지라 주위가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이미 처치했던 괴물의 환청이 다시금 떠올랐다. 도와 달라던 그 말이 설마 진짜였나. 흉내 냈던 게 아니었던 걸까. 물론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돌아오면서 무언가 이상한 기색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은 더욱 커졌다.
새파랗게 질린 안단테는 던전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커다란 곳이었지만, 기감을 날카롭게 끌어 올려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아지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이 숨을 턱 하고 막았다. 던전에 가득 찬 독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안단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독. 하나, 일반인에 불과할 진효섭에게는 치명적이리라.
‘뼈까지 삭아 없어질 그럴, 그럴…….’
“아냐, 닥쳐. 그럴 리가 없잖아.”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한 안단테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생성됐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구름이 천장을 가득 채웠다.
쏴아아- 빗물이 모든 독을 쓸어내리자 주위가 더 확실히 인지되었다. 다 처리하지 않아 남은 괴물의 기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이 하는 중얼거림까지도 귓가에 닿았다.
-맛있어…… 보인다…….
-배고파.
-맛, 맛있어 보여…….
하나같이 안단테를 보고 침을 흘리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가왔다간 죽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는지 괴물들은 거대한 입을 실로 꿰맨 채 먼발치서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때 환청 중 하나, 다른 내용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왔다.
-아, 이거, 맛있다…….
안단테가 빛처럼 빠르게 내달려 그것의 목을 잡아챘다. 다른 괴물 놈들과 다르게 거대한 입의 실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입에 묻어 있는 검은 무언가. 안단테는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그것을 찢어발겼다.
-끄헉, 꺽.
끈적이는 검은 것을 뱉은 괴물이 그대로 유명을 달리했다. 툭, 괴물이 있던 자리에 반쯤 형체를 잃은 가방이 떨어졌다.
“…….”
안단테가 천천히 가방을 들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순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눈앞에 진효섭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멍하니 가방을 바라보던 안단테가 다시 주위를 훑곤 이대로 폭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능력을 퍼뜨렸다. 머리 위에 자리 잡은 먹구름이 한계까지 퍼졌다. 곧이어 던전 내 모든 곳에 비가 내렸다.
그러나 사람의 기척은 여전히 없었다. 안단테는 못 박힌 듯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들어가, 버렸으야……. 버리고, 가겠다고……. 더는, 그렇게 살기 싫다고…….’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진효섭의 지친 목소리가 머릿속을 점령했다.
‘저, 너무 힘듭니다. 형 곁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런 게 만약 사랑이라면……. 저는, 다시는 사랑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놓아주십시오.’
안단테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처치한 괴물의 비웃음이 뇌를 흔드는 것 같았다. 텅 빈 손안에 남은 것은 강렬한 후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