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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25)화 (125/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25화

진효섭은 잠깐이지만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게이트에서 멀어졌다. 저곳에 떨어진다고 한들, 안단테가 뒤따라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생명을 함부로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생명의 은인을 저버리는 짓이므로.

안단테는 진효섭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양 빤히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날이 잔뜩 선 모습이었다.

그때, 게이트 안쪽에서 검은 손이 천천히 뻗어졌다. 다른 게이트에서 익히 봤던 그림자와 같은 일렁임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모양을 갖춘 손이 진효섭을 향해 뻗어졌다.

망설임 하나 없이 안단테가 곧장 진효섭의 앞을 막고 섰다. 검은 손에서 진효섭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었으나 보호막은 여전히 안단테를 향해 발동했다.

파지직, 보호막과 맞닿은 안단테의 등에서 불꽃이 튀며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옷이 죄다 찢어지다 못해 등이 지져지는데도 안단테는 움직이지 않고 굳건히 섰다. 놀란 진효섭이 주춤 물러나고서야 불꽃이 잠잠해졌다.

“등이…….”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멀어져.”

안단테는 게이트에서 뻗어진 손을 틀어쥐려 했으나 실체를 얻은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나온 거대한 손은 진효섭이 멀어지자 대신이라는 듯 안단테를 휘어 감았다. 그러곤 강하게 끌어당겼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게이트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안단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손을 찬찬히 살폈다.

“……뭐야, 이거.”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게이트가 주변의 것들을 끌어당기다니. 새로운 게이트의 출현. 또는 변형된 게이트. 안단테는 굳은 표정으로 게이트를 노려봤다. 하필.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그 순간, 안단테를 끌어들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게이트 속에서 손이 하나 더 뻗어 나왔다. 그것은 바닥을 꾸물꾸물 기어 진효섭 쪽으로 향했다.

‘감히 어딜.’

안단테가 뒤를 돌아보며 바닥을 기어가는 검은 손을 짓밟았다. 몸을 조이는 손의 힘 따위론 안단테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힘으로는 검은 손을 저지하지 못했다. 결국 그것은 느릿하지만 꾸준히 움직여 진효섭의 근처까지 기어갔다. 안단테가 짜증스럽게 표정을 구긴 채 다시 몸을 움직여 막아 봤지만, 역시나 물리적인 힘인지라 효과 없었다.

그사이 검은 손이 진효섭의 발치에 도달했다.

“진효섭! 더 뒤로 물러나!”

“아, 예. 예.”

주춤주춤 뒷걸음질하던 진효섭이 뒤늦게 성큼 물러났다. 꾸물꾸물 기어 오는 검은 손은 전투와 거리가 먼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기괴한 장면이었다.

진효섭이 본격적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검은 손이 갑자기 커져서 안단테에게 그랬듯이 잽싸게 휘어 감으려고 들었다.

“저, X발.”

안단테가 분노로 범벅이 된 말을 뱉으며 능력을 끌어 올렸다. 아까와는 달리 손끝에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디버프를 사용하는 게 가장 확실했지만, 그 능력은 일반인에게 닿아서 좋을 게 없다. 저 방어막이 어디까지 막아 줄지 모르기에 안단테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효섭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방어막을 깨부수고 진효섭을 품에 안는 것이다. 하지만 안단테가 방어막을 깨부수기도 전에 검은 손은 파지직 타 버렸다.

“으…….”

진효섭은 무사한 채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저것에 위험을 느껴 방어막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 것 같았다.

“……다행이네.”

안단테는 안심하면서도 표정을 펴지 못했다. 안전을 이유로 방어막을 부숴 진효섭을 품에 안고 싶었던 마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참아야만 했던 탓이다.

“효섭아. 지금은 비상시야. 일단 위험에서 떨어져야 해.”

게이트에서 뻗어 나와 다리를 부여잡은 검은 손을 흘끔 바라보며 안단테가 말을 이었다.

“저거, 나도 처음 보는 게이트야. 대충 보니까 일정 거리에 있는 것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데. 멀어지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으니까 일단, 나랑 같이 가자.”

안단테가 진효섭에게 손을 뻗었다. 돌을 놓고 자신의 손을 잡아 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 진효섭은 멍하니 중얼거리며 게이트를 바라봤다.

“일정 거리…….”

그때, 게이트 안에서 세 번째 손이 또 꾸물꾸물 기어 나와 허름한 집을 향했다. 정확히는 노인이 있는 곳이었다.

진효섭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놀란 그가 땅을 박차고 뛰었다.

“어르신!”

“진효섭!”

위험해질세라 안단테가 잡으려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조차 견고한 방어막은 그를 허용하지 않았다. 파직- 불꽃이 튀고, 안단테의 손은 닿지 못했다. 깨부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진효섭을 지키는 보호막을 없앨 수가 없었다.

그사이, 진효섭은 다급하게 안단테를 지나쳐 노인의 방문 앞을 향해 내달렸다. 동시에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노인이 나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귀가 안 좋아서인지 소란스러웠던 밖의 상황을 조금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으, 이……? 이게 뭐시당가……?”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노인을 진효섭이 조심스레 잡아끌었다.

“어, 어르신! 위험합니다. 제 곁으로 오십시오!”

진효섭은 방어막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쌌으니 위험하지 않다 생각되는 노인이 바로 옆에 있으면 함께 보호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발…….’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다행히도 꾸물꾸물 다가온 손은 노인을 붙들지 못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게이트와 검은 손에 시선을 뺏겼던 노인이 떨리는 손끝으로 집을 가리켰다.

“어, 어어…… 집이…….”

뜻대로 되지 않자 분노했는지 게이트에서 나온 손이 방향을 틀어 노인의 집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노인은 이제껏 본 모습 중 가장 흥분하며 무너진 곳으로, 정확히는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저, 저것이 내 집을, 무너뜨리고 있으야……!”

“어르신, 위험합니다!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어르신!”

진효섭이 계속 노인을 부여잡았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발버둥 쳤다. 집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듯했다.

“내, 내 생을 담은 것이여…… 이 집은, 안돼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여…….”

노인은 계속해서 무너지는 집을 막으려고 들었다. 물론 진효섭이 붙잡고 있었기에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이드라고 하지만, 노인 한 명 정도는 통제할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노인이 생각보다 완강하게 저항해 진효섭은 당황했다.

“안 됩니다! 어르신, 저희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집은 나중에라도 다시 고치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은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그, 그랄 수는 엄따……. 내 집이여…… 평생을 담은…… 내 삶을 냄길…….”

“어르신…….”

그 애절함에 진효섭은 조금 안타까워졌다. 노인이 이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은 한 달 남짓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집. 어느 곳 하나 노인의 손이 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집도, 마당도, 대문도, 밭까지도 말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마지막 바람이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쉽사리 떠나자고 말할 수가 없어 진효섭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잠깐 잊고 있던 안단테의 나직한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효섭아.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지금 벗어나야 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효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노인을 강제로 이끄는 게 어려웠다. 물론 아무리 집이 소중하다고 해도 목숨만큼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도 저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진효섭의 표정이 더욱더 어두워졌을 때였다.

“……내가 도와줄까.”

무엇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진효섭이 눈을 끔뻑였다. 안단테는 다소 저조한 태도로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내가 지금 저 던전에 들어가서 보스를 없애고 나오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거야. 길어 봤자 20분 안팎이겠지.”

그제야 진효섭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그럼 집을 수리할 수 있을 정도에서 멈출 수 있을걸.”

그렇겠지. S급 던전도 혼자서 빠르게 해결하던 안단테다. 처음 보는 유형의 게이트일지라도 그가 해결하지 못할 던전은 없을 테니 위험할 거라는 걱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위험을 느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진효섭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대가로 거래하자는 겁니까.”

안단테의 미간이 좁혀졌다. 진효섭은 그의 말을 모두 이상하게 해석했다.

“거래가 아니야. 나는, 너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

“이야기…… 요?”

“내가 던전에서 나오면 얘기할 기회를 줘. 이런 식으로 말고, 제대로 마주하고. 그거면 돼.”

서로의 상황을 터놓고 얘기하기. 안단테가 떠올린 어긋난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드는 진효섭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갑작스레 게이트가 생겨 아까의 아슬아슬하던 상황이 끊겼지만, 안단테는 아직도 목이 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절망 어린 연인의 표정에 아무 말도 못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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