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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발린 S급 가이드 (121)화 (121/203)

꿀 발린 S급 가이드 121화

경운기를 몰고 돌아가는데 손끝이 계속해서 떨렸다.

‘어쩌지. 어쩌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책임감 없이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서 찾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동시에 안단테의 이상행동 때문에 진효섭은 누군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에스퍼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가이드에게 집착을 느끼거든.’

쿵쿵, 심장이 뛰었다. 심장께의 상처가 아리며 불안이 가슴 정중앙을 차지했다. 아니, 이미 차지하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벗어나 봤자, 네 말로는 똑같아. 어떤 에스퍼 옆에 있든 너는 감금될 테고, 자유 없이 살아가게 될 거야.’

저문 해가 진효섭의 주위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스며들었던 저주가 눈앞까지 드리워진 듯했다.

“아니. 아니야.”

집착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안단테는 집착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내가 그렇게 일을 그만둬서 화가 난 것뿐일 거야. 뉴스는, 분명 무슨 오해가 있는 걸 테고.’

멈칫, 진효섭이 몰던 경운기를 멈췄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진짜 에스퍼의 집착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떡하지. 감금이라도 해서 가이딩을 뽑으려고 들면 어떡하지.

SS급 에스퍼가 놓지 않겠다 선언하면 진효섭은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막막한 상황에 진효섭은 그저 두려움이 샘솟았다. 불안을 내려놓지 못한 진효섭은 결국 경운기를 돌렸다.

노인의 집으로 가던 것을 멈추고 향한 곳은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었다.

‘형이 날 찾으려면 분명 어떻게든 찾을 거야.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지.’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진효섭은 경운기를 주차한 후 곧장 기차표를 구매했다. 충동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허둥대지 않았다. 목적지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게이트 입구로 정해져 있었다.

‘그걸 또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일시적으로 이동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좌표 아이템. ‘이동 스크롤’로 불리는 그것은 구하기 어려운 만큼, 찢기만 하면 발동되는 좋은 물건이었다. 성능 또한 좋았는데, 대신 사용하는 데 여러 조건이 붙었다. 준비할 것,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러다 보니 적절한 것을 마련하기까지 일이 년으로는 부족하나 진효섭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 몸을 숨겼을 때도, 한국에 올 때도, 그 아이템을 사용했으므로.

다신 쓸 일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 몰라 여분으로 준비해 둔 게 있었다. 워낙 수상한 물건이었기에 다른 곳에 JIN이라는 이름으로 보관해 두었는데……. 지금이 되니 준비해 둬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진효섭은 갑작스럽게 타게 된 전철 안에서 멍하니 밖을 주시했다. 안단테가 집착할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불안함이 거둬지지 않았다. 스크롤을 쓸 일이 정말 생기는 걸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손에 쥔 것만으로 안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진짜 쓰게 될지 아닐지는 몰라도…… 가지고 있는 게 낫잖아.’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다. 안단테는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진효섭은 무서웠다. 과거와 같은 집착 따위, 두 번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 * *

덜그럭, 덜그럭, 경운기 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하지만 노인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진효섭의 마음은 평온했다. 품 안의 스크롤이 그렇게나 든든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으니. 시내에 간다고 외출해 하루 동안 연락을 두절한 점이다.

‘어르신께서 분명 걱정하고 계실 텐데.’

아니면 경운기를 훔쳤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얼른 가야겠다.”

진효섭은 서둘러서 경운기를 운전했다. 물론 서두른다고 해서 더 빨라지지는 않았지만.

달달 떨리는 경운기 위에서 꼬박 일곱 시간을 보내 겨우 도착한 노인의 집. 출발한 시간이 너무 늦은 탓에 시간은 어느덧 새벽 세 시였다. 사위가 고요했고, 노인은 잠이 든 듯했다. 노인의 작은 뒤척임이 들려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내에 가기 위해 나섰을 때와 다를 바 없이 잔잔한 분위기의 풍경에 진효섭은 뺨을 긁적였다.

‘내가 너무 지레 겁먹었나?’

안단테와 통화 한 통 했다고 하루 꼬박 잠도 자지 못하고 아이템을 가지러 간 행동이 무색하게도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두렵고도 길었던 진효섭의 하루가 쓸모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하…….”

차분해지자 비로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단테가 미국의 대표 길드와 손잡아 수색할 정도면 이미 자신을 찾았어야 했다. 현상금까지 걸었다 했으니까.

‘하지만 어디냐고 물었다는 건, 결국 날 못 찾았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찾는 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SS급 던전에 들어가기 전, 안단테가 벌였던 일을 생각해 보면 꽤 가능성 있었다. 어쩌면 과장된 뉴스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분노가 다소 가라앉아서 더 찾지 않는 걸 수도 있다. 분노든 행복이든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그러들게 마련이니까.

“바보 같네…….”

진효섭은 머리를 긁적이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누름돌이 얹혀 있어서 그런지 삐걱거림이 없었다. 조용한 평화에 불안함도 함께 완전히 내려앉았다.

‘이제 어쩐다.’

분명 여기 올 때까지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떠나려고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로 드릴 숙박비를 준비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짐도 풀지 않은 채였기에 떠나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막상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나니 더 있을까 하는 미련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잠시 후, 진효섭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아이템도 가져왔겠다,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갈 거면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진효섭의 시선이 상에 차려진 김치전을 향했다. 어딜 봐도 노인이 혼자 먹으려고 준비해 둔 양이 아니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렸을 노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해지며 자연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고민하듯 끙, 한숨을 쉰 진효섭이 시간을 가늠해 봤다. 아침잠이 없는 노인이 일어나는 시간은 대략 새벽 다섯 시 전후.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래. 인사만 하고 가자.’

그래도 함께 있었는데, 말도 없이 사라지면 노인은 걱정할 것이다. ……아니, 사실은 진효섭이 아쉬웠다. 노인이 걱정되기도 했고.

‘인사만 하고, 딱 여섯 시 전에 출발하는 거야.’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할 터다.

“후…….”

진효섭은 노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입김이 보이지도 않는데 괜히 허공을 향해 후후 숨을 불어 보았다. 새벽에 홀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노인과는 잠깐 사이에 가까워졌다. 그도 함께인 게 나쁘지 않았는지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용하고, 속세에서 벗어난 곳은 생각 정리하기에 딱 맞은 장소였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쫓기듯 도망쳐야 한다니. 어디 하나 발붙이고 쉴 곳이 없는 것 같아서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어두웠던 하늘이 차차 밝아지고, 예쁜 색으로 물들었다.

그제야 진효섭은 미리 준비를 끝내 둔 가방을 어깨에 멨다. 이제 슬슬 노인이 밖으로 나올 시간이다. 그럼 거두어 준 노인의 호의에 감사했다며 숙박비를 건네고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꼭 다시 들러야지.’

노인이 그때까지 건강하기만을 바라며 진효섭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눈에 담았다. 그때, 문득 평소와 다른 것이 시야에 걸렸다. 어두웠을 때는 몰랐는데 밝아지니 비로소 보였다.

‘저게 뭐지?’

저 멀리, 검은 무언가가 있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보자 재규어를 닮은 검은색 스포츠카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모양의.

진효섭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커진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 순간, 검은 자동차가 조용히 집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달아날 생각도 못 하고 꼼짝없이 굳어 있으려니 차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인물에 진효섭의 동공이 커졌다.

“혀, 형……?”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분명 경운기를 끌고 도착했을 때까지는 없었는데. 하지만 방금 도착했다고 하기에는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복잡한 머릿속에 진효섭이 안단테를 멍하니 바라보자 이윽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안단테가 진효섭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당도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또 어딜 가려고 그렇게 가방을 멨어요?”

날카로운 물음에 진효섭은 대답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그를 보던 안단테가 비뚤어진 웃음을 흘렸다.

“내 참, 자기가 이렇게 잘 숨는 줄은 몰랐네. 찾는 데 고생 좀 했어요. 흔적이 기차역에서 뚝 끊기길래 비공식적 게이트를 통해 해외로 튄 줄 알았거든. 근데 여기 있었을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딱 이건가 봐. 그쵸?”

가방끈을 쥔 진효섭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출발하려고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것부터 시작해 저 발언까지, 하나같이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아니, 왜 여기까지…….”

진효섭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왜? 이유를 알고 싶은 건 내 쪽이에요.”

어슴푸레한 하늘 탓인지, 묘한 새벽녘이 묻은 안단테는 허름한 시골 풍경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너른 들판에 그려진 실루엣이 이질적이었다.

“왜 도망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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